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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형규의 클리닝타임] 당찬 두 신인의 아름다웠던 '8구' 승부

기사입력 2008.06.18 03:30 / 기사수정 2008.06.18 03:30

박형규 기자



[엑스포츠뉴스=박형규 기자] '약 2주 전을 비웃기라도 하듯......'

두 풋내기 신인이 약 2주 전의 볼썽사나웠던 해프닝을 비웃기라도 하듯 명승부를 벌여 프로야구팬들을 훈훈하게 만들었다. 바로 LG의 우완투수 정찬헌(19)과 KIA의 '작은거인' 김선빈(19)이 그 주인공이다.


장마가 예정되어 있던 '2008 삼성 PAVV 프로야구'가 열린 16일의 광주구장. 경기 시작전부터 약한 비가 보슬보슬 내리고 있었다. 8시를 전후해서 폭우가 쏟아진다는 예보가 있었기에 양팀 모두 선취점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양팀이 자랑하는 영건인 LG의 정찬헌과 KIA 이범석의 힘있는 공은 빗줄기에 더욱더 힘을 실어 포수미트로 빨려들어갔다.

연방 삼진 퍼레이드를 지속하던 두 투수 중 먼저 무너진 쪽은 정찬헌. KIA는 2회 김종국의 내야안타에 이은 차일목의 1타점 좌전 2루타로 선취점을 뽑았다. 3회까지 별다른 위기 없이 두 투수는 역투를 펼쳤다. 하지만, 4회 들어 빗줄기가 심상치 않았다. 약하게 흩뿌리던 비가 4회 들어 빗줄기가 굵어지더니 타자와 야수들의 시야를 방해할 정도의 폭우가 내리기 시작했다. 자칫하면 경기취소도 가능한 상황.

약 2주 전인 6월 4일 같은 장소인 광주구장에서의 KIA와 한화의 경기가 오버랩되었다. 그 당시 경기 초반 갑자기 쏟아지는 폭우로 인해 6-1로 앞서고 있던 KIA는 경기를 빨리 끝내기 위해, 뒤지고 있던 한화는 경기를 고의로 지연시키기 위해 프로야구팬들에게  볼썽사나운 광경을 선사하게 되었다. 한화 투수의 말도 안 되는 공에 KIA 타자가 어이없는 헛스윙을 하는가 하면, 한화의 투수와 야수들은 충분히 여유있게 잡을 수 있는 공을 일부러 빠뜨리며 경기를 늦추는 등 그날 악천후 속에서도 야구를 관전하기 위해 찾아온 관중을 우롱하는 행위를 펼치며 언론과 프로야구 팬들에게 뭇매를 맞은 적이 있었다.

4회말 원아웃 상황. 마운드에는 강력한 신인왕 후보인 LG의 희망 정찬헌이 있었고, 타석엔 KIA의 유격수 자리를 단번에 차지한 '작은 거인' 김선빈이 들어섰다. 정찬헌은 2차 1지명으로 일찌감치 지명되며 강력한 신인왕 후보로 시즌 전부터 거론되던 선수였고, 김선빈은 작은 체구로 인해 2차 6순위로 막바지로 지명된 유망주였다. 정찬헌과 김선빈은 각각 광주일고와 화순고 출신으로 지역예선에서 종종 맞붙은 경험이 있었고, 청소년 대표도 함께 역임하며 친분이 있는 라이벌이었다.

폭우가 내리며 경기진행이 어려운 상황임을 감안할 때, 양선수 모두에게 달콤한 유혹이 감돌았을 것이다. 한쪽은 시간을 끌기 위한, 한쪽은 빨리 끝내기 위한 액션을 취할 수도 있는 상황. 하지만, 이 두 당찬 신인들은 외부 환경 따위에는 관심조차 없었다. 오로지 동갑내기 라이벌과의 승부가 중요했다. 굵은 빗줄기에도 불구하고 정찬헌은 자신이 던질 수 있는 최고의 공을 던졌다. 이에 김선빈은 4차례의 파울타구를 양산해내며 자신의 눈에 들어오지 않는 공은 커트해버렸다. 결국은 8구까지 가는 승부 끝에 좌익수 왼쪽 2루타를 쳐내며 김선빈의 판정승으로 승부가 종결되었다.

주로 밀어치는 타격을 취하던 김선빈이었기에 LG의 야수들은 우측으로 수비 시프트를 행하였고, 이 노림수를 역이용한 김선빈의 몸쪽 높은 공을 끌어당긴 타법이 주효한 순간이었다. '돌부처' 오승환도 저리 가라 할 정도로의 포커페이스를 늘 유지하던 정찬헌도 김선빈이 자신의 공을 커트해내며 투구 수를 늘리자, 6구째 파울타구 후에는 김선빈을 바라보며 미소를 띠기도 하였다.

올 시즌 이러한 추세라면 500만 관중 돌파는 더 이상 꿈이 아니다. 하지만, 2주 전의 오직 '승리'에만 집착한 채 팬들을 외면하는 야구를 펼친다면 야구장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팬들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16일의 두 당찬 풋내기 신인들의 대결은 어찌 보면 당연할 처사일지 모른다. 그리 칭찬받을 일이 아닌 프로선수라면 당연히 해야 할 의무이다. 그러나 2주 전의 팬들을 외면한 어이없는 해프닝, 요새 자주 일어나는 벤치 클리어링 등의 삭막한 프로야구 세태가 이 두 신인의 지극히 정상적인 플레이를 돋보이게 한 요인이 아닌가 싶다.

[사진=왼쪽부터 김선빈, 정찬헌 (KIA 타이거스, LG 트윈스 제공)]



박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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