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최종편집일 2024-11-29 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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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판사' 지성, '빅 픽처'가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첫방]

기사입력 2021.07.04 14:15 / 기사수정 2021.07.04 14:15

최희재 기자

(엑스포츠뉴스 최희재 기자) '악마판사'가 새로운 법정물을 제시했다. 뻔함 속에 반전이 있었고, 통쾌한데 찝찝함을 남겼다.

3일 첫 방송된 tvN 새 토일드라마 '악마판사'는 가상의 디스토피아 대한민국을 배경으로 전 국민이 참여하는 라이브 법정 쇼를 통해 정의에 대한 메시지를 전하는 드라마다. 판사 출신의 문유석 작가가 대본을 집필했고 배우 지성, 김민정, 박규영, 진영, 안내상, 김재경, 장영남, 백현진 등이 출연한다.

'악마판사'의 기획 의도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악마판사'는 정말 악마일까? 그는 끊임없이 질문한다. 이게 여러분이 원하시는 정의 아니었습니까? TV로 생중계되는 그의 법정은 결국 그걸 지켜보는 우리들 안에 숨은 민낯을 비추는 거울이 아닐까."

그래서인지 보는 내내 의심을 거둘 수가 없었다. 왠지 내 편은 아닐 것 같은 캐릭터들이 무리지어 나오기 때문. 강요한(지성 분)과 정선아(김민정)도 그 무리에 속했다.

특히 이 드라마를 이끌고 가는 '악마판사' 역의 지성이 무슨 메시지를 전하려고 하는 것인지, 무슨 메시지를 전하려고는 하는 것인지 첫 회만 보고는 알 길이 없었다. 강요한은 가족을 죽인 가해자를 처벌하라며 법원을 향해 돌진한 버스 운전자를 향해 총을 쏘는 냉혈한이지만, 가해자인 대기업 대표에게 무려 235년을 선고했다. 그가 정말 '절대악'인지, 사연이 있는 '가짜악'인지 궁금하게 만들었다.

'악마판사'의 배경 또한 흥미롭다. 가상의 디스토피아 대한민국은 우리가 생각했던 미래와는 완전히 다른, 오히려 과거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듣도 보도 못한 역병이 전국을 휩쓸고 경제는 추락했지만 기득권들은 그들의 자리를 더욱 공고히 했고, 힘 없는 사람들은 거리에 나앉았다. 대통령 허중세(백현진)는 살려달라는 국민들의 외침을 '가진 자들에 대한 선동'이자 '폭동'이라고 표현했다.

이런 가운데 이 기득권들은 온 국민이 참여할 수 있고 생중계로 재판이 진행되는 '국민 시범 재판'이라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기자들의 플래시 세례를 즐기는 '스타 판사' 강요한이 시범 재판의 중심에 섰다.

사법 신뢰도가 10%까지 떨어진 사회, 전혀 안전하지 않고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는 사회, 형평보다는 '그림, 모양새'가 강조되는 사회에서 강요한은 사제를 연상케 하는 법복을 입고 재판에 나선다. 어쩌면 신의 위치를 즐기는 듯 보이기도 했다. 이를 생중계하는 PD는 시범 재판의 독점권을 따기 위해 돈을 쏟아붓고, 평균 시청률과 최고 시청률까지 챙기며 본질이 아닌 다른 것에 열중했다. 당연하게도 이 재판으로 돈을 버는 이들이 존재했다.

강요한은 가해자인 대기업 회장에게 살인이 아닌 업무상 과실치사를 유죄로 인정했다. 여기까지는 예상된 시나리오였다. 그러나 강요한은 갑자기 사고 피해자들의 이름을 한명 한명 부르며 감동을 자아내고는 무려 금고 235년을 선고했다. 강요한을 재판에 세운 법무부 장관 차경희(장영남), 대통령 등 기득권들은 그야말로 뒷통수를 맞았다.

재판이 끝나고 강요한은 자신에게 절을 하는 피해자를 일으켜세우고는 눈물을 흘리며 토닥였다. 이런 가운데 강요한은 하품을 했고, 지켜보던 김가온(진영)을 경악케 했다. 강요한을 의심하다가 감동을 받았다가 어리둥절해 하다가 경악하는 김가온의 감정선은 시청자들의 표정 변화와 동일했다.

국민이 실시간으로 참여해 벌을 내릴 수 있는 라이브 '재판쇼'. 현실에서는 나올 수 없는 235년형. 그러나 그 대리만족 뒤에는 기분 나쁜 찝찝함이 남았다. 국민의 힘으로 악을 처단한 게 아니라 강요한의 장난에 놀아난 느낌이 들었기 때문. 마지막 장면 속 하품과 의미를 모르겠는 웃음이 뇌리에 자리를 잡았다. 강요한의 '빅 픽처'가 있을까? 모르겠다. 있든 없든 이상하지 않은 캐릭터인 데다, 기획 의도 속 '우리들 안에 숨은 민낯'을 보는 것 같기 때문이다.

또 '악마판사'가 현실 반영 보다는 '드라마'라는 게 곳곳에서 느껴졌다. 부장판사가 대법원장과 맞먹는 상황이라든가. 종교를 연상케 하는 장면들. 특히 김가온 캐릭터가 열심히 이용됐다. 김가온이 사는 동네는 당연히 달동네, 강요한을 미행하는데 헬멧을 쓰고 자전거를 탄 채 달리는 김가온, 입에 손전등을 문 채 기록실을 뒤지는 김가온. 강요한의 책상에 도청기를 설치하는 열혈 판사 김가온. 대법관 민정호(안내상)에게 모든 일을 의논하는 김가온. 왜 꼭 착해보이는 역할들은 직업을 안 가리고 국밥을 먹을까. 가온의 서사와 성격을 첫 화에 압축해놓은 느낌이라 아쉬웠다. 왠지 흑화할 것 같은 가온이 앞머리까지 올린다면 지루해질 것 같다는 의미다.

한편 법무부 장관을 조곤조곤 협박하는 또 다른 권력 정선아와, '액션 맛집' 형사 윤수현(박규영)의 모습도 시청자들의 관심을 모았다. 다르면서도 비슷한 강요한과 정선아, 약자를 감싸안는 모습이 비슷한 김가온과 윤수현의 관계가 어떻게 변해갈지도 기대감이 더해진다.

문유석 작가가 현직일 때 썼던 '미스 함무라비'와 비교해보는 것도 재미가 될 듯 하다. 같은 법정물인데 이렇게 다르다니. 선이 해결하든 악이 해결하든, 어찌 됐든 나쁜 놈들을 누구보다 강하게 처단하겠다는 전직 판사의 의지가 느껴지는 '악마판사' 첫 방송이었다.

(사진=tvN 방송화면)

최희재 기자 jupiter@xport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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