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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모이' 개봉②] 유해진표 디테일함의 비법 "늘 의심해야 한다" (인터뷰)

기사입력 2019.01.09 08:00 / 기사수정 2019.01.08 22:06


[엑스포츠뉴스 김유진 기자] 배우 유해진이 갖고 있는 인간미와 이를 완성하기 위한 치열함이 영화 '말모이'(감독 엄유나)를 통해 관객들과의 소통을 기다리고 있다.

9일 개봉한 '말모이'는 우리말 사용이 금지된 1940년대, 까막눈 판수(유해진 분)가 조선어학회 대표 정환(윤계상)을 만나 사전을 만들기 위해 비밀리에 전국의 우리말과 마음까지 모으는 이야기를 담은 영화.

유해진은 명문 중학교에 다니는 아들 덕진(조현도 분)과 어린 순희(박예나) 남매를 키우는 홀아비로, 까막눈이지만 말은 청산유수에 허세까지 가진 김판수 역을 맡았다. 덕진의 밀린 월사금을 구하기 위해 조선어학회 대표 류정환(윤계상)의 가방을 훔치다 실패하고, 그 과정에서 감옥소 동기인 학회 어른 조선생(김홍파)의 소개로 조선어학회의 사환으로 취직한다.

정환, 또 조선어학회 회원들과 함께 하며 "돈을 모아야지, 말을 모아서 어디다 쓴다고. 도시락이든 벤또든 배만 부르면 되는 거지"라고 말했던 판수의 생각과 행동도 조금씩 바뀌어간다. 사십 평생 처음 '가나다라'를 배우고, 회원들의 진심을 헤아리며 말모이 작업에 동참하는 과정을 섬세한 연기로 표현해냈다.

"정말 참신한 얘기잖아요. 버라이어티한 액션 영화가 아니어서 지루할 수도 있기 때문에 걱정도 있었지만, 저희끼리도 '착한 영화'라고 현장에서도 그렇게 얘기를 했었어요"라고 말문을 연 유해진은 순한 맛을 가진 한 라면 브랜드의 이름을 언급하며 특유의 재치 넘치는 표현으로 영화를 비유해 웃음을 안기기도 했다.


연출을 맡은 엄유나 감독은 '판수 캐릭터를 쓸 때부터 유해진을 염두에 뒀었다'고 말한 바 있다. 유해진은 "정말 고마운 일이죠"라고 쑥스럽게 웃어보이며 "제가 말맛을 잘 살릴 것 같아서 그랬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또 영화가 한글에 대한 이야기니까, 제가 그것을 잘 살릴 수 있을까 고민이 됐던 것도 사실이에요"라고 되짚었다.

무엇보다 판수의 변화가 관객들에게 자연스럽게 다가갔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준비를 이어갔다.

"한글을 몰랐던 사람에서 한글을 알게 되고, 이것을 지키려고 하는 과정들이 자연스럽게 이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었어요.또 한가지는 아주 한심했던 그런 아버지에서, 자식들의 이름을 지키려고 하는 아버지로의 성장이 잘 그려졌으면 하는 마음이었죠. 그 두가지가 갑작스러운 것이 아닌, 거북하지 않게 서서히 넘어가는 모습으로요."

유해진은 과거 고향에서 만났던 동네 아저씨의 항상 불만 가득하고 욕 잘하던 모습, 침을 아무렇게나 뱉곤 했던 모습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판수 캐릭터에 입체감을 더했다. "오히려 표현하는 데는 좀 더 자유로울 수 있던 것 같아요. 조금 더 생각을 확장해서 전할 수 있었고요"라고도 덧붙였다.

'말모이' 속에서는 대사부터 외양까지, 디테일을 살리기 위해 애쓴 유해진의 노력이 고스란히 스며들어있다.

조선어학회와 인연이 닿은 후 조금씩 변해가는 판수의 마음과 생각은 중반부부터 차분하게 변하는 그의 헤어스타일 변화에서도 엿볼 수 있다. 초반 허세 가득한 판수가 당당하게 입고 다녔던 가죽 재킷의 지퍼도 스스로 뺐다. 글을 배우면서 서툴게 연필을 잡는 모습은 예전 영화현장에서 봤던 스태프의 독특했던 기억에서 가져왔다. '술에 취해 노래를 흥얼거린다'라는 지문에는 본인이 직접 만든 가사 '노다지를 캐면 황소를 사고' 등으로 가사와 음을 새로 붙이기도 했다.

'소수의견'(2015) 이후 3년 만에 다시 만난 윤계상과의 호흡도 반가운 부분이다. "(윤)계상이는 진짜 예전보다 훨씬 더, 영화를 떠나서 개인적으로도 알게 모르게 이렇게 약간 두터운 관계가 되는 것 같아요"라고 다정하게 말한 유해진은 "'소수의견' 때는 첫 만남이었지만, 3년이라는 시간 동안 또 서로의 관계가 두툼해지는 느낌이 있죠. 제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조금 그럴 수도 있지만, 연기 역시 깊어진 것 같고요. 좋은 모습으로 바뀌어 있는 것 같아요"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윤계상은 유해진을 가리켜 '예민함 속에 통찰력이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에 유해진은 "촬영장에 있는 것은 즐겁죠. 하지만 그 즐거움이 그냥 흘러가게만 두지는 않아요. (좋은 것을 찾기 위해) 촉을 세우고 있죠"라며 "기자들도 글을 쓸 때 '어떻게 하면 조금 더 독자들에게 이 글을 쏙쏙 읽히게 할까' 고민하잖아요. 저 역시 기자들이 기사를 넘기기 전에 검토하는 것처럼 연기를 넘기기 전에 검토하는 것이죠. 이렇게 말하고 보니 비슷한 점이 많네요"라며 껄껄 웃어보였다.

말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영화인만큼, 평소 촬영장에서도 무심코 쓰던 일본어를 비롯해 외래어들을 다시 생각하게 됐다. 유해진은 "현장에서 쓰는 왜래어들이 진짜 많고, 그게 입에 붙어있는 경우도 많았더라고요. 조금만 신경쓰면, 돌려서 할 말들이 있거든요. 저도 모르게 그런 것이 생긴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좋은 말, 적절한 말, 비교적 잘 어울리는 말을 찾아가는 직업인것 같다는 생각도 하죠. 저희 영화가 '말모이'라서, 더 공감하게 되는 것 같아요"라고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유해진이 존경하는 스승 중 한 명은, 유해진에게 '배우는 무대 위에 서기 전까지 늘 의심해야 한다'는 말을 전했었다. 유해진 역시 이에 동의하며 "항상 '이게 정답이야'라는 것은 없거든요"라고 얘기했다.

"감독님과 얘기를 나누는 것도, 제가 알고서 표현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에요. 관객들도 모르는데 대충 해가는 것은 눈치 채거든요. 그 의심이라는 것이 남에 대한 것도 있지만 저 자신에 대한 것도 포함되는 것이고요. 항상 그 작업이에요. 저의 '왜?' 이것 때문에 감독님들이 힘들어하실 때도 있지만 그렇게 말을 하다 보면 좋은 것이 나와요. 서로 좋은 관계를 위해서 그냥 슥 지나가버리면, 영화가 개봉하고 나서 안 좋은 관계가 될 수도 있거든요.(웃음) 서로 궁금한 건 해결하고 넘어가야죠."

영화 속 판수의 변화처럼, 유해진 역시 흘러가는 시간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며 '서서히 바뀌어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예전과는 다른 시각을 점점 갖게 되는 것 같아요. 이게 나이를 먹어가는 것이려나요.(웃음) 이를테면 예전에 흥얼거렸던 가사가 새롭게 들리고, 늘 있는 친구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더 소중하게 여겨지는 것처럼, 많은 것들이 새롭게 보이는 것 같고요. 그냥 흘려보냈던 것들에 대한, 사람을 보는 시각 같은 것도 약간 변화가 있는 것 같죠. 뭐 어떤 계기가 있어서 변한다기보다는, 제 자신이 세월이 지나가면서의 예전에는 몰랐던 것에 대해 크게 보는 변화가 생긴 것 아닐까 싶어요."

2019년 새해를 여는 영화로 '말모이'를 소개할 수 있게 된 것에 감사한 마음을 전한 유해진은 "새해에 선보이는 영화인데, '말모이'처럼 순한 것을 든든하게 먹고 출발하는게 좋지 않겠나요"라고 미소지으며 "벌써 또 새해가 되는데, 늘 어떻게 살아야 할까 고민하고 있어요. '잘 살아야지' 그런 생각이죠"라며 2019년에도 변함없는 활약에 대한 의지를 보였다.

slowlife@xportsnews.com / 사진 = 롯데엔터테인먼트

김유진 기자 slowlife@xport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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