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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승리에 ’숨겨진 1인치의 주역’ 김태우 통역사

기사입력 2007.09.28 01:52 / 기사수정 2007.09.28 01:52

편집부 기자

    [엑스포츠뉴스=박영선 기자] 연극이 끝나고 난 뒤, 무대에 장막이 내려오고 조명이 꺼진다. 축구장도 경기가 끝나고 나면, 수만의 관중석을 채우던 사람들이 썰물 빠지듯 사라진다. 몇몇 선수들과 기자들의 인터뷰가 분주히 치러진 후에는 경기장을 밝히던 하얀 조명등도 하나 둘 꺼진다. 어둠과 함께 열기로 가득했던 공간에는 잔디에서 피어오르는 조금은 코끝을 아릴 듯한 청신하고 푸른 기운이 스며든다.

이때쯤이면, 드레스 룸에서 산뜻하게 피로를 씻고 나온 선수들이 하나 둘씩 믹스트존을 빠져나간다. 휴식의 시간을 찾아 집으로 돌아간다. 누군가는 패자가 되고 누군가는 승자가 된다. 이미 끝나버린 그날의 경기가 어느 날은 작은 단락 하나로써 마무리되기도 하고 어느 날은 시즌의 마지막이나 축구 인생의 마지막이라는 큰 막 하나의 마지막을 의미하기도 한다.

하지만, 모든 이들이 작건 크건 끝 매듭을 맺으려는 사이에 여전히 분주한  이가 하나 있다. 선수들의 경기는 끝났지만, 그의 경기는 경기 후에도 여전히 끝나지 않는다. 대전 시티즌의 김태우 통역사가 바로 그이다.

2007년 9월 22일. 대전 시티즌과 대구FC와의 경기가 끝난 뒤, 헤트트릭을 기록한 데닐손을 찾는 기자들의 발걸음이 바빠졌다. 김호 감독의 인터뷰가 한쪽에서 진행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기자들은 성급하게도 데닐손을 향해 몰려들었다. 그리고 데닐손 선수와 함께 김태우 통역사를 찾는다. 



경기가 끝난 후 통역 중인 김태우 통역사

22일 대구전 승리(4-2)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한 데닐손에게 던져진 질문 중, 유난히 호흡이 돋보이는 대전의 브라질 3인방에 관한 질문이 있었다. 데닐손의 헤트트릭 중 2골은 브라질리아의 어시스트에 의한 것들이었고, 그 이외에도 득점으로는 연결되지 못했지만, 데닐손에게 연결되는 문전 앞에서 브라질리아의 플레이는 매우 희생적이었다.

으레 자신을 도와준 브라질리아 선수를 칭찬하는 답이 돌아오리라 기다리고 있었는데, 데닐손은 웃으며, 자신의 옆에 서있던 김태우 통역사의 어깨를 끌어당기어 두드린다.

"우리는 모두 평등하게 지낸다. 나와 슈바, 브라질리아, 제제, 그리고 태우까지!"

'평등'이라는 단어는 누군가를 외톨이로 만들지 않는다는 의미였던 듯하다. 그가 나열한 대전의 브라질리언들 중에는 김태우 통역사도 함께 포함되어 있었다. 그는 가족의 이름을 불러주는 듯, 동료 선수들과 코치와 통역사의 이름을 읊었다. 그리고 웃었고, 그의 옆에 서있던 통역사의 어깨를 부여잡으며 보여주었다. "이 사람은 나의 친구입니다."

2007시즌 들어 처음으로 대전에 합류한 김태우 통역사가 이렇듯 브라질 선수들에게 다가갈 수 있었던 것은 친절한 성품과 함께 '풋살 선수'로써 브라질 유학을 통해, 그들의 문화와 축구를 깊게 이해하고 있었던 것이 한 몫 하였다. 선수들마저 공동취재구역을 빠져나간 후에야 붙잡을 수 있었던 김태우 통역사는 데닐손의 말을 다른 이들에게 전해줄 때만큼이나 또렷한 어조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제가 브라질을 굉장히 좋아해요. 그래서 축구단의 통역사를 하게 된 것도 굉장히 만족스럽습니다. 저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선수들한테 힘이 되어 준 다기보다는, 제가 누군가를 도와주는 걸 좋아해요. 이분들이 한국 생활하면서 어려운 점들을 즐겁게 도와주다 보니까, (선수들의) 아이들하고도 친하게 되었고요. 또 오늘처럼, 이렇게 브라질 선수들이 골을 넣으면, 뿌듯함을 느낍니다.”

경기 시작 전, 검은 봉지를 손에 쥔 김태우 통역사가 급하게 라인을 따라 달려갔다. 골대 그물 옆에 검은 봉지가 잘 자리를 잡도록, 몇 번을 손으로 만져주더니 자리를 뜬다. 데닐손의 부탁을 받아 탈과 색동 한삼을 숨겨두었다는 것을 17분 첫 골이 터지기 전까지는 대전월드컵 경기장에 모인 그 누구도 모르고 있었다. 오직, 데닐손 자신과 김태우 통역사만이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친구이니 비밀을 나누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1976년생인 데닐손과 1985년생인 김태우 통역사간에는 9살의 나이 차이가 존재하지만, 그것은 한국식 계산법이고, 브라질식으로는 친구가 되는데 나이는 중요치 않다고 한다.

"데닐손, 브라질리아, 슈바 세 선수 모두 장난기가 심해요. 브라질은 나이가 중요치 않아서, 모두 친구처럼 지네요. 또 제제라고 골기퍼 코치도 5년이라는 한국 생활의 경험이 있으니까, 필요한 것들은 도와주고 많이 챙겨줘서 거의 뭐, 셋이 모여 있으면, 장난꾸러기들 같고요. 그렇게 장난을 좋아하다 보니 분위기도 좋아요."

오랫동안 브라질 유학을 했지만, 한국의 일상에서 직접 피부로 접하는 브라질 선수들의 장난이 낯설거나 거북하지 않았던 것은 김태우 통역사가 바라보는 브라질 문화에 대한 시선이 열려있기 때문이다.

"주위에서 보시는 것과 같이 브라질 선수들의 첫 번째 생각이 '인생사는 것 행복하게 즐기면서 살자' 여서 굉장히 낙천적입니다. 옆에서 보고 있으면, '아, 이런 것은 배워야겠다.'라고 느끼는 것이 많아요. 자기 역할은 충실히 하려고 노력하고, 웃고 떠들 때는 남들 의식 안 하고 즐겁게 즐기는 면에서, 이런 건 보고 배워야겠다. 느끼고, 그런 브라질 문화가 너무 부럽기도 하고 그래요.”


경기가 끝나고 난 뒤에도, 선수들의 인터뷰가 끝난 뒤에도, 드레스 룸에서 전달되는 사항을 브라질 선수들을 통역해야 하는 그의 업무는 끝나지 않았다. 선수들이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기 직전까지 그의 일은 계속 되고 있었다.

경기 후 이젠 한숨 돌리며 느긋해진 선수들 사이에서 김태우 통역사는 달리고 또 달리고 있었다. 버스를 타는 선수들 사이로 버스에 올라탔는가 싶더니, 다시 내려오는 그의 손에는 분홍색 반짝이 포장지와 리본으로 장식된 커다란 선물이 손에 들려있었다. 그것을 들고 다시금 믹스트존으로 달려가는 그를 보면서, 여자친구라도 찾아와 있는가 했더니, 선물의 주인공은 아주 작고 동글동글하니 귀여운 꼬마숙녀였다. 무릎을 꿇어 소녀의 눈높이에 맞춰주어도 김태우 통역사의 키가 조금 더 크다.

무어라 둘만이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가 오고갔다. 작고 동글한 얼굴의 귀여운 브라질 꼬마숙녀는 김태우 통역사의 품에 폭 안겨든다. 그 작은 숙녀는 데닐손의 다섯 살배기 딸, 이나이라였다. 아빠가 헤트트릭을 기록한 이날은 바로 이나이라의 생일이었고, 작은 꼬마숙녀에게는 아빠와 아빠의 팬들이 더 즐거워하는 헤트트릭보다도 김태우 통역사의 분홍색 반짝이 포장의 선물이 더욱 반가웠을 것이다.

"이나이라가 오늘 생일이라고 해서 선물을 준비했었어요. 어제 데닐손한테 듣고, 오늘 생일 파티에 초대를 받았거든요. 근데 제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야 해서, (대전 선수단에게는 경기 다음 날인 23일부터 25일까지 추석연휴가 주어졌었다.) 참석을 못하고 조그마한 선물을 준비해서, 또 제가 정말 좋아하는 애기거든요.(웃음) 다른 가족들의 애기도 있는데 특히 이나이라랑 제일 친해요. 저 보면 달려오기도 하고 그래요.”

그의 말대로 이나이라는 경기장이나 연습장에 종종 김태우 통역사를 보면 반갑게 달려가곤 한다. 그럴 때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김태우 통역사도 양팔을 벌리고 이 작은 브라질 꼬마숙녀를 반갑게 안아 올린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이 나이 때 새침한 꼬마숙녀들은 누구에게 쉽게 마음을 열어주지 않는데도 말이다.

통역이라는 것이 그저 '일'이었다면, 데닐손은 그의 어깨를 부여잡고 웃지 않았을 것이다. 그에게 통역이 ‘일’이 아닌 누군가를 도와주는 즐거운 일이라는 따뜻한 마음이 없었다면, 작은 브라질 꼬마 숙녀에게도 마음을 열어 줄 한국인 친구가 생기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그의 도움으로 대전의 골이, 대전의 승리가 만들어지고 있다.

김호 감독 부임 후 치러진 리그 9경기 동안 만들어진 대전의 13골 중 8월 15일 경남전 박주현의 1골을 제외한다면 나머지는 모두 브라질 3인방의 발끝에서 나온 것이다. 유일한 한국인 득점자인 박도현의 골 역시 브라질리아의 슈팅이 골대를 맞고 나오면서 박도현에게 기회가 돌아간 경우였다.

대전의 건승 뒤에는 브라질 3인방의 눈부신 활약이 있었고, 이들의 뒤에는 가족들과 친구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 가족과 친구들의 이름 사이에는 '김태우'라는 이름이 함께하고 있다. 브라질 선수들 사이에 스며들어 그들과 함께 웃고, 선수들의 가족들까지도 살갑게 보살펴 주며, 작은 부분까지도 챙기는 그의 세심하고 따뜻함의 힘이 대전을 앞으로 나아가게 하고 있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베풀어지는 친절함과 희생이 만들어 준 건강한 미소를 지닌 팀은 일이 아닌 친구들이 함께하는 즐거운 공간이 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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