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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S 4승' 무쇠팔의 전설

기사입력 2006.02.20 20:21 / 기사수정 2006.02.20 20:21

윤욱재 기자

팬들의 사랑 속에 무궁무진한 발전을 이뤄 온 한국프로야구가 어느덧 25년째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프로야구는 수많은 경기들을 통해 팬들을 웃고 울리는 동안 불세출의 스타들이 탄생하였고, 또 그것이 야구 발전의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엑스포츠 뉴스에서는 윤욱재 기자를 통해 스타 선수들의 화려했던 전성기를 찾아 떠나보는 시간을 가져볼까 합니다. 박철순부터 손민한까지 '그 해에 가장 인상적이었던 선수'를 중심으로 집중 조명합니다. 앞으로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편집자 주>

[프로야구 25년 특별기획 - 나의 몬스터시즌 4] 1984년 최동원


명예회복 선언

1983시즌엔 초특급 신인들로 북적했다. 장효조, 김재박, 김시진 등 쟁쟁한 수퍼루키들의 세상이었다. 이들이 한꺼번에 프로 무대에 등장한 이유는 따로 있다. 전년도에 열린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최강 멤버를 내세우기 위해 이들의 프로진출을 1년씩 미룬 탓이었다.(정작 신인왕은 박종훈이 탔다.)

그런데 쓰린 입맛을 다신 선수가 있었으니. 다름 아닌 최동원. 경남고 시절 한 경기 탈삼진 20개를 기록하는가 하면 노히트노런도 작성, '초고교급 투수'로 인정받은 후 연세대에 진학한 최동원은 변함없는 강속구를 자랑하며 메이저리그 구단의 입단 제의도 받는다. 그리고 본격적인 성인 무대의 출발점이었던 실업 롯데 시절엔 팀을 우승으로 이끌며 명실상부한 대한민국 최고의 야구 선수로 자리 잡는다.

그랬던 그가 프로에 와서 첫 해 성적이 고작 9승이라니.(거기에 16패씩이나.) 계약금 7000만원으로 특급 대우를 받은 최동원으로선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다. 물론 나중에 부상이 있었음이 드러나지만 그래도 자존심 상하는 건 매한가지였다.

1984년. 이 해에 최동원은 모든 것을 걸겠다는 심정으로 스프링캠프에서부터 열성적인 모습을 보이며 각오를 다져 나갔다. 무쇠팔의 전설은 그렇게 시작된 것이다.

부산 갈매기의 힘찬 비상

전기리그에서 최동원은 달라진 그의 모습을 확인시켜주었다. 이미 전기리그에서 지난해 거뒀던 승수를 채워놨고 낙차 큰 커브와 슬라이더의 위력이 살아난 것이 고무적이었다.

그리고 시작된 후기리그. 롯데의 상승세와 함께 최동원의 힘찬 역투가 계속되면서 야구판은 또 한 번 지각변동을 겪게 된다. 롯데가 선두로 치고 나가며 OB(지금의 두산)와 경쟁을 벌이게 되자 당시 강병철 감독은 최동원을 선발과 구원을 가리지 않고 투입시키며 '승리 지킴이'로 활용했다.

하지만 OB의 저력도 만만치 않아 후기리그 선두 다툼은 끝까지 알 수 없는 상황으로 전개되었다. 그런데 이 때 전기리그 우승팀 삼성이 때 아닌 불청객으로 등장했다. 이른바 한국시리즈 파트너를 고르기 위한 져주기 게임. 한국 스포츠 역사상 가장 지저분한 순간으로 기억되는 이 때 삼성은 서로 으르렁거리는 사이였던 OB를 탈락시키고 롯데를 파트너로 선택했다.

물론 어부지리로 롯데가 한국시리즈에 진출한 건 사실이지만 그래도 최동원이 없었다면 롯데의 한국시리즈 진출이 불가능했던 것도 사실이었다. 후기리그에만 18승을 거두었으니 '최동원 없는 롯데'는 상상 조차 하기 힘들었다.

어쨌거나 한국시리즈에 진출, 우승을 노리게 된 강병철 감독은 최동원에게 "1, 3, 5, 7차전에 나갈 준비를 하라"고 주문했고 실제로 최동원은 6차전까지 합해 5게임에 등판하게 되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참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아, 자고 싶어요"

한국시리즈 1차전. 롯데 선발은 당연히 최동원이었다. 최동원은 가히 국가대표급 라인업이라 부를 수 있는 삼성 타선을 상대로 한 점도 안 내주는 역투를 펼치며 완봉승을 거두었다. 역대 한국시리즈 사상 첫 완봉. 상대 선발 역시 삼성의 에이스 김시진이었지만 최동원의 '정면돌파' 앞에 무릎을 꿇어야했다. 2차전은 최동원이 '없었던 탓'인지 삼성의 승리로 돌아갔다.

부산으로 옮긴 3차전에서 선발 등판한 최동원은 또 한 번 완투하면서 팀 승리를 이끌었다. 무려 12개의 탈삼진을 솎아내며 삼성 타선을 꽁꽁 묶었다. 최동원이 나온 경기에서 무조건 이겨야했던 롯데는 9회말 정영기의 끝내기안타로 승리의 마침표를 찍으면서 우승의 반환점이라 할 수 있는 2승을 먼저 따냈다. 4차전은 역시 최동원이 없는 롯데 마운드를 무차별 공략한 삼성의 완승이었다.

롯데의 운명은 최동원의 존재 여부에 따라 달라지기 마련이었다. 롯데는 5차전에 다시 등장한 최동원을 무조건 믿어야할 처지였다. 최동원은 팀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호투하고 있었다. 승리가 눈앞에 보였다. 그러나 7회 대타로 등장한 정현발에게 역전홈런을 맞고 결국 주저앉고 말아야했다. 삼성은 마치 우승이나 한 듯 여유로웠다. 제 아무리 최동원이라도 6차전에 다시 나와 이런 역투를 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롯데로선 어쩔 수 없지만 일단 6차전에 임호균을 선발투수로 내세워 게임을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도 롯데는 리드를 잡아나갔고 잘만 하면 이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왠지 모르게 불안한 느낌을 감출 수 없었다. 안되겠다 싶었다. 믿을 투수는 오로지 최동원뿐. 기어코 다시 나온 최동원은 남은 5이닝을 무실점으로 틀어막고 승부를 끝까지 밀고 갔다.

최동원 덕분에 당시 한국시리즈는 사상 첫 7차전 승부로 이어졌고 롯데는 최동원의 역투와 유두열의 드라마틱한 역전 스리런을 앞세워 감격스런 첫 우승 신화를 이뤄냈다. 최동원은 볼 끝의 힘이 떨어질 대로 떨어진 상태에서 오기와 정신력으로 이를 극복하며 결국 혼자 한국시리즈 4승 전승을 이뤄내는 전설을 남기고 말았다.

대망의 우승을 혼자서 이뤄낸 최동원은 경기 직후 우승 소감을 묻자 "아, 자고 싶어요"라는 짧은 한마디로 대신했다. '무쇠팔' 최동원도 결국 인간이었음을 알 수 있었던 솔직한 대답이었다.


최동원 (1984) → 27승 13패 6세이브 방어율 2.40



윤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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