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최종편집일 2024-11-27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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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신해철, 록스타의 발자취는 깊고 진했다

기사입력 2014.10.27 23:08 / 기사수정 2014.10.28 01:59

한인구 기자
신해철 ⓒ KCA엔터테인먼트
신해철 ⓒ KCA엔터테인먼트


[엑스포츠뉴스=한인구 기자] 가수 신해철이 27일 오후 8시 19분 세상을 떠났다. 향년 46세. 음악가이자 자신만의 소신으로 사회활동에 참여했던 아티스트가 안타깝게 팬들과 작별한 것이다.

신해철은 지난 22일 심정지로 심폐소생술을 받은 뒤 서울 송파구 풍납동 아산병원 응급센터 이송돼 수술을 받고 중환자실에 입원 중이었다.

신해철의 소속사 KCA엔터테인먼트 관계자는 "28일 오후 1시부터 서울 아산병원 장례식장 23호실에 빈소가 마련될 예정이다"고 이날 밝혔다.

신해철은 1968년 5월 6일생으로 1남 1녀 중 둘째로 태어났다. 고등학생 시절부터 밴드활동을 시작했으며, 서강대 철학과에 재학 중이던 1988년 MBC 대학가요제에 밴드 무한궤도로 참가해 '그대에게'로 대상을 받았다.

그는 무한궤도 해체 후 솔로 아티스트로서 발걸음을 뗐다. 1990년 데뷔 앨범 '슬픈 표정하지 말아요'를 시작으로 1991년 정규 2집 'Myself(마이셀프)'를 내놓았다. '마이셀프'의 수록곡 '재즈카페' '나에게 쓰는 편지' 등은 신해철이 점차 자신만의 색깔을 찾아가는 계기가 됐다.

신해철은 이동규, 정기송과 함께 1992년 밴드 N.EX.T(넥스트)를 결성해 더욱 활발한 창작 활동을 이어갔다.

이 기간 동안 넥스트는 평단의 호평을 받으며 음악성과 대중성을 아우르는 앨범을 내놓았다. 특히 '힘겨워하는 연인들을 위하여' 'Lazenca, Save Us(라젠카, 세이브 어스)' '해에게서 소년에게' 'Hero(히어로)' '날아라 병아리' 'Here, I Stand For You(히얼 아이 스탠드 포 유)' 등이 사랑받았다.

신해철 ⓒ KCA엔터테인먼트
신해철 ⓒ KCA엔터테인먼트


신해철은 1997년 넥스트의 해체 및 4집 발매 기자회견에서 국내시장과 공연시스템의 열악한 구조로 인해 밴드활동의 지속이 어렵다며 넥스트의 해체를 선언했다. 그는 이후 음악과 프로듀싱 공부를 위해 영국으로 유학을 떠났으며, 나머지 멤버들은 래퍼 김진표와 노바소닉을 결성해 활동을 시작했다.

잠깐의 휴식기를 가졌던 신해철은 2000년 임형빈, 데빈 리와 새로운 밴드 비트겐슈타인으로 활동의 기지개를 켰다. 넥스트 시절보다 일렉트로닉 성향이 짙어진 음악으로 다양한 시도를 했다. 이어 2003년 넥스트를 재결성해 쉼없이 작업을 해왔다.

신해철은 올해 정규 6집 part.1 'Reboot Myself(리부트 마이셀프)'로 팬들과 만났다. 그는 지난 6월 앨범 발매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음악적으로는 열심히 활동했지만, 상업적으로는 아직도 낯설다. 가족과 그동안 살아온 것을 담아낸 음악이니 많이 지켜봐 달라"고 밝히기도 했다.

그는 2001년부터 2012년까지 오랜 시간 라디오 프로그램 '고스트스테이션'을 진행하며 '마왕'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새벽시간대에 청취자들과 만나 음악적인 이야기를 나누고, 사회비판적인 시각으로 당시 세태들을 꼬집었기 때문이다.

음악적 활동 외에도 신해철은 논란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그는 1989년, 1993년 대마초 흡연으로 구속돼 자숙의 시간을 보냈다. 또 MBC '100분 토론'에 여러차례 출연해 대마초 비범죄화 주장, 간통죄 반대 및 폐지, 학생 체벌 금지 등을 주장했고 반대편 의견들을 가진 대중에게 비난을 받기도 했다.

이렇듯 신해철을 바라보는 시선은 곱지만은 않았다. 그러나 록음악의 대중화, 다채로운 음악적 실험은 항상 높은 평가를 받아왔다.

한인구 기자 in999@xport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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