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 만에 올림픽 출전의 꿈을 이룬 후배들이 런던으로 떠났다. 올림픽에 두 번 도전했지만 메달의 꿈을 이루지 못한 선배의 입장으로서 이들을 응원하는 마음은 특별하다. 어려운 여정 속에서도 여기까지 와 준 선수들이 부디 런던에서 좋은 결과를 얻고 돌아오기를 기원한다.
런던행을 결정지었을 때의 기쁨이 가시기 전에 걱정도 밀려왔다. 한국이 올림픽 B조에서 상대할 국가들은 모두 강팀들이기 때문이다. '죽음의 조'라고 불리지만 이러한 현실을 부정적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 조별예선만 통과하면 메달권 진입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전망한다.
문제는 험준한 협곡의 연속인 조별예선을 어떻게 통과하는 지의 여부다. 많은 배구 팬들이 알 듯 우리가 확실히 잡을 팀은 단 한 팀도 존재하지 않는다. 첫 상대는 세계 최강인 미국이다. 어떤 이들은 미국전에서 기적과도 같은 이변이 나오길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개인적으로 미국전은 '올림픽 최종 연습'이 되었으면 한다. 미국은 1.5군의 멤버들을 가지고 올해 그랑프리 정상에 등극했다. 미국은 세계 정상권에서 내려온 시절에도 꾸준하게 중상위권을 유지했다. 대표 선수들은 세계 각국의 유명리그에서 뛰면서 선진 배구를 터득했다. 그리고 미국의 무서운 점은 힘과 높이는 물론 기본기마저 탄탄하다는 점이다.
미국은 그동안 올림픽 금메달과는 인연이 없었다. 그동안의 한을 풀기 위해 노장 선수들을 대거 대표팀으로 불러들였다. 특히 72년생인 스캇 아루다의 가세는 인상적이다. 불혹의 나이에도 여전히 정상급의 기량을 유지하고 있다는 모습에 감탄사가 나온다.
미국의 장점은 세련된 배구를 한다는 점이다. 매우 실리적인 경기력을 펼치고 실수가 좀처럼 나오지 않는다. 여기에 이번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획득하겠다는 의지가 그 어느 때보다 강하다.
나는 미국과의 첫 경기 다음날(한국시간 30일)에 열리는 세르비아와의 2차전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세르비아와 7번 맞붙었지만 단 한번도 승전보를 울리지 못했다. 세르비아가 세계의 강호들과 비교해 특출한 팀은 아니지만 우리는 유독 약한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두 팀의 전력을 찬찬히 비교해 보면 답은 쉽게 나온다. 세르비아는 미국처럼 세련된 배구를 펼치지 못하지만 '한방'을 갖추고 있다. 세르비아는 196cm의 장신 공격수인 블랑코비치가 버티고 있다. 세계적인 공격수인 블랑코비치는 라이트에서 내리꽂는 공격이 일품이다. 세르비아의 블로킹 스텝은 우리보다 뛰어나고 높이에서 우위에 있다.
최근 우리의 높이가 많이 좋아졌지만 세르비아와 비교하면 여전히 열세다. 나는 우리가 세르비아를 이길 수 있는 길은 '서브리시브의 안정'에 있다고 본다. 리시브를 잘 받고 세르비아의 높이를 극복하는 길만이 해답이라고 생각한다.
세르비아 전에서 주목해야할 점은 블랑코비치와 김연경(24)의 '주포' 경쟁이다. 핵심은 주포를 받쳐주는 지원에 있다고 본다. 결코 쉬운 상대는 아니지만 나는 세르비아 전을 긍정적으로 전망한다. 세르비아는 미국과 브라질과 비교해 범실이 많다. 이 점이 한줄기 빛으로 다가온다.
가장 중요한 것은 범실을 최대한 줄이고 우리가 준비한 것을 100% 해내는 것이다. 우리가 전력을 기대 이상으로 발휘하면 세르비아는 분명 흔들릴 것이고 범실이 쏟아져 나올 것이다. 2차전에서 세르비아를 잡으면 남은 경기에서 상승세가 분명히 이어질 것이다.
미국과 세르비아전을 마치면 브라질과 맞붙는다. 최근 브라질의 전력이 다소 떨어졌다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러나 나는 브라질 역시 미국만큼 승수를 쌓기 힘든 팀이라고 생각한다. 브라질은 높이와 힘 여기에 세계 최고 수준의 스피드를 갖췄다. 센터들의 이동속공은 전광석화 같고 후위공격을 전위 속공처럼 구사한다. 블로킹의 움직임도 매우 빠르기 때문에 '쓰리 블로킹'으로 상대의 공격을 따라가는 모습이 자주 나타난다.
국내 리그를 보면 세 명의 블로커가 공격수를 쫓아가는 모습은 좀처럼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브라질을 비롯한 배구 강국들은 다르다. 블로킹 스텝이 워낙 좋기 때문에 우리가 같은 거리를 2걸음으로 도달할 때 그들은 한걸음 반으로 블로킹 위치에 도착한다.
미국과 브라질은 확실히 승수를 거두기 힘든 상대다. 8강에 진입하기 위해서는 세르비아를 무조건 잡은 뒤 터키와 중국전에 집중해야 한다.
터키와 중국의 공통점은 라이트 공격이 매우 강하다는 점이다. 이들의 공격을 막을 사이드 블로커의 임무가 막중하다. 김연경과 한송이(28, GS칼텍스)는 공격과 수비에서 좋은 활약을 펼쳐야 하지만 블로킹에서도 집중력을 쏟아야 한다. 우리 라이트 공격수들의 활약도 절실하다. 터키와 중국전에서는 황연주(26, 현대건설)와 김희진(20, IBK기업은행)이 많은 득점을 올려야 승산이 있다.
이렇듯 8강으로 가기위한 길은 가시밭길이다. 그러나 내가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이유는 선수들이 공동의 목표를 위해 똘똘 뭉쳤기 때문이다. 내가 선수로 몸담고 있을 때 소속팀(미도파)과 현대의 경쟁은 매우 치열했다. 이러한 라이벌 경쟁심은 고무적인 현상도 낳았지만 부작용도 초래했다.
미도파와 현대의 라이벌 경쟁심은 대표팀에서도 이어졌다. 보이지 않는 자존심싸움 때문에 좋은 기회를 놓친 적이 많았다. 그러나 현 대표팀은 이러한 점을 버리고 하나로 뭉쳤다. 내가 코트에 나서지 않아도 동료들이 잘해주면 된다는 믿음은 팀 사기를 위해 꼭 필요한 요소다.
힘든 과정 속에서 여기까지 온 후배들이 대견스럽다. 부디 원하던 결과를 이루고 금의환향하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사진 = 한국여자배구대표팀 (C) 엑스포츠뉴스DB]
조영준 기자 spacewalker@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