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07.11.20 08:09 / 기사수정 2007.11.20 08:09
(이번 월드컵에 참가한 선수 중, 맏형인 리베로 여오현)
[엑스포츠뉴스=조영준 기자] 2007' FIVB 월드컵 배구 남자부 대회에 참가 중인 한국은 19일 일본 사이타마 슈퍼 아레나에서 열린 일본과의 경기에서 세트스코어 0:3으로 완패했습니다. 근래에 들어 일본에서 이렇게 완패당한 적은 드물었습니다.
이번 경기를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 정말 기억하기 싫은 한일전으로 표현하고 싶습니다. 물론, 이번 월드컵에 출전한 한국남자 대표팀은 세대교체라는 과도기를 겪고 있는 팀입니다. 기본적으로 대학선수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고, 연습기간도 길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가 아니면 잇몸이라도 때우려는 대안이 없었던 게 화근이 크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할 수 있는 것을 전혀 하지 못하고 순식간에 무너진 것은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될 사항입니다.
18일 호주와의 경기에서 풀세트 접전을 펼치며 29-27로 패한 경기에서 한국 대표팀은 블로킹과 서브, 그리고 조직력에서 문제점을 노출했습니다만 현재 가지고 있는 선수들로 보여줄 수 있는 기량을 제법 보여주었습니다.
그러나 단 하루 만에 한국은 완전히 다른 팀으로 변해있었습니다. 모두 경직된 움직임을 보였던 선수들은 자신의 기량을 십분 발휘하지 못했고 경기 내내 소극적인 플레이로 일관하다가 무려 20개의 범실을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대학선수 위주로 구성되어 있다 보니 사이타마 아레나를 가득 메운 일본관중의 열렬한 분위기에 압도당한 것이 패배의 큰 이유였습니다. 멘탈적인 부분에서 무너져 있었던 한국이 가지고 있는 기량을 제대로 발휘하기에는 무리가 많아 보였습니다.
1세트는 그야말로 정신없이 당한 세트였습니다. 무엇에라도 홀린 듯 연이어 나오는 범실과 소극적인 플레이는 양 팀의 점수 차를 지속적으로 벌려놓고 말았습니다. 또한, 이렇게 정신이 흐트러져 있는 선수들을 다잡지 못한 코칭스태프의 책임도 작지 않습니다.
선수들의 가장 중요한 적은 바로 멘탈적인 부분에서 나옵니다. 결코 심약한 각오로 경기장에 들어서면 이기는 경기를 할 수 없습니다. 열광적인 홈팬들의 성원과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했던 한국 대표팀은 실책을 지속적으로 남발했고 집중력 역시 흐트러져 있었습니다.
단 한 개의 플레이라도 중요한 시점에서 집중력이 안 보였으니 수비력은 전혀 갈피를 잡지 못했고 공격 역시 지속적으로 범실만 양산해냈습니다.
정신적인 부분에서 이미 흔들려 있었던 한국 대표팀은 전술적인 부분에서도 완패를 당했습니다. 한국팀의 모든 전력 성향을 철저하게 분석하고 나온 일본과 별다른 대책 없이 나온 한국의 차이는 너무나 확연했습니다.
18일 호주 전에서 보인 주전 세터 유광우(인하대)의 토스웍을 정확히 간파하고 있었던 일본의 블로킹 진은 마치 약속한 듯이 한국 공격수들을 따라다녔으며 유광우는 여기서 점점 토스가 안으로 감겨서 빠르게 날아가지 않고 점차 느려지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또한, 일본은 리시브가 약한 문성민(경기대)과 박준범(경기대)의 성향을 파악하고 강 서브를 줄기차게 타깃으로 삼아 때렸습니다. 이러한 전략적인 부분에서도 별다른 대책을 만들지 못했던 한국은 일본의 의지대로 이끌려 다니며 경기를 치러야했습니다.
반면 항상 국제대회에서 지적받는 한국의 가장 큰 약점인 서브의 강도는 승패의 방향을 가늠하기에 충분한 단점이었습니다. 선수 대부분이 스파이크 서브를 날린다고는 하나 전부 다 강타가 아닌 연타성에 볼의 변화도 없는 서브였으며 문성민과 백업 세터인 송병일을 제외한다면 국제무대에 통할 수 있는 서브를 지닌 선수는 없었습니다.
양 팀의 스코어가 벌어질 때, 리시브의 흔들림에서 원인이 발생했습니다. 일본은 한국의 리시브 성향을 파악하고 리시브가 불안한 선수들에게 지속적으로 강도 높은 서브를 구사했습니다. 반면 한국의 특징 없는 서브는 줄곧 일본의 리베로에게로 향했고 안정된 리시브로 이어진 일본의 빠른 플레이를 잡지 못했습니다.
또한, 블로킹에서도 허점을 보이고 있는 한국의 약점을 파악해낸 일본은 블로킹이 올라오더라도 타이밍과 높이가 위력이 대단하지 않다는 것을 인지하고 연타보다는 강타를 자신 있게 때렸습니다.
그래서 번번이 블로킹을 맞고 터치 아웃되는 공격이 많이 나왔고 블로킹이 올라오면 대책 없는 연타로 일관한 한국에 비해 공격성공률이 한층 높게 나왔습니다. 자신감과 집중력이 결여된 정신적인 부분에 서브리시브의 난조, 그리고 국제무대에서 경쟁하기엔 취약하기만 한 서브의 위력과 블로킹 능력 등 한국의 약점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집요하도록 공략한 일본에 한국은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오는 12월 1일이면 V 리그가 개막해 일부 프로선수들이 대회에 불참하고 한국 배구의 대들보인 이경수(LIG 손해보험)가 허리 부상을 이유로 대표팀에서 제외된 상태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불리한 여건에도 불구하고 현재 잔존하고 있는 전력을 한일전에서 쏟아 붓지 못한 점은 아쉬운 점입니다.
상황에 따른 적절한 대처나 작전 지시의 부재도 안타까운 사항이었습니다. 어쩌면 일본의 초청 팀으로 참가한 이번 월드컵 대회는 한국이 최종적으로 목표로 삼는 대회는 아닙니다. 그러나 내년에 있을 올림픽 예선전의 대비와 현재 대표팀에서 뛰고 있는 선수들의 기량 향상과 조직력을 생각한다면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는 대회가 바로 월드컵 대회입니다.
특히 양국의 자존심이 걸린 한일전에서 이처럼 흔들린 정신력과 집중력, 그리고 전술 부재 등의 총체적 문제로 완패한 부분은 반성해야 할 점이 많습니다.
현재 국가대표팀에는 주전으로 뛸 프로선수들이 많이 빠져있고 훈련기간도 짧았다고는 하지만 올림픽을 앞두고 치러지는 모든 한 경기들은 대표팀의 조직력을 맞춰나가는데 중요한 훈련과정들입니다.
무엇보다 이번 대회에서 가장 중요했던 한일전에서 최악의 모습을 보여준 것은 너무나 아쉬운 부분입니다. 단순한 실력 차이로 진 것은 어쩔 수 없지만 해 볼만 한 상대와 그런 기량을 전날 경기에서 보여줬음에도 이렇게 맥없이 무너지는 모습은 강팀이 지녀야 할 미덕이 아닙니다.
많은 반성과 앞으로의 노력이 필요로 여겨지는 이번 한일전은 결코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경기였지만 내년 5월에 있을 올림픽예선전에서 일본을 이기기 위해선 무엇보다 멘탈적인 부분에서 패한 젊은 선수들에게 발전을 위한 쓴 약으로 작용하길 기대해 봅니다.
<사진 = 대한배구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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