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최종편집일 2024-11-18 10:30
자유주제

해동전설(海東傳說)6 (3) 결심! 그리고 괴상한 수련

기사입력 2007.02.12 12:40 / 기사수정 2007.02.12 12:40

김종수 기자

글: 김종수/그림: 이영화 화백

연무관에서의 연습경기는 꼬박 닷새동안 이어졌다.
동료들의 불평에도 아랑곳없이 조수철은 경기중간 중간 정차룡에게 많은 기회를 제공해 주었다. 부담이 컷던 탓인지 정차룡은 그 많은 기회를 전부 날려버렸고 말이었다. 족히 백 번은 던졌을 터인데도 공은 단 한개도 그물주머니를 통과하지 못했다.
그럴 때마다 쏟아지는 야유와 놀림, 정차룡의 어깨는 볼썽사납게 축 쳐질 수밖에 없었다.

"저렇게 안 들어가는 것도 재주야."

"그러게 말이야. 그냥 자유투 던지듯이 할 때는 그렇게 잘 쏘면서 경기에 투입만 되면 왜 저렇게 못 쏘는지…"

정차룡에 대한 비난이 거세지면 거세 질수록 조수철의 가치는 더욱더 올라갔다. 그런 와중에서도 자신의 조를 연습경기 우승으로 이끌었으니까 말이었다.
풀이 죽은 대로 죽은 정차룡은 집에 돌아와서도 방구석에 쳐 박혀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역시 난 안돼…'

이루 형용할 수 없는 깊은 자괴감이 전신을 완전히 지배해 버린 것이었다.

'날 사부 님이라고 깍듯이 인정해주면 지금보다 훨씬 나은 모습으로 만들어주겠다. 어차피 네 녀석 같은 둔재는 평범한 방법으로는 안돼. 그래서 나 같은 사람이 필요한 거지. 어떠냐? 괜찮은 제안 아니냐? 끌끌끌…'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라도 잡는다는 심정이었을까? 정차룡의 머릿속으로 문득 박현수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정말 지금보다 훨씬 나은 모습이 될 수 있을까…?'

양손으로 머리칼을 움켜쥔 채 한참동안 정차룡은 움직이지 않았다. 꾀죄죄한 외모나 괴팍한 행동으로 보았을 때는 영 믿음이 안 갔지만 농구공을 던지던 그 실력만큼은 대단하지 않았는가…

'좋아!'

뭔가 결심한 표정으로 정차룡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흐음…제자가 되겠으니 받아달라고?"

"그래요."

인적이 드문 정원의 구석 쪽으로 두 사람의 모습이 보인다. 거만한 표정으로 다리를 꼰 채 의자에 앉아있는 박현수와 그 앞으로 어정쩡하게 서있는 정차룡.

"웬 변덕이냐? 며칠 전까지만 해도 절대로 안될 듯이 단호하던데…?"

"어서 대답이나 하세요. 제자로 받아줄 거예요. 말 거예요."

"어라? 가르침을 청하는 태도가 영 아니올시다 인데…?"

"말장난하기 싫어요. 어쨌거나 제자만 되면 지금보다 훨씬 나아질 수 있겠죠?"

"어랍쇼?"

"어서 대답해요. 나 급하단 말이에요."

"네 녀석은 말이야. 농구이전에 예절 교육부터 받아야겠다. 사제지간(師弟之間)이라는 게 얼마나 신성한 것인데 이따위로 대답을 강요하는 것이야."

심드렁한 표정으로 고개를 한쪽으로 돌려버리는 박현수였다.

"뭐예요? 가르쳐줄 거예요. 말 거예요?"

"일단 예절 교육부터 받고 그 성과에 따라 대답해 주기로 하겠다."

깡마른 턱을 있는 대로 위로 치켜세운 박현수의 얼굴은 거만하기 짝이 없었다.

"정말 이럴 거예요?"

정차룡이 불만이 가득한 표정을 지어 보였지만 박현수는 눈길을 피한 채 딴청만 피우고 있었다.

"치잇!"

얼굴을 잔뜩 구기며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인 정차룡은 이내 등을 돌려 자신의 거처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어…어라?"

이렇게되자 되려 당황한 쪽은 박현수였다.

"이 녀석아, 어딜 가?"

박현수가 소리를 질렀지만 정차룡은 들은 척도 안 했다.
허겁지겁 몸을 일으킨 박현수는 후다닥 걸음을 옮겨 정차룡의 앞을 가로막았다.

"이놈아, 어디 가냐고 묻잖아?"

"비키세요."

"사내녀석이 왜 이렇게 변덕이 심하냐? 한번 제자가 된다고 했으면 그렇게 할 요량이지, 한입으로 두말하는 것은 또 어디서 배운 거야?"

"제자로 안 받아준다면서요?"

"내가 언제? 우와…이거 사람잡은 녀석이네. 내가 언제 그랬어. 이놈아. 난 단지 그전에 예절교육을 좀 받아라 그 말이었지."

"그게 그거죠. 나 그냥 혼자 연습할래요."

"허허…이런 답답한 녀석을 봤나. 알았다, 알았어. 제자로 받아 줄께. 제자로 받아준다고."

한쪽으로 빠져서 걸음을 옮기려는 정차룡의 앞을 막으며 박현수가 재차 말했다.

"됐어요. 이제 그럴 생각 없어요."

설레설레 고개를 저어 보이는 정차룡의 태도는 냉랭하기만 했다.

"그럴 생각 없다니? 제자로 받아준다니까, 제자로 받아 줄께."

"싫어요."

"싫다니…내 제자가 되라니까."

"됐습니다. 저 피곤하니까 길이나 좀 비켜 주실래요?"

박현수를 슬쩍 밀어낸 정차룡은 다시금 앞으로 걸어나갔다.

"제자 하라니까, 제자 하라고."

박현수는 계속 정차룡을 따라붙으며 말을 걸어댔다. 정차룡은 더 이상 상대하지 않겠다는 듯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제자 안 할거야? 내가 제자 시켜 준다고 했잖아?"

"안 해요! 안 한다고요!"

이맛살을 잔뜩 찡그리며 신경질적으로 소리를 빽 지르는 정차룡이었다.

"제자해라. 해주면 안될까?"

어느새 박현수의 말투는 애원조로 바뀌어 있었다.

"그렇게 제자가 되기를 원하시나요?"

그제 서야 정차룡이 우뚝 걸음을 멈추었다.

"하…할거야?"

반색을 하며 박현수가 물었다.

"좋아요. 정 그렇게 원하신다면."

"아이구…고마워, 고맙다. 이 녀석아."

정차룡의 승낙에 박현수는 나이답지 않게 제자리에서 깡충깡충 뛰는 것이었다.

"허참…"

머쓱해진 정차룡은 박현수를 쳐다보며 어색하게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러나 정차룡은 모르고 있었다. 고개를 돌리고 있는 박현수의 얼굴에 묘한 웃음기가 감돌고있는 것을 말이다.

 

 

"뭐…뭐예요. 이게…?"

정원뒤쪽의 넓다란 공터, 커다란 고목 쪽에서 정차룡의 고함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정차룡은 양발목이 밧줄에 묶여진 채 고목 아래로 거꾸로 매달려 있었다.

"뭐긴 뭐야? 이 녀석아. 가장 기본적인 수련을 위한 첫 번째 입문 절차라고."

삼장 쯤 떨어진 곳으로 박현수가 팔짱을 낀 채 히죽히죽 웃고있었다.

"수련…? 이런 말도 안 되는 수련이 어디 있어요?"

정차룡은 황당하기 그지없다는 표정이었다.

"네 녀석은 세상에서 보기 드문 둔재야. 그런 둔재가 평범한 방법으로 단련이 될 것 같으냐? 이 사부만 믿으라고, 철저한 훈련방식으로 네 녀석을 해동국에서 손꼽히는 실력자로 만들어 줄 테니까."

"어지러워 죽겠어요. 어서 풀어주라고요."

"이미 늦었어. 넌 내 제자야. 사부의 명령을 따를 필요가 있지."

성큼성큼 정차룡에게 다가간 박현수는 농구공을 정차룡의 양손에 쥐어주었다.

"이 자세에서 공을 던져 저기 그물주머니를 통과하게 만들어야한다."

"무슨 헛소리예요? 거꾸로 매달린 상태에서 무슨 공을 어떻게 던져요?"

"엄살떨지 마라. 앞으로 남은 수련이 첩첩산중(疊疊山中)인데…"

"……"

"온몸을 밧줄로 꽁꽁 묶은 다음 비탈길을 구르면서 공을 주고받기도하고, 물 속에서 속임수 동작을 배우기도 하고, 손가락두개만으로 공을 던지는 수법도 배워야해. 클클클…재미있겠지? 넌 축복 받은 거야. 임마. 이게 다 사부를 잘 둔덕인 줄 알아."

'하아, 미치겠네…제발 제자가 되 달라고 사정할 때 알아 봤어야하는 것인데…'

석양(夕陽)이 저물어 가는 가운데 노인의 웃음소리와 소년의 탄식소리가 묘한 대조를 이루고 있었다. 

※ 본 작품은 프로농구잡지 월간 '점프볼'을 통해 연재된 소설입니다.



김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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