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최종편집일 2024-11-24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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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랜드슬램'을 통해 나타난 리버풀의 과제…무거운 제라드의 어깨

기사입력 2008.03.26 15:52 / 기사수정 2008.03.26 15:52

이재호 기자

[엑스포츠뉴스=이재호 기자] 리버풀은 반슬리와의 FA컵 경기에서 충격적인 패배를 당한 이후, 리그와 챔피언스 리그에서 모두 '7연승'을 달려왔다.

경기 내용도 좋았다. 인테르와의 챔피언스 리그 1, 2차전을 포함해 15일 프리미어리그 레딩전까지 모두 7경기에서 리버풀은 18득점 4실점.  경기당 평균 2.5득점에 0.5실점이라는, 그야말로 쾌조의 컨디션을 선보였다. 특히 챔피언스 리그에서 세리아 A 챔피언인 인테르를 격파하고 8강 진출에 성공한 것은 리버풀 선수단의 사기를 크게 향상시켰다.

라파엘 베니테즈 감독 부임 이후 리버풀이 프리미어리그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통산 1무 6패라는 압도적인 약세를 보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이번 맞대결이 리버풀로서는 원정 경기였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팀의 모습은 팬들이 '이번에야 말로…'라는 기대를 걸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그랜드슬램 선데이'를 통해 뚜껑을 열어본 결과, 리버풀은 맨유에 0-3의 참패를 당했다. 팀의 주포 페르난도 토레스는 침묵했고, 하비에르 마스체라노는 불미스러운 행동으로 퇴장을 당하면서 이번 경기뿐 아니라 향후 일정에 있어서도 팀을 곤경에 빠뜨렸다.

물론 이 경기에서 승패에 큰 영향을 미쳤던 것은 전반 44분 마스체라노의 경고누적이었다. 마스체라노는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고 전반 내내 주심의 판정에 불평을 했으며, 결국 팀 동료와 감독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경기장 반대편에서 뛰어와서 토레스의 경고에 대해 항의한 마스체라노는 스티브 베넷 주심이 레드카드를 꺼내는 모습을 보아야만 했다.

그러나 마스체라노의 퇴장을 고려하지 않더라도, 경기 결과뿐 아니라 경기 내용으로 미루어볼 때 앞으로의 리버풀의 과제가 명백히 드러난 한 판이었다고 할 수 있다.

마스체라노 퇴장 이전에도, 리버풀의 사비 알론소-마스체라노-스티븐 제라드로 이루어진 중원은 맨유의 폴 스콜스-안데르손-마이클 캐릭으로 이루어진 중원을 효과적으로 공략하지 못하고, 평소의 리버풀다운 공격 전개를 보여주지 못했다.

이는 리버풀의 대부분의 공격이 제라드에게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7경기에서도, 리버풀의 공격의 핵심은 결국 제라드였다. 리버풀의 모든 공격 전개는 제라드를 거쳐갔으며, 제라드가 직접 마무리하거나 그의 패스를 받은 토레스가 마무리하곤 했다. 맨유는 리버풀의 강력한 미드필드에 수적인 우세를 허용치 않기 위해 평소 그들의 포메이션인 4-4-2가 아닌, 중원을 강화하는 4-3-3으로 대응했으며 이를 통해 제라드의 패스 공급을 철저히 차단했다.

베니테즈는 처음부터 이를 의식하고 선수들에게 주문을 한 듯, 제라드는 전반 초반부터 활발하게 전방에 침투하면서 토레스와의 연계 플레이를 노렸다.

그러나 맨유의 미드필드와 수비진은 이를 효과적으로 차단해 냈고, 전반전만 보더라도 리버풀은 슈팅 5회(이중 유효슈팅은 2회)만을 기록하면서 맨유의 중원을 뚫는 데 실패했다. 반면 맨유는 안데르손과 스콜스가 교대로 전방으로 전진하면서 경기를 풀어갔으며, 슈팅 9회(유효슈팅7회)를 기록하면서 리버풀보다 많은 찬스를 만들어냈고 심지어 이 중 한 번의 슈팅은 골로 연결되었다.

이 경기만을 놓고 보더라도, 맨유의 전방 패스 공급원인 두 명의 미드필더, 즉 지난 시즌 경이적인 패스 성공률을 자랑했던 스콜스와, 그리고 이적 첫 시즌임에도 불구하고 무득점이라는 점만 제외한다면 놀라운 활약을 해 주고 있는 안데르손은 두 명 모두 교대로 침투하면서 전방에 효과적으로 공을 배급했다. 또한, 캐릭은 후방에서 리버풀의 공격을 저지하면서 공격 전개시에는 동료의 공간 침투를 노린 긴 패스로 평소처럼 그의 임무를 다했다.

하지만, 리버풀은 어떠한가? 알론소는 분명 경기를 만들어 갈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선수이지만 이번 시즌 후반 들어 제라드 뒤에 위치하는 일이 많아지면서 전방으로의 공 배급에는 활발하게 나서지 않고 있다. 마스체라노는 뛰어난 수비형 미드필더이고 프리미어리그 이적 초기보다는 안정적인 패스를 뽐내고 있지만, 경기를 풀어갈 수 있을 정도의 배급력이 있지는 않다.

결국, 리버풀의 전방을 향한 패스 공급은 모조리 제라드 한 명에게 집중되었으며, 이것이 맨유의 미드필더들이 결코 리버풀의 미드필더들에 비해 능력적으로 절대적 우위를 차지하지는 못함에도 불구하고 리버풀의 중원을 효과적으로 막을 수 있었던 원인이다.

이렇게 제라드가 집중 견제에 시달릴 시에는 측면 공격수들이 제 역할을 해줬어야 하지만, 디르크 카윗과 라이언 바벨은 눈에 띄는 움직임을 보이지 못하면서 제라드에 대한 부담을 덜어주는 데 실패했다. 바벨은 가끔 좋은 돌파를 보여주었지만, 마무리 능력에 난점을 보이면서 모처럼 만들어낸 찬스를 날렸고 카윗은 애당초 돌파력이 뛰어난 선수는 아니었다. 또한, 카윗이 비록 윙어로 뛸 수 있는 다재다능한 선수이기는 하지만 그가 가장 자신의 실력을 발휘할 수 있는 포지션은 전방 공격수이다.

토레스는 현재 프리미어리그에서 가장 뛰어난 수비수들 중 두 명 사이에서 고립되어 버렸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자신의 능력이 허용하는 만큼은 팀에 공헌했지만, 이런 상황에서 그가 할 수 있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게다가 토레스는 강력한 몸싸움을 바탕으로 공간을 만들어내는 타입의 공격수가 아닌, 열린 공간을 향해 돌파를 시도해야만 제 위력을 발휘하는 선수이다. 이렇게 원톱으로 고립된 상황에서 그가 할 수 있는 것이란 역습 상황에서 가능한 한 돌파를 시도하면서 공을 소유하며 아군의 지원을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그러나 마스체라노의 퇴장 이후로는 이마저도 여의치 않았다.

리버풀은 이번 시즌 토레스를 확보하면서 오랜 고민이었던 '대형 스트라이커의 부재'라는 문제를 해결하면서 우승에 대한 꿈을 부풀렸다. 그러나 맨유전 패배로 이번 시즌 우승에 대한 꿈은 말 그대로 '꿈'으로 끝나버렸으며, 리버풀은 4위 자리 수성에 전력을 다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모든 스포츠가 그렇듯이, 하나의 과제를 뛰어넘은 리버풀 앞에는 또 다른 과제가 기다리고 있다. 제라드에게만 지워진 공격 전개의 부담을 누가 나눠가질 수 있느냐의 문제이다. 여기에는 여러가지 해법이 있을 것이다. 바벨의 성장, 알론소의 역할 변경, 혹은 선수 영입…리버풀의 감독 베니테즈가 자신의 능력을 보여주기를 기대한다.



이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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