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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서동원 선수 인터뷰

기사입력 2005.10.08 09:11 / 기사수정 2005.10.08 09:11

남궁경상 기자

"인천의 가슴위에 별을 달고 싶다"

지난 9월 24일 강릉에서 전지훈련중인 인천 선수단을 찾아가 서동원 선수를 만나보았다. 아이와 같이 밝은 모습으로 반갑게 인터뷰하는 것을 보고 멀리까지 고생하며 찾아온 보람을 느낀 인터뷰였다.



휴식기 동안 이뤄지는 강원도 전지훈련에서 개인적으로 중점을 두는 부분은?

인천에 입단한 처음부터 개인적인 단점을 보안하려고 체계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미드필드에서 드리볼이 많고 볼을 빼앗겼을 경우 상대방과의 간격이 벌어져서 따라 가는 것이 늦었다. 알면서도 고쳐지지 않던 부분인데 상대방 선수가 이런 단점을 알면 나를 상대하기 편하기 때문에 보완해 나가고 있다.

 -상무를 제대할 때 여러 팀에서의 영입 유혹을 뿌리치고 인천을 선택한 이유는?

제대를 앞두고 걱정이 많았다. 그동안 과거에 묻혀서 발전하지 못하고 도태되고 있었는데 어느 팀이 나에게 기회를 줄 것인가를 생각했다. 상무에서 운동시간 이외에 나의 미래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다. 서울에서도 제의가 있었지만 자기발전에 대한 가능성과 처음이라는 마음으로 새롭게 도전하고 싶어서 인천을 선택했다.

 -  인터뷰 때마다 선수들은 장외룡 감독에 대한 존경심을 드러낸다. 서동원 선수가 본 장외룡 감독은 어떤 분인가?

어느 팀 선수들이나 감독님에 대해 질문하면 당연히 100% 좋다고 말할 것이다(웃음). 저는 가식적이고 형식적인 대답은 하기 싫다. 장 감독님은 나에게 제2의 축구 인생을 열어준 분이다. 장 감독님은 무리하게 훈련을 시켜 선수들이 체력적이나 심리적으로 지치게 하지 않고 정확한 데이터와 체계적인 지적으로 선수들이 자신의 장단점을 느끼면서 훈련하도록 도와준다. 그런 부분들을 존경하고 있으며 배워서 내 것으로 만들고 싶다.

 -  현재 전,후기 통합 순위 1위를 달리고 있다. 주위의 반응이 남다를 것 같은데?

시즌중이라 많은 사람을 만나지는 못하지만 선수들의 애경사에 참석을 하면 "인천 너무 잘 나가는 것 아냐?"하면서 부러워한다. 경기 중에도 다른 팀 선수들이 우리가 골을 넣어서 이기게 되면 "너희는 수비만 하냐"고 비아냥거리면서 시비를 걸며 시샘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같이 말싸움을 하지 않고 이긴 자의 여유로 웃어 넘긴다. 나중에는 그 선수가 나에게 전화를 걸어 수고했다며 사과를 한다.

 -  4년 전인 2001년 월드컵대표 명단에 올랐다가 정작 2002년 월드컵에서는 직접 뛰지 못했다. 당시를 설명해달라.

우선 나 자신에 대한 자만과 오만이 가져온 결과였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축구를 시작해 중 1때부터 연령별 대표팀을 안 해 본 것이 없었다. 항상 나는 대표팀 선수가 당연히 되는 줄 알았고 대표팀에 가도 더 이상의 노력을 하지 않고 안주하게 되었는데 그 결과라고 생각한다. 월드컵만 바라보고 있다가 최종 명단에서 빠지자 상무에 입대하게 되었다. 모든 것이 내 잘못이었다. 프로 입단 후에도 언론의 관심을 끌었지만 선수가 감독이나 팀이 원하는 것을 잘 따라주지 못 했을 경우에 많은 것을 잃게 된다는 깨닫게 되었다.

 -  그라운드에서의 인상이 참(?)해 보인다. 그라운드에서의 성격과 실제 성격은 어떠한가?

그런 말 많이 들었다(웃음). 처음 보는 사람들은 내 외모가 무섭고 차가워서 쉽게 다가갈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를 많이 만나 본 사람들은 내가 장난도 잘 치고 재미있는 말도 많이 해서 처음과는 180도 다르다고 말을 한다. 첫인상이 좋게 보이기 위해 웃으려고 노력을 많이 하는 편이다. 면도도 하면 조금 더 인상이 부드러워 보일텐데 면도 하기는 정말 귀찮다. 야한 생각(?)을 많이 하는 것도 아닌데 수염이 너무 잘 자란다(웃음). 

그라운드에서는 아직 경고가 없다. 다른 팀에서는 5-6개 정도의 경고를 받았는데 경고가 없는 것이 좋은 것은 아니다. 팀 플레이에서는 역습 상황에서 경고를 받더라고 끊어줘야 하기 때문에 좀 더 적극적으로 경기에 임하려고 한다.

 -  인천에 오기 전 축구선수로서 가장 화려했던 시절은 언제로 기억되는가?

98년도에 프로에 입단했을 때 대전이 하위권에 머물러 있었지만 멋모르고 열심히 뛰었다. 결국 팀이 2승 2무로 선두로 나서게 되었는데 그 때 두 경에서는 3백으로 경기에 나가 2골을 넣었고 다른 두 경기에서는 미드필더로 나가 공격포인트를 두 개 올렸다. 그 때에는 컨디션도 좋아서 킥도 마음대로 잘 되었고 외적으로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었다.

 -  요즈음 축구선수 나이 서른(?)이면 많지 않은 편인데 팀 나이가 워낙 젊다보니 큰 형님 대접을 받을 것 같다. 후배들이 선배대접은 잘해주는지?

처음 프로에 입단 할 때는 나이 30이면 노장이 아니었는데 지금 프로축구의 현실은 30이면 노장이다. 팀에서는 후배들이 선배대접을 너무 잘 해줘서 누가 선후배인지 모를 정도로(?) 화기애애하다(웃음). 영도중 후배 (방)승환이, 고등학교 후배 (박)신영이, 연세대 후배 서기복 선수가 있는데 (방)승환이는 팀에서 개구쟁이처럼 활달한 성격인데도 내 앞에서는 숙연해지고 조심하는 것이 눈에 보인다. 서기복 선수도 편하게 대하라고 말을 해 주는데 조금은 어려워하면서 깍듯이 예의를 갖춰준다.

체력적으로 문제가 없어 앞으로 5년은 더 현역으로 뛰고 팬들 앞에서 웃으며 그라운드를 떠나고 싶다. 아내가 녹용을 해주고 홍삼도 꾸준히 먹고 있으며 식사를 잘 하는 편이다. 어려서 아버님께서 식탁 앞에서 투정 부리지 말라는 교육을 하셔서 생선도 뼈까지 씹어먹기 때문에 체력에 도움이 된다.

 -  가족 소개와 자랑을 해달라...결혼에 대한 이야기도 듣고 싶다...

아내와 종현이(5살), 종민이(4살), 그리고 11월에 태어나는 세 번째 아기가 있다. 아내는 78년생으로 3살 차이가 나는데 아이에 대한 욕심이 많다. 아내가 아들 둘이 아빠랑 너무 닮아서 서동원 세 명하고는 살 수 없다고 트집을(?) 잡아서 이번에는 딸을 낳으려고 셋 째 아이를 가졌는데 아마 아내가 서동원 네 명하고 살아야할 듯 싶다(웃음),

아내는 연세대 4년 때부터 교제를 했는데 대전에 입단한 후 1년에 2-3주정도 밖에 만나지 못했다. 한 달에 통화요금이 200만원이 나올 정도로 전화로 마음을 나누었다. 결국 2000년 동계훈련이 끝나자 청혼을 하고 아내의 허락을 받았는데 아내 나이 20살이었다. 장모님은 딸의 학업이 끝 난 후에 결혼을 하라고 만류하시며 먼저 내 부모님께 허락을 받으라고 하셨다. 나는 아버지께 전화를 드렸지만 돌아온 대답은 "너 낮부터 술 먹었냐?"라는 말뿐이었다. 

결국 아내와 나는 연봉으로 받는 수당과 아내 생활비, 통장에 조금 있던 돈으로 월세 100만원에 방을 얻고 혼수를 장만했다. 마지못해 미국에 사시던 장모님과 사우디에서 사업을 하시던 장인께서 귀국을 하셨고 연세대 동문회관에서 결혼식을 올리게 되었다. 장인께서는 결혼식이 있던 날 "자네만 믿네"라는 말씀으로 나에게 힘을 주셨지만 일주일 후 장인 어른은 당신의 생신 날 아침에 심장마비로 자식들 곁은 떠나고 말았다. 

나 때문에 돌아가셨다는 자책감에 빠져 있는데 장모님께서 "자네 때문에 돌아가신 것이 아니네...생신 날 돌아가시는 것은 큰복이라네..."라며 오히려 저를 위로해 주셨다. 처남이 미국에 있어서 명절이 되면 내가 장인어른의 묘소를 찾아가 아들 역할을 하고 있다.

 -  킥을 전담하고 있는데 킥을 하기 전 어떤 생각을 하는가? 특별히 킥에 대한 훈련을 하고 있는지?

훈련 때 아기치와 함께 킥 연습을 따로 한다. 항상 감각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나이에 상관없이 볼 스피드나 정확성이 있기 때문에 생각하는 위치로 공을 보낼 수 있다. 이런 자신감이 생기니까 대부분의 킥이 골대에서 멀리 벗어나지 않고 위협적인 킥이 되고 있다. 

골대와의 거리나 그 날의 감각에 따라서 인사이드 킥으로 드롭성 킥을 할 것인가 아니면 스피드 위주의 킥을 할 것인가를 순간적으로 결정한다. 예전에는 경기 중에 아기치가 욕심을 많이 냈는데 내가 골을 넣으니까 이제는 수긍을 하면서 서로를 배려하며 양보를 많이 하려고 한다.

 - 인천의 분위기 및 팀컬러와 보완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인천의 목표가 플레이오프지만 개인적으로 그 이상의(우승) 욕심이 있다. 그러나 그 목표를 위해서 걱정거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우리 팀이 선취골을 넣게 되면 수비축구의 형태로 변하게 되고 경기의 흐름이 밀리는 경우가 많다. 용병들의 국적과 성격이 다르니 이기다 보면 자기가 더 해 보려는 욕심에 드리볼이 많아지면서 팀플레이가 무너지는 경우가 있는데  이제는 서로 팀플레이를 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보인다. 

서로 욕심을 부리고 희생하지 않으면 팀웍이 깨지게 된다, 성남전의 대패도 컨디션이 좋지 않은 이유도 있지만 팀웍이 나빴다. 그러나 패배 후에 선수들이 실망하지 않고 팀웍이 깨졌을 경우의 악영향에 대해 뼈저리게 느끼게 되어서 좋은 약이 되었다고 본다.

나와 선수들이 개인적인 욕심을 버리고 희생하는 팀플레이를 열심히 하면 플에이오프 이상의 꿈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인천의 분위기라면 가능하리라고 본다. 10월에 벌어지는 경기들이 중요한데 후기리그를 우승 한 후 플레이오프 첫 경기를 홈팬들 앞에서 하고 싶다.

 -  서동원 선수가 상무에 입대했을 때 서기복 선수가 병장으로 있었는데... 재미난 에피소드를 듣고 싶다. 서기복 선수는 연세대학교 3년 후배이면서 장난으로 많이 괴롭혔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기복이가 처음 연세대에 입학했을 때 부평고 선수들이 연세대보다는 고려대에 진학을 많이 해서 아는 선수들이 별로 없어서인지 힘들어했다. 그래서 내가 같은 방에 데리고 있으면서 동생처럼 챙겨주었다(실제 친동생과 나이도 같음). 초코파이와 쿨피스를 사서 나누어주면서 잘 해 주었다. 

그런데 늦은 나이에 상무에 입대를 하니 기복이가 나에게 서 이병! 서 이병! 하면서 장난스럽게 부르는 것이었다. 상무신병 때 남해에서 합숙훈련을 하는데 신병들은 이동시에도 제식훈련으로 팔을 흔들며 군가를 부르고 이동해야 한다. 그런데 기복이가 갑자기 "서이병 열외!"라고 외쳐서 열외를 하면 90도 직각 보행을 하면서 "뽀뽀뽀"를 부르며 혼자 보행을 하게 했다. 나이 들어 입대 한 것도 서러운데 얼마나 창피했는지 모른다. 

힘들게 숙소 앞에 도착을 하면 다른 신병들은 모두 현관 안으로 들어가는데 "서 이병 차렷"하고는 기복이 혼자 2층으로 올라가 버린다. 그리고 2층에서 현관 앞에 부동자세로 서 있는 나에게 신발을 떨어뜨리며 "서이병! 푹탄 날아갑니다!"라며 외치면 나는 그 신발을 떨어지지 않게 받았다. 그러면 다시 "서 이병! 신발 들고 반동준비!"라고 외치며 나에게 군가를 시켰다. 

기복이가 시키는 군가를 부르면서 속으로 "신병교육 2주만 끝나면 너 그냥 안 둔다!"라고 생각을 하기도 했지만 오히려 소중한 추억으로 자리잡았다. 그리고 훈련이 끝 난 후에는 기복이하고 나이로 갔다.(웃음) 계급으로 따지면 이병에서 훈련 끝나자마자 상사계급이 된 것처럼 내 나이가 힘을 발휘한 것이다. 군의관들도 나보다 나이가 비슷하거나 어려서 난감해 하면서 나를 존중해 줘서 진심으로 고마웠던 군생활이었다.

 -  인천에 입단 후 힘들었던 점과 빨리 적응하도록 가장 많이 도와준 선수는?

과거 나의 오만했던 모습으로 인해 인식이 좋지 않아 나쁜 인식을 불식시키기 위해 자존심도 버리고 노력했다.  나에 대한 인식이 나쁜 것은 인과응보라고 생각한다. 조금은 서글펐지만 (임)중용이가 친구와 주장으로서 우리 팀이 무엇을 원하는지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해주어서 큰 도움이 되었다. 예전 같으면 쉽게 포기했을 수도 있는데 아내와 아이들을 생각하면 더 참게 되고 노력하게 된다. 이제는 가족이 나의 목표를 세우고 이루어 나가는데 큰 힘이 되어주고 있다. 

 -  인천 입단 후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는?

컵대회 전북전이다. 대전은 편안하게 친정팀처럼 느껴지는데 수원이나 전북은 아무래도 내가 힘든 모습으로 몸담고 있던 팀이라 승리에 대한 욕심이 더욱 커진다. 그런데 전북전에서 내가 후반에 골을 성공시키며 3대0 대승을 하는데 일조를 해서 기분도 좋고 행복했다.

 -  인천의 외국인 선수들과의 호흡과 이번 마니치 선수의 귀화포기에 대한 생각은?

마니치 선수에 대해서는 무슨 이유로 갔는지 개인적으로는 알 수가 없고 언론에 나온 대로 가족문제라면 충분히 공감한다. 가족이 원하는 것과 가족을 지키는 것이 우선순위라고 생각한다. 더 이상 세부적인 마니치 선수의 사정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용병 선수들과의 호흡은 잘 맞는 편이다. 경기중에 의사 소통은 아기치를 통해서 많이 한다. 라돈에게 직접 표현을 하면 라돈이 감정이 상할까봐 아기치에게 요구를 하면 아기치가 라돈에게 잘 전달해 준다. 

용병들과 100% 언어소통이 안 되는 것이 문제이기도 하지만 서로 짜증이 날 때는 한국 선수는 한국말로 용병은 자기나라 말로 거친말(욕?)을 중얼거리기도 한다(웃음). 세바(세바스티안의 애칭)는 거의 코메디언 수준으로 유머를 즐긴다. 경기 중에는 무게 있는 플레이를 하는 좋은 선수이고 경기가 많아질수록 더욱 좋아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  앞으로의 계획과 목표는 무엇인가?

단기적인 목표는 신생팀으로서 모두를 놀라게 하는 업적을 이루는 것이다. 플에이오프 이상의 결과를 팬들도 바라고 있는 것을 알고 있다. 나도 그 꿈을 인천에서 이루고 싶다. 인천의 가슴 위에 별을 달고 싶다. 장기적으로는 앞으로 5년 정도 현역에서 뛰고 싶다. 이제는 축구가 무엇인지 알아 가는 재미가 있고 축구를 즐기게 되었다. 5년 동안 축구에 대해 그라운드에서 부딪히고 느끼면서 더 많이 배우고 싶다. 그 후에 가장으로서 가족을 지키는 길은 공부(축구, 언어)를 더 해서 좋은 지도자가 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  인천 팬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팬들이 고맙다. 한 걸음이라도 더 뛸 수 있게 응원을 해주는 팬들이 있어서 더 좋은 경기를 하려고 노력하게 된다. 축구는 매번 이길 수는 없는 경기고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이기고 잘 했을 때에도 격려와 단점을 지적해 주는 것이 필요하지만 지거나 실망스러운 경기를 했을 때 선수들에게 미움이 생기더라도 "수고했다. 다음 경기에는 더 노력해서 좋은 경기를 보여달라"고 격려와 응원을 해 주면 선수들은 더욱 힘이 날 것이다. 

내가 어디를 가더라도 인천을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한 선수 "서동원"이라는 말을 듣고 싶다.



남궁경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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