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최종편집일 2024-10-31 12:31
경제

[연극 리뷰] 연극 '벚꽃동산', 희극과 비극의 경계에서 바라본 우리네 삶

기사입력 2012.10.26 11:38 / 기사수정 2013.11.18 18:08



[엑스포츠뉴스=김현정 기자] 누군가가 그랬던가.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 보면 비극이라고.

'러시아의 셰익스피어'라 불리는 안톤 체홉의 연극 '벚꽃동산'은 희극과 비극의 경계에 놓여있는 우리네 삶을 시종 차분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1861년 러시아에서는 농노제가 폐지되고 서구 문물에 대한 수요가 늘어난다. 이 때문에 20세기 초에는 기존 사회 질서가 통째로 흔들리게 되고 사람들의 가치관도 급격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벚꽃동산'은 이러한 혼란과 격동의 시기 속 몰락한 여지주 라네프스카야 일가의 이야기를 담았다. 극은 광활하고 아름다운 벚꽃동산을 배경으로 시작되지만 마냥 들뜨게만, 그렇다고 어둡게만 그려지진 않았다. 라네프스카야, 로빠힌, 가예프, 피르스, 아냐 등 각각의 캐릭터들 역시 적절한 유머와 무거움으로 코믹함과 진지함의 중심을 오간다.



오경택 감독은 '지금 이 순간, 이 세상의 가치는 무엇인가'라는 추상적인 질문을 던지며 삶의 부조리함을 이겨낼 수 있는 치유와 희망의 힘을 이야기한다. 이 작품이 외국의 고전임에도 21세기 관객들과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도 이 때문이다. '벚꽃동산'이 말하고자 하는 상실의 두려움, 소중한 것에 대한 연민과 애정 등은 시대와 공간을 초월하는, 인간 삶의 밑바탕에 존재하는 가치 중 하나다.

'벚꽃동산'에는 변화를 두려워하고 소중한 것을 지키고 싶어 하는 사람들과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옛것을 과감히 버리려는 사람들의 특성이 대조적으로 표현된다. 과거의 찬란한 추억이 담긴 벚꽃동산이 훼손되는 것을 원치 않은 라네프스카야가 전자라면 그녀에게 벚꽃동산을 별장지로 임대할 것을 충고하는 로빠힌은 후자에 해당된다. 두 사람은 벚꽃동산을 두고 시종일관 확연한 의견 차를 보이지만 결국 상실에 대해 인정하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된다는 것에는 공통점을 갖는다.

라네프스카야와 로빠힌의 표면적인 갈등은 벚꽃동산을 팔고 안 팔고의 문제 혹은 과거에 대한 향수와 자본주의를 상징하는 돈의 대립에서 빚어졌다. 하지만 그 내부에는 고통 속에서도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인간의 숙명이 심오하게 담겨져 있으며 감독은 관객들로 하여금 그에 대한 해답을 직접 찾도록 만든다. 



배우들은 섬세한 움직임과 울림이 있는 대사 처리를 통해 작품의 무한한 깊이를 훌륭하게 전달한다. 몰락한 여지주 라네프스카야 역할을 맡은 뮤지컬 배우 우현주는 아름답고 우아하지만 닥쳐오는 불행에 혼란스러워하는 캐릭터의 특성을 잘 살려냈으며 늙은 하인 피르스 역의 배우 정동환은 많지 않은 대사와 분량을 가지고도 적막함과 허망함, 고독함 등을 생생하게 드러내며 여운을 남긴다.

특히 피르스가 "산 것 같지도 않은데 한 평생이 다 갔군. 아무것도 남지 않았어. 아무것도"라고 독백하며 벚꽃나무들과 함께 죽음을 맞는 장면은 관객들의 뇌리에 강한 인상을 심어준다.

무대와 세트 역시 세심하게 신경을 쓴 흔적이 엿보인다. 20세기 초를 배경으로 하지만 촌스러운 느낌은 배제했다. 책장, 의자 등 아기자기한 소품들도 무대와 잘 어우러졌다. 무대 뒤편에는 회색빛으로 벚꽃나무 숲이 그려진 판넬이 설치돼있어 관객들의 몰입도를 높였다. 특히 바닥에 흩뿌려져 있는 벚꽃잎들은 로맨틱하고 낭만적인 느낌을 자아내면서도 상실의 슬픔과 절망을 암시해 쓸쓸한 분위기를 풍긴다.



극단 맨씨어터의 연극 '벚꽃동산'은 28일까지 서울 종로구 세종로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관객들과 만나며 2012년 2월 초 '스타니슬라브스키 탄생 150주년 페스티벌'의 초청을 받아 한국 연극사상 최초로 원작의 나라인 러시아에서 공연된다.

김현정 기자 khj3330@xportsnews.com

[사진 = 벚꽃동산 ⓒ 딜라잇 제공]


김현정 기자 khj3330@xport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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