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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재의 논어와 스포츠] 기성용과 라우드롭, 이대로는 안된다

기사입력 2013.09.04 10:34

김덕중 기자


[엑스포츠뉴스=장원재 칼럼니스트] 기성용이 이적했다. 스완지와 선덜랜드가 1년 임대에 합의했다. 아쉬움이 남는다. 미카엘 라우드롭 감독과의 인연이 엷어졌기 때문이다. 

라우드롭은 덴마크 국민이 뽑은 역사상 최고의 덴마크 축구 선수다. 1964년 6월 15일 생. 18세부터 대표팀에 뽑혔고 98년에 은퇴했다. 덴마크 리그를 거쳐 이탈리아의 라치오(1983-85), 유벤투스(1985-89), 스페인의 바르셀로나(1989-94), 레알 마드리드(1994-96), J리그 빗셀 고베(1996-97)에서 뛰었다.

마지막 소속구단은 네덜란드의 아약스(1997-98)다. 캐리어가 말해주듯, 그는 언제나 유럽 빅 클럽들의 구애대상이었다. 전성기는 바르셀로나 시절이다. 리그 타이틀 4회 연속 우승을 포함, 각종 대회에서 아홉 번 우승컵을 들어올리는 동안 그는 늘 팀의 중심에 서 있었다.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한 첫 시즌에 팀을 리그 정상에 올려놓으며 완성한 ‘스페인리그 우승메달 5년 연속 획득’이라는 신화. 1999년 스페인 기자들은 라우드롭을 스페인 리그에서 활약한 ‘역대 최고의 외국인 선수’로 뽑았다. 디 스테파노나 크루이프보다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는 뜻이다.

라우드럽 이전, 덴마크 축구는 유럽의 변방이었다. 1986년 멕시코 월드컵이 그들의 월드컵 데뷔전이었을 만큼. 소련, 스위스, 아일랜드, 노르웨이가 속한 예선 전장을 5승1무2패 수위로 통과. 첫 경기 6월 4일 스코틀랜드 전을 1-0으로 마무리하며 첫 승 신고. 당시의 스코틀랜드 감독이 바로 알렉스 퍼거슨, 개막 몇 주 전 부상으로 엔트리에서 빠진 에이스가 리버풀의 전설 케니 달그리쉬다. 나흘 후 우르과이와의 2차전이 라우드롭의 명편(名篇)이다. 우르과이는 당시 남미 챔피언. 개막전을 서독과 1-1로 비긴 만만치 않은 상대였다. 덴마크는 개전 10분 만에 라우드롭의 어시스트로 첫 골을 뽑고, 최종 스코어 카드에 무려 6-1이라는 숫자를 찍는다. 라우드롭은 이 경기 후 세계의 언론으로부터 “남미의 기술과 유럽의 강인함을 한 몸에 구현한 선수”라는 찬사를 받는다.

그의 플레이스타일은, 말하자면 아웃복싱과 인파이팅을 동시에 구현한 듯한 독특한 신제품이었다. 우아하면서도 터프했다. 타이밍을 조절하며 느리게 움직이다가도 순간 속도를 높이며 빠르게 공간을 파고들었다. 6월 13일, 두 팀 다 16강 진출이 확정되었다고는 해도, 덴마크가 서독을 2-0으로 완파할 것이라고 예상한 전문가는 드물었다. 6월 18일 16강전, 덴마크는 33분 페널티킥으로 스페인에 앞서 나갔지만 43분 수비실수로 부트라게뇨에게 동점골을 허용하고, 후반들어 네 골을 허용하며 1-5로 무너진다. 지면 어차피 탈락이니 막판 ‘총공격’을 감행하다 연타를 얻어맞은 것이다.

그의 동생도 축구선수다. 덴마크의 유로 92 우승을 이끈 다섯 살 아래의 브라이언 라우드롭. 1998/99 시즌 중간, 향수병에 걸려 첼시에 연봉을 반납하고 덴마크 고향팀으로 돌아가 버린 감성이 풍부했던 또다른 천재.

은퇴 후 1998년 덴마크 대표팀 코치로 지도자 데뷔, 2002-6년 덴마크 브론들리 감독으로 2005 시즌 우승. 마드리드 제3의 클럽인 헤타페(2007-8), 러시아의 명문구단 스파르타크 모스크바(2008-9), 다시 스페인리그 말로가(2010-201)를 거쳐 2년 계약으로 스완지 입성(入城).라우드롭은 짧은 패스의 마법사였다. 그는 패스를 롱킥을 줄이고 패스를 이어붙여 팀 전체가 한덩어리로 전진하는 전술을 완성했다. 수비진에서 최전방까지 공을 이어가는 동안, 두 세 번의 원터치 패스와 창의적인 터치가 있어야 상대의 방어망을 뚫을 수 있다는 것이 라우드롭의 지론이다. 그래서 그는 기성용을 총애했다. 건장하고, 활동량이 많은데다 킥이 정확하고, 때론 엉뚱한 듯 보이는 창의적인 패스를 만들어내는 선수였기 때문이다. 라우드롭의 성향으로 보아, 기성용은 라우드롭 구상의 핵심이자 최적의 카드가 될 수도 있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2000년대 들어 거의 모든 유럽 구단들이 직면한 골칫거리가 있다. 감독의 영(令)이 도무지 서지 않는다는 점이다. 무엇보다도, 지도자들과 선수들의 연봉 차이가 너무 심하다. 자기 월급 정도를 연봉으로 받는 지도자에게 선수들이 100% 복종할 수 있을까? 조금만 갈등이 생겨도 선수들은 타 구단으로 이적을 요구한다. 심지어는 감독의 선수기용, 전술, 교체카드에 공개적으로 불만을 표하고 자기 의견을 제시하는 선수들도 있다. 퍼거슨이나 되니까 베컴을 자를 수 있는 것이다.

최강희 감독과 기성용 사이에 벌어졌던 일들도 문제를 키웠다. 한국발(發) 뉴스는 실시간으로 스완지 수뇌부에 보고되었다. 감독끼리는 서로 경쟁하지만 어떤 사안에 대해서는 전 세계 감독들이 모두 한 편이다. 동병상련(同病相憐)을 느끼기 때문이다. 라우드롭은 10대 후반부터 외국 리그 생활을 시작했다. 세상에 하고 싶은 일을 다하고 사는 사람은 없겠지만 라우드롭은 그 중에서도 ‘참고 견디며 자기를 희생하는’ 분량이 상당히 많았던 선수다. 사고가 유연하고 마음이 따뜻한 사람일수록 최선을 다해 누군가를 배려한다. 그리고 아니다 싶으면 단 한 순간에 돌아서는 경우가 많다. 어지간한 일들은 못본 척 넘어가 주다가 누적된 분노의 분량이 쌓이면 단 번에 임계점을 넘어간다는 얘기다. ‘그 동안 아무런 문제가 없었는데 갑자기 왜 이러시냐’고 묻는 건 ‘착한 사람’들의 성격을 너무 자기 위주로 해석하는 경우다.

논어 첫머리, 두 번째 챕터에 나온다.

有子曰 “其爲人也 孝弟오 而好犯上者 鮮矣니 不好犯上이오 而好作亂者 未之有也니라.

유자왈 기위인야 효제 이호범상자 선의 불호범상 이호작란자 미지유야

君子는 務本이니 本立而道生하나니 孝弟也者는 其爲仁之本與인저.”

군자 무본 본립이도생 효제야자 기위인지본여

해석) 유자(有子)가 말하였다. “그 사람됨이 효성스럽고 우애로면서 윗사람을 거스르기를 좋아하는 이는 드물다. 윗사람을 거스르기를 좋아하지 않으면서 변란 일으키기를 좋아하는 자는 지금껏 없었다. 군자는 기본에 힘을 쓸 것이니 기본이 갖추어지면 도가 열리게 된다. 효성스럽고 우애롭다는 것은 바로 어짊의 기본일 것이다.”

축구는 팀 스포츠다. 팀워크가 단단하지 않으면 좋은 성적을 기대할 수 없는 종목이다. 기성용은 한국 축구의 소중한 자원이다. 소질과 실력도 빼어나서 세계 정상권까지 진화할 수 있는 선수다. 경기 외적인 문제로 이 빛나는 재능을 100% 개발할 수 없게 된다면 이것만큼 억울하고 안타까운 일이 어디 있겠는가. 우리가 원하는 건 기성용이 정상 언저리에서 전진을 멈추는 것이 아니다. 실력과 인성을 갈고 닦아 한국인이 아직 가보지 못한 전인미답(前人未踏)의 지점까지 나아가 달라는 것이다.

라우드롭만큼 국제적 인맥과 네트워크를 가진 감독도 거의 없는데. 한국 축구가 활용할 수 있는 미래자산 하나가 이렇게 없어지는 것은 아닌지 그 점이 안타까울 뿐이다. 선덜랜드에서 심기일전(心機一轉)하고 멋진 축구를 보여주었으면. 실력으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고 라우드롭 감독과도 관계를 복원해 갔으면.

*사족 하나-라우드롭의 일본 시절엔 한국인 동료가 없었다. 라우드롭이 팀을 떠난 이듬해인 1998년 하석주와 김도훈이 입단했고 99년엔 최성용이 입단, 2000년까지 ‘빗셀 고베 한국인 삼총사’로 불리며 맹활약한다. 박강조, 김남일 등도 빗셀 고베의 경기복을 입은 적이 있다.

*사족 둘-선덜랜드와 한국 축구의 인연. 일제시대, 잡지에 난 선덜랜드의 경기복을 보고 홀딱 반해 디자인을 그대로 빌려다 쓰기로 결정한 팀이 있다. 2013년에도 이 팀은 그 경기복을 그대로 사용한다. 당시는 보성전문, 지금의 고려대 축구부의 호랑이 줄무늬 경기복은 선덜랜드 상하의가 오리지널이다.



장원재 칼럼니스트 sports@xportsnews.com

[사진=기성용 ⓒ 게티이미지 코리아]

김덕중 기자 djkim@xport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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