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11.03.17 17:25
[엑스포츠뉴스=엑츠기자단 송철근] 뜨거웠다. 같은 지역을 쓰는 팀도 아니며, 역사의 굴레도 없다. 타이틀을 놓고만 으르렁댔던 팀들의 그 어떤 사례보다 그 열기가 대단했다. 그 주인공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와 아스날, 정확히는 퍼거슨의 맨유와 벵거의 아스날이다.
92-93시즌 부터 출발한 프리미어리그는 석유재벌 로만 아브라모비치가 첼시를 인수한 2004년까지는 아스날이 리그와 FA컵을 석권하면 그 다음 시즌에 맨유는 역사에 남을 트레블을 달성하고, 맨유가 리그를 우승하면 아스날은 그 다음 시즌에 역시 전무후무한 리그 무패 우승을 일궈냈다.
둘이 격돌하는 날에 경기장 밖에선 퍼거슨과 벵거의 설전이 온갖 신문과 일간지를 장식했으며, 경기장 안에선 성깔있는 주장들로부터 비롯된 험악한 분위기가 형성되곤 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두 팀의 격돌이 열기가 식어가는 모양새다. 최근 5년간 양 팀의 주장은 물론이고 많은 선수이동이 있었다. 또한 위에도 밝혔듯이 첼시라는 신흥 강호가 이 둘 사이에 끼어들어 때로는 두 팀을 제쳐버리기도 했다.
그리고 그 피해를 직접적으로 본 팀은 맨유보단 아스날이었다. 즉, 맨유-아스날 양강 구도에서 맨유-첼시의 양강구도로 서서히 바뀌어 갔다. 이렇다 보니, 타이틀 경쟁이 주였던 라이벌의 명분도 사라지고, 피치를 뜨겁게 했던 주역인 주장들의 이적으로 사실상 그 때에 비한다면 지금은 라이벌이라는 이름만 남았다.
또한 시즌마다 경기마다 엎치락 뒤치락을 반복했던 이 둘의 열기를 식게한 결정적인 원인은 아스날이 2008년 11월 자신들의 홈에서 열린 경기 이후에 지금껏 햇수로 3년 동안 맨유를 안방이건 원정이건 한번도 잡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아스날이 맨유 공포증을 앓고 있다.
그러한 이 둘이 지난 주말 FA컵에서 만났다. 이미 이전에 맨유의 홈에서 펼쳐진 리그 경기에서 박지성의 결승골로 맨유가 승리를 먼저 챙겼다.
하지만 이번 경기는 바르셀로나에게 슛 한 번 못해보고 처참하게 무너진 아스날의 동기부여와 비록 홈에서 펼쳐지지만 부상자가 많고 시즌 첫 연패를 기록한 맨유의 상황이 변수가 되어 쉽사리 승부를 예측하기 힘든 상황이 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아스날은 파브레가스 등 부상자를 제외한 모든 전력을 가동했다. 3일전 누캄프 원정에서 뛴 선수도 다수 포함되었다. 반면, 맨유는 11명 중 수비수 7명이 선발에 이름을 올린 다소 놀라운 포진으로 경기에 나섰다.
▲ 퍼거슨 감독은 수비수 7명을 투입시키는 변칙적 전술을 구사했다
경기 양상은 이전에 아스날이 맨유에게 당했던 흐름과 비슷했지만 이전과는 조금은 다른 양상이었다. 맨유는 수비라인을 깊숙이 내리고 치차리토의 속도를 이용한 긴 패스 위주로 경기를 진행해 나갔다.
그들의 안방에서는 보기 힘든 경기 패턴이었음에도 그들은 영리하게 흐름을 뺏기지 않았다. 공은 역시 아스날이 지배하고 있었지만, 윙으로 출전한 수비수 파비우가 맨유에 선취골을 안겨 주었다.
선취골을 득점한 맨유는 계획대로 더 수비를 견고히 쌓았다. 아스날은 이전의 석패들을 떠올린 듯이 빠른 템포와 창조적 플레이로 분전했지만 수비수가 7명이 출전한 맨유의 수비를 무너뜨리기엔 역부족이었다. 또한 이 날 MVP로 선정된 반데사르의 신들린 듯한 선방들도 아스날의 힘을 빼놓았다.
후반이 되어 흐름을 타려 했던 아스날 선수들의 전의를 웨인 루니가 상실시켰다. 이번에도 역습이었다. 교체 출장한 발렌시아가 하프라인에서 문전까지 몰고 오는 동안 그를 제지하는 아스날 선수는 없었다.
아스날은 후반 램지와 샤막을 출장시키며 총 공세에 나섰다. 좋은 장면들도 많이 만들어냈지만 반데사르에게 막혔다. 이미 경기가 맨유로 넘어와 있었다. 결국, 아스날은 맨유보다 객관적 전력에서 압도했던 상황에서 한 골도 넣지 못하고 또 다시 맨유 공포증을 이어가게 되었다.
'더 거너스'는 역습에 취약하다. 포지션을 중시 여기는 벵거의 축구는 수비라인을 올려서 상대를 압박해야 수월하게 풀린다. 그러나 그들의 압박은 비슷한 축구를 하는 바르셀로나의 그것보다 많이 허술하다.
라인은 올라가 있는데 압박이 제대로 되지 않다보니 미드필드 장악은 그것대로 망치게 되고, 높이 올라와있는 수비라인 뒤의 광대한 공간을 공략당하게 된다. 결국 공은 많이 가지게 되는데 정작 위협적인 장면은 더 많이 허용하는 비효율도 발생한다.
지난 시즌과 지지난 시즌 자신들의 홈에서 열린 모든 경기에서 이러한 패턴으로 경기를 내줬다. 이번 경기도 비슷한 양상이었지만, 벵거는 변화를 줬다. 미드필더 주전 대부분이 결장한 맨유 선수구성의 이유도 있겠지만, 이 날 아스날은 위협적인 장면을 많이 만들어냈다.
압박은 강력했고, 공격 빌드업 작업에서도 이전의 템포 느린 예쁜 축구보단 원투패스 등 다이렉트한 플레이가 많이 나왔다. 이를 기반으로 나스리를 위시한 아스날 공격진은 밀집 수비 속에서도 창조적인 패스들로 맨유를 위협했고 반 데 사르가 아니었다면 사실 결과가 어찌되었을지 장담할 수 없는 장면들이 많았다.
아스날은 이로써 또 무관의 시즌을 보낼 위기를 맞고 있다. 이번 시즌도 무난히 첼시와 맨유의 양강구도로 예상되었던 예상을 깨트리며 선전한 아스날인데, 후반부 결정적인 경기들에서 무너지는 이전의 악습을 반복하고 있다.
이렇게 매년 똑같이 무너졌지만, 고무적인 사실은 벵거가 확고하던 자신의 철학에 점차 변화를 주기 시작하고 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하면 잘 짜여진 플랜A만 고집하는 것이 아니라 이기기 위해서 플랜B, C 등도 불사하는 모습이 보인다.
결국 지기는 했지만 바르셀로나와의 챔피언스리그 1차전에서도 압박의 강도는 높이되 철저히 소유보단 역습위주의 경기를 펼친 것, 이번 맨유와의 경기에서 공 소유에 집착하지 않고 다이렉트한 움직임 위주의 주문 등 분명 벵거의 색에 다른 색이 덧칠된 모습을 보였다.
아직 리그는 끝나지 않았다. 벵거와 아스날이 진화하고 있고, 승점차는 없다시피 하다. 5월에 열리는 사실상의 프리미어리그 결승전인 이 둘의 맞대결에서 아스날이 맨유 공포증을 떨쳐내고, 꺼져 가는 라이벌의 열기를 다시 점화할 수 있을까? 시즌 막바지로 가면서 사뭇 흥미를 더해가는 프리미어리그다.
[사진 = 맨유-아스날, 퍼거슨, 벵거 ⓒ 엑스포츠뉴스 DB, 아스날 공식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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