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최종편집일 2024-11-27 12:51
자유주제

해동전설(海東傳說)1(1) 여섯번째 유성

기사입력 2004.10.01 04:01 / 기사수정 2004.10.01 04:01

김종수 기자
[농구무협소설] 해동전설(海東傳說)1(1) 여섯번째 유성


[이 작품은 수년전 농구잡지 '점프볼'에 우연히 아르바이트삼아 연재하던 글입니다. 정식으로 글을 배운적도 없고 그리 많이 써보지도 않은 저인지라 어딘가에 연재를 한다는 자체가 무모하고 건방질수 있으나 글을 써 활자로 나올수있다는 욕심에 겁도없이 일단 덤볐었습니다. 다시 읽어보니 얼굴이 화끈달아오르기도 하지만 한때의 좋은추억이라 생각하고 요즘들어 제가 가장 자주 접속하는 이곳에 원문을 연재하기로 합니다. 부족한것 투성이겠으나 올린 용기(?)를 생각해 따뜻한 눈으로 지켜들봐주세요^^;)






해동국(海東國)


대륙의 끝자락과 바다에 반반씩 걸쳐져 있는 반도국가로 그 크기는 작지만 지혜롭고 재주가 뛰어난 사람들이 많아 주변강대국들로부터 재인(才人)의 나라라 칭송 받고 있는 곳이다.

백호산(白虎山).

하늘에서 사악한 용들이 침략해왔을 때 하얀 호랑이들이 그들을 물리치고 나라의 정기를 지켰다는 전설이 살아 숨쉬는 곳으로 해동국 내에서도 가장 높고 험준한 산으로 알려져 있다.

휘이이잉…

백호산에는 유달리 겨울이 빨리 찾아온다. 밖으로 보면 이제 겨우 늦가을문턱임에도 불구하고 백호산은 일찍부터 눈발이 날리고 또 늦게 사그러든다.

사박사박.

나무도 땅도 바위도 사방천지가 눈으로 뒤덮인 눈길을 백발이 성성한 노승과 한 명의 동자승이 나란히 걷고있었다. 세차게 휘몰아쳐 오는 바람에 길다란 수염과 승포자락이 심하게 펄럭거림에도 노승은 무표정하게 걸음을 옮겨나가고 있었으나 헝겊으로 얼굴까지 둘둘 말은 모습의 동자승은 무척 힘겨운 듯 휘청휘청하는 걸음걸이가 왠지 불안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무…무등스님, 아…아직도 멀었습니까?”

어렵사리 걸음을 내딛어가며 볼멘 음성으로 동자승이 물었다.

“허허헛…조금만 참아라.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무등이라는 법호를 가진 노승이 자애로운 표정으로 너털웃음을 터트리며 대꾸했다. 긴 눈썹과 수염에는 눈이 엉겨붙어 고드름을 이룰 정도였으나 얼굴의 혈색만큼은 평소와 조금의 다름도 없어 보였다.
동자승은 가는 중간중간 계속해서 불평을 토로하고 있었지만 기특하게도 제자리에 주저앉고 그런 것은 없었다. 그저 입으로만 투덜거리면서 무등을 따라 거친 눈밭 길을 쉬임 없이 걸어갈 뿐이었다.

“자, 이제 다 왔구나.”

한참을 고생한 끝에 무등과 동자승은 백호산 정상까지 다다르게되었고 어느덧 주변은 어둑어둑 땅거미가 지기 시작했다.

무등은 백호산 중턱에 위치한 편액조차 걸리지 않은 작은 암자에서 수십 년 째 기거하고 있는 올해 구십 칠 세의 노승이었다. 세상살이의 오욕칠정(五慾七情)을 모두 버리고 그저 부처님을 모시고 세월을 보내고있을 뿐이었으나 며칠 전 쳐다본 밤하늘에서 그는 커다란 천기를 읽고 말았고 이에 눈길을 뚫고 무리를 해서 정상까지 오게 된 것이었다.

주변의 바위 중 하나에 무등은 눈을 지그시 감고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동자승은 무척이나 지친 모습으로 구석에 서서 미리 준비한 주먹밥을 쩝쩝거리고 있었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아소야.”

번쩍 눈을 뜨며 무등이 입을 열었다. 나직했으나 은은한 힘이 실려있는 그런 음성이었다.

“예…예, 옛?”

꾸벅꾸벅 졸고있던 동자승 아니 아소가 깜짝 놀라 화들짝 고개를 치켜들었다.

“허허… 이 녀석아, 이런 날씨에 잠이 들면 큰일난다.”

가벼운 웃음과 함께 무등이 아소를 돌아보았다. 그때였다.

쿠르르릉!

난데없이 밤하늘에서 천둥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져왔다. 이에 서로 마주보고있던 무등과 아소의 시선은 즉시 하늘 쪽으로 향했다.

“드디어 시작되려나 보구나.”

하늘을 바라보며 상기된 표정으로 무등이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예? 무슨 말씀이세요? 스님.”

의아한 얼굴로 아소가 물었다. 그러나 무등은 하늘 쪽에 신경을 잔뜩 집중하고 있는 듯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잠시 후 밤하늘은 언제 천둥소리가 들려왔냐는 듯 고요하기 그지없었다. 그럼에도 무등은 긴장된 표정을 풀지 않았고 이에 아소는 뚱한 표정으로 무등과 하늘 쪽을 번갈아 쳐다 볼 뿐이었다.

“지금부터 잘 지켜보거라. 아소야.”
“……?”

무등이 손가락을 들어올려 서쪽 하늘 쪽을 가리켰다. 그리고 얼마 후…

피이이잇-

무엇인가 하늘저편에서 번쩍거리는 듯 싶더니 발광체 하나가 밑으로 떨어져 내렸다. 다름 아닌 유성이었다.
유성은 그렇게 빠르지도 그렇다고 느리지도 않게 선연한 빛을 뿜어내며 반대편 산너머로 사라져갔다.

“우와! 스님이 이곳에 온 이유가 바로 저것 때문이었나요?”

유성이 사라져 간 쪽을 쳐다보며 아소가 감탄 성을 내뱉고 있을 찰나 또 하나의 유성이 연이어 떨어져 내렸다.

“또…또 있었잖아?”

신기한 마음에 아소는 넋을 놓고 하늘에 시선을 집중했다. 유성은 두 번째에 이어 세 번째, 네 번째 계속해서 이어졌고 다섯 번째 유성이 밤하늘너머로 점멸(漸滅)해가서야 모든 것이 그치고 하늘이 잠잠해졌다.

“보았느냐?”

그제서야 바위 위에서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무등이 아소에게 물었다.

“예, 스님. 그…그런데 겨우 저것을 보고자 그 눈보라를 맞으며 이곳까지 온 것입니까?”

아소의 입장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유성을 계속해서 다섯 개나 봤다는 것은 분명히 신기하고 기분 좋은 일이었다. 그러나 그 힘든 눈밭 길을 어렵게 헤쳐온 대가치고는 너무 약하다고 생각하는 아소였다.

“이 녀석, 겨우 유성 따위에 생고생을 한 것이 아깝나 보구나?”
“사…사실이 그렇잖아요. 아무런 말씀도 안 해 주시고 무조건 따라오라기에 전 오만가지 생각들을 다 속으로 했었단 말이에요.”
“헛헛…아소 이 녀석아, 너무 아깝게 생각하지 말아라. 너는 지금 우리 해동국 역사에 길이 남을 그런 가치 있는 광경을 본 몇 안 되는 사람 중의 하나일 테니까 말이야.”

투덜투덜 불만을 표하는 아소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무등이 빙긋이 웃음을 지어 보였다.

“해동국 역사에 길이 남을 그런 광경요?”

무등의 한마디는 아소의 얼굴을 의아함으로 가득 차게 하기에 충분했다.

“너는 우리 해동국이 농구로서 대륙의 중화국(中和國)이나 바다건너 양국(洋國), 아불국(亞不國)등을 이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느냐?”
“예? 갑자기 무슨 말씀이세요?”
“묻는 말에 대답이나 해보거라.”
“에이…스님도 참, 말이 되는 소리를 하셔야지요. 우리 해동국이 농구로서 어떻게 중화국을 이겨요. 우리는 그들을 한번도 이긴 적이 없었잖아요. 더군다나 양국과 아불국은 중화국보다도 더 강한 나라들인데…”

말도 안 된다는 표정으로 아소가 대꾸했다. 아소 역시 비록 암자에서 동자승으로 있기는 하지만 해동국 아니 천하에서 가장 인기가 좋은 농구를 무척이나 좋아했다. 때문에 해동국이 농구를 잘하기를 바라는 마음은 어느 누구 못지 않았지만 적어도 현실은 현실인지라 무등의 질문이 비현실적으로만 느껴졌던 것이었다.

“왜 우리는 농구로서 그들을 이기지 못하는 것일까? 아소가 한번 대답해주렴.”  “스…스님도, 그…그거야, 저희 해동국은 나라도 작고 농구의 역사도 짧고 잘하는 사람도 적으니…”
“허허헛…이제 보니 우리 아소가 농구에 대해 상당히 관심이 많은가보구나?”
“당연하지요. 농구 싫어하는 사람이 누가 있어요.”
“그렇지. 각 국가간에 전쟁을 자제하기로 서로 협약을 맺은 다음부터 농구는 국력이나 국가의 자존심을 좌지우지하는 그런 존재가 되었으니까 말이야. 나이가 많든 적든, 무슨 일을 하고있던지 간에 해동국의 백성으로서 농구에 관심이 없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겠지.”

고개를 끄덕거리며 무등이 중얼거리듯 말했다.

“그런데 스님 갑자기 웬 농구 이야기 세요?”

무등은 평소에 농구 이야기를 잘 하지 않았다. 가끔 암자에서 무료에 지친 아소가 농구에 대해 신나게 재잘거릴 때면 웃음을 머금은 얼굴로 들어주는 것이 전부였다. 그런 무등이 산 정상까지 와서 새삼스레 농구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아소로서는 이상스럽게 느껴지는 것이었다.

“이 녀석아, 난 농구 이야기하면 안 되느냐?”
“그…그런 것은 아니지만요.”
“이래봬도 나 역시 한때는 농구선수였었다고.”
“예? 스님, 정말이세요?”
“이 녀석 봐라. 그럼 이 스님이 거짓을 이야기하겠느냐?”
“어디 소속이셨어요? 전주호랑이, 광주청룡, 부산고래, 대전독수리…?”

농구에 대한 이야기가 깊어지자 아소는 호기심이 가득한 눈으로 눈빛을 연신 반짝거렸다.

“허헛…그렇게 거창하게 선수생활은 하지 못했다. 그냥 출가를 하기 전에 각 현에서 여는 잔치 등에서 가끔 뛰는 정도였지.”
“에이…난 또 뭐라고, 난 정말 농구선수 하신 줄 알고 놀랐잖아요.”
“이 녀석, 꼭 그렇게 해야만 선수냐? 농구를 좋아하고 비슷한 사람들이랑 시합을 하고 그러면 선수지.”
“치치칫…”
“이것 이야기가 자꾸 엉뚱한 쪽으로 새는 것 같구나. 내가 처음에 뭐라고 질문을 했었지?”
“우리 해동국이 주변의 강대국들을 농구로서 이길 수 있겠느냐고 물으셨었잖아요.”
“그랬지.”

크게 고개를 끄덕거려 보이며 유성이 사라져간 쪽으로 시선을 돌리는 무등의 입가에서는 웃음기가 떠날 줄 몰랐다.

“스님, 기분이 좋으신가봐요?”
“허허헛…그래 보이느냐?”
“예. 스님.”
“기분이 안 좋을 리가 있겠느냐? 이제 머잖아 이십 여 년 후에는 우리 해동국이 천하의 내로라하는 농구강국들을 차례로 꺾을 것인데 말이야.”
“옛…?”
“며칠 전 천기를 읽었었다. 조금 전 네 녀석이 본 것들이 그냥 보통의 유성들인 줄 아느냐? 다섯 개의 유성은 강한 의지와 뛰어난 실력을 타고난 농구영웅들의 탄생을 예고한 것이야. 이제 그들이 약관의 나이에 접어들 때쯤 우리 해동국은 전례에 없었던 최고의 농구 중흥기를 맞게될 것이다.”
“……”

아소는 입을 쩍 벌린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하였다. 무등의 말이 도대체가 실감이 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허허허헛…믿어지지가 않나 보구나? 하지만 지켜보아라. 세월이 흐르면 모든 것이 증명이 될 터이니, 자 이제 그만 내려가자꾸나.”

아소의 등을 가볍게 툭툭 두드리며 무등이 앞장서 아래쪽으로 걸어나갔다. 그때였다.

“스…스님!”

깜짝 놀란 듯한 아소의 음성이 들려옴에 무등이 의아한 눈길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다음 순간 무등은 딱딱하게 상기된 얼굴로 두 눈을 부릅떴다.

유성…

또 하나의 유성이 밤하늘에서 반짝거리며 밑으로 떨어져 내렸기 때문이었다. 먼저 떨어진 다섯 개의 유성과 비교해 뒤늦은 한 개의 유성은 왠지 빛이 약해 보였다. 유성은 희미한 빛을 내며 반대편 산너머로 느릿느릿 사라져가고 있었다.

“어떻게 된 일이지요? 스님. 저것은 또 무엇을 뜻하는 것이에요?”

아소가 궁금한 듯 눈을 깜빡이며 물음을 던져왔지만 무등은 멍한 얼굴로 밤하늘만 응시할 뿐이었다.

(아미타불…여섯 번째 유성이라니, 이것은 또 무슨 조화란 말인가? 천기는 분명히 다섯 영웅의 탄생을 예고할 뿐이었거늘…)

무등의 노안(老顔)에 그려진 주름살이 알 수 없는 수심으로 깊이 찌푸려지고 있었다.


<계속>


김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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