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김덕중 기자] 2006년 독일월드컵 한국축구대표팀 숙소인 그랜드호텔 슐로스 벤스베르크. 조별리그 첫경기 토고전을 앞두고 이 곳에서 공동 기지회견이 열렸다.
대표팀 최종엔트리에 이름을 올린 23명의 선수들이 지정된 자리에 앉았다. 그러면 취재진이 자유롭게 다가가 선수들과 인터뷰를 하는 식으로 기자회견이 진행됐다. 그런데 이런 방법이다 보니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생겼다. 스타플레이어 주위로 취재진이 몰렸다. 당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소속의 박지성은 수많은 취재진에 둘러쌓여 있었다.
반면 몇몇 선수들에게는 민망한 시간이 됐다. 관심을 끌지 못한 선수들은 비슷한 처지의 동료들과 얘기를 주고 받으며 시간을 떼웠다. 일부는 아예 주목을 끌지 못한 채 그대로 숙소로 발걸음을 옮겨야 했다. 당시 24살의 김두현도 이러한 그룹에 포함돼 있었다. 김두현은 "(독일월드컵을 뛰기 위해)열심히 운동을 했지만 선발로 나가기는 어려울 것 같다"며 힘 없이 고개를 떨어뜨렸다.
김두현의 예감은 적중했다. 당시 대표팀을 이끌던 딕 아드보카트 감독은 한국축구의 에이스 박지성을 4-3-3 전형의 공격형 미드필더로, 3-4-3 전형의 측면 공격수로 활용했다. 이른바 '박지성 시프트'다. 박지성이 어떤 포지션에서 뛰고 어떤 역할을 맡느냐에 따라 여러 선수의 희비가 엇갈렸다. 김두현도 그랬다. 박지성이 측면이 아닌 중앙에 포진했을 때 공격형 미드필더 김두현이 뛸 자리는 없었다.
문제는 박지성이 측면에 포진했을 때다. 아드보카트 감독은 이 경우 당시 대표팀에서 수비 성향이 강했던 김남일, 이을용, 이호 등의 미드필더들로 중원을 구축했다. 측면에 비해 중앙 자원의 경쟁력이 다소간 떨어진다는 한국선수들의 성향을 고려한 판단이었다. 또 '월드 클래스' 32강이 참가하는 월드컵 본선에서, 공격적 재능은 충분하더라도 수비에 다소간 약점을 드러냈던 김두현을 선발로 투입하기가 부담스럽다는 판단이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김두현은 독일월드컵에서 단 1분도 그라운드를 밟지 못했다.
비단 아드보카트호의 사례만은 아닐 것이다. 과거 한국축구의 수많은 지도자들이 부임 초기 공격적인 축구를 하겠다며, 공격형 미드필더의 중용을 예고했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수비적인 색깔을 강화했다. 공격형 미드필더 최문식, 노정윤, 윤정환, 고종수 등이 대표적인 '한국축구 기피인물'로 꼽혔다. 과장된 문구일 지 모르겠으나 이러한 표현은 이들이 단지 대표팀에서 크게 활약한 기억이 없기 때문만은 아니다. 공격형 미드필더들이 국내에서 유난히 저평가 되고 있고 이에 따른 충분한 기회를 얻지 못했으며, 이러한 인식이 굳어지고 확산된 데에는 기술 보다는 힘을 중시했던 한국축구의 전통적인 사고방식이 적지않이 작용한 결과라고 진단하는 관계자들이 있다.
그런데 최근 들어 인식의 변화가 생기고 있다. 국내 지도자들 또한 공격형 미드필더의 순기능을 더 이상 무시하지 않는다. 척박한 환경에서 힘겹게 배출된 공격형 미드필더들은 장점 보다는 으례 단점이 부각돼 왔으나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다. 지도 과정에서 이를 용인할 뿐 아니라 습득해서 성장시키라는 요구도 뒤따른다. 최근 대표팀 지휘봉을 잡았던 국내 지도자들도 마찬가지. 팀내 상황에 따라 다양한 카드를 확보하려는 차원일 수도 있겠으나 예전과 견주면 분명 비중이 올라갔고 빈도가 높아졌다. 그리고 이러한 경향은 2014년 브라질월드컵 본선을 준비하는 홍명보호에서 절정에 다다를 것으로 관측된다.
6일 아이티(인천) 10일 크로아티아(전주)를 상대하는 홍명보호 3기가 소집됐다. 앞선 두 차례 소집과 달리 유럽파가 총출동했다. 브라질월드컵 본선을 향한 본격 밑그림이다. 지난 3일 파주NFC(국가대표팀트레이닝센터), 홍명보 감독은 4-2-3-1 전형을 토대로 각 포지션마다 2명씩 짝을 나눠 실전과 다름없는 훈련을 실시했다. 본격적인 포지션 경쟁을 유도하겠다는 의지였다. 그런데 이 가운데 유일하게 한 포지션에 3명이 겹친 자리가 있어 눈길을 끌었다. 바로 공격형 미드필더 자리다.
원톱 바로 밑에 위치해 2선 볼배급에 집중하면서도 기회가 나면 최전방까지 올라가 골을 노려야 하는 포지션이다. 홍명보 감독은 이번 소집에서 이 자리에 구자철(볼프스부르크) 김보경(카디프 시티) 이근호(상주) 등 3명을 배치했다. 각각의 특징이 있다. 구자철은 지난해 런던올림픽과 전 대표팀에서 수차례 맡았던 자리라 익숙할 터. 김보경은 소속팀에서 같은 자리를 뛰며 인상적인 평가를 끌어내고 있다. 이근호는 최전방 공격수로도 활약했던 터로 파괴력과 득점력이 뛰어나다.
여러가지 이유로 인해 대표팀 원톱의 역량이 의심받고 있는 현재 2선에서 해결해야 한다. 브라질월드컵을 앞둔 홍명보호 주전 경쟁의 최대 격전지다.
김덕중 기자 djkim@xportsnews.com
[사진=홍명보호 ⓒ 엑스포츠뉴스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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