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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츠 모닝와이드] 김경문, 한국 야구의 '파워 오브 원'

기사입력 2008.09.02 04:17 / 기사수정 2008.09.02 04:17

조영준 기자



[엑스포츠뉴스 = 조영준 기자] Sports Essay -  남아공화국의 극심한 인종차별문제를 다룬 영화 '파워 오브 원'이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한 명의 깨인 자가 존재할 때, 그 사람의 힘이 다른 이들에게까지 미친다면 혼자만이 아닌 '모두의 힘'이 된다는 내용이죠. 꽤 이상적인 바람일지도 모르지만 어느 분야에서든지 '깨인 자'가 존재한다면 작은 변화는 서서히 일어납니다.

스포츠에 있어서도 자기 역량과 확신이 특별한 자들이 존재한다면 어둠 속의 불빛처럼 주변을 환하게 비춥니다. 그런 의미를 보면 지난 2008 베이징올림픽에서 기대 이상의 성적을 거둔 선수단의 분투는 '한 사람의 힘'이 '모두의 힘'으로 뭉쳐져서 이루어낸 예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기적 같은 9연승을 일궈내고 '퍼펙트 골드'로 한국야구사상 가장 찬란한 업적을 남긴 한국야구대표팀은 올림픽 예선전부터 수차례 많은 지적을 받으면서 불안한 모습을 노출했습니다.

무엇보다 중심타선의 무게감이 부족해보였으며 투수진과 수비진 역시 2006년에 있었던 WBC에 못 미친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대표팀의 수장인 김경문 감독이 본인이 소속된 구단 선수들을 지나치게 중용한다는 비판도 겪어야 했습니다.

김경문 감독은 하루라도 속편한 날이 없는 대표팀 감독직을 그만두어야겠다는 생각을 수차례 가졌었습니다. 그러나 KBO(한국야구위원회)는 김 감독에게 대표팀 선수를 구성하고 이끌어나갈 전권을 일임토록 해주었으며 올림픽 본선을 앞두고 김 감독은 최종 엔트리를 발표했습니다.

그러나 올 시즌 국내리그에서 잘 나가는 선수들을 배제해놓고 예전부터 대표선수에 꾸준히 참가했던 선수들을 그대로 뽑았다는 비판을 들어야했습니다. 그 와중에서 김 감독은 자신의 애제자 중 한명인 임태훈(20, 두산)대신 최근 한창 잘나가는 투수인 윤석민(22, 기아)으로 교체했습니다. 그리고 이 결과는 올림픽 본선에서 최상의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또한, 대타 작전은 기가 막히게 들어맞았고 미국, 일본전에서 나타난 투수 운용도 적절하게 이루어졌습니다. 김 감독은 이 부분에 대해서 선수들의 활약에 공을 돌리고 운이 좋았다고 겸손을 표명했습니다. 상황에 따라서 내리는 작전이 결과가 좋으면 '최상의 전술'이라고 포장이 되기 쉽지만 반대의 결과가 나타나면 감독에게 엄청난 비난이 따라오게 됩니다.

김 감독과 한국대표팀에게 행운이 따라준 것도 사실이지만 운만 가지고 이긴다면 그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결정적인 상황에서 자신의 판단 만을 믿고 고집을 부린 호시노 일본대표팀 감독에 비해 김 감독은 신중하게 상황을 읽고 적절하게 대처해 나갔습니다.

무엇보다 선수들을 믿고 기회를 계속 주었던 점이 결정적으로 선수들의 집중력을 향상시킨 계기가 되었습니다. 오로지 데이터만 믿고 왼손투수가 나오면 무조건 오른쪽 타자로 대처하는 수학공식 같은 수법도 남용하지 않았습니다.

같은 왼손타자와 투수가 맞붙는 상황이 닥쳐와도 가능성만 있으면 충분히 맞서볼 수 있는 기회를 열어놓았습니다. 일본과의 1차전에서 2-2로 팽팽히 맞붙은 9회초, 일본이 자랑하는 최고의 마무리 투수 중 한명인 이와세 히토키(34, 주니치)가 마운드에 있는 상황 속에서 대타로 왼손타자인 김현수(20, 두산)를 기용했습니다.

일본 측에서 본다면 참으로 허를 찌르는 선수기용이었습니다. 야구의 정석으로 볼 때, 도저히 성립되기 어려운 공식인 왼손 투수 - 왼손 대타의 작전은 결국 김현수의 안타로 인해 극적인 역전이 이루어졌습니다. 오른손 투수뿐만이 아닌 왼손투수에게도 강점을 가졌던 김현수를 신뢰했고 대타자 중에서 2루에 있는 주자를 불러들일 안타를 칠 확률이 높은 타자였던 김현수를 그대로 내보냈던 것입니다.

그리고 김경문 감독은 올림픽 예선전을 통해 '이기는 경기'도 많이 보여줬지만 '재미있는 야구'도 동시에 보여줬습니다. 야구에서 흔히 예상되는 선수 교체를 보여주지 않았고 팬들의 입장에서 흥미를 느끼게끔 하는 흥미진진한 상황을 여러 번 만들게 했습니다.

프로선수들임에도 불구하고 올림픽에 대한 열의는 어느 선수들을 막론하고 강했으며 이들의 투지는 곧바로 좋은 성적으로 이어졌습니다. 이렇게 선수들의 '힘'이 하나로 합쳐질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 감독의 역할이 컸습니다.

뛰어난 선수들이 무수히 모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하나'같지 않고 '모래알' 같은 팀과 이름의 레벨은 떨어지지만 비로소 ‘하나’로 뭉쳐있는 팀의 모습은 완전히 다른 것입니다.

이렇게 뛰어난 지도자는 무수한 물줄기가 모여서 거대한 폭포를 이룰 시초가 될 '하나의 물방울'이 되어야 합니다. 감동을 안겨준 여자핸드볼 팀의 임영철(49, 벽산건설) 감독도 그러했고 '마린보이' 박태환(19, 단국대)을 길러낸 노민상(52) 수영국가대표감독도 진정한 '파워 오브 원'이었습니다.

한국 스포츠 계에 대해서 많은 문제가 지적되고 있지만 이렇게 뛰어난 지도자들의 존재는 진정으로 한국스포츠의 '빛과 소금'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습니다. 야구를 비롯한 한국스포츠 계의 전반이 균형 있게 발전되고 베이징올림픽에서 달성한 최고의 성적을 다음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도 계속 이어나가려면 선수들의 기본기를 훌륭하게 가르치고 자신의 이익보다는 온전한 팀을 만들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깨어있는 지도자'들이 많이 나타나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지도자들이 많이 활동하려면 이들을 중용하고 기회를 열어줄 수 있는 한국 체육계의 열린 자세가 선행되어야 할 것입니다.

[사진 = 한국야구대표팀 (C) 두산 베어스]



조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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