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최종편집일 2024-11-28 0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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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도 못하는 잔디운동장으로 왜 리모델링 했나?

기사입력 2006.12.29 14:13 / 기사수정 2006.12.29 14:13

이성필 기자
        
▲ 전북 익산 원광대학교 운동장이 리모델링 된 후의 풍경. 평일 수업 시간이지만 사용하는 사람이 없다.
ⓒ 이성필
[엑스포츠뉴스 = 이성필 기자] 지난 11월 7일 오후 전북 익산의 원광대학교에서 대운동장 완공식이 있었다. 인조잔디로 리모델링한 이 운동장은 국민체육진흥공단이 3억을, 익산시와 학교 측에서 9억을 부담해 총 12억을 들여 지역 주민들의 '생활체육시설 개선'과 '학교 축구부의 연습 여건 확보', '재학생들의 편리한 이용'이라는 세 가지 목적으로 완성된 사업이었다.

인조잔디 조성, 다목적으로 변화하는 운동장

국민체육진흥공단이 펼치는 생활체육시설 개선 사업의 하나로 진행된 원광대 운동장 리모델링 사업은 익산시에서 규모가 가장 큰 원광대가 선정돼 1년이 넘는 공사기간 끝에 완공되었다. (이 운동장 리모델링 사업은 대한축구협회가 역점을 두고 펼치고 있는 학교 잔디운동장 보급 사업과 관련이 없다.)

넓게 보면 '운동장의 잔디화'라는 점과 '맨땅의 개선'이라는 점에서 상당히 환영받는 변화였다. 또 이 운동장은 초·중·고등학교의 정규 축구 경기가 열릴 수 있는 조건이 되고, FIFA의 승인을 통과한 A급의 운동장으로 평가받아 지역 체육환경 개선에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또 수도권보다 열악한 스포츠 환경을 가진 중소지역에서의 운동장 개선 사업은 지역의 스포츠 인재들의 실력 향상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잔디 개선뿐 아니라 농구장과 인라인스케이트, 육상, 배구, 족구 등을 할 수 있게 다목적으로 개선되었기 때문이다.

개장식은 성대하게 이루어졌다. 시장을 비롯해 주요 지역 인사들이 행사를 찾아 이전의 흙 운동장과 달리 변화된 환경에 감탄을 했고, 많은 말들이 오고 갔다.

특히 대학 관계자들은 "(이 운동장에서) 학생들의 질 높은 체육 관련 과목의 수업은 물론 각종 학교 행사에도 요긴하게 쓰일 것"이라면서 긍정적인 생각으로 운동장의 변화를 받아들였다.

익산시도 이 변화를 환영했다. 이한수 익산시장은 "시민들이 이용할 수 있는 체육시설의 질이 높아진 점에서 상당히 좋은 변화"라며 "지역 생활 체육의 활성화와 함께 각종 스포츠 행사 유치 여건을 만들어 나간다는 점이 서로 좋은 역할을 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익산시는 올해 5월 금석배 전국학생축구대회를 치르기 위해 관내 체육공원에 인조잔디구장을 설치했다. 또 전남 목포로 확정되기는 했지만, 호남권역에 건립되는 축구센터 후보지에 들어가기 위해 익산시는 잔디구장을 건설했었다.

현재 이 계획은 다른 목적으로 전환되어 계속 진행되고 있다. 때문에 이 학교의 운동장 역시 장기적인 목적으로 펼친 개선 사업 중 하나였고, 적절하게 맞아떨어졌다.

누가 시설의 주인인가?

▲ 운동장 옆에는 육상 트랙과 함께 인라인스케이트 라인 등 다목적으로 구성되어 학생들과 일반인들의 이용을 상당히 편리하게 해줄 것으로 보인다. 야간에는 많은 이들이 육상 트랙을 돌며 운동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잔디 안으로는 '접근 금지'였다.
ⓒ 이성필
그러나 학내 반발은 상당히 심했다. 운동장 개장 행사 시작 무렵 운동장 뒤쪽에 있는 도로에서는 일부 학생들이 피켓을 들고 "학생들의 운동장 사용권을 보장하라"는 구호를 외쳤다. 행사 내내 시위를 벌인 이들을 행사 관계자들은 불편한 시선으로 쳐다봤다.

원광대 행동연대 소속의 문주현(26) 학생은 "리모델링을 하면서 잔디 보호라는 목적으로 학생들의 운동장 사용을 제한해 불편을 겪고 있다"며 이전 맨땅 운동장처럼 학생들의 자유로운 사용을 학교 측에 요구했다.

이어 문씨는 "학생들에게는 까다롭게 사용 제한을 두면서 정작 교직원들은 개장도 하지 않은 시험 기간 새벽까지 운동장에서 술판을 벌여 원성을 샀다"고 학교 측에 강한 불만을 표시했다.

이에 대해 원광대 체육실장은 "운동장 사용의 우선순위는 학생들의 수업이 무조건 1순위"라며 "학생들이 아직 운동장 사용에 대해 사항을 이해하지 못해 그런 것"이라고 밝혔다.

체육실장의 설명에 따르면 운동장은 평일 오전 9시∼오후 5시까지는 학생들이 우선적으로 사용할 수 있으며, 주말에는 주로 외부인들이 사용 신청을 해 쓴다고 한다. 그러나 교직원들의 술판에 대해서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반면 일반 학생들의 불만은 상당했다. 조성준(가명·22)씨는 "공사 계획을 1년 잡았다면서 한참 뒤에 완공하더니, 이제는 사용하려면 순서를 기다려야 하니까 짜증이 절로 난다"면서 "운동장 잔디가 얼마나 비싸면 천연잔디도 아닌데 옆의 농구장까지 못 들어가게 하느냐"고 말했다.

학생들이 터뜨린 불만은 대부분 학교 측의 빡빡한 사용제한에 가장 많았다.

학생들, "과도한 잔디 보호가 문제"

문제는 이것만이 아니었다. '인조잔디 수명 연한에 따른 보호'라는 명목으로 운동장 사용을 요일별로 제한을 두고 사용 순서를 정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학내에 있는 과별 사용신청 경쟁이 치열할 수밖에 없게 됐고, 늦게 신청한 학과의 학생들 불만이 고조될 수밖에 없었다.

사용 신청이 늦으면 잔디운동장 옆의 맨땅 운동장에서 과별 체육대회를 치러야 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이렇게 되면 행사를 치르지 못한 학과의 학생회는 일반 학생들로부터 상당한 불만에 시달려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원광대는 리모델링 완공이 늦어지면서 각 단과대별 행사 계획이 취소되거나 무산된 경우가 많았다.

▲ 멀정한 인조잔디운동장을 두고 옆 맨땅 운동장을 사용하고 있던 원광대학교 학생들. 학생들은 '치사해서' 쓰기 싫다는 대답을 내놓았다.
ⓒ 이성필
3주 전 첫 취재 이후 다시 찾은 원광대 운동장을 찾았다. 이 날은 평일인데도 사용하는 사람이 없었다. 혹시나 수업이 있는지 시간표를 확인했더니 수업이 없는 시간이었다. 그런데 인조잔디구장 옆에 있는 야구부와 같이 쓰는 맨땅 운동장은 사용하는 인원과 대기자들로 미어터지고 있었다.

맨땅 운동장에서 축구를 관전하던 한 학생은 "이번 총학생회 선거에서 '운동장 사용제한을 풀겠다'고 공약한 계열에 투표를 했다"면서 "학교 측의 사용 제한이 어이가 없다는 생각 때문에 이들과 싸울 계열에 표를 던졌다"고 말했다.

학생의 말대로 이 학교의 총학생회장 선거에서는 '운동장을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게 하겠다'는 계열의 후보가 상대방 후보(당시 총학생회장을 맡고 있던 계열)와 겨뤄 상당한 차이로 당선했다. 운동장에 대한 학생들의 불만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할만한 결과였다.

학교 측, 잔디구장 오래 유지하려면 사용 제한은 어쩔 수 없어

서울대학교에서도 이와 비슷한 일이 있었다. 지난 9월 중순 인조잔디구장을 개장한 이후 학생들에게는 6만원, 일반인들에게는 10만원의 사용료를 받고 있다. 한편, 무료 개방 시간은 월요일과 수요일 저녁 8시∼밤 10시까지 고작 두 시간으로 설정해 놓았다.

때문에 학생들로부터 "학교의 주인인 학생이 운동장을 사용하는데 돈을 내는 것 자체가 납득이 안 된다"는 강한 반발을 불러왔다. 더구나 사용절차도 상당히 복잡해지면서 학생들의 이용률은 점점 떨어지고 있다는 것이 서울대 학생들의 주장이다.

▲ 서울대학교의 대운동장 사용요금표. 재학중인 학생들의 경우 최대 6만원의 사용료를, 일반인들은 10만원을 내야한다.
ⓒ 서울대학교
두 학교의 사례는 맨땅에서 인조잔디로 교체하면서 잔디를 과도하게 보호하려는 학교의 태도와 생활체육으로서의 학교시설 운영에 따른 학생들의 불만이 얽혀있다.

학교 측은 체계 없이 사용을 허가하면 잔디의 수명이 금방 소진돼 10년 동안 사용할 것을 5년밖에 못 사용하기 때문에 학생들과 일반인에게 사용료를 받아야 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이 문제에 대해 축구협회의 권역별 잔디보급 학교로 지정되고도 포기한 경남의 한 축구부 지도자는 학교 측의 과도한 행동이 일부분 수긍이 간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이 지도자는 "축구부나 학교 학생들을 중심으로 잔디운동장을 쓴다고 해도 유지와 운영을 하려면 일반인에게 돈을 받고 사용허가를 내주기 때문에 일부분 학생들의 사용제한이 당연할 수밖에 없다"면서 "제한의 이유로 일반인들과 축구부 혹은 학생들의 사용 시간이 겹칠 경우 일반인들이 운동장에서 쫓겨나는 경우가 다반사인데, 학생들 위주의 사용제한에 불만을 품고 야간에 몰래 들어와 잔디구장 안에 유리병이라도 던지고 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 지도자는 "(일반인들이) 국민의 세금이 일부 들어간 생활체육과 연계되는 시설인데 왜 학원 중심으로 이용을 하게 하느냐며 불만을 품을 수 있다"면서 "때문에 학생들이나 축구부가 운동장을 사용할 때 깨진 유리조각에 부상을 당할 우려가 있고, 최악의 경우 잔디를 모두 갈아야 하기 때문에 제한 조치를 두는 당연하다"고 설명했다.

앞으로 운동장은 '경호'를 받을 것인가?

이러한 주장은 설득력이 있으나 잔디운동장 관리인들이 24시간 3교대로 상주하는 특수한 상황에서는 설득력이 떨어진다. 그리고 인조잔디의 수명은 짧게 잡아도 8년이다. 더불어 최근 교육부나 각 자치단체, 축구협회 등의 정책적 판단으로 인조잔디를 기본으로 한 운동장이 급속히 늘어나는 추세가 되면서 학교 측의 과도한 보호는 설득력을 잃는다.

특히 생활체육으로서의 성격이 있는 학교 운동장이 '잔디보호'라는 명목으로 일반인들에게까지 과도한 사용요금을 징수하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다른 시각에서 '돈벌이를 위해 학교 운동장을 일반인에게 개방해 학생들의 사용제한을 불러오는 것은 아닌가' 하는 주장을 학교 측이 어떻게 풀어갈지도 궁금하다.

인조잔디운동장 사용을 놓고 벌어지고 있는 학교와 학생들 간의 갈등과 나아가 학교와 일반인 간의 '운동장 사용 힘겨루기'가 개선되지 않는다면 앞으로 인조잔디로 리모델링 되는 학교들에서도 같은 갈등이 발생할 것으로 보인다.


이성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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