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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뷰] '스토커', 매혹적인 영상으로 표현된 한 소녀의 '핏빛 성장기'

기사입력 2013.03.04 19:10 / 기사수정 2013.03.05 08:52

조영준 기자


[엑스포츠뉴스=조영준 기자] "사람들은 왜 자식들을 낳을까? 이유는 딱 하나겠지. 자식들을 통해 새 삶을 살기를 원하니까…그런데 인디아, 넌 도대체 누구니?"

- 이블린 스토커(니콜 키드먼 분)

보통 사람들보다 미세한 소리를 들을 수 있고 먼 곳까지 볼 수 있다. 주위 사물에 매우 민감하며 자신 만의 세계 속에서 살고 있다. 학업 성적은 매우 우수하지만 사교성은 전혀 없다. 표정은 언제나 그늘져있고 좀처럼 웃지 않는다.

박찬욱 감독의 할리우드 데뷔작 '스토커'의 주인공인 인디아 스토커(미야 바시코브스카)는 독특한 소녀다. 주위 사람들에게 좀처럼 마음의 문을 열지 않고 어머니인 이블린도 접근하기 어렵다. 인디아가 유일하게 다가섰던 이는 아버지인 리차드 스토커(더모트 멀로니 분)였다. 그러나 리차드는 인디아의 18세 생일날 의문의 죽음을 당한다. 그리고 이전까지 존재조차 몰랐던 삼촌 찰리 스토커(매튜 구드 분)가 나타난다.

훤칠한 키에 준수한 외모, 그리고 살며시 짓는 미소가 특징인 찰리는 인디아의 주위를 맴돈다. 타인들에게 좀처럼 다가서지 않는 인디아는 찰리를 경계한다. 하지만 서로 다를 듯 보였던 이들은 매우 치명적인 공통점을 지니고 있었다.

타인의 고통을 보고 쾌감을 느끼는 미묘한 감정. 찰리는 이러한 모습을 인디아 앞에서 스스럼 없이 보여준다. 찰리가 저지른 끔찍한 상황을 목격한 인디아는 처음에는 당혹감을 표출한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자신도 찰리가 느끼는 쾌감에 동조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타인이 고통을 받을 때 미묘한 흥분을 느끼는 자신을 발견한 인디아는 찰리를 향해 마음을 연다. 인디아 앞에 선 찰리는 "너와 나는 공통점이 있다. 우리는 닮은 존재다"라고 속삭인다. 두 사람의 위험한 행보는 파국으로 치닫는다.

인디아와 찰리, 두 사람의 공통적인 성향이 드러나면서 영화의 긴장감은 한층 고조된다. 관객은 두 사람의 예상치 못한 행보에 당혹감과 함께 스릴을 느끼게 된다. 또한 인간에게 잠재된 어두운 욕망에 대해 새삼 눈을 뜨게 된다. 박찬욱 감독은 '복수는 나의 것', '올드보이', '친절한 금자씨', '박쥐' 등을 통해 반 사회적인 캐릭터를 창조해왔다. 할리우드 진출작인 '스토커'에서도 박찬욱 감독이 선호한 캐릭터들이 생생하게 살아있다.

일반인의 범주에서 벗어난 인물들의 행동은 예상하기 어렵다. 독특한 캐릭터로 인해 스릴러의 묘미는 더욱 살아났고 영화의 반전도 쉽게 예상할 수 없다.

박찬욱 감독, 한 소녀의 위험한 성장 사를 매혹적으로 표현하다

사이코패스 소녀의 섬뜩한 성장기를 창조한 이는 엔트워스 밀러다. 미국 드라마 '프리즌 브레이크'에 출연했던 그는 국내 팬들에게 '석호필'(극 중 이름이 스코필드로 한국식으로 발음하면 '석호필'이라는 뜻)로 유명하다.

그의 첫 번째 영화 시나리오는 매우 기이하면서도 독창적이었다. 이 영화를 연출한 박찬욱 감독은 지난달 21일 열린 기자회견에서 "엔트워스 밀러가 쓴 각본은 넓은 여백으로 다가왔다. 채워 넣을 부분이 많아보였는데 부족하다는 말이 아니라 여백이 많아서 내게 넓은 각본으로 다가왔다. 내가 손을 대면서 이것저것 새로 넣고 빼고, 고치기도 했다. 하지만 내용의 골격과 인물 묘사 등은 밀러가 설정한 것들이 워낙 좋아서 그대로 유지했다"고 밝혔다.

'스토커'의 각본은 밀러가 약 8년에 걸쳐 집필했다. 한 소녀의 기괴한 성장담은 박찬욱 감독의 연출이 더해져 한층 세련되게 완성됐다. 박찬욱 감독은그는 인간 내면에 감춰진 잔혹함과 음란한 욕망을 은유법이 들어간 영상으로 표현했다.



'스토커'도 은유적으로 표현된 장면이 많다. 니콜 키드먼은 "처음에는 스토커를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워낙 시적인 표현이 많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인디아와 찰리가 함께 피아노를 연주하는 장면이다. 같은 성향을 지니고 있던 두 사람은 서로 격정적인 연주를 동시에 펼치며 서로의 동질감을 확인한다. 찰리가 치는 선율은 인디아와 비슷했고 둘의 연주는 완벽한 조화를 이룬다. 인디아를 연기한 바시코브스카도 이 장면이 가장 인상적이었다고 털어놓았다.

'스토커'는 보통 사람과는 다른 내면을 가진 한 소녀의 단순한 성장 영화만은 아니다.  어머니인 에블린은 언제나 자신의 안위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여자다. 그리고 인디아의 주변은 위선에 가득 찬 어른들로 둘러싸여 있다. 인정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는 환경 속에서 자란 인디아는 유일하게 정을 줬던 아버지가 죽자 점점 '괴물'로 변해간다. 이기적이고 위선에 찬 세상 속에서 한 소녀가 어떻게 영향을 받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 '스토커'는 올해 선댄스 영화제에서 극찬을 받았다.

대중문화 전문 매체인 '버라이어티'는 "박찬욱 감독은 스토커를 통해 히치콕 감독의 놀랍고 기이한 스릴러와 동화적 요소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담아냈다"고 평가했다. 영국의 대중문화 매체인 '헤이유가이즈'는 "스토커는 박찬욱 감독을 새로운 세대의 '히치콕'으로 확실하게 자리매김해줄 영화다"라고 칭찬했다.

박찬욱 감독의 독특한 은유와 치밀한 연출력이 살아있는 '스토커'는 전국 극장가에서 절찬 상영 중이다.

[사진 =미아 바시코브스카, 매튜 구드, 니콜 키드먼 (C) 스토커 스틸컷]

조영준 기자 spacewalker@xport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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