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최종편집일 2024-11-28 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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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엽의 격투사담] 추성훈을 더 이상 파묻지 말라

기사입력 2008.01.01 13:26 / 기사수정 2008.01.01 13:26

남기엽 기자



[엑스포츠뉴스=남기엽 기자] 연말을 맞이하여 사이타마 슈퍼 아레나에서 열린 프라이드의 계승 이벤트 야렌노카.

이 이벤트는 첫째로 과거 종합격투기 단체 프라이드를 계승하는 성격이라는 점, 둘째로 추성훈과 미사키 카즈오라는 프라이드,K-1 양 단체 챔피언 출신이 맞대결한다는 점으로 뜨거운 관심을 모았다.

그러나 정작 뜨거운 논란은 경기 외의 부분인 '멘트'에서 발생했다.

미사키 카즈오는 종료 1분 50여 초를 남긴 시점에 추성훈의 안면에 레프트 훅을 작렬시켰고 이어 추성훈이 일어나려는 찰나에 또 다시 킥에 이은 파운딩을 퍼부으며 승리를 거뒀다. 정황상 일어나는 타이밍에 킥을 찼기 때문에 사커킥은 아니라고 보이지만 문제는 이게 아니라 그 다음한 미사키의 행동이었다.

미사키는 승리후 다카다 노부히코 총괄본부장과 고노 아키히로 등과 기쁨을 함께한 뒤 마이크 어필을 작정한 듯, 악수를 청해온 추성훈을 밀었다. 그 후 추성훈을 향해 "네놈은 작년 (사쿠라바와의 시합에서) 많은 사람과 아이들을 배반했다"며 "나는 그것을 절대 용서할 수 없다"고 강한 어조로 말했다. 추성훈은 계속해서 수건으로 (부러진 것으로 추정되는)코를 매만졌으며 표정은 전혀 경황이 없는 표정이었다.

적어도 데니스강 전의 살기 어린 추성훈과 그때의 추성훈은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부상으로 신음하는 그를 앞에 두고 1년 지난 일을 만인 앞에서 (승리했음에도) 다시 들먹거릴 필요가 있었을까. 이어 미사키는 "하지만 시합을 통해 너의 마음이 내게 전해졌다"며 큰절을 올리고 오히려 추성훈에 대한 세간의 오해를 풀어주려는 노력을 보이는 듯했다. 하지만, 문제는 그 다음이다.

추성훈이 내려갈 때 미사키는 추선수의 세리머니인 '유도 사이코(최고)!'를 외쳤다. 미사키 또한 유도계에 몸담았던 시절이 있기에 백번 양보해서 여기까지 이해한다 치자.

그 후 '일본인 최고!'라는 말은 뭔가? 그런 말은 자국선수가 타국선수와 싸웠을 때 하는 말이다. 일본 국적의 두 선수가 싸운 뒤 자신보다 나이도 많은 사람에게 '오마에'라는 비존칭어를 쓰며 훈계하더니 '일본인 최고!'? 뭔가 앞뒤가 안 맞는다. 추성훈이 일본인이 아니란 말인가.

적어도 당시 기자에게는 그 말은 "일본인(사쿠라바)을 쓰러뜨린 한국인(추성훈) 을 내가 쓰러뜨렸다"는 말로 해석되었다. 비약일까. 그럼 그 연호에 환호한 관중은 뭘까.

추성훈은 대체 어느 나라 사람인가. 한국인가 일본인가?

부상까지 입으며 쓰러진 선수를 갖다 밀치며 훈계하고 띄어주고 큰절하고 절멸한 민족주의적 감정에 기대 평소 하지도 않던 남의 세리머니를 미사키의 행태는 상식 이하다. 추성훈은 분명 과거 사쿠라바와의 경기에서 몸에 크림을 바르며 명백한 잘못을 했다.

사쿠라바가 경기후 K-1측에 항의해 경기결과를 되돌린 것은 당연하다. 추성훈이 사죄하는 절차도 당연했다.

일본인들이 필요 이상으로 추선수를 욕하는 것과 한국인들이 필요 이상으로 사쿠라바 선수를 욕하는 것을 제외하면 모든 것이 정상적으로 돌아갔다.

문제는 일반 대중팬들이 아니라 자국의 챔피언이라는 소리를 듣는 격투기 선수조차 이런 이분법적인 민족주의 감정에 기대 그것을 고작 마이크 어필에나 이용해 먹는 지리멸렬 적 작태다. 

이날 미사키의 행동을 보고 일본인들이 용서를 한다면, 그것은 분명 패자의 얼굴에서 비춰지는 '동정'과 훈계를 듣는 추선수에 대한 '안쓰러움'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정말 추성훈의 진심을 미사키의 말마따나 대중들도 진심을 느껴서 용서할까?

더 이상 묻지 말라. 더 이상 파묻지 말라. 추성훈 선수가 기자회견에서 사과한 게 몇 번인가. 왜 그걸 당사자인 사쿠라바도 아닌 엉뚱한 선수가 나와 자신보다 유도계의 선배에게 가르치고 훈계하고 또 그것을 마이크 어필에 이용해 먹나.

추성훈 선수가 퇴장하며 '유도 사이코!'란 소리를 들었을 때 기분이 어땠을까. 코를 매만지며 눈물젖은 얼굴로 빠져나갈 때 '일본인 최고!'란 소리를 들었을 때 어떤 감정이었을까.

프라이드 계승을 표방했다면 오늘 경기는 프로레슬링은 아니었을 것이다. 상대선수에 베어있는 강한 민족주의적 악감정을 이용해 파시즘적 환호와 대인스러움을 보여주려는 미사키의 작태에 파이터는 '경기'로 말한다는 아주 기본적인 상식을 요구한다.



남기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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