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 김유진 기자] 배우 손현주가 영화 '보통사람'(감독 김봉한)으로 돌아왔다. 영화의 제목과 주연 배우가 갖고 있는 이미지가 꼭 맞춘 듯 한결같다.
다양한 얼굴을 가진 손현주가 '보통사람'을 만나 시너지를 발휘했다. '보통사람'에서 손현주는 가족과 함께 평범한 행복을 누리고 싶었던, 그 시절 평범한 형사 성진을 연기했다.
'보통사람' 개봉을 앞두고 서울 종로구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마주한 손현주는 편안한 후드티셔츠 차림으로 다정하게 취재진을 반겼다. 가만히 있어도 풍겨 나오는 여유로움과 몸에 밴 겸손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서울올림픽을 1년 앞둔 1987년 봄을 배경으로 한 '보통사람'에서는 당시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비롯한 국민들의 민주화 요구를 묵살하고 계속해서 군사독재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일체의 개헌 논의를 금지하는 조치(4·13 호헌조치)를 발표했던 전두환 정권의 이야기가 바탕에 깔려 있다.
"84학번입니다"라고 웃으며 1987년 그 시절 자신을 떠올린 손현주는 "저는 대학교를 다녔던 시절이에요. 현대사로 보면 격동기였던 시절이 맞죠. 그 때는 등록금이 화두였던 것 같네요. '호원 철폐, 독재 타도'도 깔려있었고요. 1970년대와 80년대는 틀림없이 다르지만, 그래도 80년대는 프로야구 같은 스포츠 쪽으로 눈을 돌리게 한 것 때문에 조금 풀어졌던 시대라는 느낌도 있던 것 같고요. 시대의 한 단면이죠. 저 역시 그런 민감한 상황들을 보고 느꼈던 사람이고요"라고 얘기를 꺼냈다.
'보통사람'을 위해 손현주가 2년을 기다린 사실은 앞서 널리 알려진 바 있다. 성진으로 살아가는 내내 '어떤 사람이 보통사람일까'에 대해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생각을 했던 시간들이었다.
"생각이 많아지죠"라고 말문을 연 손현주는 "그 당시 중산층 아버지들이라고 하면 그런 모습이 아니었을까요. 월급봉투 집에 다 갖다 주고 소주 한 잔 사오고. 그게 보통 사람, 평범한 사람 아니겠어요. 그런데, 지금의 평범한 보통 사람에 대한 정의를 내리라고 하면 못 내리겠어요. 어떤 사람이 평범한 사람이고 어떤 사람이 보통사람일까 싶죠. 그 때 당시는 '우리는 중산층이다'라고 하면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어떻게 보면 절대 다수가 중산층이었는데, 지금은 중산층이 있나요. 그런 것들 때문에 보통 사람과 평범한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물어보면 물음표가 길어질 것 같아요"라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1997년 IMF(외환위기) 시절까지 시간을 건너뛴 손현주는 당시의 나라 상황을 떠올리며 "그 때 가족 해체가 많이 이뤄졌다고 하죠"라면서 얕은 한숨을 한 번 내쉰 뒤, 이내 "(저는) 1997년에 결혼했습니다"라는 너스레로 분위기를 전환하며 다시 영화 이야기를 이어갔다.
아버지의 이야기도 꺼냈다. 지금 손현주 자신의 모습은 실제 아버지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것이었다. '보통사람'을 촬영하면서 누구보다 아버지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었을 그다.
손현주는 "저희 아버지는 권위적인 분이 아니셨어요. 그래서 제가 연극을 한다고 했을 때도 '네 인생을 네가 알아서 해라'라고 말하셨죠. 정말 친하게 지냈고, 물론 지금도 친해요. 지금은 많이 아프셔서…"라고 잠시 숨을 골랐다.
"제가 지금도 산을 좋아하는 이유는 아버지 때문이거든요. 저희 형만 해도 산을 싫어했는데, 저는 아버지가 '가자'고 하면 얼른 따라나섰죠. 제가 지금까지 버티고 있는 것도 아버지의 영향이 커요. 설거지 같은 집안일도, 아버지가 해 오셨던 길을 그대로 보고 하는 것이기 때문에 낯설지 않은 것이죠. 우리 아들도 지금 저를 보고 있잖아요. 저를 따라하겠죠?(웃음)"
사람 냄새 나는 '보통사람'이라는 제목처럼 우리 시대의 아버지를 실감나게 연기한 손현주를 비롯해 장혁, 김상호, 라미란, 조달환, 정만식, 지승현 등 인간미 가득한 배우들의 면면이 시선을 붙든다. 손현주는 극의 흐름상 촬영분량이 많이 편집돼 아쉽다는 최윤소의 등장까지 한 번 더 언급하며 출연진 한 명 한 명, 스태프들의 노고까지 함께 언급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착하고 좋은 배우들을 알게 됐죠"라고 흐뭇한 미소를 지어보인 손현주는 "(영화가) 경제적으로 많이 힘들었어요. 그런데도 배우들, 스태프들 불평불만 없이 잘 마무리됐던 것 같아요. 요즘 배우들이 참 착해요. 제가 후배들에게도 약속 시간만은 지키자고 얘기했는데, 정말 단 한 명도 어긴 사람이 없었어요"라고 설명했다.
"김상호 씨도 이번에 처음 만났는데, 정말 만나고 싶었어요. 그런데 상호 씨는 술을 너무 많이 마셔요.(웃음) 그렇지만 그게 뭐랄까, 기분 안 나쁘게 튀는 것이라고 할까요. '완득이' 때 모습이 기억 남아요. 진짜 열 번 이상 봤거든요? 김상호 씨 때문에 봤던 거예요. 남들이 안하는 그런 연기를 너무나 잘 해줬던 것 같아요. 정만식 씨한테도 '만나고 싶었다. 같은 화면, 앵글에 담겨보고 싶다'고 그랬고요. 정만식 씨 반응이요? '절 왜요?'라고 하던데요."
손현주는 순간 정만식의 표정을 흉내 내면서 후배들에 대한 애정을 함께 표현했다. 현장의 분위기도 이내 더 화기애애해졌다.
'보통사람'이라는 말에 가장 잘 어울리는 것 같다는 이야기에도 손현주는 "꾸준히 일 해왔기 때문에, 그런 데서 소소한 점을 발견해주시는 것 같다"며 "다행이네요"라고 다시 웃어보였다.
역시 공은 자신을 드라마에 캐스팅 해 준 작가들에게 돌렸다. "사람 냄새나는 드라마에 저를 끼워주고, 써 주셨던 작가 분들 덕분이죠. 문영남 작가님이나 김은경 작가님은 저에겐 은인 같은 분이에요"라고 얘기한 손현주는 "저는 아무것도 아니에요. 세월에 대한 연기에 최고이신 선배님들이 계시잖아요. 故 김인문 선생님부터 故 김무생 선생님까지요. 정말 연기의 대가이시죠. 저를 술친구처럼 귀여워해주셨던 故 조경환 선생님도 그렇고요. 사람들이 많이 생각나네요"라고 덧붙이면서 추억에 잠겼다.
사람에 대한 애정만큼이나 나이, 성별을 가리지 않고 동료들과 폭넓게 교류하는 손현주의 허물없는 평소 성격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순간순간들이었다. 손현주는 그 비결로 "그 사람에 대한 존중이죠. 상대에 대한 존중이기도 하고요"라는 명쾌한 답을 꺼내들었다.
평소 절친하게 지내는 가수 장윤정의 이야기를 꺼낸 손현주는 "저는 가수들에게 늘 '음악 하는 사람'이라고 얘기를 해요. 드라마가 됐든 영화가 됐든, (노래로) 도움을 받는 경우가 굉장히 많거든요. 남편 도경완 씨와도 참 잘 어울리죠? 따로도 자주 봐요. 장윤정 씨가 '어디쯤 있는데요'라고 하면 전 이미 택시를 타 있고, 곧 도착해있죠"라고 유쾌한 입담을 자랑하며 소탈한 면모를 함께 뽐냈다.
'보통사람' 역시 관객들에게 진한 사람 향기를 전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것이 그의 바람이었다.
"보통보다 더 사람 냄새가 나는 영화였으면 좋겠죠. 사람의 향이라는 게 있지 않겠습니까. 사람의 향기, 사람의 냄새가 짙게 났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말하는 손현주의 모습, 그 자체가 '보통 아닌' 보통 사람의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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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진 기자 slowlife@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