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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토에서 날아온 우승청부사 '판도 뒤집기'

기사입력 2006.05.14 02:13 / 기사수정 2006.05.14 02:13

윤욱재 기자
 
[프로야구 25년 특별기획 - 나의 몬스터시즌 26] 코리안드림 ② 
 
날카로운 타격과 묵직한 파워 그리고 빠른 발 - 데이비스

외국인선수 제도 도입(1998년) 이후 외국인선수들의 활약이 판도에 변화를 줄 수 있는 새로운 변수로 떠오르자 각 구단들은 제대로 된 선수 찾기에 여념이 없었다. 이번 트라이아웃에선 여러 유형의 선수들이 참가해 구단들의 아킬레스건을 치유해줄 해결사가 누가될지 관심을 모았다.

그 중 가장 관심을 모은 펠릭스 호세는 전체 1순위로 롯데 유니폼을 입었고 댄 로마이어는 전체 2순위로 한화에 지명되면서 장종훈 외에 이렇다할 거포가 없던 한화의 고민을 해결할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한화는 2라운드에서 제이 데이비스를 추가로 지명해 빠른 발과 재치 있는 주루 센스가 돋보인 그에게 톱타자를 맡길 계획이었다.

사실 한화는 삼성과의 트레이드로 톱타자감인 최익성을 영입해 상황에 따라 다양하게 기용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에 따라 외야 자원이 넘쳐나게 된 한화는 강석천을 3루로 복귀시켜 내외야 모두 강화했다.

한화는 2년 연속 7위로 내려앉은 끝에 결국 강병철 감독을 해임하고 이희수 감독 대행을 정식 감독으로 선임했고 트레이드와 외국인선수 선발 등 여러 부분에 걸쳐 심혈을 기울이면서 99시즌을 야심 차게 준비했다.

시즌 초반 톱타자로 기용된 데이비스는 의욕이 너무 앞선 나머지 출루율이 급격히 떨어지는 바람에 이희수 감독의 고민만 늘어나게 했다. 다행히 이영우가 자신의 선구안 능력을 바탕으로 톱타자 자리에 안착한 덕분에 데이비스도 자연스레 중심타선에서 새롭게 출발할 수 있었다.

데이비스가 중심타선에 포진하자 타선의 위력은 이루 말할 수 없이 강해졌다. 출루에만 신경 쓰지 않고 자기 마음껏 스윙할 수 있는 중심타선은 데이비스와 찰떡궁합을 이뤘다. 데이비스가 3번타자로 중심을 잡자 거포 스타일의 로마이어와 장종훈도 덩달아 폭발해 한화는 매직리그 2위로 치고 오를 수 있었다. 특히 데이비스는 타격 슬럼프 없이 꾸준한 타격을 보여 코칭스태프에 믿음을 심어줬다.

물론 정민철, 송진우, 이상목으로 이어지는 선발 트리오와 마무리 구대성의 위력도 대단했지만 날이 갈수록 힘이 솟는 타선의 힘 또한 대단했다. 이런 한화의 상승세는 전반기 막판 LG를 따돌리고 매직리그 2위를 차지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데이비스는 공-수-주 3박자를 모두 갖췄다는 평가를 받았다. 파워는 물론 정교함을 지니고 있고 중견수로서 흠잡을 데 없는 수비력은 팀 전력 상승에 도움을 줬다. 여기에 빠른 발과 주루 센스는 상대를 곤란에 빠뜨렸다.

한편 데이비스는 외국인선수 최초로 30-30 클럽 가입에 도전하고 있었다. 8월 10일 이미 역대 외국인선수 최초로 20-20 클럽에 가입한 데이비스는 이병규(LG)와 홍현우(해태)의 뒤를 이어 30-30 클럽 가입에 성공했다. 홀가분하게 배팅에 전념했던 데이비스는 10월 3일 홈런 두 방을 몰아치며 가까스로 기록을 만들어냈다.

한화는 매직리그 2위를 수성하며 포스트시즌에 진출했다. 상대는 크로스 토너먼트에 따라 드림리그 1위 두산으로 결정됐다. 잠실에서 열린 1차전에서 5-4로 근소하게 앞서가던 한화는 9회초 진필중을 상대로 데이비스가 쐐기를 박는 솔로홈런을 터뜨렸고 뒤이어 로마이어가 백투백홈런으로 승부를 결정지었다. 이 승리를 바탕으로 한화는 2차전은 물론 대전에서 펼쳐진 3, 4차전 모두 이겨 한국시리즈 진출에 성공했다.

한국시리즈 상대는 삼성과 명승부를 펼치며 어렵게 올라온 롯데였다. 사직에서 펼쳐진 1, 2차전을 모두 승리로 장식한 한화는 3차전 연장 승부 끝에 승리를 내줬지만 4차전에서 데이비스가 0-1로 뒤지는 상황에서 6회 좌월 2루타로 동점을 이루며 역전 기회를 제공한 덕분에 한국시리즈 3승째를 챙길 수 있었다.

데이비스는 3차전까지 12타수 1안타로 극심한 부진에 시달렸고 본인도 슬럼프를 인정할 만큼 타격감이 떨어져 있었지만 4차전 결정적인 순간에 적시타를 터뜨려 팬들의 환호를 이끌어냈다.

잠실로 옮겨 치른 5차전에서 2-3으로 뒤지고 있던 한화는 9회초 이번에도 데이비스가 우전안타로 포문을 열며 기회를 살렸고 뒤이어 로마이어가 우중월 3루타로 동점, 장종훈의 희생플라이로 역전해 우승 고지를 밟게 되었다.

창단 14년 만에 첫 우승. 그 감격은 더했다. 빙그레 시절이던 88년, 89년, 91년, 92년 한국시리즈에 진출해 모두 고배를 마신 한화는 짜릿한 '4전 5기' 신화를 이뤄내며 쌓이고 쌓인 한을 모두 풀어버릴 수 있었다.

고개 숙이고 환골탈태 - 브룸바

2003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한 현대는 클리프 브룸바와 재계약 했다. 그만큼 현대는 그의 타격 능력에 확신을 하고 있었다. 브룸바는 그동안 스코트 쿨바 이후 외국인 타자의 덕을 보지 못한 현대에 새 바람을 불어 넣으며 타선에 큰 힘이 되었다.

사실 브룸바도 한국에 와서 순탄하게 출발한 것은 아니었다. 브룸바는 변화구 위주로 승부하는 한국에서 매우 고전했다. 특히 몸쪽으로 들어오는 공을 잘 쳐내지 못했다. 브룸바는 김용달 타격 코치에게 작은 것부터 하나하나 배워 나갔고 하체를 이용하기 시작하면서 매서운 배팅 감각을 키울 수 있었다. 브룸바는 지금도 김 코치의 가르침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다.

2003시즌 후반기부터 딴 사람이 되어있던 브룸바는 국내 무대에 완벽하게 적응한 상태였다. 홈런 돌풍을 일으킨 심정수와 한화에서 트레이드로 영입한 송지만과 중심타선을 이룰 것으로 기대됐다.

2004시즌이 개막하자 오히려 홈런 열풍을 주도한 주인공은 박경완(SK)이었다. 4월에만 홈런 11개를 기록하며 월간 홈런 신기록을 작성한 박경완의 타격감각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그러나 그 뒤엔 브룸바가 있었다. 브룸바는 다소 발동이 늦게 걸렸지만 한번 걸린 시동은 누구도 막기 어려웠다.

이제 한국 투수들의 변화구 패턴을 모두 숙지하고 있던 브룸바는 기회에 유난히 강한 면모를 보여 기대에 못 미친 심정수, 송지만의 부진을 만회했다. 박경완과 홈런왕 경쟁을 하던 브룸바는 어느새 타율과 타점까지 1위를 달리게 됐다.

하지만 최고 타자의 화려한 등장과 다르게 주위의 관심은 그리 달아오르지 않았다. 비인기구단으로 전락한 현대 선수인 것도 그렇지만 외국인선수인 탓도 있었다. 브룸바는 올스타 득표에서도 최하위권을 기록할 정도로 주목을 받지 못했다. 사실 투표에 나온 외야수 11명 중 10위를 차지한 것이지만 11위를 기록한 임재철이 한화에서 두산으로 트레이드된 상태라 꼴찌나 다름없었다. 결국 겨우겨우 감독 추천으로 명단에 올랐다.

올스타전에서 펼쳐진 홈런 레이스에서도 예선 1위로 통과했지만 고배를 마셔야했던 브룸바는 모든 아쉬움을 접고 다시 그라운드에 나섰고 현대는 브룸바의 활화산 타격으로 다시 한번 정상을 지킬 수 있었다.

끝까지 알 수 없었던 개인 타이틀 경쟁에서 브룸바는 결국 눈물을 흘려야했다. 홈런은 하나 차이로 박경완에게 내줬고 타점에선 이호준(SK)에게 밀렸다. 타격 부문에서도 이진영(SK)에게 밀고 당기는 싸움을 계속하다 1리 차이로 어렵게 타이틀을 얻을 정도였다. SK 3인방에게 호되게 당하고 만 것이다.

이 때문에 타격 3관왕의 꿈은 아쉽게 접어야했고 이것은 정규 시즌 MVP로 선정되지 못하는 결정적 사유가 되었다.

한편 현대는 2003시즌 팀의 우승을 이끌었던 심정수의 부상, 정민태의 부진으로 흔들릴 법도 했으나 브룸바의 넘치는 파워배팅과 불펜투수들의 활약, 신인 오재영의 등장으로 정상 재등극에 성공했다. 그런 면에서 2년 연속 한국시리즈 직행은 여러모로 의미가 있었다.

플레이오프에서 두산을 꺾고 한국시리즈에 올라온 삼성과 일전을 치르게 된 현대는 3루수 정성훈이 병역비리에 연루돼 큰 구멍이 생기자 브룸바를 3루수로 기용하는 모험을 강행했다. 어마어마한 덩치는 물론이거니와 한 시즌 동안 외야수로 줄곧 뛰었던 브룸바가 핫 코너를 책임진다는 자체가 위험한 발상이었다.

수원에서 개막된 한국시리즈 1차전. 그런데 오히려 삼성이 의식적으로 브룸바에게 타구를 보내려다 실패를 거듭하고 말았다. 현대 선발투수 마이크 피어리는 절묘한 코너워크로 브룸바에게 타구가 가지 않게 부단히 노력했고 브룸바는 귀중한 선취점을 얻는 솔로홈런을 터뜨리며 화답했다.

2차전에서도 브룸바는 솔로홈런을 터뜨리며 고군분투했지만 아쉽게도 시간제한에 무승부로 끝나고 말았다. 평소 이 규정에 불만을 갖고 있던 브룸바는 4차전에서도 무승부가 나오자 드러내놓고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브룸바는 3차전부터 부진을 거듭했다. 상대 투수들의 집중 견제를 받은 탓이었다. 그래도 한 가지 다행인 것은 브룸바가 견제를 받은 덕분(?)에 심정수가 결정적인 홈런을 터뜨렸다는 것이다. 물고 물리는 명승부는 결국 9차전에 가서야 갈리게 되었다.

비록 한국시리즈에선 부진했지만 브룸바가 없었다면 정규시즌 우승에 턱도 없던 현대였다. 브룸바는 김용달 타격코치의 가르침에 배우려는 자세로 진지하게 다가갔고 덕분에 한국에서 큰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

제이 데이비스 (1999) → 30홈런 106타점 35도루 타율 0.328
클리프 브룸바 (2004) → 33홈런 105타점 타율 0.343


윤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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