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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아가 일깨워준 것은 무엇?

기사입력 2008.03.07 01:19 / 기사수정 2008.03.07 01:19

조영준 기자

지난 해 그랑프리 시니어 파이널을 제패하며 명실상부하게 세계 피겨여왕에 등극한 김연아를 바라보는 우리들의 시선은 환희, 그 자체입니다.

그동안 피겨 스케이팅의 변방이었던 한국에서 세계 최고의 선수가 등장한 것부터가 화제였지만 더 주목해야할 사실은 그 빛나는 재능을 가지고 태어난 선수가 '세계챔피언을 배출하기엔 너무나 척박한 환경'을 이겨내고 세계 정상에 올라섰다는 점입니다.

김연아가 정석적인 점프력과 누구도 따라오지 못할 연기력으로 모든 이들을 감탄시키고 있을 때, 과연 이 선수가 어떤 환경 속에서 훈련했는지를 생각하면 놀랄 부분이 너무나 많습니다.

얼마 전에 김연아의 모친인 박미희씨가 한국 피겨계에 대한 염려를 적은 글이 많은 화제를 모았습니다. 정작 세계 최고의 선수를 배출한 나라지만 그 선수는 물론 다른 유망주들도 맘 놓고 편하게 연습할 피겨 전용링크가 하나도 없는 국가라는 점. 또한 이러한 선수들이 체계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전도유망한 시스템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는 주변 환경이 너무나 안타깝다는 것이었습니다.

오는 18일, 스웨덴 에텐보리에서 열리는 세계선수권을 앞두고 김연아는 우승을 위해 훈련에 더욱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2년 연속 그랑프리 파이널 챔피언에 등극한 그 선수는 자신이 원하는 시간에 맘 놓고 훈련을 할 수 없습니다.

지금 한국의 많은 피겨 유망주들은 피겨선수들이 언제든지 훈련할 수 있는 전용링크가 없는 탓에 주변을 빙빙 도는 쇼트트랙 선수들과 함께 훈련하는 고충을 겪어야 합니다. 넓은 빙판을 줄기차게 이동하며 폭넓은 기교와 연기를 연습해야할 피겨선수들에겐 매우 신경 쓰이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또한, 세계선수권을 앞두고 있는 지금도 롯데월드 아이스링크에서 김연아만을 위해 개방해준 시간도 아침과 오후를 합쳐 3시간으로 고정되어 있기 때문에 재활을 병행하며 이 시간을 맞추려면 훈련의 성과를 최대한으로 끌어올리기 힘듭니다.

김연아의 개인 코치인 브라이언 오셔도 한국의 척박한 피겨환경을 보고 놀랐던 전력이 있습니다. 아무리 재능 있는 선수를 데리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 선수가 자신의 가능성을 최대한 끌어올리는 훈련을 하려면 주변 환경이 큰 영향을 주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지난 해부터 김연아는 정상 궤도에 진입하며 최상의 기량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기량을 더욱 발전시키고 다져 나갈 밑바탕은 여전히 따라가 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김연아는 피겨선수로는 심각한 허리 부상을 안고 있어서 이것이 가장 큰 문제점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것보다는 김연아 스스로가 언제든지 자신의 부족한 점을 수시로 고치면서 자유롭게 훈련할 수 있는 피겨 전문링크의 확보가 무엇보다도 시급하게 여겨집니다.

또한, 김연아가 2010년 밴쿠버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기 위한 프로젝트도 일찍부터 체계적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그저 눈앞에 있는 경기에만 급급해서 다져나가는 훈련보다는 넓은 안목과 장기적인 컨셉을 가지고 본격적으로 돌입해야합니다.

현재 일본피겨가 세계정상을 달리는 이유는 바로 이런 장기적인 기획에서 나왔습니다. 일본인들에게 피겨스케이팅이 세계적으로 경쟁력이 있는 종목인 것을 인지한 일본빙상연맹(JSF)은 1991년부터 유연성이 좋고 피겨스케이팅에 재능을 보이는 어린 선수들을 집중 발굴해 체계적인 훈련을 쌓기 시작했습니다.

일찍부터 균형감 있는 학습을 다져온 학생이 우등생이 된다는 말이 있듯 현재 일본 피겨스케이팅을 주름잡는 선수들은 모두 이러한 장기적인 기획안에서 무럭무럭 성장하였습니다. 그리고 1992년 이토 미도리가 알베르빌 동계올림픽에서 은메달을 획득하자 그 불씨는 활활 타올랐습니다.

피겨전용링크를 마련해 주면서 이들이 어릴 적부터 좋은 환경 속에서 훈련할 수 있는 토대를 놓아준 일본빙상연맹의 노력은 결코 수포로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가 나타난 것은 바로 2006년 토리노 동계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아라카와 시즈카를 통해 찬란하게 열매를 맺었습니다. 

90년대 초반 이토 미도리의 기적 같은 연기가 세계를 놀라게 한 센세이션이 일어난지 근 15년이 흐른 뒤에 피겨정상을 위해 장기적인 투자를 한 일본 피겨계의 노력은 마침내 세계최고의 피겨강국으로 이어졌던 것입니다.

그리고 아라카와 시즈카의 영광을 이어가는 최고의 선수들도 역시 같은 국적의 일본 선수들이었습니다. 이미 3살 때부터 발레로 시작해 철저하게 피겨선수로 키워진 김연아의 동갑내기 라이벌 아사다 마오로 이런 프로그램으로 성장하였고 지난해 세계선수권 챔피언인 안도 미키 역시, 이런 시스템에서 성장한 선수들입니다.

이러한 일본의 풍토를 생각하면 이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열악한 한국에서 김연아와 같은 선수가 나타난 것은 기적같은 일로 여겨집니다.

오는 18일에 벌어질 세계선수권을 앞두고 훈련하고 있는 아사다 마오와 안도 미키, 그리고 김연아의 환경을 비교해보면 한숨이 저절로 나올 정도입니다. 아사다 마오는 아이치현 도요타시 츄코대 피겨 전용 링크에서 하루에 5시간 이상씩 자신이 원하고 싶은 시간에 맘 놓고 훈련에 전념하고 있습니다. 또한 안도 미키도 이러한 훌륭한 전용링크에서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훈련하고 있습니다.

거기에 비해 김연아는 롯데월드 아이스링크에서 대절한 오전과 오후의 일정한 시간에 맞추어 연습하고 있습니다. 때론 선수 자신이 편한 시간에 맞추어 집중적으로 연습하는 것이 보다 능률이 오르는 일이지만 김연아는 선수가 원하는 기본적인 선택도 못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고관절 부상으로 훈련조차 자신이 원하는 대로 맘껏 못하는데다가 반나절은 재활에만 전념해야 하는 김연아에게 이번 세계선수권에서 또다시 우승을 바란다는 것은 무리한 욕심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렇게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아사다 마오와 안도 미키를 잠재우며 감히 이들이 넘보지 못할 최고점수를 획득한 김연아를 보면 실로 대단하다는 말 밖에 안나옵니다.

그러나 선수가 최선을 다할 환경도 안 만들어 준 채, 지속적으로 그 선수가 최고의 성과만 올리길 바란다면 그것은 합리적이지 못한 바램입니다. 1992년에 이토 미도리가 등장해서 일본 열도를 피겨강국에 대한 집념으로 일깨운 것처럼, 한국도 김연아를 계기로 새로운 피겨강국으로 가기위한 구체적인 마인드를 다져가야 할 것입니다.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에 대한 전쟁은 이미 시작됐습니다. 지속적인 투자와 장기적인 기획으로 2006년 토리노의 아라카와 시즈카에 이어 또다시 아사다 마오나 안도 미키에게 금메달을 걸어주려는 일본의 의도를 이기려면 지금부터 김연아와 한국의 유망주들을 위한 올바른 기획안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조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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