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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동전설(海東傳說)1(2) 최고영웅 허신의 고군분투

기사입력 2004.10.03 02:58 / 기사수정 2004.10.03 02:58

김종수 기자
[농구무협소설] 해동전설(海東傳說)1(2)



십 년 후 서울현…

말발굽소리가 요란한 가운데 무사들의 호위를 받으며 한 중년사내가 어디론가 서둘러 길을 재촉하고 있었다. 단정하게 틀어 올린 머리칼에 은색으로 빛나는 갑옷을 입은 모습이 한눈에 범상치 않은 인물이라는 것을 느끼게 해준다.

정일기.

전주현의 현령으로 공명정대한 관리로 명성이 높은 인물이다.

“워워…”

정일기가 말을 멈춰 세운 곳은 커다란 장원의 현문 앞이었다.

“아이구, 이제 오십니까?”

정일기를 발견하기 무섭게 짜리몽땅한 키에 뚱뚱한 체구를 한 오십대초반정도의 사내가 만면에 웃음을 띄우며 다가왔다. 정일기의 옆에 있던 호위무사들은 황급히 말에서 내려 사내에게 고개를 숙이며 예의를 표했다.

사내는 서울현의 현령인 강석주였다.

“이런, 아랫사람들을 시키실 요량이지, 서울현령님께서 직접 마중을 나오시다니요.”

고개를 숙이며 정일기가 말했다.

“아닙니다. 정말 오래간만에 전주현령님께서 오시는데 제가 직접 나와야지요.”

정일기를 향해 마주 고개를 숙여 보이며 강석주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자자…어서 들어가시지요. 일국(日國)과 우리 해동국의 친선 농구시합이 시작 된지 벌써 십여 분 이상이 지나갔습니다.”

정일기와 그 일행들은 강석주를 따라 장원안쪽의 큰 건물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 들어갔다. 경기를 보고있던 몇몇의 주요인사들과 인사를 나눈 정일기는 미리 준비된 의자에 엉덩이를 걸치고 앉아 진지한 표정으로 시선을 한쪽구석에 준비된 목판(木板)으로 향했다.

오십 삼대 오십, 현재 해동국은 일국에게 삼 점차로 지고있는 상황이었다.

(이…이런 빌어먹을…)

일국의 두 장신 토오야마(遠山)와 사카구치(坂口)의 합동수비에 시야를 완전히 점령당해버린 해동국의 전달수(傳達手) 신재성은 이맛살을 잔뜩 찡그리며 당혹스러운 심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비교적 만만하게 보았던 일국 선수들의 수비는 어느 때보다도 탄탄했고 그 바람에 해동국 선수들은 무거워진 몸으로 제대로 움직임을 펼쳐 보이지 못하고 있었다.

(뚫어야 되는 것이야? 아니면…?)

자칫 무리해서 동작을 펼치다보면 공을 뺏기거나 엉뚱한 곳으로 공이 날아갈 우려가 있었다. 그렇다고 이대로 있자니 시간경과로 공격 권을 고스란히 넘겨줄 위험성도 없지 않아 있었다.

“어이, 재성아. 이쪽이다!”

뒤쪽에서 들려오는 낯익은 음성에 신재성은 급히 손목을 뒤쪽으로 재꼈다.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주황색 고무공은 노장선수인 허신의 손을 향해 일직선으로 날아갔다.

개구리가 먹이감을 낚아채듯 날렵하게 공을 받은 허신은 이내 질풍 같은 속도로 내달려가더니 그물주머니를 향해 부웅하고 힘차게 몸을 솟구쳤다.

“어딜!”

경기 내내 허신을 따라다니던 일국의 전문수비수 코미야(小宮)가 안광을 번뜩이며 양손을 쫙 펴든 채 공중으로 힘차게 솟아올랐다.

“흥!”

그물주머니를 향해 그대로 돌진할 것 같았던 허신은 순간적으로 호흡을 멈추며 허공에서 한바퀴 빙글 돌았다. 이에 코미야는 주춤거리며 바닥으로 다시 내려올 수밖에 없었고 허신은 아무런 장애도 받지 않고 그물 주머니 안으로 공을 가볍게 올려놓았다.



덜컹!

오십 삼대 오십이, 해동국 쪽의 목판이 앞으로 한 칸 넘겨졌다.

(좋아. 지금부터다. 아무리 친선 경기라지만 일국에게 패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

하마터면 시간제한으로 공격권을 넘겨줄 수도 있었던 상황에서 선배인 허신의 멋진 기술로 공격을 성공시키자 신재성은 주먹을 불끈 쥐며 전의를 불태웠다.

일진일퇴(一進一退)를 반복하는 형국이었지만 두 나라가 만나면 세 번에 두 번은 해동국이 일국을 이겼다. 신재성의 목표는 선배들이 한번도 이루지 못한 중화국을 꺾는 것이었다. 그런 신재성이었거늘 일국에게 패한다는 것은 여간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비록 오늘 경기를 벌이고있는 일국이 예전과 다르게 상당히 향상된 전력으로 시종일관 압박을 해오고 있었지만 말이었다.



터텅!

일국의 하시모토(橋本)가 자신 있게 쏜 공이 그물주머니 바깥쪽의 나무판에 맞고 공중으로 튀어 올랐다. 튄 공을 잡기 위해 일국에서는 두 장신 토오야마와 사카구치가 해동국에서는 정창호와 조석곤이 경쟁하듯 힘차게 뛰어올랐다.공은 운 좋게 해동국 선수 쪽으로 왔고 정창호의 손가락 끝에 살짝 걸리며 그의 손으로 들어가는 듯 싶었다.

그러나 키만 클 뿐 비쩍 말라비틀어진 그를 비웃기라도 하듯 일국의 토오야마가 우람한 덩치를 거칠게 부딪혀갔고 이에 힘에서 밀린 정창호는 그만 공중에서 중심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크크크…”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사카구치가 둔한 듯 보이는 외모와 달리 날렵한 동작으로 공을 낚아챘다.

(뭐…뭐야? 자신 쪽으로 온 공도 제대로 잡아내지 못하다니…)

뒤쪽에서 지켜보고 있던 신재성의 얼굴이 불만스럽게 찡그려졌다. 적어도 신장이나 몸놀림에서 경쟁이 된다고 생각하던 정창호마저도 약점인 몸싸움을 견디지 못하고 밀려버리자 그만 울화가 왈칵 치밀어 오른 것이었다.

“후우…”

신재성은 이내 심호흡을 크게 해 보이며 일국의 전달수 다카하시(高橋由伸)를 향해 달려갔다. 잘 풀리지 않는 경기내용에 대해 불만이 많은 것은 사실이었지만 그렇다고 해동국 선수진 전체를 지휘하는 전달수인 자신이 마냥 흥분해 있을 수만은 없는 노릇이었다.

그나마 다카하시가 외곽능력이 그다지 썩 좋지 않은 것이 수비부담을 줄여주고 있었다. 이런 신재성의 마음을 잘 알고있다는 듯 선배인 허신이 또 한번 멋진 수비를 선보였다.

공을 잡고 내려오는 사카구치의 공을 뒤에서 툭 건드려 가로 채버린 것이었다. 이어 허신은 노련한 동작으로 시선은 딴 곳을 향한 채 왼손을 뒤로 쭉 뻗어 신재성의 오른손에 정확히 공을 전달해주었다.

(역시 허신 선배야. 내가 가장 믿을 수 있는 단 한사람.)

선배인 허신의 분발에 신재성은 다시금 기운이 샘솟는 기분을 느꼈다. 신재성은 오른손에 공이 잡히기 무섭게 제자리에서 한바퀴 빙글 돌며 시선의 반대편인 왼쪽으로 내던지듯 공을 뿌렸다. 공은 바닥을 가볍게 한번 퉁기며 정창호를 향해 신속히 전달되어갔다. 그러나 이게 웬일인가?

자신한테 공이 올 줄은 미처 몰랐다는 듯 정창호는 어정쩡한 동작으로 손을 내밀었고, 그 바람에 공은 정창호의 손등을 맞고 튀어 올라 상대편인 토오야마의 손으로 전달되고 말았다.

쉬이익-

공을 잡은 토오야마는 특유의 공격적인 기질을 뽐내기라도 하려는 듯 육중한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그물주머니를 향해 물찬 제비처럼 훌쩍 뛰어올랐다.

“허엇…”

당황한 정창호는 조금전의 실수를 만회하려는 급한 마음에 황급히 뒤쪽에서 따라들며 길다란 손을 힘껏 휘둘러 내렸다. 덩치에서는 토오야마에 많이 밀렸지만 적어도 신장이나 팔 길이 만큼은 정창호도 결코 못지 않았다.

짝!

그러나 이미 공은 토오야마의 손을 떠난 상태였고 손과 손이 부딪히는 소리만이 뒤늦게 허공 중에서 들려졌다. 공은 그물주머니를 감싼 둥근 철사를 빙글빙글 두세 바퀴 돌더니 그대로 안으로 쏙 들어가고 말았다.

삐익!

반칙을 알리는 판관(判官)의 뿔피리소리가 잠깐의 침묵을 깨고 장내로 울려 퍼졌다. 득점은 그대로 인정되는 가운데 토오야마에게 선 상태에서 일 구를 더 던질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순간적으로 벌어진 한순간의 상황은 해동국과 일국 선수들의 분위기를 단숨에 극과 극으로 만들어버리기에 충분하였다.

(아아…)

신재성과 허신, 그나마 해동국 선수들 중에서 분투하던 두 신인과 노장은 허탈감에 빠진 표정으로 공을 던지는 토오야마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김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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