기사입력 2008.05.02 10:14 / 기사수정 2008.05.02 10:14
노동절을 맞이한 5월 1일 부산 사직구장. 올 시즌 7번째 만원 관중을 기록하며 야구 열기를 뜨겁게 했다. 이날의 선발은 부산의 영웅 '전국구 에이스' 손민한의 등판일이었다. 5월 1일의 경기는 손민한의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철벽수비가 돋보인 경기였으며 왜 그가 '전국구 에이스'라고 불리는지 알 수 있는 한판이었다.
'에이스 투수'라 함은 팀의 구심점으로서 팀이 위기에 처했을 때 그 위기를 헤쳐나갈 수 있는 지혜를 가져야 하며, 팀이 승승장구할 때에는 그 분위기를 좀 더 고조시킬 수 있는 능력을 발휘해야 한다. 5월 1일에 등판한 손민한은 타자를 윽박지르는 피칭으로 상대팀을 제압한 것이 아니었고, 위기 상황에서 전혀 흔들리지 않고 보여준 꿋꿋이 연습해온 '기본기'였다.
투수는 그라운드의 총사령관으로서 단지 피칭에만 신경 써서는 안 되며, 여러 가지 상황을 염두에 둬 그때그때 상황에 맞는 여러 가지 액션을 취해야만 한다. 그러한 덕목 중 하나가 바로 '투수의 수비력'이다. 투수는 '제5의 내야수'이다. 타자가 친 공이 언제 마운드 언저리로 날라 올지 모른다. 투수는 투구 직후, 특유의 반사신경과 평소에 연습해온 패턴플레이로 그러한 상황에 대처하여 아웃카운트를 늘릴 준비를 항상 해두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투수들은 시즌 전 스프링캠프에서 투구훈련 못지않게 야수들과의 수비훈련에도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투수의 수비력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바로 이틀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알 수 있다. 4월 30일 두산과 KIA의 잠실경기에서 6회초 KIA의 공격에서 1사 3루의 찬스. 7번 타자 발데스는 스퀴즈 자세를 취하고 공을 맞혔다. 발데스가 스퀴즈를 댄 타구는 다른 아닌 투수 랜들의 정면으로 굴러갔다. 하지만,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랜들은 공을 바로 홈에 던지지 못하고 머뭇거리다가 3루 주자 최경환을 홈으로 불러들이며 무너졌다.
계속된 위기에서 대타로 나온 이재주의 빗맞은 3루 쪽 타구 또한 랜들은 잡지 못하며 위기를 자초했고 결국 타자일순을 허용하며 6회에만 5점을 헌납하게 됐다. 물론 팀이 8회말에 집중력을 발휘하여 대역전승을 거두긴 했지만 투수의 수비력의 경기판도에 얼마나 중요한 변수가 되는지 알 수 있었다.
바로 다음날인 5월 1일은 전날과는 대조된 모습이 연출됐다. 롯데와 LG의 부산 사직경기에서 3-3으로 맞서던 7회초에 손민한의 관록이 넘치는 수비로 자신의 승수를 올렸을 뿐 아니라 팀의 승리에도 지대한 공을 세웠다. 7회초 선두타자 안치용의 좌익수 뒤 2루타로 무사 2루의 위기, 1점차 승부였기에 후속타자 김상현은 번트자세를 취했다.
손민한의 투구에 김상현은 침착히 3루 쪽으로 공을 굴렸다. 투수 정면도 아니었고, 누가 봐도 2루 주자가 3루로 진루한다는 데에 이견을 달리할 사람은 없어 보이는 타구였다. 하지만, 손민한은 투구 직후 득달같이 3루 쪽으로 달려가더니 공을 잡고 돌아서자마자 3루로 던져 선행주자를 잡았다.
이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1사 1루에서 권용관이 친 공이 3루수 이대호의 정면으로 갔지만 이대호는 가랑이 사이로 공을 놓치며 병살타로 이닝을 마무리할 수 있었던 기회를 1사 2,3루의 대위기로 둔갑시켰다. 하지만, 이에 당황할 손민한이 아니었다. 1번 타자 이대형을 고의사구로 채운 뒤 1사 만루를 만들고 2번 타자 박경수와 상대하게 되었고 3구째 박경수의 스퀴즈번트가 나오게 되었다.
그러나 손민한이 투구 직후 재빨리 앞으로 달려나오며 글러브로 공을 잡은 채로 강민호에게 토스하여 3루 주자를 아웃시켰고, 강민호는 타자 박경수마저 1루에서 아웃시키며 이닝을 마무리하게 되었다.
팀의 '에이스'로서의 진면모를 드러낸 순간이었다. 대위기 상황을 맞이하였지만 같은 팀의 선수들이나 이를 지켜보는 3만의 만원 관중은 이른바 에이스에 대한 '믿는 구석'이 있었기에 걱정하지 않았다. 위기 뒤의 찬스라고 했던가? 바로 7회말에 직전 수비에서 뼈아픈 실책을 범하며 팀을 위기에 내몰았던 이대호가 이를 무마시켜준 손민한에 보답하듯 2타점 중전 적시타로 역전에 성공하며 이날 승리에 기여했고, 이때 사직구장을 가득 메운 관중은 승리를 확신하는 '부산갈매기'를 다 같이 합창하며 하나가 되었다.
이날 손민한은 사실 평소 때처럼 타자들을 유린하는 날카로운 피칭을 하지는 못했다. 1회 시작하자마자 2점을 헌납하면서 흔들렸으며 안타도 9개나 허용하며 불안한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위기상황에서 나온 '투수의 호수비'를 비롯한 특유의 위기관리능력으로 상대팀의 기를 꺾고 분위기를 급반전시키며 팀에 소중한 승리를 안겨줬다. 왜 롯데 팬들이 손민한만 나오면 그토록 열광하는지 제대로 보여준 한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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