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이상규 기자] '근시안적인 대표팀 운영, 2008년에 또 벌어졌다'
한국 축구가 올해 베이징 올림픽 본선과 2010년 남아공 월드컵 본선 대비에 돌입하면서 축구계의 시선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 박지성(27)에게 쏠리고 있다.
17일 대한축구협회는 오는 30일 칠레와의 평가전을 비롯 다음달 6일 투르크메니스탄과 남아공 월드컵 아시아지역 3차예선에 나설 26명 명단에 박지성을 포함시켰다. 허정무 감독을 비롯한 대표팀 코칭스태프들은 K리그 선수들의 컨디션 준비가 덜 돼 실전 감각을 유지한 프리미어리거를 중용키로 한 것. 그런 박지성은 오는 8월 베이징 올림픽에 나설 올림픽대표팀의 와일드카드 1순위로 주목받고 있어 차출 여부에 관심 쏠렸다.
국가대표팀은 지난해 7월 아시안컵에서의 극심한 공격력 부진으로 국내팬들에게 답답함을 안긴것과 동시에 '박지성이 있었더라면...'하는 아쉬움을 느겼다. 만약 박지성이 아시안컵에서 뛰었다면 결과가 달라졌을지 모르지만 사실 박지성은 2002년 한일 월드컵 이후 국가대표팀의 에이스이자 강팀에 강한 해결사로 군림했다. 경기 내용이 좋지 않았던 2004년 아시안컵에서는 박지성의 종횡무진 활약속에 답답했던 공격력을 해소시킬 정도로 한국 공격을 책임질 플레이메이커가 바로 박지성이다.
그러나 문제는 박지성의 상태다. 최근 9개월 부상 공백을 뒤로하고 복귀했지만 지난 7일 아스톤빌라전 활약상을 보듯 아직 컨디션이 정상궤도에 오르지 못했음을 확인할 수 있었고 그 영향으로 13일 뉴캐슬전에 결장했다. 당분간 맨유에서 경기 감각을 되찾는 것이 그의 중요한 임무일 뿐 몸을 완벽하게 회복되기 전까지는 잉글랜드에서 한국행 비행기를 태우는 차출은 무리수를 두는 것과 같다.
박지성은 국내에서 대표팀 경기까지 뛰는 무리한 차출속에 그동안 잦은 부상으로 고생했다. 2004년 3월 올림픽대표팀 차출에 따른 피로 누적 무릎 통증에 시달렸으며 2006년 5월과 9월에는 독일 월드컵과 아시안컵 지역 예선을 전후로 무릎과 발목 부상을 입었다. 지난해 3월 23일 한국에서 A매치 우루과이전을 뛴 박지성은 8일 뒤 블랙번전에서 오른쪽 무릎 연골 부상을 입어 9개월 동안 경기에 뛰지 못한 시련을 맞이했다.
문제는 칠레와 투르크메니스탄과의 경기가 벌어지는 장소가 한국이다. 더구나, 박지성의 소속팀 맨유는 프리미어리그를 비롯 트레블 달성을 위해 가장 중요한 시즌 후반을 맞이해 알렉스 퍼거슨 감독이 '맨유 공격의 중심'으로 꼽은 박지성의 존재가 절실한 상황에 놓여있다. 이미 국가대표팀 명단에 포함된 박지성이지만 향후 월드컵 3차예선 경기에 빠짐없이 포함될 것으로 보여 맨유의 빡빡한 시즌 후반 일정까지 겸해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된다. 컨디션 저하와 잠재적인 부상 가능성은 두 말할 필요 없는 불안 요소.
그런 박지성은 2008/09시즌 프리미어리그가 시작하는 오는 8월 올림픽대표팀의 와일드카드로 뽑힐 유력한 선수다. 박성화 올림픽대표팀 감독은 공격력 향상을 위해 박지성의 차출을 절실히 바라고 있지만 만약 박지성을 무리하게 차출하려는 움직임을 보일 경우 맨유와의 불편한 관계에 놓일 가능성이 커 자칫 박지성의 팀 내 입지까지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아무리 박지성이 올림픽 출전을 간절히 원하더라도 그가 무리한 출전으로 인한 잦은 부상에 시달렸음을 인지한 맨유는 그의 차출을 거절할 가능성이 크다.
특히 알렉스 퍼거슨 맨유 감독은 선수들의 대표팀 차출에 부정적인 입장을 가진 것으로 유명하다. 가브리엘 에인세(현 레알 마드리드)와의 갈등이 시작된 원인이 그가 맨유에 입단한지 한 달 만에 아테네 올림픽에 출전한 것임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이번 올림픽은 아테네 보다 거리가 먼 베이징에서 개최돼 유럽에서 전성기를 보내는 축구스타가 올림픽에 뛸 실질적인 가능성은 크지 않으며 이미 이탈리아의 프란체스코 토티(AS로마)는 베이징 올림픽 와일드카드를 거절했다.
박지성이 국가대표팀과 올림픽대표팀 경기까지 출전하더라도 맨유 경기까지 소화해야 하는 과도한 스케줄에 시달려야만 한다. 9개월 부상 공백이 복귀 이후 선수에게 큰 부담거리로 남을 수 있다는 점에서 그의 잦은 대표팀 차출은 퍼거슨 감독에게 달갑지 않게 비춰질 수 있다. 이동국(미들즈브러)의 프리미어리그 부진 주 원인이 장기간 부상 공백으로 인한 후유증 극복 실패라는 점에서 박지성은 적어도 월드컵 최종예선 전까지는 맨유에 전념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
한국 축구를 구할 해결사는 박지성만이 아니며 뛰어난 기량을 지닌 K리그 선수들이 여럿 있다. 그러나 국가대표팀 발탁과 올림픽대표팀 와일드카드 물망은 박지성에 대한 의존도와 더불어 1명의 특급 선수 활약으로 대회에서 좋은 성적 올리겠다는 한국 축구의 근시안적인 대표팀 운영이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K리그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더 많은 '포스트 박지성'이 K리그와 대표팀을 통해 등장해야 하나 지금 이대로라면 한국 축구는 박지성 은퇴 이후에도 지금처럼 박지성 타령만 할지 모른다.
[사진=박지성 (C) 엑스포츠뉴스 이상규 기자]
이상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