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최종편집일 2024-09-20 2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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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척돔도 고민인데, 잠실돔을 또 만든다고요? [XP 분석]

기사입력 2015.12.25 11:47 / 기사수정 2015.12.25 11:47

나유리 기자


[엑스포츠뉴스=나유리 기자] '이번엔 처음이라 잘못 만들었군. 더 좋은 버전으로 새로 지어야겠다?' 

박원순 서울시장의 한마디가 생각보다 더 큰 파급력을 가져왔다. 요즘같은 시대에 정치인들의 SNS 계정은 사실상 '공공의 입'이나 마찬가지다. 한 야구팬이 박원순 시장에게 SNS 멘션을 통해 "축구의 반 만큼이라도 야구에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한다"는 이야기를 남기자 박 시장이 직접 답변을 남겼다. "잠실 야구장 제대로 된 돔구장으로 만들 생각입니다"라고. 

서울특별시는 지난해 잠실종합운동장 일대를 스포츠와 컨벤션, 문화가 어우러진 공간으로 개발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현재 건설 중인 롯데타워를 비롯해 잠실에서 강남으로 이어지는 주요 시설들을 전반적으로 재정비하고, 문화 복합 타운을 조성하겠다는 야심찬 장기 프로젝트다. 이 계획에는 현 잠실야구장 부지에 복합돔구장을 설립한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었다.

앞뒤 다 자르고 "야구에 관심을 가져달라"는 팬의 질문에 "잠실돔구장을 제대로 짓겠다"는 답변이 어떤 면에서 일맥상통할 수 있는지 이해가되지 않는게 사실이다. 마치 고척돔의 존재를 잊고 있거나, 고척돔이 실수에 가까운 작품이라는 사실을 서울시가 스스로 인정하는 셈 아닐까. 

물론 고척돔구장과 관련한 초안은 전임인 오세훈 시장의 주도였다. 당시 서울시는 낡고 오래된 동대문 시장 인근을 패션·문화의 '트랜디'한 중심으로 탈바꿈시키기 위해, 한국 아마 야구의 성지였던 동대문 야구장을 철거했다. 반대하는 목소리도 있었지만, 동대문 지역 상권 발전과 국가 관광 수익까지 고려하면 납득하기 어려운 결정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 다음부터는 물 없이 밤고구마를 먹는 것처럼 답답함의 연속이었다. 서울시는 아마추어 전용구장이었던 동대문을 철거하면서 목동야구장을 임시 아마 전용 구장으로 지정했다. 목동구장은 프로 구단인 히어로즈가 대관 형식으로 사용하고 있었으니, 사실상 한지붕 두가족이 됐다. 이 모든 것은 '고척야구장이 완성되기 전'이라는 전제가 달려있었다.

올해말 개관한 고척스카이돔은 맨 처음 서울시, 그러니까 오세훈 전 시장이 발표했던 모습에서 8번이나 성형을 했다. 처음에는 2만명 규모의 아마추어 전용 일반 야구장이었다가 하프 돔으로 바꿨다가 최종안은 아마추어 전용 돔구장이 됐다. 8번 바뀌는 사이, 비용도 천문학적으로 늘어났다. 맨 처음 예산이 400억원 정도였는데 실제 고척돔을 짓는데 들어간 시민들의 피같은 세금은 2713억원이었다. 약 7배 늘어났다.



진짜 아이러니는 최종안에 숨어있었다. '아마추어 전용 돔구장'은 현재 한국야구의 인프라와 시장 규모를 고려했을 때 말이 되지 않는다. 삼성, LG같은 세계적인 대기업들을 모그룹으로 둔 프로 구단들도 수익을 내기는 커녕, 그룹 이미지 홍보 차원이라는 생각에 적자를 감수하는 '땅 파먹기 식' 운영을 하고 있는데 무슨 수로 아마추어 전용 구장이 수익을 낼 수 있단 말인가. 더욱이 돔구장은 그냥 가만히만 있어도 돈이 들어가는 '귀족' 야구장이다. 인기 아이돌 그룹의 콘서트가 365일 만원 관중과 함께 열릴 것이 아니라면 불가능한 계산이다.

결국 서울시는 운영비를 충당하기 위해 넥센 히어로즈를 반강제적으로 이주시켰다. 넥센과 서울시의 고척돔 이적 관련 협상은 연말인 지금까지도 지지부진하다. 이 부분은 논외로 치더라도, 결국 서울시가 아마 전용 돔 구장이라는 당초 취지대로라면 수익을 내기도 어렵고, 일정 부분 수익을 낸다고 해도 턱 없이 모자라기 때문에 결국 프로 구단을 유치하기로 한 것이다. 고척돔은 하루 전기세만 천만원을 훌쩍 넘는다. 물론 난방과 에어컨을 켜지 않았을 때의 금액이다. 

고척돔의 시설적인 면은 더 가관이다. (인근 교통과 주차 문제 등 모든 외부 요인은 생각하지 않더라도)취재차 여러차례 고척돔을 방문했을 때, 얼핏 구장의 외형과 모든 것이 깨끗한 새 시설 그리고 추운 겨울에 선수도, 관중도 따뜻하게 야구를 볼 수 있다는 것 자체로 나쁘지 않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러나 꼼꼼히 뜯어볼 수록 의아한 점들이 많다. 좁고 불편한 계단으로 이동해야 하는 불펜, 공이 잘 보이지 않는 천장의 색깔, 뚜껑 없이 노출돼있는 더그아웃, 너무 작아 글자도 안보이는 전광판, 한번 앉으면 일어날 수 없을만큼 빽빽한 관중석 의자, 외야 관중석과 내야 관중석의 완전 분리, 턱 없이 부족한 엘리베이터까지. 이중 관중석 의자를 비롯해 몇가지는 서울시에서 보완을 하겠다고 밝혔지만, 전광판처럼 큰 돈이 필요해 당장 해결하지 못하는 불편 사항들도 있다. 

솔직히 말해 한국 첫 돔구장인 고척돔은 일본의 도쿄돔, 삿포로돔과는 비교하기도 민망한 정도의 수준이다. 

허구연 MBC 해설위원은 "보완해야 할 부분들이 한두개가 아니다. 서울시가 고척돔을 지을때 야구 전문가들에게 조언을 전혀 듣지 않았기 때문이다. 천장의 색깔을 왜 공과 비슷한 회색으로 칠했는가 직접 서울시 관계자들에게 따졌지만 누구도 제대로 답변을 하지 못했다. 말 그대로 '잘 몰라서' 생긴 문제들이다"라며 답답함을 호소했다.



선수들이 최상의 컨디션으로 좋은 경기력을 보여줄 수 있고, 팬들이 즐겁게 찾을 수 있는 좋은 시설의 야구장들이 늘어나는 것은 두 팔 벌려 환영할 일이다. 현재 두산-LG가 홈으로 사용하고 있는 잠실야구장도 나이가 30살이 넘어 시설이 낙후된 것도 사실이다. 한때는 가장 좋은 야구장이었지만, 시설면에서는 광주 챔피언스 필드같은 신구장과는 큰 차이가 난다. 당연히 발전이 필요하다. 

하지만 아름다운 상상만으로 무턱대고 지었다가 '세금 먹는 하마'가 되는 것은 반드시 피해야 한다. 먼 미래를 내다보는 안목과, 그 시설을 직접 쓰게 될 관계자들과 머리를 맞대 제대로 만들어야 한다. 시간이 오래걸리더라도 말이다. 이 모든 피해가 고스란히 다시 시민들에게 돌아오기 때문이다.

NYR@xportsnews.com/사진=고척돔 ⓒ 엑스포츠뉴스DB

나유리 기자 NYR@xport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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