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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L TALK!] 박지성과 '앨런 스미스 신드롬'

기사입력 2008.03.13 13:25 / 기사수정 2008.03.13 13:25

박형진 기자



[엑스포츠뉴스=박형진 기자] 대표적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팬사이트인 레드까페(www.redcafe.net)에는 종종 선수에 대한 평가를 묻는 포스트가 올라오고는 합니다. 박지성 역시 간간이 팬들의 입에 오르는 선수이지요. (분명, 그는 맨유의 1군 선수니까요.) 그 중 어떤 포스트에 이런 의견이 달렸습니다.

"나는 사람들이 왜 그리 박지성을 높게 평가하는지 모르겠어. 이건 앨런 스미스 신드롬이야 - 대부분의 사람이 그의 활동량에 눈이 먼거지."

앨런 스미스 신드롬(Alan Smith Syndrome)이란 재밌는 단어가 제 머리를 강타했습니다. 국내 팬들에게도 앨런 스미스는 실력 그 이상의 무언가를 가진 선수입니다. 한국에서 앨런 스미스는 '국내에 프리미어리그가 대중화되기 전에 잘했던 선수'의 대명사이죠. 그 용례로 '앨런 스미스 리즈 시절 ㄷㄷㄷ'이 있죠. 혹시 궁금하신 분들을 위해서, '앨런 스미스 리즈 시절' 동영상을 소개합니다.





앨런 스미스는 리즈 유나이티드 유소년 출신으로, 00/01시즌 리즈를  챔피언스리그 4강까지 견인한 일등공신입니다. 스미스는 공격수와 공격형 미드필더를 오가며 리즈의 공격을 이끌었고, 리즈를 위해 225경기를 뛰면서 57골을 득점했습니다. (냉정하게 말하자면, 국내 팬들이 'ㄷㄷㄷ'이라고 말할 만큼 놀라운 득점력은 아닙니다. 물론, 그의 골 장면들은 인상적이지만.) 

그러나 리즈가 심각한 재정난에 빠지며 강등까지 당하자 2004년 여름, 스미스는 리즈를 떠나게 됩니다. (그것도 리즈 유나이티드의 라이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스미스는 강등이 확정된 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눈물을 흘리며 팀 뱃지에 키스를 했지만, 팬들은 그 키스가 '굿바이 키스'라는 것을 후에야 깨달았습니다. 스미스는 이후 '유다'라는 별명까지 얻으며 리즈 팬들의 원성을 샀지요.

그렇게 해서 온 맨유에서의 첫 시즌은 순조로웠습니다. 데뷔 경기인 아스날과의 커뮤니티쉴드 경기에서 골을 넣은 것을 비롯해 스미스는 04/05시즌 43경기를 뛰며 10골을 넣었습니다. 정상급 공격수라 말하기엔 살짝 부족한 골 숫자이지만, 사실 스미스는 '원래' 한 시즌에 10골 정도 득점하는 스트라이커였습니다. 스미스를 대표팀에 합류시킨 00/01시즌의 52경기 18골 기록을 제외하면 말이죠.

그러나 스미스는 맨유의 중원 공백을 메우기 위해 중앙 미드필더로 변신해야 했습니다. 그는 중앙에서 로이 킨 못지않은 열정적인 태클과 몸싸움을 보여주어 '차세대 로이 킨'으로 주목받았지만, 공격지향적인 스미스에게 수비형 미드필더의 역할은 낯설 수밖에 없었습니다. 자신에게 맞지 않는 포지션을 소화한 선수에게 다소 가혹한 평가이겠지만, 스미스는 05/06시즌 맨유의 부진에 한 몫 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설상가상으로 리버풀과의 FA컵 경기에서 리세의 태클에 부상을 당하며 스미스는 장기부상자 명단에 올라가게 되었습니다.

06/07시즌, 스미스는 서서히 회복했지만 과거의 기량은 좀처럼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반니스텔루이가 이적하며 생긴 공백을 메우기 위해 스미스의 공격수 복귀가 시급했지만, 퍼거슨 감독은 정상이 아닌 스미스를 무리하게 활용하고자 하지 않았습니다. 스미스는 맨유 입단 후 처음으로 우승을 경험했지만 (그리고 그것은 스미스의 처음이자 유일한 우승이죠), 리그 경기에 단 9경기 출장한 그에게 정식 메달은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프리미어리그 연맹은 대신 그를 위해 특별 메달을 증정했지만, 그 메달은 맨유와 스미스의 이별을 의미하는 '징표'가 되었습니다. 맨유는 600만 파운드에 스미스를 뉴캐슬로 이적시켰고(리즈에서 맨유로 이적할 시 이적료가 700만 파운드였으니, 맨유로서는 큰 손해는 아니었죠), 그렇게 스미스는 맨유팬들의 머릿속에서 서서히 잊혀가고 있습니다.

일부이지만 맨유팬들이 박지성과 스미스를 연관지어 생각하는 것은 두 선수가 보여준 활동량 때문일 것입니다. 스미스는 날카로운 슛 감각을 지니고 있는 선수이지만, 그를 인기있는 선수로 만든 것은 그의 활발한 움직임이었습니다. 다소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기는 했지만 퍼거슨 감독이 스미스를 중앙 미드필더로 활용했던 이유도 그가 활발히 움직이며 넓은 지역을 커버해주기 때문이었죠.

스미스 신드롬에 의해 과대평가되었다는 평을 받는 또 한 명의 선수는 바로 리차드슨입니다. 현재 선더랜드에서 뛰고 있는 리차드슨은 한때 잉글랜드 국가대표에 선발될 정도로 각광을 받았지만, 맨유에서의 실망스러운 모습 때문에 팬들에게는 많은 비난을 받았습니다. 일부 팬들은 심지어 그에게 '머리 없는 닭(headless chicken)' 같다는 평을 하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닭은 머리 없이도 한동안 뛰어다닙니다.) 많이 뛰기는 하지만 생각이 없다는 잔혹한 평가였지요. 그 역시 스미스와 함께 2007년 여름 맨유를 떠났습니다.



박지성의 활동량은 스미스와 리차드슨을 능가합니다. 국내에서는 '두 개의 심장'이라는 별명이 널리 알려져 있지만, 현지팬들은 '세 개의 폐(three lungs)'라는 수식어를 써가며 그의 활동량을 칭찬하죠.

그러나 박지성이 활동량으로 승부한다는 평가 - 앨런 스미스 신드롬이다! 식의 평가 - 에는 쉽게 동의할 수 없습니다. 퍼거슨 감독 역시 언급했듯이 박지성의 장점은 공이 없는 상황에서 적절한 위치에 자리를 잡고, 공을 잡은 후 다른 선수에게 재빨리 넘겨주는 '축구 센스'입니다.

부상에서 복귀한 박지성은 과거에 비해 활발한 모습을 보여주지는 않고 있습니다. 분명 무릎 부상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탓도 있겠지만, 본인이 이전과 다른 모습을 보이고자 노력한 측면도 있습니다. 박지성 본인 역시 회복 기간 동안 다른 선수들의 움직임을 잘 지켜보았을 것이고, 효율성 없이 많이 뛰는 것이 해답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을 것입니다.

이번 시즌 박지성은 적지만 효율적인 움직임으로 상대를 압도하는 '업그레이드'된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과거의 박지성이 반칙을 당하며 자신의 역할을 마무리했다면, 지금 박지성은 빠른 패스로 자신의 역할을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주말이 다가옵니다. 이번 주말에는 맨유와 더비가 맞붙게 되는데요, 빡빡한 일정 속에서 충분한 휴식을 취한 박지성의 선발 출장이 기대됩니다. 

'같은듯 달라진' 박지성의 움직임을 유심히 지켜보는 것도 축구를 즐기는 하나의 방법이 되지 않을까요? 아, 말이 나온 김에 앨런 스미스가 있는 뉴캐슬의 경기나, 리차드슨이 뛰는 선더랜드의 경기를 보는 것도 흥미로울듯합니다. 두 선수와 박지성을 비교해서 본다면 더욱 재미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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