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으로 우승을 사려고 한다.' '저 멤버 가지고 우승 못 시키면 그것도 감독이냐?' '국가대표 왜 뽑냐? 삼성 나가면 되지.'
삼성 라이온스를 향한 일부 야구 팬들의 악담이다. 공식석상에서 아예 대놓고 '삼성은 공공의 적이다.'란 말을 서슴지 않게 한 조범현 전 SK감독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거액을 들여 2005년 FA최대어 심정수, 박진만을 사들이고, 그 이전에도 당시 팀 내 주축선수들이었던 임창용, 김동수등을 사들인 그들이었기에 삼성은 명실상부한 7개 구단의 '공공의 적'이 되었다. 거기에 2005년에 이어 2006년 한국시리즈까지 우승하면서 그 악담은 점점 더 가중되어가고있다.
시작하기전 먼저 필자는 삼성의 팬이 아님을 밝혀둔다. 하지만 그런 필자가 삼성의 이야기를, 나아가 응원하는 듯한 글을 쓰는 이유는 처참하게 무너진 도하아시안게임과 한국 프로야구의 존폐론이 대두되고 있는 한국 야구의 위기 속에서 그 해결책으로 제시된 '유소년 야구의 활성화','돔구장 신축'등의 말만 무성한 해결책 외에 좀 더 현실적인 삼성라이온스라는 절대자의 존재로서 이 위기를 헤쳐나갔으면 하는 바램에서이다.
1. 절대자의 필요성
세계 역사의 희대의 '바둑 천재' 이창호를 아는지? 그는 16세때 동양증권배 우승으로 최연소 세계대회 우승기록을 세우며 바둑 천재 탄생을 예고했었다. 하지만 이후 국내대회는 휩쓸었으나 국제대회에선 이렇다할 성과를 보이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그에게 일각에선 아직은 '미완의 대기', '스승(조훈현)을 이기기 위해서만 바둑을 연마했다.'는 조롱 아닌 조롱을 퍼붓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 조롱을 잠재우는데는 그다지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언제부턴가 도무지 끝이 보이지 않는 연승행진, 도무지 끝이 보이지 않는 우승행진으로 그는 명실 상부한 세계 최강이 되었고, 이후 세계 바둑계에서는 이러한 말이 나돌았다.
'세계가 이창호를 쫒는 시대'
그 후 국내는 물론 전 세계 모든 바둑기사들은 그를 이기기 위해 연구에 연구를 거듭했다. 그의 기보가 나오면 앞다투어 이를 입수해 연구했고, 그의 기풍을 하나하나 파악해 나갔다. 그 결과 한국엔 이세돌, 최철한, 박영훈등의 신진세력이 등장해 세계를 호령해 나갔고, 한국 바둑은 '국제대회 17연패'라는 불멸의 대기록을 세운다.
근래들어 중국에 조금씩 밀리는 경향이 있기는 하지만 그 역시 이창호를 이기기 위해 밤낮으로 연구한 그들의 노력이 결실을 맺은 것이라고 누구도 의심치 않고 있다. 바둑계의 이창호는 단순히 절대적인 존재를 넘어 국내는 물론 전 세계의 바둑 수준을 끌어올린 인물로 누구나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이만큼 한 분야에서 절대자의 존재는 그 분야의 수준을 끌어올릴 수 있는 촉매제 역할을 하는 것이다.
2. 만년 2인자에서 '공공의 적'으로
2005년 이전만 하더라도 사실 삼성은 우승과는 그다지 인연이 없는 팀이었다. 82년 한국에 프로야구가 도입한지도 어느 덧 26년째...삼성이 한국시리즈에 진출한 것은 무려 11회다. 8개 구단 중 단연 최다이지만 우승은 단 3회에 지나지 않는다.(85년 전후기 통합우승은 한국시리즈를 거치지 않았기에 제외한다.)
언제나 호화멤버를 갖추고도 그들이 우승을 하지 못했던 이유는 막강한 타력에 비해 단기전에서 가장 중요한 투수력이 약했기 때문이다. 자구책으로 거액을 들여 많은 특급투수들을 사오긴 했으나 이상하리만치 타구단에서 난다긴다하던 선수들도 삼성 유니폼만 입으면 예전의 기량을 선보이지 못했고, 급기야 임창용, 갈베스는 이래저래 말썽을 일으키며 팀분위기를 헤쳤다. 그로인해 그들은 만년 준우승에 만족해야만 했던 '만년 2인자' 였었다.
그랬던 삼성이 선동열 감독 부임 이후 완전히 바뀌었다. '선동열식 지키기 야구'가 접목되면서 타력은 약해졌으나 막강 투수력으로 상대를 묶는 팀으로 변모한 것이다. 2005년 한국시리즈에서의 모습이 그랬고, 2006년 한국시리즈에서의 모습이 그랬다. 기껏 선발투수를 무너뜨리면 이어 나오는 권오준, 권혁, 임창용,임동규의 중간계투진, 거기에 마무리 오승환까지...그들은 난공불락의 투수왕국이었다. 아마도 당시 상대였던 두산과 한화는 그들의 끝없는 투수 물량공세에 질렸을 것이다.
하지만 막강 투수력으로 우승을 했음에도 그들은 돈으로 우승을 샀다는 비난을 피할수는없었다. 앞서 언급했듯이 2005년, 2006년의 우승으로 삼성은 명실상부한 '공공의 적'이 되었는데, 과연 그들에게 '돈으로 우승을 샀다.' 멍에를 씌울 수 있을까? 삼성의 우승에 결정적인 공헌을 한 선수는 거액을 들여 사들인 심정수, 박진만과 같은 이적생들이 아닌 배영수, 권오준, 오승환, 김재걸과 같은 삼성의 기존 멤버들이었다. 오히려 심정수는 부상으로 2006년엔 사실상 시즌 아웃 상태였고, 한국시리즈에서 그의 이름을 볼 일은 별로 없었다. 박진만은 2006한국시리즈 MVP를 차지하긴 했으나 그가 우승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보기엔 사실 많이 부족했었다.
그런 면에서 봤을 때 돈으로 우승을 산다는 비아냥과 멤버가 좋아서 우승했다는 비아냥보다는 오히려 선동열 감독의 우수한 지도력을 높이 사는 것이 옳을 것이고, '돈으로 우승을 산 공공의 적'이라는 말 보단 '타구단에 비해 우수한 실력을 갖춘 공공의 적'이란 말이 더욱 설득력이 있으리라 생각된다.
3. 공공의 적에서 절대자를 넘어 한국 야구의 레전드로...
문제(?)는 삼성의 이 강세가 결코 우연이 아니라는 것과 앞으로의 삼성은 더욱 강해질 것이라는 점이다. 삼성의 우승을 견인한 배영수, 권오준, 오승환등의 막강 투수라인은 20대 중후반의 젊은 선수들이란 것이 이를 뒷받침해준다. 거기에 그들에게는 한국시리즈를 2연패하면서 큰 무대를 끝까지 뛰어 본 경험이 있다. 경험보다 값진 자산이 없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앞으로 그 경험은 그들이 선수생활을 해나가면서 닥쳐올 위기에서 빛을 발할 것이다. 또한 구단 역시도 지금까지 해왔던 빵빵한 투자를 아끼지 않을 것이니 어쩌면 삼성은 8,90년대 한국 야구의 전설로 남아있는 해태타이거스와 같은 절대자가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정상의 자리는 오르기도 어렵지만 지키기는 더욱 어려운 법이다. 타구단들이 결코 삼성의 독주를 두고보지만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미 SK는 투수조련의 귀재라는 김성근 감독을 영입하며 삼성 잡기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고, LG역시 우승을 위해 김재박 감독을 사령탑에 앉혔으며, 박명환, 봉중근의 원투펀치로 부활을 준비하고 있다.
또한 한화 역시 지난해 한국시리즈에서 당한 패배를 곱씹으며 올해를 준비할 것이니 삼성의 수성은 더욱 힘들어 질 것이다. 그러나 절대자가 되기 위해선 이들의 도전을 이겨내야만 한다. 그러기 위해선 여기서 안주하지 말고 더 좋은 선수들을 사들이고 기존의 유망주들을 더욱 키워나가야 할 것이다.
물론 한 팀의 독주가 단기적으로 봤을땐 그다지 모양새가 좋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한국 야구에 봉착한 이 위기를 헤쳐나가기 위해선 삼성과 같은 절대자의 존재가 필요하다.
한국 바둑이 '절대자 이창호'를 잡기 위해 노력하며 실력을 쌓아 세계를 호령했듯이 타구단 역시 삼성을 잡기 위해 갖은 애를 쓰며 투자를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 투자와 노력, 그리고 끝없는 경쟁속에서 한국 야구의 수준을 높이며 세계 속에서 한국 야구의 위상을 높일 수 있을 것이고, 수준이 높아진 프로야구는 팬들이 자연적으로 찾으며 중흥을 이룰 것이고, 그러한 인기몰이에 힘입어 모기업들의 투자가 더욱 증가하며 한국 야구의 숙원인 '돔구장 신축'과 '유소년 야구의 발전'도 더욱 앞당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사자군단이여! 남들의 비아냥을 그들의 시기심으로 여겨라. '공공의 적'이란 비아냥도 정상의 자리에 있기에 들을 수 있는 절대자의 특권이다. 더 많은 투자를 아끼지 말라. 더 좋은 선수들을 키워가라. 그리고 더욱 우승하라. 그리하여 공공의 적을 넘어 절대자를 넘어 한국 야구의 살아있는 레전드가 되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