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최종편집일 2024-09-20 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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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표의 왼쪽은 견고했다.

기사입력 2006.03.12 10:46 / 기사수정 2006.03.12 10:46

손병하 기자



11일(한국 시각) 밤, 첼시의 홈구장인 스탠포드 브릿지에서 열린 05/06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29라운드 토트넘 홋스퍼와 첼시의 경기. 많은 국내 축구팬들의 시선은 '최강' 로만 군단에 맞서는 이영표에게로 쏠려 있었다.

프리미어리그 진출 후, 첼시와 처음 만나는 이영표가 조 콜, 데미안 더프, 숀 라이트-필립스 등 리그 정상급 공격수들을 맞아 어떤 수비력을 보이는지와 마케렐레, 램파드, 페레이라가 버티는 수비진을 무력화시키는 드리블을 펼칠 수 있을까에 관심이 집중됐다.

비록 경기는 1-2로 아쉬운 패배를 기록하면서 16년간 개지 못하고 있는 '무승' 징크스를 털어버리지 못했지만, 이영표의 활약은 프리미어리그 정상급 왼쪽 윙백이란 찬사가 아깝지 않을 만큼 인상적이었다.

이영표, 숀 라이트-필립스를 잠재웠다.

수비를 두텁게 하면서 역습에 무게를 두는 '카운트 어택'의 경기 스타일을 보이는 첼시를 의식해서인지 이영표는 비교적 공격을 자제하면서 수비라인을 견고히 하는데 많은 신경을 썼다. 더군다나 첼시의 오른쪽 측면 공격수로 출장한 숀 라이트-필립스의 스피드와 개인기가 탁월해 라이트-필립스의 빠른 돌파를 제지하기 위해서 자신의 위치를 지키는 플레이에 중점을 뒀다.

후반 중반까지 라이트-필립스를, 이후엔 에르난 크레스포와 디디에 드록바를 수비하며 왼쪽을 지켰던 이영표의 수비력에는 합격점을 줄만 했다. 수비시 상대에게 너무 시간과 공간을 허용하는 플레이도 두 차례 있었지만, 1:1 대결과 예측 수비에서 뛰어난 기량을 과시하며 첼시의 오른쪽 공격을 무력화시켰다.

특히, 잉글랜드 오른쪽 날개의 차세대라 불리는 숀 라이트-필립스와의 맞대결에서 완승을 거두며 공격 가담 능력 못지않은 수비력도 또 한 번 인정을 받게 됐다. 비록 경기 초반 라이트-필립스에게 결정적인 어시스트를 제공하는 태클 실패를 하기도 했지만, 이는 이영표의 실책이라기보다는 마이클 캐릭의 패스 미스였다고 봐야 한다.

이후 이영표는 라이트-필립스와의 계속된 대결에서 이기며 첼시의 오른쪽을 무력화시키는 데 성공했다. 라이트-필립스와 1:1 대결을 펼친 7번의 장면에서는 전반 10분 슈팅을 허용한 것 외에 모두 막아내며 공의 소유권을 빼앗아오는 데 성공했다. 라이트-필립스에게 스피드와 개인기 어느 것 하나 뒤지지 않으며 우위에 섰다.

이영표에 의해 오른쪽 공격 루트를 잃어버린 첼시는 조 콜과 윌리엄 갈라스가 있는 왼쪽으로 치우쳤으며 실제로도 왼쪽에서 더 많은 기회를 만들어냈다. 또, 후반 추가시간에 터진 갈라스의 결승골도 왼쪽을 방어하던 스톨테리와 제나스가 무너지면서 허용한 것이었다.

이영표, 수비력도 정상급.

이영표가 이번 경기에서 보여준 수비력은 1:1 대결 외에도 많은 부분에서 높은 수치를 기록하며 나타났다. 상대의 롱패스와 땅볼 패스를 차단하며 역습을 만들어가는 능력도 탁월했고, 상대 공격수의 진로를 미리 읽고 위치를 선점하는 능력도 뛰어났다. 전반 종료 직전에는 첼시의 결정적인 슈팅을 몸으로 막아내기도 했었다.

이영표는 헤딩과 태클을 포함해 모두 14번이나 상대의 패스를 차단했다. 1:1 방어까지 포함하면 상대 공격을 무력화시킨 횟수는 20번이 넘는다. 이영표가 볼 터치가 비교적 많은 중앙 수비형 미드필더가 아닌 측면 수비수임을 가만 한다면 20회가 넘는 상대 공격 차단은 꽤 높은 수치이다.

또, 공중볼에서는 단신의 약점을 커버하기 위해 공의 낙구 지점을 미리 파악해 상대 공격수보다 먼저 공에 접근하며 안정적인 클리어를 해냈다. 후반 28분에는 토트넘의 오른쪽을 무너뜨린 더프의 날카로운 크로스를 헤딩으로 걷어내며 실점 위기에서 벗어나기도 했다.             

상대 공격수의 드리블 방향과 움직임을 간파해 진로를 차단하는 고급스런 수비력도 몇 차례 선보였다. 후반 2분, 라이트-필립스가 빠른 드리블로 역습을 꾀하자 이영표는 라이트 필립스의 진로를 사이드 라인 쪽으로 몰고가면서 몸싸움을 유도해 라이트-필립스가 의도한 공격을 전개하지 못하도록 했다. 후반 36분에도 왼쪽 터치 라인에 있는 드록바에게 패스된 공에 먼저 접근해 드록바의 진로를 차단하며 공의 소유권을 지켜내는 플레이를 보여주었다.

무엇보다 이영표에게 높은 점수를 주고 싶은 부분은 기본적인 수비력 외에 공의 소유권을 빼앗은 다음 상황의 플레이 전개가 매끄러웠다는 점이다. 비록, 후반 라이트-필립스에게 빼앗은 공을 드리블로 연결하다 상대에게 차단당한 장면도 분명 있었지만 전체적으로는 수비에서 공격으로 연결하는 순간에서 공의 소유권을 지켜나가는 데 좋은 흐름을 보여주었다.

상대의 공격을 차단하면서 무의미한 걷어내기나 터치 라인 아웃을 시키며 상대에게 다시 공의 소유권을 빼앗기지 않고, 차분한 드리블과 패스로 공격 흐름을 이어나갔던 장면들은 이영표가 프리미어리그에서도 정상급 윙백에 속한다는 사실을 뒷받침할 만했다.

많은 사람은 '수비수는 머리가 좋아야 한다.'라고 말한다. 공격수는 차가운 머리보다는 동물적인고 직관적인 감각에 의존해야 하지만, 수비수는 상대 공격수의 감각을 능가하는 날카롭고 빠른 두뇌 회전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상대의 움직임에 따라 다음 수비 방법이 결정되기 때문에, 명석하고 차가운 두뇌는 수비수에겐 필수요건인 셈이다.

이날 경기에서 이영표가 보여준 공격 차단과 1:1 대인마크 상대 공격수의 움직임을 역이용하는 수비력 등은, 머리가 좋은 수비수의 모습을 충분히 보여준 경기를 펼쳤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차갑고 명석한 두뇌를 가진 이영표의 활약이 앞으로 더욱 기대된다.



손병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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