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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바 토크](25) 그라운드의 지휘자, 카카

기사입력 2010.04.30 09:55 / 기사수정 2010.04.30 09:55

박문수 기자

[엑스포츠뉴스=박문수 기자] 부상으로 신음하던 ‘그라운드의 황태자’ 카카가 우리 곁으로 돌아왔다.

카카는 지난 25일 새벽(한국시각) 라 로마레다 경기장에서 열린 2009-2010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34라운드 사라고사 원정 경기에서 후반 38분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의 패스를 결승골로 연결, 팀의 2-1 승리를 이끌었다. 이날 승리로 레알 마드리드(이하 레알)은 리그 선두 FC 바르셀로나(이하 바르사)와의 승점 차를 1점으로 유지, 리그 우승의 희망을 되살렸다.

카카의 복귀가 반가운 이유

카를루스 둥가의 브라질은 2010 FIFA 남아공 월드컵 우승이란 대업을 위해 늘 전진했다. 2006년 8월, 카를루스 파헤이라에 이어 브라질의 사령탑으로 부임한 그는 여러 선수를 실험하며 자신만의 브라질을 만들었으며 이들과 함께 자국의 통산 6번째 월드컵 우승을 노리고 있다.

그럼에도, 이번 시즌 후반기를 기점으로 가속화된 카카의 부진은 브라질 우승 전선의 먹구름으로 다가왔다.

애초 둥가는 호나우지뉴를 비롯해 내로라하는 스타 플레이어들을 브라질 대표팀의 주연으로 등용하고자 노력을 했지만, 결과는 카카에 의한 브라질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표팀 에이스 카카의 부진은 언론과의 사이도 좋지 못하며 수비 위주의 축구라는 비아냥을 받던 둥가의 머리를 더욱 복잡하게 했다.

모든 감독이 그러겠지만, 유독 브라질 대표팀 사령탑은 언론과 팬들의 질타에 익숙해야 한다.

브라질을 이끄는 수장은 여느 감독보다 힘들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언론이란 맹수의 사냥감으로 불리는 브라질 감독은 내부의 적의 민감한 반응에 늘 대응해야 한다. 아무리 브라질이란 강팀의 사령탑이 됐을지라도, 잇따른 공격에 임기 내내 가시방석에 앉은 기분이 들 것이다. 더구나 전임 감독의 성적이 실패에 가깝다면, 후임은 더욱 큰 압박을 견뎌야 할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카카의 복귀는 보이지 않는 압박에 휘둘린 둥가에게 힘을 불어 넣을 것이다. 더구나 월드컵이 42일 앞으로 다가온 상황에서 대표팀 에이스가 정상적인 모습을 보여줬으므로 말할 나위 없이 기쁠 것이다.

그렇다면 이번 삼바 토크 25편은 브라질의 황태자, 그라운드의 마에스트로 카카에 대해 알아보자.

밀란의 중심으로 성장한 카카

카카는 2002년 월드컵을 통해 브라질 대표팀의 일원이 됐다. 비록 그가 경기에 나선 것은 C조 조별 예선 3차전 코스타리카와의 경기에서 히바우두와 후반 교체 투입된 것이 전부지만, 어린 선수에게 브라질 대표팀 구성원의 자리를 준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카카의 축구 인생에 전환점이 된 것은 AC 밀란 입단이었다.

現 AC 밀란의 감독인 레오나르두 나스시멘토가 상 파울루에서 선수 생활을 보냈을 때 맺은 인연으로, 싼값에 밀란에 입단한 카카는 자신의 전매특허인 등번호 22번과 함께 입단 첫 시즌 소속팀의 이탈리아 세리에A 리그 우승을 이끈다. 게다가 카카의 경쟁자는 클래식 플레이메이커의 교과서로 불리는 마누엘 후이 코스타였다.

한편, 카카가 후이 코스타를 밀어내며 밀란의 주전 자리를 차지한 이유는 간단했다.

우선 그는 반 박자 빠른 패스 타이밍을 바탕으로 상대 수비진을 한순간에 무력화할 수 있는 능력을 지녔다. 상대 미드필더의 강한 압박을 쉽게 이겨내지 못한다는 단점이 있지만, 2004-2005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이하 챔스) 결승전 리버풀과의 경기에서 보여준 스루패스를 비롯해 지난 2010 남아공 월드컵 지역 예선 아르헨티나와의 2차전에서 파비아누에게 연결한 패스가 그의 장점인 반 박자 빠른 패스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이다.

게다가 카카는 다른 공격형 미드필더와 비교하면 월등하게 우월한 주력을 지닌 선수였다. 우스갯소리로 얘기하자면 전성기 카카의 위닝 일레븐 드리블 스피드는 99였다. 카카의 빠른 발은 그의 포워드적 성향을 일깨웠다.

지난 2006년 여름, AC 밀란은 안드레이 셰브첸코라는 강한 창을 첼시에 내주며 공격진의 누수가 컸음에도, 그 시즌 챔스 우승이란 대업을 달성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당시 밀란의 사령탑인 카를로 안첼로티는 카카의 포워드적 성향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필리포 인자기의 밑 선에 그를 배치하면서 공격적 능력을 최대한 활용했다. 덕분에 카카는 그 시즌 챔스 득점왕과 모든 선수의 꿈인 발롱도르, FIFA 올해의 선수상을 모두 거머쥐는 행운을 잡는다.

카카의 주력에 대해 얘기하자면 그의 빠른 발은 상대 수비진이 방어하는 과정에서 한순간의 무너뜨리는 장점을 갖고 있다. 게다가 섬세함까지 갖춘 그의 볼 컨트롤 능력은 그의 장기를 최대로 발휘할 수 있게 하며 역습에 그 어느 선수보다 능했다. (2007-2008시즌 밀란 더비에서 인테르의 수비수 왈테르 사무엘은 카카를 방어하다가 그의 빠른 발에 무릎이 꺾이는 부상을 당한 적이 있다)

브라질에서의 카카, 조연에서 주연까지

브라질에서의 카카는 두 가지 역할을 주문받았다.

우선 카카가 밀란에서 세리에A의 정상급 플레이메이커가 된 시점, 브라질은 역대 최고의 선수 중 하나로 불리는 호나우지뉴가 존재했다. 카카와 호나우지뉴를 동시에 지닌 브라질은 당시 어느 국가에서도 누려보지 못했을 행복한 고민에 빠졌지만, 두 선수는 동선이 겹친다는 심각한 문제점이 있었다.

당시 호나우지뉴는 바르사의 왼쪽 윙 포워드로 경기에 나섰는데 아이러니하게 카카는 중앙에서 공격을 지휘하는 공격형 미드필더였음에도, 왼쪽에서의 움직임을 선호했다. 게다가 브라질과 달리 밀란에서의 카카는 클라렌세 셰도르프와 안드레아 피를로라는 조력자의 도움을 받았으며 굳이 직접 나서서 공격 과정에서 빌드업을 할 필요가 없었다.

브라질 얘기로 돌아와서, 카카와 호나우지뉴는 동선이 겹친다는 문제점도 있었지만, 호나우두와 아드리아누라는 정적인 스트라이커가 앞에 배치된 점도 악재였다.

이쯤에서 단적인 예를 하나 들어보겠다. 만일 당신이 오랜 기간 기다린 영화를 관람하기 위해 극장에 들어섰을 때 덩치가 큰 남자 때문에 시야가 가려졌다고 상상해보자. 중요한 장면에서 그는 마치 영화의 주인공처럼 몸을 흐느끼면서 당신의 영화 관람을 철저히 방해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영화 관람이 지속한다면, 상영이 끝나고 나서도 기다림과 설렘에 대한 보상보다는 머릿속을 맴도는 앞사람에 대한 분노 때문에 기분이 내키지 않을 것이다.

카카와 호나우지뉴도 마찬가지였다. 이들의 공존이 실패한 원인은 동선이 겹치는 문제점도 있었지만, 외부적 요인도 컸다. 앞서 말했듯이 호나우두와 아드리아누는 정적인 포워드다. 이는 그들의 움직임이 제한적이고 문전 앞에서 고립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입증한다. 호돈이라는 별명을 얻은 호나우두는 비대해진 몸으로 4년 전과 확연히 다른 모습으로 상대 수비진을 교란하지 못했으며, 아드리아누는 한 마리의 흑곰과 같았다.

즉 카카와 호나우지뉴는 두 선수 때문에 자신의 활동영역이 축소됐으며 진가를 제대로 발휘할 수 없었다.

2006 월드컵 경기를 살펴보면 호나우지뉴가 자주 이메르송과 제 호베르투가 있는 중앙까지 내려와서 공을 배급하는 것과 카카가 왼쪽에서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수비 가담이 적은 이들이 상대와 부딪히는 상황에서 보여주는 머뭇거림은 보는 이로 하여금 안쓰럽다는 생각마저 들게 했다.

필자는 2006 브라질에 대한 아쉬운 요인 중 하나가 호비뉴를 기용하지 않은 파헤이라의 전술이었다. 만일 투 톱 중 한 명이 호비뉴였다면 더욱 활발한 활동량을 바탕으로 공격을 이끌 수 있다는 점이었다는 것도 정적인 투 톱의 부진과 상반된다.

2006 월드컵을 기점으로 브라질은 확실히 변했다. 4-2-2-2라는 극단적인 공격 전술은 사라졌으며 4-3-1-2라는 비교적 안정적인 체제를 갖췄다.

둥가는 기존의 포 백을 유지하면서 지우베르투 시우바에게는 수비적인 역할을, 펠리페 멜루는 시우바와 함께 수비적인 임무를 수행하면서 때에 따라서는 공격에 가담했다. 엘라누(혹은 하미레스)는 오른쪽의 지배자 마이콘이 오버래핑을 시도하는 상황에서 공간을 메우면서 때에 따라서는 직접 공격에 가담한다. 수비적인 시우바가 이들의 공백을 메우면서 철저하게 안정성을 택했다.

카카는 이 세 명의 미드필더 위에 꼭짓점으로써 철저히 공격을 지휘한다. 주력이 빠르다는 장점은 밀란에서 당한 혹사 문제와 겹치며 신체적인 능력의 저하로 서서히 자취를 감추지만, 카카의 참모습이 드러나는 정확한 패스를 통한 섬세한 플레이를 가능하게 한 것이다.

패스를 통해 종적인 움직임을 보여주는 카카는 횡적이고 활동량이 뛰어나며 상대 수비진을 공략하는데 훌륭한 드리블 능력을 갖춘 호비뉴와 함께 종횡무진 공격을 누빈다는 장점을 발휘하게 하였다.

드리블이 투박하다는 단점을 지닌 파비아누도 확실한 도우미를 두었기 때문에 더욱 편하게 문전 앞에서 득점에 치중할 수 있었다.

결국, 2006년 파헤이라가 이메르송(혹은 지우베르투 시우바)라는 확실한 볼란치(브라질에서는 수비형 미드필더를 볼란치라 부른다)를 두면서 공수의 연결고리로 제 호베르투를 둔 것과 달리, 둥가는 볼란치를 두 명을 두면서 공격적인 구실을 하는 선수를 한 명 제외함으로써 안정적인 팀을 만든 것이다.

남아공에서의 카카를 기대하며

카카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레알에 동시에 입성했을 때 다수의 축구 팬은 레알의 주인공은 카카가 될 것이라 예상했지만, 결과는 반대였다. 팀플레이에 녹아들며 몸값이 아깝지 않을 만큼 빼어난 기량을 보여준 호날두와 달리, 카카는 잇따른 부상과 적응에서의 어려움으로 기대 이하의 선수로 전락했다.

그럼에도, 카카는 레알 의료진의 배려로 자신의 족쇄였던 스포츠 헤르니아에서 어느 정도 벗어날 수 있었으며 남아공에서의 비상을 노릴 것이다. 과연 카카가 브라질의 에이스로서 조국의 통산 6번째 월드컵에 크게 이바지할 수 있을지 42일 뒤에 펼쳐질 축구 잔치에서의 그의 모습이 기대된다.

▶ 둥가 체제의 브라질 베스트 11 



박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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