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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스의 외침, "가을에도 야구하자!"

기사입력 2006.05.14 02:09 / 기사수정 2006.05.14 02:09

윤욱재 기자

[프로야구 25년 특별기획 - 나의 몬스터시즌 24] 2005년 손민한 

잠자던 ‘구도(球都)’를 깨우다

4년 연속 꼴찌. 변명은 필요치 않았다. 2005년 프로야구 미디어데이에서 롯데 손민한은 “가을에도 야구하겠다.”라는 말로 시즌에 나서는 각오를 대신했다. 포스트시즌에 대한 갈증을 대변한 절절한 한마디였다.

롯데는 2001년 4위를 놓고 치열한 다툼을 벌였으나 김명성 감독의 갑작스런 죽음과 시즌 막판 펠릭스 호세의 난동으로 꼴찌로 추락했다. 그 이후 암흑기는 계속됐다.

우용득 감독과 백인천 감독 모두 변화를 시도했지만 뭔가 통하지 않았다. 마치 마지막 남은 퍼즐 한 조각을 아무리 찾아봐도 없는 것처럼.

젊은 감독이 새로운 트렌드로 급부상하자 롯데도 움직일 수 밖에 없었다. 롯데는 투수 조련에 일가견이 있는 양상문 LG 투수코치를 새로운 감독으로 선임하고 정수근, 이상목 등 거물급 FA를 영입해 부푼 꿈을 안고 2004년 시즌을 출발했으나 전력의 열세를 극복하지 못하고 또 한 번 꼴찌로 주저앉았다.

이때 손민한은 마무리로 시즌을 시작했지만 다시 선발로 전환해 ‘특급피칭’을 선보이며 롯데의 에이스로 자리매김했다. 시즌 중 영입한 노장진이 마무리에 정착한 것도 하나의 수확이었다.

로베르토 페레즈와 라이언 잭슨(라이온) 등 외국인 타자들의 활약도 기대 이상이라 이듬해인 2005년 시즌에 대한 기대감은 점점 커져갔다.

대구에서 삼성과 개막전을 치른 롯데는 예상과 달리 염종석을 개막전 선발카드로 뽑아 주위를 놀라게 했다. 롯데는 홈 개막전에 손민한을 투입시키는 복안이 있었다.

개막전에서 배영수에게 무사사구 완봉패한 롯데는 현대와의 홈 개막전에서 손민한의 호투(6이닝 2실점)에 힘입어 시즌 첫 승을 거뒀다.

시즌 초반 롯데는 답답한 경기내용으로 예전 그대로 아니냐는 주위의 비아냥을 들어야 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롯데는 손민한의 호투가 빛을 냈고 '신(新) 닥터K' 이용훈이 든든한 2선발로 자리를 굳혔다.

여기에 마무리 노장진의 활약이 계속되면서 선발투수들의 자신감도 커졌다.타선에선 최준석이란 새 얼굴이 등장했고 이대호, 라이온 등이 차례로 살아나면서 한층 집중력 높아진 공격력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러자 ‘구도’ 부산이 들썩거리기 시작했다. 선수들이 이렇게 잘하는데 팬들이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 ‘이기는 야구’에 대한 갈증이 심했던 부산의 야구팬들은 오랜 침묵을 깨고 다시 야구장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부산의 야구 열기는 달아오를대로 달아올랐다.사직구장의 명물인 신문지 응원이 되살아났고 ‘부산 갈매기’와 ‘돌아와요 부산항에’(항상 두 곡을 연이어 부른다.)가 울려 퍼졌다.

외야석엔 ‘가을에도 야구하자’라는 플래카드가 나부끼며 포스트시즌 진출을 염원했다. 야구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 찬, 참 오랜만에 보는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에이스’ 손민한도 신바람이 났다. 4월에 5번 등판해 4승을 수확한 손민한은 5월에는 무패행진을 계속하며 롯데 열풍을 주도해나갔다. 이러자 ‘손민한 선발경기=롯데 승리’라는 새로운 공식이 만들어졌고 선발투수예고제가 자리 잡힌 상태에서 팬들은 먼저 손민한의 등판 여부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손민한이 선발투수로 예고되면 반드시 이긴다는 자신감을 안고 야구장을 찾을 정도로 손민한의 존재는 대단했다. 김용희, 박정태 이후 롯데를 대표하고 팀을 이끌 선수가 없었던 차에 손민한이 그 계보를 잇기 시작했다.

손민한은 공의 위력도 좋았지만 컨트롤과 완급조절 등 안정적인 경기 운영이 매력이었다. 경기에 들어가면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차분함과 냉정함이 돋보였다. 화려한 강속구보다, 타자를 잡고 취하는 액션보다, 더 중요한 것을 갖고 있었다.

가을에 야구하기 위해서라면… 자원 구원등판 ‘솔선수범’

승승장구는 계속되지 않았다. 한껏 달아올랐던 롯데에 위기와 시련의 계절이 찾아온 것이다. ‘운명의 9연전’이 문제였다. 이 기간을 포함해 9연패에 빠진 롯데는 겨우겨우 수렁에서 빠져나왔다. 한 가지 다행인 것은 4위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롯데는 이때 노장진이 부상과 개인 사정으로 현역선수 명단에서 제외되며 다시 한번 위기를 맞게 됐다. 롯데는 고심을 거듭하다 손민한이 구원등판을 자청하며 살신성인하는 자세를 보이자 그에게 마무리를 맡기기로 결정했다.

컨디션 조절에 애를 먹을 법도 한 손민한은 전반기가 끝나기 전 두 차례 구원으로 등판해 귀중한 1승 1세이브를 거두며 팀 분위기를 추스르는데 한 몫을 했다. 이 모두 오직 가을에 야구하기 위해서였다.

팬들은 에이스인 손민한이 마무리로 나오는데 못마땅해 하면서도 팀을 위해 어떤 보직도 마다 않는 손민한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손민한은 전반기에 무려 14승을 거두며 1999년 정민태 이후 명맥이 끊긴 ‘20승’도 어려워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팀이 예전 같지 않았다.

전반기에서 9연패로 한 차례 충격을 받았던 롯데는 이후 한화와의 4위 싸움에서 완전히 밀리며 곤두박질쳤고 8월에 또 한 번 벌어진 9연전에서도 미끄럼틀 타듯 걷잡을 수없이 추락을 거듭해 ‘4강’에 대한 꿈을 접어야 할 처지로 몰렸다.

손민한은 역투했지만 타선 지원이 이뤄지지 않아 승수가 쌓이지 않는 불운이 계속됐다. 시즌이 막판에 다가갈수록 4강이 멀어지는 것을 안타깝게 지켜보는 수 밖에 없었다. 결국 손민한은 20승을 포기하고 재충전을 위해 2군행을 자청하기도 했다.

MVP 선정 피날레, ‘절반의 만족’

롯데는 5위로 시즌을 마감했고 손민한은 다승,방어율 타이틀을 차지하며 한해를 마무리했다. 2005년 시즌은 롯데와 손민한에게 모두 의미있는 시즌임이 틀림없다. 시즌 초 꼴찌후보였지만 멋지게 돌풍을 일으킨 롯데는 무한한 가능성을 남긴 소중한 시즌이었다. 손민한은 야구 인생에 꽃을 피우며 배영수(삼성), 박명환(두산)과 새로운 라이벌 관계를 형성하며 전국구 스타로 발돋움한 최고의 한 해였다.

MVP에 대한 기대도 잠시. 한국시리즈에서 인상적인 활약을 펼친 오승환(삼성)이 손민한을 위협할 상대로 떠올랐고 삼성도 오승환을 측면 지원하며 적극적으로 MVP 만들기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그러나 최우수선수의 영광은 손민한의 것이었다. 손민한은 사상 처음으로 포스트시즌 탈락팀 선수로 MVP로 뽑히는 새로운 역사를 썼다. 손민한은 수상 후 인터뷰에서 “MVP 트로피와 챔피언 반지를 바꾸고 싶다.”고 말할 만큼 우승에 대한 강한 열망을 내보이기도 했다.

손민한 (2005) → 18승 7패 1세이브 방어율 2.46

윤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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