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장준영 기자] 22일 새벽 3시 30분 모스크바에서 '07-08' 챔피언스리그가 결승전이 열렸다. 두 번째 우승도전과 올 시즌 더블을 노리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와 사상 첫 유럽 정상등극을 노리는 첼시의 맞대결이었다. 결과는 승부차기에서 골키퍼 반 데사르(맨유)의 선방에 힘입은 맨유의 두 번째 정상 등극이었다. 첼시는 리그에 이어 챔피언스리그까지 맨유에 패하며 눈물을 삼켰다.
모두를 깜짝 놀라게 한 퍼거슨의 선택과 전반전
경기 시작 1시간 전에 발표된 선발명단과 엔트리에는 박지성의 이름을 찾아 볼 수 없었다. 한국의 팬들과 관계자들은 당황했고 이는 외신 기자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지난 8강전부터 인상적인 활약을 펼치며, 리그와 챔피언스리그에서 자신의 가치를 입증했고 어느 때보다 박지성에 대한 평가가 좋았던 터라 교체로라도 출전할 것을 예상했었다.
때문에 명단이 발표된 후 많은 사람이 충격과 경악에 휩싸였었다. 이를 두고는 훈련 중 부상을 당해서 출전할 수 없다는 말까지 나왔다. 하지만, 하프타임 이후 퍼거슨 감독의 인터뷰에서 박지성의 결장이 전술적 선택이었음이 드러났다. 올 시즌 오른쪽 풀백이나 중앙 미드필더로 출전했던 하그리브스를 오른쪽 윙어로 기용하고 호나우도의 자리를 왼쪽으로 옮기기 위함이었다. 이와 같은 퍼거슨의 선택은 전반전에는 주효했다.
강력한 첼시의 미드필더진 앞에서 하그리브스는 수비시 미드필더 지원 및 브라운과의 연계 플레이를 통해 첼시의 왼쪽 공격라인을 차단했다. 공격시에는 상대 수비진을 끌고 다니며 풀백인 브라운과 중앙 공격진들에게 공간을 만들었다. 또한, 왼쪽으로 자리를 옮긴 호나우도는 최근 포지션 이동으로 좋은 효과를 보고 있는 에시앙와의 대결에서 연달아 승리하며 첼시를 위협했다.
마침내 전반 32분 브라운의 크로스를 호나우도가 헤딩골로 연결하면서 퍼거슨 시프트는 성공을 거두는 듯했다. 그러나 종료 직전 램파드에게 동점골을 허용한 채로 전반전을 마치면서 불안한 기운이 감지됐다.
아쉬웠던 퍼거슨의 선택과 후반전
모스크바 경기장은 결승전 15일 전에야 천연 잔디를 새로 깔았고(그 전까지 인조잔디) 러시아 국가답게 기온이 축구를 하기에 썩 좋지 못했다. 게다가 경기장은 비까지 내리고 있었고 경기 시작 시각은 현지 시각으로 밤 10시가 넘어서였다. 전반전 호나우도의 선제골에 이어 테베즈가 결정적인 기회를 놓친 맨유는 첼시에게 동점골을 허용한 채로 후반전에 나섰다.
후반 시작 후 분위기는 첼시의 분위기였다. 맨유의 스콜스-캐릭 조합보다 공격성이 뛰어난 첼시의 발락-마케렐레 조합은 시종일관 맨유를 압도했다. 전반전만 해도 맨유의 역습에 위기를 맞았던 첼시는 후반 들어 역습을 허용하지 않았고, 조직적인 축구로 차근차근 점유율을 높여 나갔다. 퍼거슨이 선택했던 하그리브스는 전반전만큼의 임팩트를 보여주지 못하고 고립되었고, 호나우도의 왼쪽 측면 돌파에만 의존한 맨유의 공격은 단조로웠다.
결국, 퍼거슨은 긱스와 나니를 투입해서 분위기를 바꿔보려고 하였으나 이들은 분위기를 바꾸기에 적절한 카드가 아니었다. 이 즈음 경기 환경이 선수들을 일찍 지치게 하는 상황인데다가 첼시에 비해 파워가 부족한 맨유로서는 박지성이 절실했다. 그러나 맨유의 교체 명단에는 오셔와 플레처가 포함되어 있었다. 혹시 생길지 모르는 미드필더와 수비진의 부상에 대비한 선택이기도 했지만 전반에 골을 넣어 이기면 오셔와 플레처를 투입해 수비를 강화하고 수세에 몰리면 긱스와 나니를 투입하겠다는 계획이었다.
선발 출장한 하그리브스와 비슷한 플레이 스타일을 보여주는 박지성은 그렇게 밀려났다. 하지만, 박지성이 선발 출장했거나 교체 명단에 있었다면 맨유는 경기를 좀 더 쉽게 풀어나갈 수 있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는 챔피언스리그 우승…. 하마터면?
퍼거슨의 선택은 팀의 두 번째 우승이자 올 시즌 더블을 달성하며 적중했다. 하지만, 후반전에 보여준 맨유의 경기력은 하마터면 지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수세에 몰렸었다. 연장전에 이어 승부차기까지 진행된 이날 경기는 악조건이었던 경기장 환경과 더불어 체력이 좋은 선수들이 필요했다.
세계적인 명장의 선택의 잘잘못을 표할 수는 없으나 확실히 아쉬운 선택이었다. 또한, 이날 교체 출전으로 맨유 소속 선수로 최다 경기 출전(759경기)을 이룬 긱스는 더욱 아쉬웠다. 전성기 때면 몰라도 작년 시즌부터 노쇠화가 시작되어 올 시즌에는 종종 기대 이하의 경기력을 보여주며 박지성보다 나을 것이 없다는 평을 들었던 긱스였지만, 노장의 힘이 필요했던 퍼거슨의 선택을 받았다.
하지만, 교체 투입된 긱스는 이렇다할 활약을 펼치지 못했고, 나니 또한 인상적인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다. 연장 후반 종료 직전 페널티 킥을 위해 안데르손이 투입된 부분에서는 박지성의 결장이 더더욱 아쉬워 지는 순간이었다.
박지성과 퍼거슨의 석연치 않은 선택
맨유나 챔피언스리그 8강전과 4강전에서 상대한 팀들은 AS로마와 바르셀로나였다. AS로마는 올 시즌 최종전에서 아깝게 인터밀란에 스쿠데토를 내줬고 바르셀로나 역시 올 시즌 주춤하긴 했지만 '판타스틱4'를 기용 할 수 있는 최강 팀 중 하나였다. 이런 팀들을 상대로 결승무대에 오르기까지는 박지성이라는 존재의 힘이 컸다.
실질적으로 기록한 공격포인트는 도움 1개이지만 그 어마어마한 활동량과 공 수를 가리지 않는 영리한 움직임은 상대팀에겐 여간 까다로운 것이 아니었고 맨유에겐 엄청난 힘이 됐다. 박지성이 8강전과 4강전에서 혁혁한 공을 세웠다는 것은 맨유와 그 팬들은 물론이고 각종 외신 및 맨유를 상대했던 팀들까지 인정하는 부분이다.
그런 박지성을 반드시 출전시킬 필요는 없었다 하더라도 최소한 엔트리에는 넣는 게 마땅하지 않았을까? 올 시즌 기복 있는 경기력을 보였던 나니와 플레처는 물론 노쇠했던 긱스를 대기 명단에 넣고 마지막에 페널티 킥용으로 출전시킨 안데르손에 이르기까지 시즌 막판 박지성보다 나은 모습을 보여준 선수는 없었다. 결승전에 진출한 팀의 일원이고 그렇게 되기까지 엄청난 활약을 했다는 것은 분명히 기쁜 일이지만 퍼거슨의 처사는 분명히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다.
장준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