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최종편집일 2024-11-16 10:15

불량노인들의 제주 여행 2편

기사입력 2011.02.15 15:46 / 기사수정 2011.02.15 15:46

박규동 기자
- 2010년 11월 21일 마라도-모슬포-서귀포-속골


"박언진의 아침"이다.
마라도 동남쪽 언덕에서 맞은 이런 아침을 나는 "박언진의 아침"이라고 부른다. 나의 이웃 박언진이 여기 함께 있었다면 이런 감탄을 했을 것이다.
"이런게 아침이야! 지금까지의 아침은 아침이 아니었어!"

천막의 헝겊 문을 열고 아침 바다를 느끼는 것은 호텔 창문을 열고 바다를 바라보는 것하고는 사뭇 다르다.
자전거를 타고 와서 천막집을 짓고 마라도에서 밤을 샌 다음 맞이하는 아침이라면 더 다를 것이다. 아침을 바라보거나 맞는 게 아니라 박언진처럼 아침을 느끼는 것이다.


마라도에서 느끼는 착한 아침에 나같은 노인도 분홍빛으로 가슴이 물든다.
나에게는 이게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마라도에서의 아침이다. 그러나, 이 아침을 아내 불근늑대와 박언진에게는 느끼게 해 주고 싶다. 그런 날이 꼭 오리라 믿는다.

방어잡이를 나선 어선들이 일출이 만들어 준 붉은 물비늘 사이에서 분주한 아침을 끌어 올리고 있었다.
수평선에는 구름도 적당히 깔려 있었고, 갈매기는 절벽에 부딪혀 오르는 상승기류를 타고 정지비행을 즐기고 있었다. 미풍에도 억새는 나부꼈다. 등대의 불빛은 먼바다로 언어를 쏘아 보내고 파도는 그 언어를 마시며 황금빛으로 물들어 갔다. 성당에서 들리는 새벽기도 소리에 아침은 맑아졌다. 지기 오이쨈님도 폰카메라에 이 아침을 부지런히 줏어 담는다.

바다 앞에 서면 나는 한 마리 늑대가 된다.
회색 눈동자로 바람을 가르며 벌판을 달리고 싶다. 주린 배와 주린 사랑을 쫓아가는 달빛늑대가 되는 것이다.

 

 

 

 

 

 

 


 


▲ 마라도 토종꽃, 이름을 모르겠다.

날이 좋으면 아침 10시 반에 첫 배가 뜰 거라고 했다.
오늘은 1139번 도로(한라산 서쪽 산록을 넘는 이 도로는 고도 1100m를 통과 한다고 하여 통칭 1100도로라 불린다)를 타고 한라산 서쪽 기슭에 있는 영실까지 가려고 하였다. 내일 한라산 정상을 오를 계획이다.
배는 제 때에 닿았다. 어제 도착한 절벽쪽이 아니고 북쪽 끝에 있는 완만한 경사지에 접안을 하였다.

11시에 모슬포에 닿았다. 산방산을 끼고 1132번도로를 타다가 창천리 삼거리에서 점심을 먹었다. 제주도의 특별식인 갈치조림이다. 우리의 행색에 관심을 갖은 다른 손님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영실과 어리목 코스는 입산통제 기간이라는 걸 알았다. 관음사와 성판악 코스로 가야지만 정상에 오를 수 있다는 것이다. 천만다행이다. 영실까지 20여 km를 힘겹게 오르고 난 다음에 이 사실을 알게 되었다면 상심이 컷을 것이다.





▲ 마라도를 형성하고 있는 지반

서귀포에서 야영을 하고 내일 1131번도로를 타고 성판악에 오르기로 하고 다시 페달을 밟았다.
제주도는 어느 곳을 가든지 풍광이 좋다. 맑은 날에는 눈에 보이는 것마다 눈요기가 된다. 어느 곳에서나 바라보이는 한라산은 풍광 뿐 아니라 어서 올라 오라는 유혹을 부추긴다. 뿌리칠 수가 없다. 오이쨈님에게 한라산 등정은 퇴임기념으로 남다른 의미가 있을 것이다.
월드컵축구장 앞에 오니 날이 저문다. 겨울 날이 이렇게 짧다. E-마트에서 저녁에 먹을 부식을 샀다. 이왕이면 바닷가에 좋은 곳을 찾아 야영하자는 오이쨈님의 안내로 올레길 7번 코스가 통과하는 속골이라는 데를 찾아냈다. 수도시설과 화장실이 잘 갖추어진 작은 공원이 있었다. 범섬이 바라보이는 해안이다.

삼겹살에 소주를 한잔 하였다.
구름이 끼였다. 옅은 구름 사이로 간혹 달이 비쳤다. 오이쨈님과 옛날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젊은 날의 호기와 우여곡절이 파도소리에 휩쓸려 파란만장하게 퍼져갔다.


▲ 바다에서 바라본 마라도


▲ 루믹스 LX3로 카메라를 바꾼 후 셀카를 도전한다.


▲ 제주도 월드컵 경기장





박규동 press@bike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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