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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츠 모닝와이드 - 월요 스페셜] 격투가로 거듭나길 원한 천하장사

기사입력 2008.06.16 09:20 / 기사수정 2008.06.16 09:20

조영준 기자

[6월 16일 엑츠 모닝와이드 - 월요 스페셜]

스포츠 에세이 1. - 격투가로 거듭나기를 원한 천하장사



[엑스포츠뉴스=조영준 기자] 한국의 전통스포츠 씨름은 80년대 이만기와 이준희, 그리고 이봉걸 과 같은 대형 선수들을 배출시키며 국민스포츠로 많은 인기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현재 씨름은 전성기와 비교되지 못할 암흑기를 거치고 있습니다.
 
그 많던 프로팀들은 모두 다 사라져버렸고 유일하게 프로씨름구단으로 생존해오고 있는 팀은 현대중공업밖에 없습니다. 한동안 천하장사 대회는 물론, 체급별 장사 타이틀을 차지한 모래판의 승부사들은 씨름판을 떠나 저마다 새로운 삶에 도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씨름 선수로서는 최초로 이종격투기 무대에 뛰어들어 센세이션을 일으킨 최홍만(28, 스프리스 KI)이 급부상하면서 이종격투기의 문을 두드리는 선수들은 하나 둘씩 늘어갔습니다.

그 가운데서 90년대 중반부터 2000년 초반까지 씨름계의 최강자였던 이태현(32,프리)도 대학교수가 되겠다던 안정적인 길을 거부하고 험난한 이종격투기의 무대에 입문했습니다. 이런 결정을 내리기까지 실로 어려운 고민을 거듭했겠지만 씨름선수로서 가진 본능적인 승부욕과 이종격투기 무대에 대한 갈망이 그를 파이터들의 격전장으로 이끌게 했습니다.

그러나 이태현은 최홍만이 걸어간 길과는 다른 점이 많았습니다. 최홍만의 경우, 자신이 가진 거대한 체구가 주는 특수적인 하드웨어의 장점과 격투기 무대에 정착할 때까지 부여받았던 안정적인 대전이 그를 이 무대에서 생존하게끔 만들었습니다.

여기에 반해 이태현은 처음부터 무리한 데뷔전을 치렀습니다. 비록 최홍만이 씨름 선수 출신으로서 격투기의 무대에 생존했다고는 하지만 그를 제외하면 씨름선수로서 격투기 무대에서 성공은 거둔 선수는 전무합니다.

우선적으로 씨름이 가지는 정적인 경기 운영과 한국 고유의 미덕이 들어있는 상대방을 배려하면서 치르는 윤리적인 측면에 비해서 주먹과 팔, 다리, 머리 혹은 관절 꺾기 등의 모든 수단을 동원해 상대방을 제압하는 이종격투기는 물리적인 힘으로 상대방을 무너뜨리는 본능적인 피가 물씬 넘쳐흐르는 종목입니다. 이렇듯 복싱과 킥복싱, 혹은 레슬링과 유도라면 몰라도 씨름과 이종격투기의 상생관계는 너무나 일치하지 않고 있습니다.

격투의 기본이 되는 타격은 짧은 기간에 피눈물나는 훈련을 한다고 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현재 이종격투기 무대에서 뛰는 수많은 선수는 오래전부터 이리저리 피하는 상대방을 어떻게 가격하고 무의식적인 순간에도 지속적으로 날아오는 타격들을 어떻게 피하는지에 대해 거듭되는 훈련과 실전을 통해 익혀오고 있습니다.

동네 뒷골목싸움도 요령이 있어야 이길 수 있다는 말이 있듯, 그저 주먹의 세기와 자신의 힘만 믿고 격투기 무대에 도전한다면 남는 것은 처참한 상처뿐입니다. 이태현은 준비도 안 된 채 성급하게 치른 데뷔전에서 그야말로 혹독한 신고식을 치렀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30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세월을 샅바란 매개체와 보낸 이태현은 그저 '씨름 선수'였을 뿐이지 상대방을 한번이라고 때려보거나 자신이 맞아본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이렇게 그의 본능은 철저하게 씨름과 함께 해왔습니다.

또한, 30대가 넘은 늦은 나이에 정글같이 험난한 격투무대에 뛰어든 것은 긍정적으로 보면 의미 있는 도전정신이었지만 다른 의미로 생각해보면 무모한 도전이었습니다.

이태현은 20년이 넘게 자신의 몸과 정신에 깊숙이 배어있는 씨름을 지워내고 철저한 격투가로 거듭나기 위해 러시아와 일본 등지에 머물면서 ‘지옥 훈련’을 강행해왔다고 합니다. 그런 노력으로 첫 승리를 거두는 성과도 이루어냈지만 자신의 격투기 항로에 결정적인 영향을 줄 경기에서 그는 단 35초를 버텨내지 못하고 링 바닥에 쓰러졌습니다.

15일, 일본의 요코하마 아레나에서 열린 '드림 4 미들급 그랑프리 2라운드'에서 자신이 지목한 상대인 네덜란드의 알리스타 오브레임에게 추풍낙엽 떨어지듯이 힘 한번 써보지 못하고 무너졌습니다.

당초 강한 상대와 맞붙고 싶다던 그의 의지는 분명 칭찬해 줄 점이지만 격투가로 거듭나기 위해 스스로 다짐한 그는 결코 '씨름선수'였던 자신을 버리지 못했습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한다면 샅바만 잡는데 익숙하던 씨름 선수가 30이 넘은 늦은 나이에 격투에 대한 본능적인 감각을 익힌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무리가 많았습니다.

이날 오브레임이 이태현을 실신시키기 위해서 가격한 연타는 세 발이었습니다. 첫 번째 타격은 왼손 훅이 이태현의 턱을 때렸고 두 번째로 이태현의 턱을 분쇄한 오른손 펀치에 이미 이태현은 전의를 상실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이어진 니킥으로 196cm에 130kg이 넘는 거목은 순식간에 링과 입맞추며 쓰러졌습니다.

그 세 발의 가격이 이루어질 때까지 이태현은 격투기 선수로서 가져야 할 기본적인 가드와 움직임을 아직도 갖추고 있지 못했습니다. 또한, 주먹이 날아올 때마다 어쩔 줄 몰라 하며 눈을 감으며 뒤로 엉거주춤하는 것은 더 이상 격투가의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물론 오브레임이 이태현이 상대하기엔 차원이 다른 선수였던 점도 있었지만 20년이 넘게 익숙해온 '씨름선수 이태현'은 '격투가 이태현'으로 변신하기에 너무나 버거운 삶의 짐을 여전히 지고 있었습니다.

지금 인터넷의 많은 격투기 게시판들에서는 이태현을 비난하고 조롱하는 의견들이 가득 차 있습니다. 거대한 몸으로 상대방을 밀쳐낸 스모선수였던 아케보노가 타격으로 승부하는 무대인 K-1에서 동네북으로 전락한 것처럼 이태현을 아케보노와 비교하는 말들도 지속적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종목의 전향은 어느 스포츠에서나 힘들지만 스모선수나 씨름 선수들이 타격과 레슬링, 그리고 유도의 기술 등이 사용되는 종합 격투기에서 살아남는다는 것은 너무나 힘든 경우입니다.

한 때 천하장사로 씨름판을 호령한 이태현은 링 위에 올라선 이후로 조롱거리와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물론 고액의 돈을 받고 뛰는 프로선수로서 사정이 어떠하든 간에 변명을 하는 것은 가당치 않고 패자를 무조건 감싸는 행동도 스포츠 본연에서 생각해 본다면 옳지 않은 일입니다.

그러나 지금 이태현에게 쏟아지는 비난의 일면을 조금은 다르게 생각해 볼 필요는 분명히 존재합니다.

이태현을 무조건 감싸고 이해하자는 것이 아니라 샅바만 잡고 상대방을 쓰러뜨리는 종목에 익숙해온 한 선수가 30이 넘은 늦은 나이에 성공적인 격투가로 성장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다는 사실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 이태현의 제기에 대한 가능성을 위해서라도 맹목적인 비난은 자제해야 할 것입니다.
 


씨름선수 출신으로서 물론 최홍만 같은 경우도 있었지만, 이태현과 김영현, 그리고 김경석 등의 사례에서 지켜봐야 할 씨름 선수들의 이종격투기 진출은 보다 신중하게 이루어져야 할 시점입니다.

[사진=이태현 (C) 오규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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