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최종편집일 2024-12-01 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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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를 괴롭힌 '12000 관중의 영웅' 모따

기사입력 2008.05.25 21:44 / 기사수정 2008.05.25 21:44

박형진 기자

[엑스포츠뉴스=박형진 기자] 탄천 종합운동장을 주로 다니는 제게는 작은 소망이 있습니다. 다름 아닌 이 운동장에 관중이 꽉 차는 것을 보는 것이죠. 채 2만 석이 되지 않는 작은 규모의 경기장이지만 이곳에 관중이 다 차는 것을 보기란 쉽지 않습니다. K-리그에서 가장 매력적인 축구를 선보이는 성남 일화의 홈구장임에도 불구하고, 성남의 팬들을 만나기란 쉽지 않은 법입니다. AFC 챔피언스리그 경기 취재차 탄천을 찾은 외국기자들이 깜짝 놀랄 정도입니다.

그런 경기장에 오늘 '무려' 12000여 명의 관중이 들어찼습니다. 기자의 눈대중에도 80% 정도 경기장이 들어찼으니 결코 부풀려진 관중 수는 아닐 것이라 믿습니다. 관중 동원력이 뛰어난 서울과의 경기였기 때문이었을까요? 박주영을 보기 위해서인지, 아니면 이 날 팬 사인회를 한 '프리미어리거' 김두현 때문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오랜만에 관중석이 꽉 찬 모습이 참 보기 좋았습니다.

그러나 성남의 경기력은 만원 관중 앞에 오히려 위축된 모습이었습니다. 서울이 워낙 잘해서이기도 했지만, 성남은 평소와 같은 중원장악력을 보여주지 못하며 90분 내내 고전했습니다. 후반 21분에는 그토록 탄탄했던 수비진이 와르르 무너지며 서울의 이청용에게 선제골을 허용했습니다. 이 골은 결과뿐만 아니라 내용적으로도 매우 나쁜 성질의 골이었습니다. 팀 전체의 사기를 떨어뜨릴 만한 서울의 '완벽한' 골이었으니깐요.

부진한 성남의 공격에는 모따가 있었습니다. K-리그 선수들이 여전히 최고라고 치켜세우는 모따이지만, 이번 시즌 모따는 상대편 수비진의 집중견제를 당하면서 지난 시즌만큼의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두두의 골 행진에 도움을 주는 스타일로 바뀌었다고 할까요? 분명 모따로서는 올해 새로운 난관에 부딪히며 전환점이 필요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런 모따가 '일'을 냈습니다. 후반 45분도 끝나고 추가시간 5분도 다 끝날 무렵, 골문 앞 혼전상황에서 모따가 공을 잡았습니다. 모따는 혼신을 다해 수비수의 압박을 제치며 슈팅을 했고, 그 슈팅은 우연히도 김호준 골키퍼의 다리 사이로 흘러들어가며 골이 되었습니다. 그토록 열리지 않던 서울의 골문이 그렇게 열린 것입니다.

'20초 전 동점골'. 경기 종료와 동시에 경기기사를 내야하는 기자로서는 '최악의 상황'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서울의 승리를 예상하고 사진까지 편집해놓은 상황에서 기사 전체를 바꾸어야 하니깐요. 그러나 탄천종합운동장을 찾은 팬들에게는 이런 경기가 최고의 경기입니다. 축구가 가진 최고의 매력, 종료 직전 경기 결과를 뒤엎는 멋진 골이 나왔으니깐요.

팬들을 진정 즐겁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저는 성남이 세 골, 네 골을 터뜨리며 큰 점수 차로 이기는 경기보다 오늘 서울과의 무승부 경기가 더 '즐거운' 경기라고 장담합니다. 축구가 줄 수 있는 카타르시스를 팬들로 하여금 느끼게 하는 경기가 바로 이런 경기니깐요. 성남은 비록 승점 3점을 얻지도 못했고, 1위 수원과의 승점 차는 더 벌어졌고, 심지어 골을 넣은 후 유니폼을 벗어 던진 모따는 경고까지 받았지만, 성남팬들에게 오늘 경기는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될 것입니다.

갑자기 웨스트햄 시절의 카를로스 테베즈가 떠오릅니다. 그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와의 경기에서 강등 위기에 있는 웨스트햄을 구하는 극적인 골을 성공시키고, 팬들을 향해 달려가 안겼습니다. 테베즈가 맨유로 이적한 후에도 웨스트햄의 팬들은 테베즈를 여전히 사랑하고 아낍니다. 테베즈는 웨스트햄을 구한 영웅이었고, 그 영웅의 극적인 골은 팬들에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감동을 주었기 때문이죠. 비록 웨스트햄이 우승을 한 것도 아니고, 그저 강등을 면한 것일 뿐인데도 말입니다.

"포기하지 않는 의지가 골을 만들었다"고 겸손하게 말하는 모따. 그는 오늘의 골로 성남의 '영웅'이 되었습니다. 비록 그의 골이 승리를 가져다주지 않아도 말이죠. 모처럼 관중석을 꽉 채운 성남의 팬들. 그들이 오늘의 감동을 기억한다면 반드시 다음 홈경기에도 탄천을 찾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 경기에서 '영웅' 모따는 그 어떤 선수보다 더 많은 박수갈채를 받을 것입니다.



박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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