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07.07.19 20:13 / 기사수정 2007.07.19 20:13
[엑스포츠뉴스 = 박형진 기자]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조별예선이었지만 어쨌든 이겼다. 그리고 운도 따랐다. 그러나 우리에겐 본선 8강 토너먼트라는 더 중요한 관문이 남았다.
그 누구도 한국 대표팀이 아시안컵 조별예선에서 제 기량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한국은 사우디 아라비아와의 중요한 일전에서 수비 실수 하나로 승리를 놓쳤고, 월드컵 멤버가 주축이 된 바레인전에서는 상대 역습 두 방에 역전패를 당하고 말았다. 마지막 인도네시아전은 1-0으로 승리하긴 했지만, 경기 내용 면에서 아쉬운 점을 여전히 노출한 경기였다.
수비 불안, 결정력 부족···. 한국 축구를 따라다니는 망령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숙제로 남아있다. 그러나 우리는 극적으로 기회를 잡았으며, 당초 목표로 잡았던 '아시안컵 우승'의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있다. 우리는 이 시점에서, 2006 독일 월드컵에서 한국과 같은 G조 프랑스의 선례를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조별예선에선 '종이 호랑이', 본선 올라가자 '절정의 고수'
한국과 함께 월드컵 본선 G조에 속한 프랑스는 스위스, 한국, 토고와 한 조에 속하면서 쉽게 16강에 진출할 것으로 예상되었다. 그러나 프랑스는 조별예선 첫 경기인 스위스와의 경기에서 0-0 무승부를 거두면서 불안한 출발을 보였다. 튀랑, 마케렐레, 지단 등 노장 선수들에 프리미어리그의 '킹' 앙리까지 출전했지만 이들은 단 한 골도 만들지 못하며 답답한 모습을 보였다.
프랑스는 한국과의 경기에서도 수비 집중력 저하로 박지성에게 한 골을 헌납하며 승리를 거두는 데 실패했다. 선수 개개인의 기량 차가 현저한 팀과의 경기에서 잇따른 무승부를 거두며 승점 2점을 확보하는데 그친 프랑스는 스위스(4점), 한국(4점)에 밀리며 조 3위로 16강행이 좌절될 위기에 몰렸다.
그러나 행운은 프랑스의 편이었다. 프랑스는 토고와의 경기에서 다득점으로 승리한 후 스위스와 한국의 경기 결과를 지켜봐야 하는 상황이었다. 만약 한국과 스위스가 무승부를 거둔다면 프랑스는 골득실차까지 따져야했다. 그러나 프랑스는 G조 최약체 토고를 상대로 2골을 뽑아내며 승리를 거두었고, 마침 한국이 스위스에 0-2로 패배하며 16강행 티켓을 거머쥐었다.
프랑스가 16강행을 결정짓기는 했지만, 이때까지도 프랑스의 결승 진출을 낙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프랑스는 조별예선 3경기에서 비교적 약체로 평가되는 팀들을 상대로 무기력한 모습을 보여주었던 것이다. 게다가 16강 상대는 유럽의 강호 스페인. 여러 언론은 프랑스의 부진을 여러모로 분석하며 그들의 패배를 기대하는 눈치였다.
그러나 본선 토너먼트에 오른 프랑스는 '달랐다'. 조별예선에서 위기를 겪으며 프랑스 선수들은 정신을 집중해 경기에 임하기 시작했고, 어느 때보다 탄탄한 단결심으로 뭉쳤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지네딘 지단이 있었다. 은퇴를 앞둔 '레전드'의 투혼은 젊은 선수들의 혼을 일깨웠고, 이제까지 삐걱대던 조직력도 살아나기 시작했다. 스페인, 브라질, 포르투갈 등 강팀들을 상대로 단 1실점에 그친 프랑스의 수비는 이를 입증해준다. 결국, 유명한 지단의 '박치기 사건'으로 프랑스는 우승컵을 들지는 못했지만, 프랑스 축구의 매서움을 알려주며 2006 월드컵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한국이 지금 필요한 것? 정신력과 '영웅'
한국의 현재 상황은 지난 월드컵 프랑스의 상황과 유사하다. 한국은 훌륭한 선수들을 보유하고도 조별예선 3경기 내내 고전을 면치 못했다. 특유의 조직력은 살아나지 않은 채 단조로운 전술로 일관했으며, 일부 선수들은 감독의 전술에 불만을 표하며 팀 분위기를 해치기도 했다. 사우디가 바레인을 대파하며 조별예선 통과에는 성공했지만, 한국의 경기력과 우승 가능성에 대해 회의적인 전문가들이 더 많은 상황이다.
한국 선수들은 조별예선을 통해 한국이 쉽게 이길 수 있는 팀이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것이다. 그만큼 세계축구는 평준화의 추세를 걷고 있으며, 이는 아시아도 예외가 아니다. 그만큼 최선을 다해 실점을 막고 득점에 성공하지 못한다면, 아시안컵 우승은 너무나 먼 얘기가 될 것이다.
정신력이란 그냥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며, 구심점이 필요하다. 아쉽게도 현재 한국은 그러한 구심점 역할을 할 선수를 찾기 힘들다. 2002년 월드컵 때에는 홍명보라는 카리스마적인 인물이 있었기에 체력적인 열세에도 4강 신화를 달성할 수 있었다. 그러나 현재 한국 대표팀에는 2002년 월드컵을 경험한 선수도 드물고, 그들 중 현재 주전을 확보한 선수는 이운재와 이천수뿐이다.
이운재가 주장 완장을 차고 있지만, 골키퍼라는 포지션의 특성상 선수들을 다잡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그렇다면, 한국을 이끄는 구심점이자 '영웅'의 역할은 이천수가 맡아야 한다. 이천수는 해외파 선수들과의 경쟁에서도 밀리지 않고 대표팀 내 자신의 입지를 굳혔으며, 그 어느 선수보다 대표팀을 위해 열성적으로 뛰었던 선수이기도 하다. 이번 아시안컵에서도 가장 두드러진 활약을 보이며 기적의 8강행을 이끈 선수 역시 이천수이다.
81년생인 이천수는 한국 나이로 벌써 27세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가 보여주었던 악동의 기질만을 기억한다. 그는 월드컵을 두 차례 경험하였고, 스페인에서 최고 수준의 축구를 경험하기도 했다. K리그로 돌아와서는 최고의 기량을 선보이며 소속팀을 우승시키는 데 기여하기도 했다. 현재 한국의 필드 플레이어 중에서 그보다 경험이 풍부한 선수를 찾기란 힘들다.
이천수의 열정, 자신을 버리고 팀을 위해 뛰는 모습은 경험이 부족한 후배들의 귀감이 되기 충분하다. 베어벡 감독이 뽑은 젊은 선수들은 분명 가능성과 잠재력을 가진 선수들이다. 선배의 좋은 모습을 보고 한마음이 된다면, 마치 프랑스가 그랬던 것처럼 한국은 본선 토너먼트에서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을 것이며, 축구 때문에 가슴 졸였던 국민을 기쁘게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경질 위기에 몰렸던 베어벡 감독도 프랑스의 도미네크 감독처럼 '금의환향'할 수 있을지도 모르며, '영웅' 이천수도 본인이 원하는 '잉글랜드 드림'을 이룰 수 있을지 모른다.
'우리들의 행복한 여름'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사진 : 한국축구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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