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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운 판정패' 임애지 "이길 거라 생각…어쩔 수 없다, 60점짜리 경기" [2024 파리]

기사입력 2024.08.05 07:55 / 기사수정 2024.08.05 08:22



(엑스포츠뉴스 김현기 기자) "내가 이길 거라 생각했는데…"

잘 싸운 것을 생각하면 쉽게 받아들이지 못할 결과였다. 임애지도 아쉬움을 감추지 않았다.

한국 복싱에 12년 만의 올림픽 메달을 선사한 임애지(25·화순군청)가 동메달로 대회를 마감했다. 여지 복싱으로 한정하면 값진 동메달이었지만 준결승에서 분전한 터라 메달 색깔을 바꾸지 못한 것을 쉽게 이해한 것도 아니었다.

임애지는 4일(한국시간) 프랑스 파리의 노스 파리 아레나에서 열린 2024 파리 올림픽 복싱 여자 54㎏급 준결승전에서 하티세 아크바시(튀르키예)에게 2-3(28-29 27-30 29-28 27-30 29-28)으로 판정패했다.

이날 부심 5명 중 2명은 임애지가 승리하는 것으로 채점했으나 3명은 아크바시 승리로 마음이 기울었다. 준결승에 진출, 한국 복싱 여자 선수 최초의 올림픽 메달을 확보했던 임애지는 결승 무대까지 밟지는 못하고 대회를 마감했다.

임애지의 동메달은 2012 런던 대회 한순철(남자 60kg급) 은메달 이후 한국 복싱에는 12년 만의 올림픽 메달이다.

복싱은 20세기에 한국에서 국민적 스포츠였다. 그 만큼 인기가 있었고 많은 메달을 따냈다. 1956 멜버른 대회에서 한국의 올림픽 사상 첫 은메달을 따낸 종목이 바로 송순천이 분전한 복싱이었다. 당시 동독 선수를 맞아 우세한 경기를 보였고 관중도 코리아를 외쳤는데 막상 판정에선 송순천이 밀렸다.



이어 1984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에서 신준섭이 첫 금메달을 따냈고, 1988 서울 올림픽에선 김광선, 박시헌 등 두 명의 금메달리스트가 나왔다. 같은 대회에선 91kg급(헤비급) 백현만이 은메달을 따내기도 했다.

이후부터 한국은 금메달을 따내지 못했고, 1992 바르셀로나 대회 홍성식, 1996 애틀랜타 올림픽 이승배, 2004 아테네 올림픽 조석환, 김정주, 2008 베이징 올림픽 김정주(이상 동메달) 등이 명맥을 이어오다가 2012 런던 대회 남자 라이트급 한순철의 은메달 이후 메달이 끊겼다. 2016 리우데자네이루, 2020 도쿄(코로나19 팬데믹 여파로 2021년 개최)에서는 포디움에 오른 선수가 없었다. 

그리고 임애지가 여성 복서로 12년 만에 메달을 목에 건 것이다. 특히 가장 마지막에 한국에 올림픽 메달을 안겨 준 한순철이 이번엔 코치로 나서 더욱 뜻이 깊었다. 한 코치는 경임애지의 3~4위전 직후 "내가 메달 땄을 때보다 더욱 기뻤다"며 웃었다.

다만 임애지는 메달이 목표는 아니었다. 내심 금메달을 노리고 링에 들어갔는데 판정 결과를 놓고 보면 정말 아쉽게 패했다. 0-5 같은 일방적인 판정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파리 올림픽에선 복싱 결승전의 경우 파리 오픈 테니스가 열리는 롤랑 가로스로 이동해 실외에서 열린다. 임애지가 롤랑 가로스를 밟는 것은 무산됐고 8일 시상식을 통해 잠깐 오를 예정이다.



이날 임애지가 상대한 아크바시는 2022년 국제복싱협회(IBA) 이스탄불 세계선수권대회 우승자로 세계 챔피언이다.

한편으론 과거 스파링으로 붙어본 사이였기 때문에 자신감도 있었고 승부욕도 불태웠다. 그는 패배 직후 당시를 떠올리며 "그 선수와 스파링할 때마다 울었다. 맞아서 멍도 들고, 상처도 났다. 그래서 코치 선생님께 '쟤랑 하기 싫다'고 말했던 게 기억난다"면서 "그래도 이번 경기를 앞두고는 '내가 경기에서 이긴다'고 자신했다. 비록 졌지만, 다시 붙어보고 싶다"고 전의를 불태웠다.

거리를 유지하고 멀리서 긴 팔을 이용해 상대를 견제하는 방식으로 경기를 풀어가는 선수끼리 만난 만큼, 1라운드는 불꽃이 튀지 않았다. 신장 172cm 아크바시가 멀리서 주먹을 뻗고, 7cm가 작은 임애지는 아웃복싱 대신 상대 품으로 파고드는 전략을 택했다.

1라운드는 2-3으로 임애지가 조금 뒤처진 것으로 점수가 나왔다. 2라운드에도 아크바시는 가드를 내린 채 임애지가 덤비길 기다렸다. 임애지는 아크바시의 긴 리치를 극복하지 못하고 2라운드에서 오히려 1-4로 밀렸다.

다만 최종 3라운드에선 임애지가 분전했고 수세에 급급한 아크바시를 상대로 공세를 이어갔다. 임애지는 3라운드에서 선전했지만, 결국 판정에서 뒤집지 못했다. 스리랑카와 캐나다 심판은 임애지가 이겼다고 판정했으나 인도, 헝가리, 에스토니아 심판은 아크바시가 승리했다고 봤다.

임애지는 판정에 대해선 수긍하면서도 아쉬움을 감추지 않았다.



그는 "판정은 어쩔 수 없다. 내가 깔끔하게 하지 못한 것"이라며 "원래 적극적으로 안 하는 게 전략이었는데, 1라운드 판정이 밀려서 적극적으로 들어갔다"고 밝혔다.

이어 "100점 만점에 60점짜리 경기다. 내가 이길 거라 생각했는데 결과가 아쉽다. 그래도 후회하지는 않는다. 부족한 부분을 채워서 다음에는 그 선수가 '애지랑 만나기 싫다'는 생각이 들도록 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복싱은 판정 문제가 항상 불거져 논란이 되곤 했다. 채점 방식도 과거 채점제로 하다가 타격에 1점 혹은 2점을 주는 포인트제로 바뀌었는데, 이게 복싱의 재미를 반감시키고 포인트 위주 복서를 만든다는 논란이 나오면서 다시 채점제로 돌아섰다. 그러나 심판의 주관적인 개입이 들어가다보니 석연 찮은 판정 시비가 다시 나오는 것도 현실이다.

임애지는 관중이 많다보니 올림픽 무대에서 더욱 신이 나 경기할 수 있었다는 소감도 전했다. 그는 "여기는 사람이 많아서 정말 재미있더라. 여기서 두 번이나 이겨서 짜릿했다. 오늘처럼 관중들이 내 이름을 불러주니까 짜릿했고, 살면서 언제 이렇게 응원받을 수 있나 싶더라"며 "한국은 그런 환경이 없다. 실전에서 더 힘을 내는 스타일인데, 한국 가면 혼자 있더라도 많은 사람이 보고 있다는 생각으로 해야겠다"고 했다. 한국 복싱의 아쉬운 현실까지 함께 지적한 셈이다.

그리고는 4년 뒤 로스앤젤레스(LA) 올림픽에 다시 도전할 것을 기약했다. 그는 "훈련하다 보면 4년이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지 않을까 싶다. 사실 올림픽만 무대가 아니다. 작은 대회부터 우리 선수들은 열심히 한다.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 외에도 많은 대회가 있다는 걸 알아주셨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그러면서 전국체전에 체급이 신설되는 것을 바랐다. 현재 전국체전에서 여자 복싱은 51㎏급과 60㎏급, 75㎏급까지 셋뿐이다. 임애지는 60㎏로 체중을 늘려서 전국체전에 출전하는 터라 매번 오연지(33·울산광역시체육회)에게 밀린다.

임애지는 "중간 체급이 생긴다는 이야기가 계속 나왔는데 아직도 안 생겼다. 체급이 안 맞을 때는 내 정체성이 흔들리는 것 같아서 정말 힘들다. 어서 내 체급이 생겨서 그 대회에 출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임애지는 앞서 지난 1일 8강전에서 예니 마르셀라 아리아스 카스타네다(콜롬비아)에게 3-2 판정승을 거둬 준결승에 진출하고 메달 확보에 성공했다. 

한편, 임애지를 지도한 한순철 코치는 "애지가 (8강전 승리로) 딱 동메달을 확정하는 순간, 제가 메달 딸 때보다 더 기쁘더라"며 "사실 금메달 가보자고 이야기했는데, 아쉬움은 남는다. 애지는 이번에 메달 따서 정말 축하하고, (32강에서 떨어진) 오연지 선수는 아쉬움이 너무 크다. 다음에 더 노력해서 좋은 모습 보여드리겠다"고 말했다.

임애지 이전에 가장 최근 올림픽 메달을 2012년 런던 대회에서 딴 한 코치는 한국 여자 복싱 선수에게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2019년부터 한국 여자 복싱 선수를 맡은 한 코치는 임애지에게 "난 실패한 선수니까 나처럼 되지 말라"고 말했다. 올림픽 메달을 땄지만 은메달이 아닌 금메달을 노리는 선수가 되어달라는 의미에서다.

비록 금메달 꿈은 파리에서 이루지 못했지만 한국 복싱의 큰 획을 그으면서 4년 뒤엔 메달을 하나가 아닌 여러 개 거머쥘 수 있다는 희망을 안게 됐다.

한국 복싱은 이번 파리 올림픽에서 남자 선수 없이 여자 선수만 둘을 보내 임애지가 메달을 따내는 성과를 얻었다. 그러나 4년 뒤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에선 남자 선수를 파견해야 하는 과제를 떠안게 됐다. 한국 남자 복싱이 선수를 파견하지 못한 것은 이번 대회 뿐만이 아니다. 도쿄 올림픽에서도 아시아 예선 등을 통과하지 못해 남자 선수가 없었다.





사진=연합뉴스

김현기 기자 spitfire@xport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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