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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스타일엑스] '페북 스타'에서 열혈 디자이너까지...'페일 터콰이즈' 박린준

기사입력 2017.02.10 18:38 / 기사수정 2017.02.11 14:02

서재경 기자

[엑스포츠뉴스 스타일엑스 서재경 에디터] 열정의 아우라가 느껴지는 사람이 있다. 

디자이너 박린준이 바로 그런 사람이다. 스물 다섯의 나이에 서울패션위크 2016 F/W GN쇼로 화려하게 데뷔한 그는 아직도 꿈을 향해 거침없이 나아가는 중이다.   

박린준만의 색을 꾹꾹 눌러 담은 '페일 터콰이즈 (Pale Turquoise)'는 어느덧 엄정화, 샤이니, 블랙핑크 등 내로라 하는 셀럽들이 선택한 브랜드가 됐고, 그 역시 대한민국 패션계가 기대하는 디자이너로 우뚝 올라섰다.


그럼에도 여전히 도전하고 싶은 것이 셀 수 없이 많다는 디자이너 박린준. 열정 넘치는 '무한도전'의 아이콘인 그를 스타일엑스가 만나봤다. 
 



Q. 먼저 '페일 터콰이즈'에 대한 소개 부탁한다. 


"'에코 럭셔리'라는 컨셉으로 운영을 하고 있다. 에코 패션도 럭셔리한 명품 브랜드가 될 수 있다는 취지를 담았다. 브랜드 이름 '페일 터콰이즈'가 옅은 옥색이라는 뜻인데, 이름 따라서 옅은 옥색을 시그니처 컬러로 갖고 있다. 또 해양 생물이라는 시그니처 모티브를 갖고 있기도 하다. 옅은 옥색은 제주의 바다를 의미하기도 하는데, 내 고향이다. 그런 영감의 원천을 풀어내고 있는 브랜드가 페일 터콰이즈다.  


Q. 독특한 브랜드 명이다. '페일 터콰이즈'란 이름을 짓게 된 계기가 있나? 

"검색창에 '터콰이즈'를 검색했을 때 무수한 검색 결과가 뜨더라. 그래서 앞에 색을 형용할 수 있는 단어를 넣고 싶었다. 고민하다가 Pale 넣어 봤는데, '페일 터콰이즈' 괜찮은 거다. (웃음) 

사실 내 이름도 본명이 박광준인데, 디자이너 이름으로 박광준이라는 이름은 너무 흔하고 디자이너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앙드레김 선생님도 본명이 아닌 디자이너 명을 사용하시지 않나. 나도 그런 이름을 찾다가 내 이름 광준의 광이 '빛 광(光)'인데 여기에 '구슬 옥(玉)'을 더하면 '옥빛 린(璘)'이 되더라. 브랜드와도 어울리고 의미도 있어 '박린준' 이란 이름을 사용하게 됐다."  

Q. 어린 나이에 패션 위크로 화려하게 데뷔를 했다. 쉬운 과정은 아니었을 것 같은데. 

"정말 쉽지 않았다. 상품 구성부터 판매에 이르기까지 모든 과정을 내가 혼자 해야 했기 때문에. 인턴이나 헬퍼는 있었지만, 지금은 자금난에 시달리고 있는 영 디자이너이기 때문에. (웃음) 어려운 부분이 많았던 것 같다. 디자인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면 좀 더 멋진 컬렉션을 선보일 수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한편으론 힘든 과정이 있었기 때문에 좀 더 영감을 받아서 파격적인 디자인이 할 수 있었던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   

  
Q. 직접 마케팅, 세일즈도 함께 하다보면 시야가 넓어질 것 같다.

"아무래도 다방면으로 공부를 하게 되는 것 같다.  쇼도 직접 기획하고, 심지어는 쇼를 위한 음악마저 친한 DJ 형이랑 직접 만들기도 했다. 모든 아티스트를 존경하는데, 음악적인 아티스트들은 정말 넘사벽인 것 같다. 진짜 리스펙한다. 음악 때문에 패션쇼의 분위기가 좌우되는 경우도 많다."  

Q. 처음 패션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다면?  

"처음부터 패션 디자이너를 꿈꿨던 것은 아니다. 원래는 발명가가 꿈이었다. (웃음) 중학생 때 부터 디자이너를 꿈꿨는데, 그게 꼭 패션 디자이너는 아니었다. 그런데 아무래도 '의식주' 중에서 나와 가장 밀접한게 '의'다 보니, 그쪽으로 나를 승화시키지 않았나 생각한다. 사실 음식하는 것도 좋아하고 여러가지 좋아하는 게 많은데 의류로 나를 표현하는 것이 가장 편했던 것 같다."

Q. 학창 시절부터 옷 입는 것도 관심이 많았나? 

"그렇다. 어렸을 땐 초록색을 너무 좋아해서 '초록 괴물'이라고 불렸었다. 컨버스부터 시작해서 백팩까지 초록색을 엄청 모았었다. 한 때 서클렌즈까지 초록색으로 꼈었다. 정말 가관이었다. (웃음) 친구들이 초록색만 봐도 "박광준" 이럴 정도였다." 

Q. '패션' 덕분에 페이스북에서도 유명했다고 들었다. 

"페이스북에서 스트리트 패션과 관련된 콘텐츠 활동을 했었다. 그 때가 2011년이었는데, 가로수길에서 스트리트 패션이 엄청 강세였다. 지금은 잠잠해졌지만 다양한 패션 블로거들이 있었다. 요즘은 놈코어 룩이 유행하고 심플한 분위기가 조성됐지만, 그 당시에는 파격적이고 개성있게 입는 사람들이 많았다. 아티스트 소울이 있는 블로거들이 많았던 것 같다.   

제주도는 이런 스트리트 패션 문화에서 동떨어져 있었고, 디자이너 브랜드라는 개념 자체가 되게 생소했을 때였다. 지금이야 제주 면세점에 '스타일난다'까지 입점할 정도가 됐지만, 예전엔 그렇지 않았다. 제주에 이런 스트리트 문화를 비롯해 디자이너 컬렉션, 디자이너라는 직업을 소개하는 식으로 콘텐츠를 기획했었고 팔로워가 급상승했었다. 물론 제주도 사람들은 40%고 거의 60%는 서울 사람들이었다. 전국적으로 관심을 많이 받았던 것 같다. 그 때 커뮤니티를 운영하며 한 달에 한 번 제주도에서 플리마켓도 했었다. 셀러가 30~40명 정도 됐었고, 하루 벌어들이는 수익이 450만원 정도로 흥했었다. 당시 제주도를 대표하는 '페북 스타'였다. (웃음) 

그 팔로워를 갖고 '파츠파츠 (PARTsPARTs)' 임선옥 디자이너와 면담을 하게 됐고, 파츠파츠에서 SNS 마케팅 일을 했었다. 인턴으로서 디자이너 멘토링을 받기도 했고. 그 때부터 패션 디자이너의 길을 본격적으로 걷게 됐다." 

Q. 임선옥 디자이너와는 서로 연관 검색어에도 오르는 사이더라. 

"내가 선생님께 영향 받았다는 인터뷰를 많이 했었는데, 아마 선생님은 이런 언급을 안 좋아하실 거다. (웃음) 나는 임선옥 선생님의 팬이고, 회사에서 일했을 때와 내 브랜드를 하고 있을 때 다른 관점에서의 존경심이 생겼다.  

회사 입사 전, 팬의 입장에서 임선옥 선생님을 떠올렸을 때 '이렇게 독특하고 자신만의 철학이 있는 디자이너가 한국에도 있구나'하는 생각에 존경을 했던 것 같다. 

파츠파츠에 입사를 하고 난 후에는, '이렇게 권위있고 카리스마있는 CEO 겸 디자이너가 있구나'하는 관점에서 존경을 했다. 

파츠파츠를 나오고 나서 존경하게 된 부분은 파츠파츠가 단 하나의 소재만을 사용한다. '제로 웨이스트'라는 친환경 패턴 제작법으로 소재를 남김 없이 사용해서 깔끔한 셔츠를 만든다. 그런 관점에서 봤을 때 하나의 소재로 하나의 상품군만을 갖고 브랜드를 이끌어 가는 모습이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친환경 소재로 아트적인 의상을 제작하시고, 브랜드 운영도 잘 하시는 모습이 내 브랜드를 경영하면서 같은 디자이너의 입장에서 보니 귀감이 됐다. 말하고 보니 파츠파츠 홍보대사 같다. (웃음) 팬의 관점, 직원의 관점, 디자이너의 관점에서 봤을 때 모두 존경스러운 분이다." 
 



Q. 페일 터콰이즈의 컨셉이 '아쿠아리움'이다.

"임선옥 디자이너의 '달항아리', 고태용 디자이너의 '애니멀 프린트'처럼 시그니처 모티브를 갖고 싶었다. 

브랜드를 하기 전에 제주도에서 심심풀이 사업으로 '가시고기'를 모티브로 한 맨투맨을 만들었었다. 100장을 제작했는데 하루만에 다 팔렸다. 가시고기를 모티브로 정한 이유는 내가 물고기를 좋아하고 나를 대표할 수 있는게 물고기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물고기를 소재로 하고 있는 작가나 디자이너가 되게 많더라. 그러면 물고기 살을 다 발라서 가시고기를 해볼까 하는 생각이었다. (웃음) 당시엔 반응이 괜찮았다. 그런데 한계가 느껴지더라. 그래서 '그럼 아예 아쿠아리움 수조 안에 있는 동물들을 한 번씩 다 사용해볼까?'하는 생각을 갖고 브랜드의 시그니처 모티브를 '아쿠아리움'으로 잡았다. 

다른 사람들은 종종 '이 컨셉도 한계가 있지 않을까?'하고 물어보는데, 나는 아마 죽을 때까지 해양 생물들을 다 쓰지 못할 것 같다. 지금 조금씩 다양한 해양 동물을 연계해서 의류에 녹여내고 있다. 지금은 거북이가 대표적인 모티브가 됐다. 다복과 장수의 의미가 있더라. (웃음) 지금 이 캐릭터는 (본인이 입은 옷을 가리키며) 이번에 출시하는 '어항걸'이라는 캐릭터다. 어항을 얼굴에 쓴 미래적인 캐릭터 느낌? 그런 느낌으로 작업을 해봤다."  

Q. 지금까지의 컬렉션을 보면 '퓨쳐리즘'에 기반한 의상을 많이 만드는 것 같다.  

"딱히 의도한 것은 아닌데, 내가 그런 걸 좋아하는 것 같다. 우주, SF 영화, 랜드스케이프 등에서 영감을 많이 받고, UFO나 에일리언 같은 캐릭터에 호감을 느낀다. (웃음) '외계인'의 존재에 대해 흥미를 갖고 있기도 하고. 이런 것들이 알게 모르게 반영되고 있는 것 같다. 우주라고 생각하면 몽환적이고 눈부시고 블링블링한 느낌이 나는데 이런 것들이 내가 좋아하는 소재와도 일맥상통하는 것 같다." 

Q. 소재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네오프렌이나 광택감 있는 소재를 좋아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 

"일단 브랜드의 정체성을 표현하기 위해서 남들과는 차별화되는 나만의 소재를 보여줘야 된다고 생각했다. 블링블링하면서도 미래적인 것이 나의 아이덴티티고 이런 걸 어떻게 풀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은박 소재에 관심을 갖게 됐다. 

은박 소재를 보면 바다에서 은갈치가 일렁이는 것 같지 않나. (웃음) 그래서 뭔가 이건 우주복같기도 하면서 어류의 생명력을 연상시킬 수 있는 소재라고 생각했다. 어느날 원단 창고에 원단을 쑤셔 박아 놨다가 한참 뒤에 원단 창고를 열었더니 생선 비린내가 나더라. '이게 무슨 냄새야?' 했는데 원단에서 나는 냄새더라. 실제로 내가 강연할 때도 묵혀뒀던 내 원단 냄새를 맡아보라고 학생들한테 얘기한다. 그럼 정말 신기해한다. 아마 코팅하는 과정에서 비린내가 나게된 것 같다. 생선도 표피가 햇빛에 그을리면서 비린내가 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것도 비슷한 과정이 아닐까 싶다. 그런 냄새를 맡으면서 내가 사용해야 할 소재구나 하는 운명적인 느낌을 받았다. (웃음) 



▲ 지난 해 런던 ‘FAVOTELL LONDON’ 엑시비션 전시에 초청받았을 당시 박린준 디자이너가 제작했던 의상.

디자이너가 쇼를 준비하면서, 쇼적인 부분도 중요하지만 이걸 입을 수 있을까하는 생각도 하게되지 않나. 그래서 이 은박을 좀 웨어러블하게 만드는 작업을 16FW 작업에 녹여냈다. 물론 사람들이 봤을 땐 절대 못입을 것 같다고 했지만. (웃음) 그게 은박에 특수 염색을 하는 작업이었다. 그 은박을 고온에 가열하고 손상시키면서 광발을 죽이는 대신에 색깔을 높였다. 그게 내가 런던에서 전시했던 의상이다. 한국의 한복에서 수박색을 많이 볼 수 있지 않나. 그런 헤리티지를 살렸다. 자세히 보면 잉어 그래픽이 들어갔다. 한국적인 멋이 있는. 이건 런던에서도 평가가 굉장히 좋았다. 서울패션위크 쇼를 하고 런던에 초대가 되서 이 의상을 선보였던건데 소재 선택을 잘했다는 생각이 들더라."  


Q. 본인의 옷이 웨어러블하지 않다고 표현했지만, 페이스북에서 페일 터콰이즈 스트리트 사진들을 보니 일상에서도 입기 괜찮을 것 같던데.

"사람들이 오해를 하는게 '얘가 입을 수 있는 옷을 싫어하나'라고 생각라더라. (웃음) 디자이너들이 처음에는 자기 정체성을 보여줄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앞으론 쇼에서 입고 싶으면서도 정체성이 뚜렷한 옷을 선보이고 싶다." 

Q. 에코 럭셔리를 브랜드 철학으로 삼고 있다. 소재를 선택할 때 제약이 있진 않나. 

"요즘 패션계가 장족의 발전을 이뤄서 소재 선택에 대한 제약은 없다. 나같은 경우엔 폴리랑 나일론이 들어간 에코퍼를 쓰는데 실제 모피에 뒤지지 않는다. '푸시버튼' 박승건 디자이너가 'Fur is over'라는 슬로건으로 에코퍼 패션으로 도약하지 않았나. 그런데 그 이후에도 모피 업계에서는 꾸준히 반발을 해왔다. 동물의 털은 썩지만 에코퍼는 썩지 않는다면서 오히려 에코퍼가 공해라는 얘기도 하고. 그런데 나는 썩지 않으니까 지속가능한 거라고 생각한다. 소비자들이 버리지 않고 잘 관리만 해준다면 말이다.  

내가 가진 의문은 '동물들이 자기 털 깎으라고 허락해줬나?'라는 거다. 좋은 가발을 만들기 위해 인간의 머리카락을 자르면 어떻겠나. 같은 맥락이라고 생각한다. 털을 깎이면서 동물들이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고 생명의 위협을 받겠나. 동물권을 무시한 처사라고 생각한다. 

동물의 리얼 퍼나 표피를 구현한 소재를 얼마든지 제작할 수 있음에도 굳이 동물을 죽여야 하는 게 비윤리적이라 생각한다. 굳이 비윤리적으로 패션 인더스트리를 이끌어가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드는 거다. 내가 사진을 취미로 찍었었는데, 동물원이나 수족관에 가서 직접 사진을 찍으면 그 사진을 갖고도 선명하게 프린트를한 제품을 만들 수 있다. 진짜는 아니지만 정말 리얼한. 이게 윤리적인 패션이지 않나 생각한다." 

Q. 세컨 브랜드 만들 계획은 없나? 

"지금 페일 터콰이즈를 운영하는 것만으로도 벅차다. 아직 세컨 브랜드에 대한 생각은 전혀 없다. 나중에 브랜드가 흥하더라도 세컨 브랜드에 대한 생각은 없다. 세컨 브랜드를 내는 이유가 아이덴티티를 조금 낮추고 저렴하게 만들겠다는 의도인데, 나는 내 아이덴티티를 낮출 생각이 없다. 그 만큼 값어치 있는 옷을 만들기 위해 정말 노력하고 싶다. 어쩌다 시기가 잘 맞아서 디자이너 소릴 듣고 있지만, 봉제나 기술적인 면에서는 배울게 너무 많다. 정말 안 까불고 열심히 하고 싶다. 주변에서도 내가 열심히 하는 걸 아니까 많이 응원해준다."  



▲ 2016년 발매된 엄정화의 앨범 커버 이미지. 옥색 퍼 코트가 '페일 터콰이즈'의 제품이다.

Q. 엄정화가 이번 앨범 에서 착용한 것도 '페일 터콰이즈'의 에코퍼 의상이다. 

"엄정화 씨도 되게 맘에 들어했다고 들었다. 엄정화 씨 측에서 연락이 왔을 때 굉장히 놀랐다. 샤이니나 블랙핑크에게도 협찬을 했었지만, 엄정화라는 가수가 협찬을 요청했을 땐 진짜 놀라움 자체였다. 게다가 그 의상을 입고 찍은 사진이 커버에 올라갔다는 얘기를 듣고 정말 놀랐다. 지금도 유명하지만, 한 획을 그으신 분 아닌가. 대선배 같은 존재가 내 의상을 입고, 그녀의 히스토리에 내가 함께했다는 것이 디자이너 되길 잘 했다는 생각을 들게 했다. 정말 신기한 게 대가족이 밥을 먹을 때 "오늘 엄정화 컴백했대"하면 삼촌부터 조카까지 다 알아듣는다. 그게 엄정화가 대단한 이유같다.   

엄정화를 대표하는 컬러가 섹시한 블랙과 레드이지 않나. 그런 강렬한 레드 브라톱과 레드 립 위에 이질적일 수 있는 옥색 퍼를 걸쳤는데 마치 나와 콜라보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정말 영광스러웠다."

Q. 어떤 계기로 엄정화에게 의상을 협찬하게 된 것인가? 

"엄정화 씨의 스타일리스트인 김석원 씨에게서 연락이 왔다. 그 순간에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는데, 디자이너들이 항상 망상에 빠져살지 않나. (웃음) 그 당시에는 '내가 정말 엄정화씨의 전담 패션 디자이너가 돼서 그녀의 무대 의상만 디자인 해도 내 업적은 끝났다' 이런 생각까지 들더라. 그 분이 워낙 많은 활동을 하시는 분이라. 그 만큼 너무 좋았다." 

Q. 직접 만나기도 했나? 

"아쉽게도 아직 직접 만나지는 못했다. 그래도 우리는 인스타그램 맞팔한 사이다. 메시지도 하고. (웃음) 쇼를 하게 되면 꼭 온다고 하셨다."  

Q. "패션계의 김정은이 되겠다"는 얘길 한 적이 있더라. (웃음) 어떤 의미인가? 

"오늘은 머리를 넘기고 왔는데, 평소에 5:5 가르마를 타고 다닌다. 지금 살이 되게 많이 쪄서 더 그런데 이 전에도 김정은 닮았다는 말을 종종 들었다. (웃음) 언제 터질지 모르는 성격도 닮았다고. (웃음) 그래서 어떤 인터뷰에서 재미로 얘길한 적이 있었다.

또 한창 김정은 닮았다는 얘길 들었을 때, 중국 상하이로 출장을 갔었다. 거기서 '평양 선봉관'이라는 북한 음식점엘 갔었는데 일행이 "이분 김정은 닮지 않았어요?" 물어보니까, 거기 직원분이 콧방귀를 뀌면서 "김정은 말씀입네까? 콧털도 못따라갑니다." 이러더라. (웃음) 나도 패션계에서 내 이름을 얘기했을 때 누가 따라오지 못할만큼 독보적인 존재가 되고 싶다는 의미도 생겼다. (웃음)" 

Q. 평소엔 주로 어떤 친구들과 어울리나? 

"다양한 친구들이 있다. 기자 친구도 있고, 의류 업계에 종사하는 친구도 있고, 배우인 친구도 있고, 농업에 종사하는 친구도 있고. 정말 다양하다. 친구들 중에서도 내 옷은 정말 이해 안간다고 하는 이들도 있다. (웃음) 당장 우리 부모님도 그러신다. 내가 패션디자이너를 한다고 했을 때 반대도 심하셨고."  

Q. 왜 반대하셨나? 

"일단 보편적으로 디자이너 하려면 금전적인 부분도 받쳐줘야 된다는 생각이 있어서 그랬던 것 같다. 그런데 집이 가난해서. 부도가 두 번이나 났다."  

Q. 사실 소위 말하는 '금수저'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굉장히 의외다.   

"흙수저다. (웃음) 정말 갖은 일을 많이 했다. 지금도 여섯시에 일어나는 게 철칙이다. 아직도 다양한 일을 병행하고 있다. 다른 브랜드 컨설팅이나 소싱해주는 일도 하고. 

어떨 때는 정말 하루가 빨리 지나가 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특히 내 의류 제작할 때. 공장 운영 시간이 정해져 있는데, 나는 빨리 보고 싶고 그렇다. 나중에 금전적 여유가 되면 직접 24시간 운영되는 공장을 차리고 싶다는 생각을 할 정도다. (웃음) 지금 내 열정은 그 정도다. 모든 일이 너무 재밌다."  

Q. 평소에 가만있질 못하는 성격일 것 같다. (웃음) 지금 또 준비하고 있는 도전이 있나? 

"아직은 생각만 하고 있는데, 기회가 되면 생수 사업을 되게 해보고 싶다. 브랜드가 에코 쪽으로 가다 보니까 이걸 함께 서포트할 수 있는 사업으로 생수 사업이 적절하단 생각이 들더라. 물도 고향 제주도 물로. (웃음) 브랜드가 좀 더 유명해지면 해볼만 할 것 같다." 

Q. 제주도가 정말 영감의 큰 원천이 되는 것 같다.  

"사실 잘 몰랐다. 그런데 내가 제주도 출신인 것에 대한 강점이 있더라. 제주도 출신이라 특별히 주목도 많이 받았다. 서울패션위크 무대에 올랐을 때도 제주도 최초로 초청된 디자이너라고 소개되기도 하고. (웃음) 페일 터콰이즈의 시그니처 컬러도 딱 제주도 바다 색이다. 

Q. 이태원에 쇼룸이 있지 않았나? 

"지금은 닫았지만, 1년 정도 운영했었다. 되게 조그만 쇼룸이었다. 어항 같은. 

그 쇼룸을 운영하게 된 사연도 재미있다. 원래 쇼룸 건물이 큰 슈퍼였다. 건물만 크고 약간 구멍가게처럼 운영되는. 내가 당시 이태원에 살면서 트렌스젠더 누나들과 친분이 좀 있었다. 이태원 문화는 LGBT와 관련이 많다. 우리집도 트랜드젠더 촌에 있었다. 그걸 계기로 우연히 친해지게 됐고, 그분들이 내가 디자이너고 쇼룸을 갖고 싶어한다는 걸 알게 됐다. 근데 내가 가난한 학생이지 않나. 그래서 그 누나들이 슈퍼 사장님을 연결해 줬다. 

그 슈퍼가 60평이나 되는데, 사장님이 혼자 운영하시는 곳이었다. 그래서 누나들이 가게가 크니까 가게를 분리해서 세를 내주면 어떻겠느냐고 사장님께 제안을 한 거다. 그래서 그 가게를 얻게 됐었다. 밖에서 봤을 땐 정말 어항같은 느낌으로 쇼룸을 꾸몄다. 밖을 옥색으로 칠하고. 

그 당시에 장사가 꽤 쏠쏠했었다. 이태원은 취해서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많지 않나. 취해서 돌아다니다가 결제하고 가는 분들이 많았다. (웃음) 그 때는 장사 시간도 이태원 분위기에 맞춰서 오후 세 시부터 새벽 세 시까지 열었다. 역시나 새벽 한 두시에 오는 사람들도 많았다. 내 쇼룸이 이태원 밤문화의 중심인 거리에 있었다. 쇼룸에서 오 십 걸음만 걸어가면 외국인들이 많이 오는 유명한 바가 있었다. 거기가 서울패션위크 기간 동안 유명 바이어와 디자이너들이 많이 찾는 바였던 거다. 그들이 왔다가 우연히 내 쇼룸에 들러서 막 "Special!" 이러면서 친해지고. (웃음) 정말 재미있었다. 쇼룸 구해준 누나들과는 아직도 연락하며 지낸다. (웃음)  

Q. 새로운 쇼룸 오픈 계획은 없나? 

팝업 스토어는 계획 중에 있다. 부산 센텀시티 백화점에 생각하고 있다. 지금은 내실을 많이 다져야할 단계인 것 같다. 아티스트로 사는 것보다는 대중과 소통하는 부분도 있어야 할 것 같다.  

Q. 디자이너로서의 꿈이 있다면? 

"플래그쉽 스토어를 짓고 싶다. 브랜드가 유명해지고 돈을 좀 벌면 아이덴티티를 잘 드러낼 수 있는 쇼룸을 짓고 싶다. 원통 유리에 제주도의 현무암을 접목한 건물을 구상하고 있다. (웃음) 런던에서 '하이드 파크'에 갔었는데, 미래지향적이면서도 자연과 어우러져 정말 멋지더라. 나도 건물만 예쁜 것이 아니라 자연과 잘 어우러진 플래그십 스토어를 만들어보고 싶다. 사람들이 옷도 구경하러 오지만, 그냥 작은 관광지처럼 오갈 수 있는 곳으로." 
 
Q. 마지막으로, 신진 디자이너 중에서 '박린준'을 보며 꿈을 키우는 사람들이 많을 것 같다. 그들에게 한 마디 해준다면? 

"요즘 내수침체 때문에 오히려 누구나 사업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이 된 것 같다. 예전에는 미니멈 만 개가 아니면 안되는 시대였는데, 요즘은 미니멈 열 개도 찍어낼 수 있는 시대다. 그래서 누구나 사업을 할 순 있지만, 또 반대로 누구나 망할 수 있는 시스템이 됐다. 나는 그런 점을 얘기하고 싶다. 누구나 도전할 수 있지만 누구나 망할 수 있다는 걸 간과하지말고 신중한 마음으로 도전하라고. 내가 내 다음 세대에게 얘길 할 만큼 경력이 길진 않지만, 새로운 꿈나무가 진입을 원한다면 항상 진지한 마음으로 열정을 갖고 임하라고 얘기해주고 싶다. 

런던에서 초청을 받아 갔을 때 브랜드를 후원해준 기업이 있었다. 거기 대표가 한국 디자이너에게 관심이 생겼다고 해서 내가 '한국인디브랜드페어'에 초청했던 적이 있었다. 그 때 아는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너는 마인드가 좀 다른 것 같다. 자기가 기회를 갖지 못한다고 해서 그걸 버리는게 아니라, 누군가에게 토스해주는 것이.'라는 얘길 하더라. 그 얘길 듣고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그 기업 대표는 나를 최고라고 생각해' (웃음) 나는 기회는 공유할테니 가져갈 사람은 가져가라는 마인드였다. 나는 내가 자신있기 때문에 앞으로도 좋은 기회를 공유하고 싶다. 

'나만 잘 살자'가 아니라 서로 상생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졌으면 한다. 서로 배아파하는 시대가 아니라 공유하는 시대가 됐으면 좋겠다. 이렇게 해야 스타 디자이너가 한 명이 아니라 열 명 태어날 수 있게 되는 것이 아닐까."  

글 = 서재경 에디터 inseoul@xportsnews.com 
사진 = 박지영 기자 jypark@xportsnews.com



서재경 기자 inseoul@xport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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