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최종편집일 2024-11-26 0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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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은 경기장에서 성남의 미래를 보다

기사입력 2009.11.24 00:49 / 기사수정 2009.11.24 00:49

조성룡 기자



[엑스포츠뉴스 = 조성룡 기자]성남 종합운동장에 들어서면 마치 지방의 공설운동장에 들어온 듯한 착각에 빠진다.

낡고 작은 경기장에서 군데군데 돗자리를 깔고 앉은 관중이 컵라면 또는 배달 음식을 가져다가 먹으면서 경기를 보는 모습은 서울 월드컵 경기장같이 깔끔한 느낌이 드는 경기장에서는 전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심지어는 등산용 간이 방석도 여기저기 눈에 띈다.

지금까지 성남의 경기장 분위기를 생각한다면 뜨겁고 열정적인 응원이 떠오르기보다는 장년층의 소위 '아저씨 팬'이 만들어내는 자유롭고 자연스러운 관람 문화가 떠오른다. 그만큼 성남의 홈 경기장은 동네 아저씨들의 만남의 장소라는 인식이 강했다.

K-리그 챔피언십 전남과의 경기가 열린 11월 22일. 수많은 아저씨와 함께 정말 축구에만 집중하리라 다짐했던 나는 의외의 상황에 부딪히게 되었다. 맥콜이 새겨진 막대풍선을 들고 칼싸움에 열중하는 초등학생들 때문에 시야가 어지러웠고, 축구를 보기 시작한 이래로 가장 많은 여학생을 발견해서 마음이 어지러웠다.

이 학생들은 도대체 어디서 온 것일까. 그것도 여자친구와의 데이트마저 꿈도 꾸지 못하는 이 추운 날씨에 무엇이 있기에 축구장에 왔을까. 그들이 경기장에 온 목적은 너무나 다양했지만, 그 작고 사소한 이유들은 이 어린 학생들을 미래의 축구팬으로 키우고 있었다.

물론, 정규리그처럼 0대 0으로 경기가 허무하게 끝나버렸다면 경기장에 처음 발들인 수많은 학생은 K-리그가 재미없다는 편견만 가지고 돌아갈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날은 K-리그 챔피언십 경기였다. 연장전과 승부차기까지 이어진 그 긴장감 넘치는 경기. 어느 누가 재미없다고 욕하겠는가.

 



▲추운 날씨에도 학생들은 맨 앞자리를 차지하고 끝까지 경기장에 남아있는다.

더군다나 이날 경기는 성남의 선수 2명과 감독까지 퇴장을 당한, 성남은 이기려야 이길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저 멀리서 환호하는 인천의 서포터스들과 탄식을 내뱉는 성남팬들을 보면서 그 학생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들의 머릿속에는 알게 모르게 '연고의식'이 자리 잡게 되는 것이다.

특히 이날은 한 무리의 여고생들이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다. 단 몇 명밖에 되지 않았다면 그저 축구가 좋아서 왔겠거니 하고 지나갔겠지만 이들의 인원수는 상상을 초월한다.

이 학생들은 성남 일화가 자매결연을 한 성일 여자 고등학교의 학생들이었다. 성남과의 자매결연을 계기로 식전 행사로 성일여고 치어리더 동아리가 공연을 했고 학생들과 선생님들이 다 같이 성남의 경기를 관람했다.

아마 이 학생들 중에는 경기장에 오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던 학생도 분명 존재했을 것이다. 하지만, 경기가 끝나고 나서도 그 학생들이 역시 모따가 없는 성남은 별로라면서 집에 갔을까. 전혀 아니라고 생각한다. 모따가 누군지도 모를뿐더러 성남에 어떤 선수가 있는지도 모르지만 분명히 성남의 팬이 되어 돌아갔으리라 확신한다.

성남에 있어서 아저씨 팬들은 현재의 성남을 책임지는 존재이지만 학생들은 미래의 성남을 책임지는 존재일 것이다. 그들을 경기장으로 유도하도록 수많은 노력을 하고 심지어는 공짜 표를 무차별적으로 나눠준다 한들 누가 구단을 욕하겠는가. 이것이야말로 미래를 위한 투자이니 말이다.

많은 사람이 성남이 인기가 없다고들 말한다. 물론 맞는 말일 수도 있다. K-리그 7회 우승의 명성에 비해 관중 수는 분명히 적다. 하지만, 낡은 성남 종합 운동장의 복도를 휘젓고 다니는 꼬마들을 보면서, 라돈치치의 헤딩에 어느 아이돌 가수 못지않은 환호성을 내지르는 여학생을 보면서 성남의 미래는 밝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그들이 학업에 열중하느라 경기장에 오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고 시간이 지나면 그들이 어릴 적 보았던 성남의 경기를 생각하며 다시 한번 경기장에 찾아오지 않을까. 부모님의 손을 붙잡고, 자식들의 손을 붙잡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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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식전 행사에서 공연을 펼치는 성일여고 치어리더 동아리 (c) 엑스포츠뉴스 정재훈 기자]




조성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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