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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앙리를 꿈꾼다" 인천의 미래, 강수일을 만나다

기사입력 2009.03.03 15:58 / 기사수정 2009.03.03 15:58

이상준 기자



[엑스포츠뉴스=이상준] 지난해 K-리그에서 인천의 희망 인천 유나이티드는 7위를 기록,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하는 아쉬움을 자아냈다.

그러나 2군 리그에서만은 그렇지 않았다. 지난 2007년 입단한 강수일(21)이 이끄는 인천 유나이티드 2군팀은 2군 리그에서 전승으로 우승하는 맹위를 떨쳤고, 4골 6어시스트의 기록으로 리그 MVP에 오른 강수일은 '가장 빛나는 샛별'임을 증명했다.

검은 피부의 혼혈아, 주한미군이었던 아버지를 떠나보내고 어머니 강순남(61)씨의 성을 이어받은 소년. 혼혈의 설움을 딛고 오직 "축구로 성공해 어머니께 효도한다"는 다짐 하나로 달려온 인천 구단의 공격수 강수일. 이제는 2군이라는 꼬리표를 떼고 1군 리그 MVP로 발돋움하기 위해 힘차게 드리블하고 있는 강수일을 만났다.

혼혈아 그리고 축구

강수일은 동두천 태생이다. 남들과 다른 외모 속에서 '아비 없는 자식'이란 놀림을 받으며 유년시절을 보냈다. 아버지를 한 번도 보지 못했고, 얘기를 나눠 본 적도 없다. 그렇기에 강수일에게 어머니란 존재는 더욱더 소중했다. 자신을 놀리는 친구들과 싸움이 났을 때, 어머니는 용서를 빌면서도 아들의 아픔을 이해하기에 뒤돌아서 눈물을 흘렸다.

"어릴 때 학교에서 소문난 싸움꾼이었어요. 그때는 제 감정을 조절하는 능력이 부족했거든요. 남들과 다른 피부색 때문에 놀림도 받고 마음에 상처도 많이 받았죠. 그래서 엄마가 학교에 많이 오셨어요. 저를 욕하는 건 참을 수 있었지만 엄마를 입에 담는 건 결코 참을 수 없었어요. 그래서 상대가 누구든 앞뒤 가리지 않고 주먹을 날렸죠."

강수일에게 어머니와 축구는 인생의 모든 것이었다.

어머니의 서러운 눈물을 보며, 강수일은 결심했다. 엄마를 위해 성공하겠다고……'내 꿈은 국가대표가 되어서 엄마에게 효도하는 것이다. 엄마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해낼 것이다.'

강수일의 성격은 밝은 편이다. 처음 본 사람과도 금세 친해지는, 친구들과 어울릴 때도 분위기를 주도하는, 모두가 좋아하는 매력남이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과 다른 피부색을 가진 강수일은 자신이 먼저 다가가야 사람들이 마음을 연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를 용병으로 보는 사람도 있다. 얼마 전 들어온 외국인 선수는 강수일을 처음보곤 같은 '용병'인 것으로 착각하고 영어로 말을 건네기까지 했단다. 그는 예전에 많이 속상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웃으면서 이야기할 수 있다고 한다. 아버지가 외국 사람인 한국선수라고.

힘겨웠던 프로 입문과정

강수일이 프로 입문을 결심하게 된 동기는 2006년 4월 미 프로풋볼(NFL)의 하인스 워드로 부터 "크게 세우고 끊임없이 노력하라"는 이야기를 듣고부터다. 바로 그해 11월 동두천 집에서 기차와 전철을 갈아타고 인천 문학월드컵경기장에 출퇴근해 3주 동안 입단 테스트를 받았다. 지금은 동두천에서 인천까지 지하철 1호선이 연결되어 있지만, 당시엔 기차를 타고 의정부에서 전철로 갈아타는, 왕복 7시간의 힘겨운 여정이었다.

"죽을 각오로 뛰었어요. 다시 하라면 아마 못할 거예요. 그 당시엔 선배 형들과 친하지 않아서 연습장 근처에 사는 형들 집에서 재워달라는 말도 못했어요. 오후에 연습이 끝나면 근처 사우나에서 피로를 풀고 다시 동두천 집으로 돌아갔죠. 그렇게 3주를 하고 나니까 정말 미치겠더라고요. 테스트를 받고 집에 돌아오는 길이면 온몸에 힘이 빠져 지하철 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앉아서 가기도 했어요."

강수일이 3주간 입단 테스트를 받으면서 가장 두려웠던 것은 훈련과정에서의 피곤함이 아니었다. 진정으로 그를 두렵게 한 것은 매주 금요일 결정되는 탈락자 발표였다.

"목요일 밤만 되면 잠을 이룰 수가 없었어요. 다음날이 테스트 탈락자 명단을 발표하는 날이었거든요. 불안함에 잠이 오질 않더라고요. 다행스럽게도 (안)재곤이 형과 함께 제가 끝까지 남아서 인천 유나이티드에 입단하게 됐어요. 사실 입단하는 과정도 우여곡절이 있었죠. K-리그 신인드래프트 전날 저만 구단으로부터 연락을 받지 못한 거예요. 뛰는 가슴을 부여잡고 박이천 감독님(당시 스카우트)께 전화를 걸어 물어봤어요. 제가 인천에서 뛰게 되는 게 맞느냐고요. 그랬더니 실력이 좋으면 뽑힌다는 불확실한 답변만 해주시는 거예요. 연습생으로 인천 입단이 확정됐는데, 그날 엄마와 한참을 안고 울었어요. 제 인생 최고의 하루였죠."

결국, 상지대 1학년을 중퇴하고 연봉 1200만원의 드래프트 번외지명(연습생)으로 입단한 강수일은 2년차에 100% 연봉 인상으로 실력을 인정받았다. 그리고 작년 11월 포항과의 프로축구 2군 리그 결승 2차전에서 인천 우승에 쐐기를 박는 골을 터트리고 MVP까지 올랐다.

"2군 리그 MVP에 만족하지 않아요. 아직도 부족한 부분이 많아요. 앞서 2군 리그 MVP를 수상하고 현재 국가대표팀 주전 스트라이커로 활약 중인 (이)근호 형은 저에게 좋은 본보기에요. 제 꿈은 국가대표가 되어서 엄마에게 효도하는 것이거든요. 2010년 남아공월드컵에 출전하는 게 최종목표이고요."

올해는 1군이다

지난해 11월 9일 문학월드컵경기장에서 인천과 수원의 정규리그 마지막 경기가 열렸다. 인천에는 6강 플레이오프 진출이 걸린 중요한 경기였다. 그러나 결과는 인천의 1-3 패배. 모든 선수들이 플레이오프 진출을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화려한 전력을 자랑하는 수원을 뛰어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결국, 인천은 전북에 6강 플레이오프 진출권을 내주고 2008시즌을 마감했다. 강수일은 후반 29분 김영빈을 대신해 교체 투입돼 3분 만에 페널티킥을 얻어냈다. 라돈치치가 페널티킥을 성공시켜 팀은 가까스로 0패를 모면했다. 그렇게 그는 시즌을 마쳤다.

"수원과의 시즌 마지막 경기가 제일 아쉬워요. 사실 제가 얻어낸 페널티킥이라 욕심을 부렸어야 했는데, 왜 라돈치치에게 양보했는지 모르겠어요. 그 당시는 팀이 이기는 게 가장 중요했으니까 누가 골을 넣는가는 중요하지 않다고 여겼나 봐요. 솔직히 다음날이 엄마 생신이었는데, 제가 페널티킥을 넣었더라면 최고의 생신 선물이 되었을 거예요. 생각하면 너무 아쉽네요."

강수일은 이미 지난해부터 올 시즌을 위한 담금질에 들어갔다. 그의 축구인생은 이제 시작일 뿐이다. 장외룡 전 감독은 "스피드와 근성은 좋은데 마무리와 몸싸움이 부족하다"며 강수일을 평가했다. 본인도 그걸 알고 있다. 골문 앞에만 가면 서둘러서 허공으로 날려버린 축구공이 헤아릴 수조차 없다고. 그래서 유명 공격수들의 골 장면 동영상들을 보면서 문전에서의 침착성을 익히고 있다.

나의 꿈, 나의 우상

강수일은 티에리 앙리 같은 공격수를 꿈꾼다. 지난 십 수년 간 조국 프랑스와 소속팀에 무수한 우승컵을 바쳤던 앙리는 스피드와 골 결정력, 골문 앞에서의 침착성을 두루 갖춘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 최고의 공격수다.

유럽 리그로의 진출 생각은 없느냐는 질문에 강수일은 "명문 클럽에서 뛰고 싶은 마음이야 저뿐만 아니라 전 세계 모든 축구 선수들의 꿈이죠. 하지만, 일단은 지금 팀에서 인정받는 선수로 경기에 더 많이 출전하는 게 목표입니다"며 겸손하게 대답한다. 하지만, 이 어린 유망주의 열정과 꿈을 향한 노력은 언제나 앙리를 향해있다.

물론 세계적인 선수가 되기에 강수일에게는 아직 미흡한 점이 많다.

특히 골문 앞에서의 침착성은 최고의 자리를 노리는 공격수에게 필수요소이며 강수일도 반드시 보완이 필요한 부분이다. 하지만, 인천 구단은 나날이 발전하는 강수일의 기량을 높이 평가하고 있고 지난 1월 17일 구단의 속초 전지훈련 중 벌어진 강원FC와의 연습경기에서 후반 출전 기회를 부여했다. 강수일은 이날 경기에서 멋진 헤딩골을 터뜨리며 팀의 3-1 승리에 일조했다. 21일 열린 홍익대와의 연습경기에서도 골을 넣으며 2경기 연속 득점에 성공했다.

"축구를 사랑하고, 인천 유나이티드를 사랑해주시는 모든 분들의 성원에 항상 감사합니다. 지금은 오직 '축구'에만 전념하며 팀에 보탬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열심히 노력하면 언젠가 1군 발탁의 기회도, 국가 대표 선발의 자격도 오지 않을까요?"

'미완의 대기' 강수일. 아직 배워야 할 점이 많은 2군 선수지만, 순탄치 않은 삶이었지만, 사랑하는 어머니와 축구를 향한 열정으로 이를 이겨나간 스물한 살의 새내기. 그에게 남들보다 더한 가능성과 밝은 미래가 비치길 기대해 본다.



이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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