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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욱의 스포츠라운지] 프로야구 심판의 권위를 세우는 일

기사입력 2013.06.17 14:59

홍성욱 기자


[엑스포츠뉴스=홍성욱 기자] 2013년 6월 15일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LG와 넥센 간의 경기는 한국 프로야구 32년 역사에서 가장 크게 회자될 오심 사례 중 하나로 기록될 것이다.

두 팀이 0-0으로 맞선 LG의 5회말 공격. 2사 만루에서 LG의 3번 타자 박용택은 넥센 선발 브랜든 나이트가 던진 2구째를 받아쳤다. 타구는 넥센 3루수 김민성이 다이빙 캐치로 잡아 2루수 서건창에게 송구하며 이닝이 종료될 상황이었다.

그런데 2루심을 맡았던 박근영 심판위원이 세이프를 선언하며 상황이 급변했다. LG는 선취점을 뽑았고, 박용택은 야수선택으로 기록됐다. 넥센 선발 나이트는 이후 급격히 흔들리며 4번 타자 정의윤에게 스트레이트 볼넷으로 밀어내기 실점을 했고, 5번 타자 이병규(9번)에게 만루홈런을 얻어맞았다. 결국 경기는 9-0 LG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이 났다.

넥센에게 이 경기가 지닌 의미는 대단히 컸다. 요 며칠 사이 잇단 음주사고에 퇴장 선수까지 나오면서 팀은 어수선한 분위기에 빠져들었고, 연패까지 이어지며 개막 이후 최대 위기에 빠진 상황이었다. 넥센은 에이스 나이트를 등판시킨 경기에서 필승의지를 다졌지만 결과는 석연치 않은 패배로 돌아왔다. 넥센 구단은 시즌이 끝난 뒤 이 경기를 ‘급전직하의 분수령’ 또는 ‘전화위복의 계기’로 기억할 것 같다. 후자였으면 좋겠지만 전자가 될 수도 있다.

이는 심판 판정 하나가 한 팀의 운명을 좌우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박근영 심판위원은 판정 직후 항의하러 나온 넥센 염경엽 감독에게 당황스런 표정으로 “(주자의)손이 빨리 들어간 걸로 봤습니다. 죄송합니다”라고 실수를 인정했지만 이미 볼데드 상황이라 세이프 판정은 번복될 수 없었다.

2루심은 통상적으로 다음 날 주심을 본다. 2루 쪽에서 투수의 공을 보며 주심을 대비하라는 의미다. 박 심판위원도 다음날 주심을 볼 예정이었지만 심판위원회 자체징계로 2군행을 통보받았다. 신속한 징계였다.

경력 14년차 베테랑인 박근영 심판위원의 2군 강등은 그에게 치욕적인 일이다. 아웃과 세이프, 스트라이크와 볼처럼 심판의 판단에 따른 재정은 상벌위원회 개최의 사유가 아니므로 추가적인 제제는 없다지만 언제 1군 무대를 다시 밟을지도 기약이 없고, 온다고 해도 여러모로 부담스러운 상황이 됐다.

더구나 이 상황을 주시하고 있는 구단 관계자들과 선수들, 나아가 팬들 입장에서는 출전정지나 벌금부여가 없는 2군 강등이 솜방망이 처벌로 느껴질 수 있어 더욱 부담스럽고 조심스럽다.



이번 오심 사태로 심판의 권위는 일정부분 무너졌다. 어렵게 쌓아올린 신뢰를 잃은 것이다. 이는 심판사회 전체에 있어 쓰라린 상처로 남게 됐다.

심판은 권위를 먹고 산다. 권위는 판정에서 나온다. 판정 하나하나가 쌓여 위엄이 되고 권력이 된다. 그 권력은 공정한 승부로 드러난다. 선수들은 그라운드에서 심판의 권위와 다시 만나야 한다. 경기가 열릴 때마다 그 권위는 높아져야 한다. 그것이 리그를 지탱하는 강력한 힘이다.

심판이 대과 없이 경기를 마쳤을 때 선수들과 팬들로부터 존경까지는 아니더라도 존중받을 수 있는 풍토는 심판들 스스로가 만들어내야 할 과제다.

오심은 경기 중에 언제든 나올 수 있다. 줄이려고 노력할 수는 있지만 원천적으로 없애는 건 불가능하다. 오심이 발생했을 때 이를 처리하는 과정도 심판의 권위를 지키는 일이다.

프로야구 32년 역사를 이어오면서 우리나라 야구는 모든 면에서 초창기에 비해 괄목할만한 성장을 이뤄냈다. 향상된 경기력에는 심판의 판정도 포함된다. 이는 시행착오를 겪으며 쌓아온 노력의 산물이다. 그러나 아흔아홉 번을 잘해도 한 번을 잘못하면 못한 것으로 찍히는 위치가 바로 심판이다.

스스로 판정을 통해 권위를 세우고, 잘못했을 때 일벌백계로 다스리며 엄한 자화상을 만들어가는 건 심판에게 있어 생명줄처럼 소중한 일이다.

심판은 분명 리그의 자산이자 경기의 필수요소다. 은퇴하는 날 희끗한 머리 위에 마스크를 눌러쓰고 주심으로 나서 관중들의 기립박수를 받으며 야구장을 떠나는 노심판을 기다리는 건 아직 때 이른 욕심일까. 



홍성욱 기자 mark@xportsnews.com

[사진=15일 경기에서 심판 판정 이후 박근영 2루심 주변으로 모여드는 넥센 선수들(위), 다음 날 넥센 염경엽 감독에게 사과하러 덕아웃을 찾은 조종규 심판위원장(아래) ⓒ 엑스포츠뉴스 권혁재 기자]  

홍성욱 기자 mark@xport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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