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최종편집일 2024-11-27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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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준영의 나도 끼어야지] 스타리그 결승, 힘의 논리

기사입력 2015.09.16 00:04 / 기사수정 2015.09.16 00:04

박상진 기자

(엑스포츠뉴스에서는 비정기적으로 안준영 전 스타크래프트2 해설의 칼럼을 게재합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리겠습니다)

 “테란전에는 점막이, 프로토스전에는 애벌레 생성이 더 중요한 것 같아요.”
오래전 이제동 선수가 했던 말이다. 실로 옳은 이야기다. 시대가 변하고 유닛이 패치되고 빌드가 달라지고 메타가 바뀌어도 저 말은 계속 통용되어왔다. 많은 선수들이, 많은 중계진들이 종종 저 말을 차용하곤 했다.

테란과 프로토스의 대결은 기술력 승부다. 누가 더 빨리 상위 테크의 유닛, 스킬을 갖추느냐의 싸움이다. 테란과 프로토스의 대결에서 자극제 타이밍, 거신 타이밍, 바이킹 타이밍, 폭풍 타이밍, 유령 타이밍 등 수많은 타이밍이 강조되어 언급되는 것이 이를 잘 보여준다.

기술력 발전을 위한 투자에는 리스크가 수반된다. 미래를 위해 투자한 만큼 현재의 보유 병력은 상대적으로 적어지며, 한동안 수세적인 입장을 취할 수밖에 없게 된다. 그렇게 게임은 균형을 맞춰간다.


테란과 저그의 대결은 영역 승부다. 누가 더 많은 지역을 자신의 세력 범위에 넣고 있냐를 겨룬다. 그렇기에 테란전에서는 점막이 강조된다. 저그에게 시야를 제공해주고, 기동성을 올려주어 전투력 상승효과를 주는 점막은 저그의 영역 그 자체다. 대다수의 테란들이 이를 제거하기 위해 잠정적 광물 자원인 지게로봇을 포기하면서 스캐너 탐색으로 점막을 제거하는 것을 보면 점막으로 대표되는 세력 다툼이 얼마나 중요한 지 알 수 있다.

영역 다툼은 신속하게 승패로 직결되지는 않는다. 상대를 압박하여 영역을 줄여놨다고 해도, 내 병력이 상대의 본진 깊숙한 곳을 노리는 순간 적의 영역에서의 교전을 감수해야 되기 때문에 보통 서서히 무너뜨리는 방법을 선택하게 된다. 불리한 쪽에서 이 시간동안 역전을 위한 노력을 하게 되며, 그렇게 게임은 균형을 맞춰간다.

저그와 프로토스의 대결은 전투력 승부다. 누가 더 많은 군대를 보유하고 얼마나 잘 훈련시켰으며 그들이 어떠한 교전을 해내냐 하는 원초적 힘의 대결이다. 그렇기에 프로토스전에서는 애벌레 생성이 강조된다. 전쟁의 가장 기본인 수의 논리에 그 어느 때보다도 충실해야 하는 상황이기에 여왕이 끊임없이 애벌레를 공급하여 병력을 충원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전투력의 대결은 이야기가 다르다. 힘의 대결에서의 균형은 순식간에 무너진다. 모든 것을 쏟아 부은 공격 뒤에는, 공세를 버텨내느냐, 버티지 못하고 쓰러지느냐의 단순한 결과지만이 있을 뿐이다. 그러기에 과거부터, 저그 대 프로토스의 승부에서는 프로토스가 저그를 격파할 때에도, 저그가 프로토스를 무너뜨릴 때에도 일방적인 승부가 많이 나왔다.


군단의 심장 이후, 그러한 저그와 프로토스의 경기 양상을 크게 바꿀 수 있는 유닛이 등장했으니, 바로 군단숙주다. 군단숙주의 본체까지 밀어버릴 화력이 나오지 않는 상황에서 프로토스가 어설프게 교전을 시도하면 식충에게 손해만 보았다. 상대를 끝장낼 수 있다는 확신이 없는 상황에서 군단숙주 본체가 성급히 공격을 시도했다간 저그는 미래를 잃었다. 작은 힘의 차이가 승패로 직결되지 않도록 하는 완충제, 승부 타이밍의 유예, 한시적 휴전 협정 속의 위태로운 고요의 시간이 등장한 것이다.

강제된 유예의 시간 속에서 결과적 균형은 꽤나 잘 유지됐지만, 승부의 본래 목적에 부합하지는 않았다. 교전 자체를 팽팽하게 만드는 형태가 아닌, 교전할 수 없는 시간을 늘림으로서 팽팽한 양상을 만드는 것은 보는 사람에게 지루함을 안겨주었다. 그리하여 군단숙주는 짧지 않았던 전성기를 끝내고 대폭 하향 조정을 당하게 된다.

콜로세움이 열렸다. 성문 위에서 화살을 쏘며 싸우는 것에 익숙해진 병사들 앞에 성문이 열려버렸다. 백병전의 귀환이었다. 힘의 균형이 아주 조금만 흐트러지면 공격이 무자비하게 퍼부어지는 잔인한 양상의 복귀였다. 무력의 시대가 도래했다.

누군가 그랬던가? 세계 제 3차 대전의 양상은 알 수 없지만, 4차 대전에서는 몽둥이를 들고 싸우게 될 거라고. 자유의 날개와 군단의 심장을 거쳐 수많은 경기 양상의 변화를 겪으면서, 견제의 시대에 예언자와 뮤탈리스크가 하늘을 가르고, 기술의 시대에 살모사와 고위기사의 마법 대결이 펼쳐지고, 테크의 시대에 무리군주와 폭풍함의 포격이 쏟아진 끝에, 다시 돌아온 무력의 시대에 바퀴와 저글링, 광전사와 추적자의 기본 병력의 힘에 의한 승부가 돌아왔다. 말 그대로 강한 자만이 이기는 시대가 되었다. 그리고 육탄전 최고의 두 선수가 결승에서 만났다. 군단의 심장 최후의 대결에서 ‘누가 더 강해요?’ 라는 원초적인 질문에 대답할 최강의 선수, 바로, 한지원과 김준호다.


한지원은 강했다. 기술적인 부분을 보강해야 한다고 입을 모아 외칠 때에도, 심리전을 잘 써서 유닛 조합을 바꿔줘야 된다고 많은 조언이 오갈 때에도, 그저 우직함으로, 강함으로 근성 넘치는 파이팅으로 상대를 꺾어나갔다. 전태양의 화려한 아웃복싱을 인파이팅으로 격파하고 결승에 안착했다. 한지원은 그저 강했다.

한지원의 행보는 부정의 연속이다. 바퀴 위주의 병력에는 한계가 있다, 마법 유닛 없는 교전은 무리다, 단순 회전 싸움으로는 뚫어낼 수 없다, 등등 앞선 시대의 수많은 저그들이 눈물을 흘려가며 깨우친 여러 가지 교훈들을 한지원은 부정한다. 더 강력하게, 더 우직하게 싸워내면 뚫어낼 수 있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하며 이 자리까지 왔다.

많은 저그들이 “할 수는 있는데 어려워요.” 라고 말 할 때,
한지원만은 “어렵지만 할 수 있어요.” 라고 외치며 비상했다.


김준호도 강했다. 특별히 의외성이 없어도, 아주 참신하거나 독특한 빌드를 들고 나오지 않아도, 예측되는 범위 안에서 움직이는 게임을 하더라도 강함만은 예측을 벗어났다. 정윤종의 최강의 방패를 상대로 마치 예고 홈런이라도 치듯이 마지막에 자신의 트레이드마크와 같은 점멸 공격으로 수비를 뚫어내며 승리를 쟁취했다. 김준호는 끝을 모르게 강했다.

김준호의 행보는 프로토스의 완성이다. 누구보다 기본에 충실하고 유닛을 잘 이해하고 있는 선수이기에, 누구보다 소화력이 좋았다. 선대의 프로토스들이 만들어온 것들, 김준호는 부수고 부정하지 않고 자기 것으로 흡수한다. 천 번의 승리 아래, 천 번의 승리 뒤에 가려진 만 번의 패배가 쌓은 그 탑을 밟고 올라가 정점에 서는 선수가 김준호다.

모든 프로토스들이 꿈꾸던 플레이, 닿고 싶던 경지, 보여주고 싶었던 완성된 모습을
“내가 보여줄게. 나라면 가능해.” 라고 할 수 있는 선수가 김준호다.

힘과 힘, 공격과 공격, 물러설 줄 모르는 호전적인 정면 대결이 예상되기에 가슴은 더욱 뜨거워진다. 투지에서는 밀려본 적이 없는 선수들이기에 결과가 더욱 궁금해진다. 특히나 한솥밥을 먹고 있는 사이에서 서로의 강함은 누구보다 익히 잘 알고 있을 터, 강한 상대와 수많은 연습 끝에도 대회에서 주눅 든 플레이가 아닌 자신감 있는 플레이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두 선수의 담대함은 놀랍기만 하다. 이 둘이라면 무력의 차이로 인한 완승, 완패가 아닌, 극에 달한 힘에 의한 팽팽한 샅바싸움을 만들어낼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이 든다.

인간은 강함을 갈구한다. 강한 것을 보고 싶어 한다. 총과 대포로, 전차와 전투기로 전쟁을 하는 이 시대에서도 맨몸, 맨주먹으로 싸우는 격투기를 보며 환호한다. 이런 강함에 대한 갈증을 완전히 해소시켜줄 두 맨몸의 파이터, 군단의 심장 최후의 박동을 격렬하게 장식해줄 두 전사의 치열한 승부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vallen@xportsnews.com 글=안준영 / 정리=박상진 기자
 

박상진 기자 vallen@xport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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