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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0분 뛴 호날두, '독이든 PK'에 울다

기사입력 2008.04.24 10:33 / 기사수정 2008.04.24 10:33

박형진 기자



[엑스포츠뉴스=박형진 기자] 오늘 새벽(24일, 이하 한국시각)에 끝난 바르셀로나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의 챔피언스리그 준결승 1차전을 한 마디로 정리하면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가 될 듯합니다. 

가장 좋은 활약을 보여준 메시는 제 컨디션이 아니었고, 가장 위협적인 공격수로 평가되던 앙리는 충분한 출전시간을 부여받지 못했습니다. 맨유는 원정경기에서 득점보다 실점 방지에 주력하며 수비적인 전술로 나섰고, 유일한 득점기회였던 호날두의 페널티킥은 실축으로 날아가 버렸습니다. 결과는 0-0. 팬들이 기대하던 다이내믹한 공격축구는 볼 수 없었습니다.

국내외 언론이 앞다투어 보도했지만, 이 날 경기의 핵심은 역시 호날두와 메시의 대결이었습니다.

바르셀로나는 전반 10분이 넘어서면서 중원을 지배했고, 자신들의 스타일로 마음껏 공격을 펼칠 수 있었습니다. 당연히 바르셀로나의 공격수들은 많은 공격기회를 잡을 수 있었죠. 특히, 부상에서 갓 복귀한 메시의 공격조율능력은 탁월했습니다. 메시는 박지성과 에브라(팬들이 '지브라(Jibra)'라인이라 일컫는)의 협동수비를 피하기 위해 중앙과 측면을 활발히 오갔고, 다른 공격수인 이니에스타와 에투에게 좋은 패스를 해주었습니다. 그러나 두터운 맨유의 수비라인에서 활동공간이 넓지 않았던 메시는 특유의 돌파나 감각적인 슈팅을 보여주지는 못했습니다.

맨유의 공격 핵심은 역시 호날두였습니다. 맨유는 4-4-2가 아닌 4-5-1전술을 들고 나왔는데요, 테베즈가 공격형 미드필더로서 공격을 조율하는 역할을 맡았고, 박지성과 루니가 좌우 측면공격을 책임졌습니다. 경이로운 득점력을 자랑하는 호날두가 최전방에 서서 공격의 마무리 역할을 맡았고요. 그러나 박지성과 루니는 수비수라고 부르는 것이 알맞을 정도로 수비에 치중했습니다. 결국, 공격은 테베즈와 호날두, 그 중 호날두 혼자의 몫이었고 뛰어난 개인기의 그도 바르셀로나의 수비를 뚫고 골을 넣기에는 버거운 모습이었습니다.

많은 이들은 맨유의 전술을 의아하다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호날두의 득점력이 뛰어난 것은 맞지만, 언제까지나 호날두의 장점이 극대화되는 포지션은 측면 공격수입니다. 거꾸로, 루니가 수비가담이나 측면에서의 돌파에 재능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언제까지나 루니는 전형적인 스트라이커입니다. 퍼거슨 감독은 과연 무슨 생각으로 이런 포메이션을 90분 내내 가동했을까요?

900분 뛴 호날두, 포지션 변화로 '체력조정 중'

호날두는 현재 '혹사' 중입니다. 호날두는 3월 8일 포츠머스와의 FA컵 경기부터 오늘 열린 바르셀로나전까지 총 10경기를 90분 풀타임으로 뛰었습니다. 맨유가 그 사이 치른 11경기 중 10경기 900분을 쉬지 않고 뛴 셈입니다. 아무리 체력이 좋고 부상에 강한 호날두라도 이런 식의 혹사는 경기력 저하로 이어지기 마련입니다. 우리는 핵심선수의 체력저하가 팀 전력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파브레가스의 아스날을 통해 이미 목격한 바 있습니다.

퍼거슨 감독은 호날두의 체력 문제를 포메이션의 변화로 해결 중입니다. 득점력이 좋은 호날두를 전방 원톱 형식으로 두고, 호날두의 수비부담을 최소화한 것입니다. 최근 경기에서 호날두는 거의 수비가담을 하지 않고 최전방 1선에서 기회를 노리는 모습입니다. 이런 식으로 비축된 체력을 바탕으로 호날두는 기회가 왔을 때 정확한 슛으로 득점에 성공하죠. 최근 경기에서 호날두의 드리블 돌파를 보기 힘든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퍼거슨 감독은 바르셀로나전에서도 호날두를 스트라이커로 기용했습니다. 대신 체력적으로 뛰어난(퍼거슨 감독은 루니의 체력을 무척 높이 사는 것 같습니다) 루니를 측면에 배치하여 루니가 호날두 대신 많이 뛰어주도록 지시했고요. 사실 이런 전술은 공격전개에 있어 그리 효과적이지 않습니다. 로마와의 챔피언스리그 8강 1차전에서도 하그리브스가 투입되며 루니가 중앙으로 가자 루니가 골을 터뜨렸죠. 그러나 이번 주말 첼시와의 중요한 일전을 남겨둔 상황에서 퍼거슨 감독은 호날두를 교체하거나 측면으로 돌리는 대신 중앙공격수로 활용하며 '변칙적인' 체력조정을 하고 있습니다.

'독이든 PK'과 꼬인 맨유의 공격

맨유가 경기 초반 밀리토의 핸드볼 반칙으로 페널티킥을 얻었을 때, 저는 개인적으로 그 상황이 맨유에게 유리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2002년 월드컵 한국과 이탈리아 경기를 다들 기억하시겠지만, 이른 시간의 PK는 몸이 덜 풀린 공격수에게 '독이든 성배'와도 같습니다. 특히, 월드컵 16강전이라던가 챔피언스리그 준결승전처럼 비중이 큰 대회에서는 아무리 경험 많고 뛰어난 공격수라도 경기 초반에 얻은 페널티킥을 성공시키기 쉽지 않습니다.

전반 2분에 얻은 페널티킥은 맨유에게 성공하면 중요한 원정골이 되지만, 실패하면 팀 사기에 치명적인 영향을 주는 상황이었습니다. 천하의 호날두도 이 상황만큼은 부담을 이기지 못한 듯, 조금도 아니고 많이 빗나간 슈팅을 해버렸습니다. 아스날전 페널티킥을 두 번이나 차고도 모두 성공시킨 호날두의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호날두의 페널티킥 실축으로 맨유 선수들은 공격에서 자신감을 잃었고, 수비 쪽으로 처지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정도는 계획된 전략이기는 했지만, 루니와 박지성은 역습 상황에서조차 공격을 하기 어려울 정도로 깊숙이 수비에 가담했습니다. 맨유는 사실상 호날두의 원맨쇼에 의존하는 역습 전략을 폈지만, 페널티킥을 실축한 호날두는 킥에 대한 자신감을 잃은 듯 위력적인 슈팅을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맨유로서는 푸욜이 없는 바르셀로나를 상대로 원정골을 넣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친 셈이 되었습니다.

'터닝 포인트'가 필요한 맨유와 바르셀로나

0-0으로 승부를 가르지 못한 맨유와 바르셀로나. 두 팀이 2차전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주말 경기에서의 분위기 반전이 절실합니다. 맨유는 리그에서 미들즈브러와 블랙번에 발목을 잡히며 좋지 않은 분위기에 있습니다. 루이 사아가 부상으로 시즌 아웃된 상황에서 루니와 호날두가 지나치게 혹사당하고 있고, 이에 따른 체력 고갈이 우려되는 상황입니다. 그렇기에 맨유로서는 이번 주말 첼시와의 경기에서 반드시 승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맨유가 첼시전에서 승리할 경우 사실상 남은 경기의 승패에 상관없이 우승을 확정지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맨유가 첼시에 비해 골득실에서 18점이나 앞서있기 때문입니다.)

바르셀로나는 홈에서 파상공세를 펼치고도 골을 넣지 못했다는 점 때문에 분위기가 좋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더욱이 최근 리그 4경기에서 승리를 거두지 못한 바르셀로나의 하락세는 맨유보다 심각해 보입니다. 이번 주말 데포르티보전을 계기로 분위기가 반전되지 않는다면 바르셀로나 역시 부담스러운 마음을 안고 올드 트래포드 원정을 떠나게 될 전망입니다.

앙리는 챔피언스리그에 대해 '챔피언스리그 토너먼트는 180분짜리 경기다'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1차전의 결과만을 가지고 승패를 예측하기 어렵다는 뜻이지요. 두 '거성'의 맞대결은 아직까지 잠잠하고, 때로는 지루하게 보입니다. 그러나 아직 경기는 90분이나 남아있습니다.



박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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