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 최진실 기자] 단순한 영화라 하기엔 현실과도 가까웠다. 열어서는 안 될 상자로 일컬어지는 '판도라의 상자'처럼,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 일어났을 때 우리의 현실은 어떤 모습일지 상기시켜주는 영화 '판도라'(감독 박정우)다.
'판도라'는 동남권의 한 도시를 배경으로 한다. 원전 발전소가 있는 이 도시의 시민들은 소소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재혁(김남길 분)은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어머니 석여사(김영애)와 형수 정혜(문정희), 조카 민재와 함께 지내며 선원이 되고 싶어 한다.
불의의 원전 사고로 아버지와 형을 잃었던 재혁이기에 발전소를 피하고 싶었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다. 결국 재혁은 어머니와 여자친구 연주(김주현)의 말처럼 다른 친구들과 발전소에게 일하게 된다.
하지만 원전 발전소는 그 규모와 위험성에 비해 제대로 관리되지 못하고 있었다. 발전소 소장 평섭(정진영)을 제외한 고위 간부들은 원전에 대해 무지한 이들이었고 평섭이 발전소 점검의 필요성을 대통령(김명민)에게 제기했지만 의견은 총리(이경영)로 인해 묵살되고 만다. 그러던 중 예고 없이 최고 규모의 강진이 한반도를 찾아오고 원전 발전소는 위기에 처하게 된다.
최근 경상북도 경주에서는 5.8 규모의 강진이 일어나고 약 수백 차례의 여진이 발생했다. 대한민국은 비교적 지진과는 거리가 먼 국가로 인식됐고 인근 국가인 일본에서도 후쿠시마 원전 폭발 사고, 지진이 일어났지만 '우리는 안전하다'라는 생각이 강했다. 하지만 더 이상 대한민국도 안전지대가 아니었다.
'판도라'는 이와 같은 우리의 인식을 꼬집고 안전에 대한 생각을 다시금 하게 일깨워주는 영화다. 비록 영화 초반 해당 도시나 인물은 실제와 관련이 없다고 자막을 통해 알렸지만 결코 가상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강진과 원전 사고 속에서 어쩔 줄 모르는 시민들과 무능한 정부, 고위 관료들의 모습, 그리고 점차적으로 확산되는 사고는 일어나진 않았지만 언젠가 현실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들게 한다. 살기 위해 교통 정체 속에서 차를 버리고 맨몸으로 달리는 시민들, 혼란을 막겠다는 이유로 언론을 통제하고 급한 불부터 끄기에 바쁜 관료들, 한 시가 긴박한 상황에도 윗선의 눈치만을 보는 이들 등 그야말로 재난 앞 아수라장이었다.
그럼에도 더 큰 재난을 막기 위해 노력하는 이들은 바로 '우리'였다. 어떻게 보면 피해자들이지만 가족과 다른 이들을 구하기 위해 직접 사선으로 뛰어들고 암담한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자신만 도망치기 보다 함께 살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는 이들은 소시민들이었다.
분노와 절망이 가득한 '판도라' 속 재난 상황이었지만 판도라의 상자 속 마지막 희망을 의미하듯 소시민들의 노력은 빛났다. 어쩌면 영화는 재난 상황에 대한 경각심과 함께 아직도 희망은 남아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듯 했다.
'연가시'로 한국 재난 영화에 새로운 역사를 쓴 박정우 감독이 일본 후쿠시마 원전 폭발 사고를 본 뒤 만들게 된 '판도라'는 관객들에게 보이기까지 약 4년의 준비 기간이 걸렸다. 4년 전 시작된 영화였지만 공교롭게도 최근 국정 농단 등으로 인해 어지러운 시국과 묘하게 맞닿아지는 부분이 많다. 무능한 관료들의 모습, 비상 재난 상황에서 어쩔 줄 모르는 컨트롤 타워의 모습은 너무나도 현실과 비슷했다. 때문에 '판도라'의 이야기가 더욱 와 닿게 될 수 밖에 없다.
화가 나는 현실의 모습과 더불어 영화는 원전 폭발 사고가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영화 말미 후쿠시마 원전 폭발 사고 이후 세계적으로 원전을 감소시키고 있는 추세와 달리 우리나라는 원전을 늘리고 있다는 자막은 안전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워준다. 영화 속의 문제가 영화에서 국한된 것이 아닌 현실에서도 이어진다는 것을 알려주는 '판도라'의 전체적인 메시지를 담은 것이다. 원전과 재난에 대해 잘 모르는 이더라도 영화를 본 뒤 이에 대해 알아보고 현실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볼 수 있는 그런 메시지를 담은 영화다. 7일 개봉. 12세 관람가. 13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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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실 기자 ture@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