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최종편집일 2024-10-05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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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김연아, 그녀라서 가능했던 아름다운 순간에 대하여

기사입력 2009.02.05 17:48 / 기사수정 2009.02.05 17:48

김경주 기자



[엑스포츠뉴스=김경주 기자]
지금 이 글을 읽고 계신 대한민국 국민에게 묻겠습니다. 지금 가장 큰 관심을 주고 있는 스포츠 이슈는 어떤 것인가요? 

각자 좋아하는 종목에 따라 혹은 좋아하는 선수에 따라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겠지만, 아마 가장 큰 관심을 받는 이슈는 두 가지로 나뉠 것 같은데요. 그 중 하나가 오는 11일 치러질 월드컵 최종 예선 축구 국가대표의 이란전과 함께 5일 오후 펼쳐진 있는 피겨 여왕 '김연아'가 출전한 '2008-2009 ISU(국제빙상연맹) 4대륙 피겨 선수권 대회'이겠죠.

이런 큰 이슈가 생기면 원하지 않더라도 이슈에 대한 간단한 소식 정도는 귀에 들리게 되고, 웹 서핑을 하던 도중에도 한번쯤은 클릭해보게 됩니다. 사실, 본 기자는 주요 담당 종목이 축구이기도 하고, 평소 성격이 섬세함과는 거리가 멀어 피겨 스케이팅은 너무 어렵게 느껴져 꺼리는 종목 중 하나였습니다. 어릴 적 미셸 콴의 연기를 보며 아름답다고 손뼉을 치기도 했고, 예브게니 플루첸코의 재기 넘치는 갈라 쇼를 보며 즐거워하기는 했지만 잠시 스치는 바람이었을 뿐이었죠.

소위 '신드롬'이라 불리는 김연아를 보면서도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었습니다. 많은 언론이 그녀를 주목하고 '승냥이'라고 불리는 그녀의 열성팬을 보면서도 '저렇게까지 열광할 수 있는 뭔가가 있나?'라는 생각을 했을 뿐 그 열기에 발을 들여놓지는 않았었죠. 뭐랄까, 피겨 스케이팅을 '어느 정도' 하는 선수는 다 그렇게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하는 무지한 생각이 원인이기도 했습니다.

대회 한참 전부터 이 대회를 기다리는 네티즌의 반응은 뜨거웠습니다. 회사에 출근을 해야 하는 평일 오후에 펼쳐지는 경기인지라 '숨어서 인터넷 TV로 보겠다.' 'DMB가 되는 핸드폰을 따로 준비했다.'라는 등 김연아의 연기를 보기 위한 각고의 노력이 어느 정도 크다 싶은 커뮤니티에는 몇 개씩 올라와 있었습니다. 김연아를 응원하기 위한 방법은 여러 가지였지만 김연아의 승리를 염원하는 마음만큼은 모두 같아 보였습니다. 


김연아의 경기를 보기 위해 여러 노력을 하는 다른 팬과 달리 직업이 기자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어떤 눈치도 보지 않고 편하게 TV를 시청할 수 있었습니다. 느긋하게 앉아 앞서 열린 그룹들의 경기를 보면서 새삼 김연아가 얼마나 대단한 선수인지를 느꼈죠. 그녀가 아무렇지도 않게 가볍게 뛰는 점프도 유려하게 도는 스핀도 사실은 정말 어려운 것이라고, '그녀'라서 할 수 있는 것이라는 것을 다른 선수를 통해 느꼈습니다.

그렇게 다른 선수를 통해 김연아의 능력을 깨닫고 있을 때쯤 드디어 그녀가 빙판에 섰습니다. 죽음의 무도가 울려 퍼지고 검은 아이 라인이 그려진 자신감 넘치는 눈빛이 TV를 통해 전해져왔고 기자가 앉아있던 사무실은 그녀 대신 긴장한 모습으로 2분 40초를 보냈습니다.

얼음이 갈리는 소리와 함께 공기를 가르는 그녀의 점프에 짧은 탄성이 울렸고, 하나의 조각상 같았던 스핀에 박수가 절로 나왔습니다. 모든 연기가 끝나고 확신에 찬 그녀의 얼굴을 보며 피겨를 담당하는 기자는 주먹을 불끈 쥐기도 했죠.  

네. 모든 것이 '김연아'라서 가능하다고 은빛 빙판에서 온몸으로 알려준 그녀는 작은 TV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던 이 나라의 모든 '승냥이'에게 자신의 '우월함'을 알리며 72.24라는 점수를 기록했고, 이 점수는 세계 신기록이 되었습니다. 쇼트 프로그램 1위, 7일 열리는 프리 스케이팅에서 무난한 연기만 펼쳐준다면 200점 돌파도 가능할 수 있는 점수입니다.

그녀의 점수가 TV 화면에 뜨자, 피겨를 담당하는 기자는 체면도 잊은 채 큰 함성으로 기쁨을 표현했습니다. 그 순간 뜨겁게 환호한 곳은 비단 이곳뿐만이 아니겠죠. 아마, 전국이 기쁨의 함성으로 너울거렸을 겁니다.

다시 돌려봐도 같은 장면에서 같은 탄성을 반복하게 하는 마법 같은 그녀의 연기를 보며 열악한 이 피겨 환경 속에서 이렇게까지 아름답게 피어난 그녀가 고마웠습니다. 그녀의 이런 아름다움이 토양이 되고 뿌리가 되어 앞으로 대한민국의 피겨를 키우고 발전시켜 나가겠죠. 

남들보다 조금 늦게 느낀 이 고마움을 가지고 앞으로 김연아를 바라보려 합니다. 누구보다 억척스럽고 자랑스럽게 큰 '여왕'의 앞으로의 성장 또한 기대하면서 말이죠. 

[사진=2008~2009 ISU 4대륙 피겨 선수권 대회에서 세계 신기록을 기록한 김연아(C) 엑스포츠뉴스 DB, 전현진기자]



김경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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