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05.05.01 21:45 / 기사수정 2005.05.01 21:45
좌투수와 유격수 두번째
전통적으로 베어스 내야는 좋은 2, 3루수들을 꾸준히 배출해 온 반면 돋보이는 기량을 갖춘 유격수를 가져보지 못했다. 김광수-이명수-캐세레스-안경현으로 매끄럽게 이어져 온 2루는 김성래-강기웅-정경배-박종호의 삼성과 더불어 단연 최강이 아닌가 생각 될만큼 공-수 양면에서 흠잡을 구석이 없고 양세종-임형석-안경현-김동주의 3루 또한 어느 팀과 비교해도 부족함이 없어 보였다. 반면 유지훤과 김민호를 제외하면 누가 언제 맡았는지 기억조차 희미한 유격수진은 조금 초라해 보이는 것이 사실. 내야 포지션 중 가장 고정성이 강한 포지션이 유격수라는 점을 감안할 때 상당히 의아한 부분이다.
이 팀은 늘 유격수 요원의 부족으로 2, 3루수를 유격수로 돌려쓰는 경우가 많았는데 (아마시절부터 정통 3루수에 가까웠던 홍원기가 대표적이다) 80년대 주전유격수로 활약했던 유지훤은 김재박의 대광고 1년 후배로 고교시절의 주포지션은 3루수였고 (72년 황금사자기 3루수로 출전) 80년대 후반~90년대 초반 지나가는 유격수로 활약했던 이승희, 이명수, 임형석 모두 프로 생활동안 유격수보다는 2, 3루수로 활약한 기간이 훨씬 길었던 선수들이다.
전체적으로 유격수는 좌완투수와는 달리 베어스의 스카웃 자체가 부진한 편이었고 그나마 몇 안되는 유격수 유망주들이 프로에서 2, 3루수 요원으로 굳어지면서 선수 부족 속에 오히려 기대하지 않았던 선수들이 맹활약하는 경우가 많았다. 통산 232도루로 이부문 팀 통산 2위에 랭크되어 있는 김민호, 철저한 무명이었으나 지금의 손시헌을 능가하는 수비 스페셜리스트였던 이종민, 그리고 현재의 주전유격수 손시헌까지 기대치의 200%를 해낸 무명들의 활약이 돋보이는 베어스 유격수의 소사이다.
신인시즌부터 주전을 꿰찬 김민호가 95년 즈음에는 정상급 유격수로 발돋움했던터라 90년대 중반을 전후한 유격수 스카웃은 대체로 소극적인 편이었고 김민호가 96년의 허리부상이후 쇠퇴한 90년대 후반에야 베어스의 유격수 스카웃은 본격화 되는데 첫 표적은 충암고의 김주찬이었다.
2학년 시절부터 고교 최고의 유격수로 주가를 날리던 김주찬은 큰 체격에서 나오는 배팅파워와 빠른 발 (현 프로야구 선수중 100m 기록이 가장 빠른 선수로 알려져 있다), 넓은 수비범위 등 당시로서는 가히 파격적인 수준의 5-tool을 선보인 대형유격수로 일찍부터 팬들의 엄청난 기대를 받았던 선수다. 김주찬에 대한 문의가 줄을 잇자 베어스는 이례적으로 1차지명 후보를 홈페이지에 공지하기까지 했는데 (김주찬, 문상호, 전하성) 정보력이 생명인 스카웃 업무의 특성을 감안할 때 유례를 찾기 힘든 일이었다.
하지만 그 해 불어닥친 주축투수들의 줄부상으로 인해 (박명환, 구자운, 이경필) 두산의 선발 투수진은 완전히 붕괴되었다. 이로 인해 당초 LG행이 유력했던 문상호를 1차로 지명한 후 2차지명에서 또 다시 김주찬을 노리지만 바로 앞 순번이었던 삼성의 지명으로 인해 사이드암 구자민을 지명하면서 지명전의 목적은 달성하지 못하고 유격수 스카웃은 다음 기회로 미루게 된다.
당초 조용호 스카우트의 계획은 문상호-김주찬-방승재 충암 3인방을 차례로 지명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문상호는 그 해 중순 LG와의 협상이 틀어진 상태였고 LG 또한 문상호의 무릎부상에 의구심을 품고 해외에 있던 최경환을 테스트하는 등 엇박자가 심했던 터라 예상과는 달리 손쉽게 스카웃에 성공했는데 그럼에도 이 해의 1차 지명에서는 양팀 모두 별 재미를 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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