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09.12.03 08:36 / 기사수정 2009.12.03 08:36
[엑스포츠뉴스=조영준 기자] "(김)연아의 등장은 한국 피겨 역사에 새로운 획을 그었습니다. 현재 링크에서 땀을 흘리고 있는 선수는 모두 연아의 영향을 받았지요. 세계 정상에 올라선 모습도 보기 좋지만 우리도 할 수 있다는 희망을 심어준 점이 연아가 세운 가장 큰 공로입니다"
'피겨 여왕' 김연아(19, 고려대)가 '2009-2010 ISU(국제빙상경기연맹) 피겨 스케이팅 그랑프리 파이널이 열리는 일본 도쿄에 도착해 적응 훈련에 한창이다. 김연아는 2번의 그랑프리 대회를 모두 휩쓸고 파이널에 진출했다. 지난 11월 중순에 열린 'Skate America'가 끝난 뒤, 여전히 좋은 페이스를 유지하고 있는 상태라서 김연아의 선전이 예상되고 있다.
김연아와 함께 이번 그랑프리 파이널에 함께하는 이가 있다. 이지희(47) 대한빙상경기연맹 부회장은 국내 최초로 ISU 공인 국제심판 자격증을 따냈었다. ISU 국제심판인 그는 피겨 스케이팅 대회 중, 가장 굵직한 대회인 그랑프리 파이널과 4대륙 선수권, 그리고 세계 선수권에서 심판을 맡을 수 있다. 또한, 내년 2월에 열리는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도 심판의 역할을 수행하게 됐다.
"지난 시즌에는 주니어 세계선수권과 시니어 세계선수권에서 한국 심판이 안 뽑혔어요. 하지만, 이번 시즌엔 주니어 월드는 물론, 세계선수권 심사도 맡게 됐습니다. 세계선수권 전에 열리는 올림픽도 나가게 됐는데 책임감이 훨씬 무거워졌다는 생각이 들어요"
피겨의 흐름이 읽고 싶어서 시작한 심판의 길
이 부회장은 은석초등학교 1학년 시절부터 스케이트를 시작했다. 어린 시절부터 피겨를 시작한 그는 78년과 79년 종합선수권대회에서 여자 싱글 주니어 부분 1위에 오르기도 했다. 당시 이화여고 2학년에 재학 중이던 이 부회장은 스케이트와 공부를 병행하기 위해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운동만 해서 그런지 공부에 대한 열망이 컸어요. 하지만, 스케이트도 쉽게 그만둘 수 없었죠. 결국, 이 두 가지를 병행하기 위해 유학을 떠났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학업에 전념하게 됐고 결국엔 선수 생활을 마감하게 됐죠"
펜실베이니아 대학을 졸업한 그는 피겨와는 다른 길을 걷게 됐다. 그러나 어릴 적부터 시작한 스케이팅의 길은 완전히 접을 수 없었다. 결국, 피겨에 대한 새로운 공부를 시작하게 됐고 심판의 길을 가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다.
"한국 피겨가 발전해나가는 모습을 꾸준히 지켜보고 싶었어요. 또한, 국제 수준의 피겨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도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피겨에 대한 공부를 계속하면서 흐름을 읽을 수 있는 심판의 길을 선택하게 됐죠. 국내 심판은 1988년도부터 시작했어요. 그리고 94년도부터 국제대회의 심사도 맡게 됐습니다"
막상 국제심판이 됐지만 국제대회 횟수가 적었던 당시에는 심사를 맡을 기회가 많지 않았다. 그러나 주니어 그랑프리 시리즈가 생기면서 세계 피겨의 흐름을 읽을 수 있는 폭이 늘어났다. 또한, 심사의 경험을 쌓을 수 있는 장도 마련되었다.
특히, 피겨 강대국들이 꾸준하게 강세를 이어갈 수 있었던 구 채점 시스템이 사라지고 신 채점제가 들어선 점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신 채점제의 장점에 대해 이 부회장은 이렇게 평가했다.
"신 채점제로 들어오면서 주관적인 기준이 한층 객관적으로 기준으로 바뀌게 됐어요. 구 채점제는 선수들을 비교 평가하면서 순위에 맞추는 방식이었지만 신 채점제는 이러한 경향이 많이 바뀌었죠. 채점 방식이 디테일하게 변했기 때문에 심판의 역할과 해야 할 일이 훨씬 늘어났어요. 또한, 구 채점제와 비교해 프로그램을 분석할 수 있는 폭이 넓어졌습니다."
특히, 특정한 기술에 GOE(가산점)이 매겨지는 부분은 신 채점제의 핵심 중 하나였다. 정확하고 깔끔하게 이루어진 기술에 2~3점에 이르는 가산점을 주는 부분은 심판의 역할을 더욱 넓혀놓았다.
"선수들을 서로 비교해가면서 점수를 주었던 구 채점에 비교해 신 채점은 많은 요소가 객관적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리고 정확하게 이루어진 기술에 가산점이 들어가는 방식은 매우 합리적이라고 생각해요"
김연아가 현존하는 최고의 스케이터가 될 수 있었던 원인은 '질이 뛰어난 기술'을 구사했기 때문이다. 정직한 기술을 구사한 김연아는 가장 많은 가산점을 받는 선수가 됐다.
"신 채점제에서 높은 점수를 받으려면 할 수 있는 기술을 완벽하게 하는 점이 중요합니다. 스핀의 레벨을 올리기 위해 무리하게 시도를 하는 것보다 조금 낮은 수준의 스핀이라고 완벽하게 구사하면 가산점을 얻을 수 있어요. 신 채점제의 포인트는 여기에 있죠"
2006년 주니어 월드가 가장 기억에 남아
주니어 그랑프리 시리즈의 심판진에 참가해 심사를 맡은 그는 세계 피겨의 흐름을 읽을 수 있었다. 기술과 표현력이 점점 발전해갔지만 한국 선수들은 늘 하위권에 머물었던 점이 아쉬움으로 남았다.
그러나 이러한 관념을 깨트리는 선수가 나타났다. 어린 나이에 트리플 5종 점프를 모두 익힌 '천재 소녀'는 어느새 국제 주니어 무대를 휩쓸기 시작했다. 당시, 주니어 무대에서 최강자로 군림한 아사다 마오(19, 일본 츄코대)의 존재는 상당했다.
일본 언론들은 아사다를 '미래의 세계 챔피언'이라고 대대적으로 소개하며 자국에서 나온 유망주를 찬양했다. 그러나 2006년에 벌어진 주니어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정상에 올라선 선수는 김연아였다.
"연아가 참가했던 경기는 모두 인상적이었어요. 하지만, 그 중에서도 2006년도에 있었던 주니어 월드가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그때 연아가 아사다 마오를 누르고 우승을 했던 과정은 굉장히 드라마틱 했어요"
아사다 마오는 트리플 악셀을 내세웠지만 점프는 물론, 피겨의 모든 요소에서 우위에 있었던 김연아에 밀리고 말았다. 열악한 한국 피겨의 환경 속에서 이러한 선수가 배출된 점은 기적과도 같았다.
"주니어 월드 우승 이후, 연아의 존재는 본격적으로 세계에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한국 피겨의 고른 발전이 이루어지려면 심판진들의 육성이 필요하다
심판진은 큰 보수 없이 일하는 '명예직'이다. 대회마다 일정한 액수의 비용이 지불되지만 매우 적은 비용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봉사직'에 가까운 피겨 심판을 하려는 지망생들은 매우 적다고 이 부회장은 털어놓았다.
"피겨 선수를 하다가 은퇴하면 대부분 심판보다 코치를 지원하게 돼요. 피겨 심판은 보수가 없고 대회 때마다 움직이기 때문에 다른 일을 병행할 수밖에 없습니다"
비록, 봉사직에 가까운 직업이지만 많은 국제심판은 이 일을 즐기면서 하고 있다고 이 부회장은 밝혔다. 또한, 피겨의 흐름을 읽을 수 있고 책임감을 가지면서 공부할 수 있는 점이 이 직업의 매력이라고 강조했다.
"한국 피겨의 고른 발전이 이루어지려면 심판진들의 양성도 중요합니다. 요즘, 심판을 하겠다는 젊은 친구들이 많지 않아 아쉬운 것은 사실이죠. 하지만, 전반적인 시스템이 고르게 발전되려면 훌륭한 심판진들의 육성도 반드시 이루어져야 합니다"
지난 1일, 일본에서 벌어지는 그랑프리 파이널의 심사를 맡기 위해 이 부회장은 일본으로 출국했다. "이번 대회의 가장 강력한 우승후보는 김연아"라고 평가한 그는 "연아로 인해 피겨가 인기 종목이 된 점도 무척 기쁘게 생각해요. 특히, 지난달에 벌어진 전국 랭킹전 때 태릉에 가득 찬 팬들은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고 밝혔다.
다른 경쟁자들을 넘어서 최고의 반열에 오른 김연아의 적수는 오로지 '자기 자신'뿐이다. 지금까지 국제대회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줬듯, 이번 대회에서도 자신의 기량을 마음껏 발휘했으면 좋겠다고 이 부회장은 덧붙었다.
▶ [피겨 인사이드 - 그랑프리 파이널 특집] 김연아의 기초를 완성한 사람들 - 과천 링크장의 '드림팀' 변성진-오지연 코치 인터뷰 편이 계속 이어집니다
[사진 = 이지희 (C) 엑스포츠뉴스 조영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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