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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P분석] 박병호 악플러, 명예훼손vs표현의 자유...법은 누구 편일까

기사입력 2016.01.09 07:55 / 기사수정 2016.01.09 07:55

이은경 기자
 

[엑스포츠뉴스=이은경 기자] “그냥 정말 한 번 만나보고 싶어요. 같이 사진을 찍어서 구단 홈페이지에 올린다면 본인도 느끼지 않겠습니까. 자기 가족들에 대해 누군가 그렇게 말한다면 기분이 어떨까요.”
 
박병호(30, 미네소타)는 ‘악플러’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약간 격앙된 목소리로 대답했다. 지난 7일 열린 메이저리그 진출 기자회견에서 그는 “악플러에 대한 고소를 진행할 생각이냐”는 질문을 받았다. 최근 한 매체가 ‘넥센 구단이 박병호 악플러에 대한 고소를 준비 중이다’라는 내용을 보도해서 야구팬 사이에선 큰 화제가 되었기에 나온 질문이었다.
 

'박병호만 따라다니며 비난하는' 악플러
 
박병호와 악플러의 악연은 유별나다. 불특정 다수가 박병호에 대한 악플(악성 댓글)을 다는게 아니라, 특정인 한 명이 끈질기게 몇 년간 박병호 관련 기사에 악플을 달고 있다. 국내 최대포털사이트에서 ‘국○○’이라는 닉네임을 쓰는 이 악플러는 지난 몇 년간 꾸준하게 박병호에 관한 거의 모든 기사마다 댓글을 다는 것으로 유명하다. 박병호의 플레이를 저평가하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이 악플러를 바라보는 야구팬들의 반응은 매우 비판적이다. 넥센 구단이 악플러 고소를 준비 중이라는 기사가 보도되자 ‘악플러를 고소해서 본때를 보여줘야 한다’는 내용의 댓글이 연이어 달렸다.

 
박병호가 악플러에 대해 단호한 입장을 밝힌 적은 없다. 지난 2009년에 박병호가 이 악플러에게 인터넷 쪽지를 보낸 내용이 뒤늦게 공개돼 야구팬 사이에서 큰 화제가 된 적은 있다. 당시 박병호는 매우 정중하게 “좋은 말씀 감사드린다. 성적이 충분하지 않았다는 점은 인정하지만, 나 자신이 가장 괴로웠다. 응원 부탁드린다”는 말을 썼다.



박병호는 지난해 초 인터뷰에서 이 악플러에 대해 “관심을 가져주는 모든 분들께 감사한 마음을 갖는 게 프로선수의 자세라고 본다. 그분의 자유로운 의견을 존중하고 싶다. 물론 동의하진 않지만”이라고 말했다.

박병호는 여전히 조심스러운 입장이다. 이번에 악플러 고소 문제가 화두에 오르고, 직접적으로 기자회견에서 질문까지 받았는데도 박병호는 “노코멘트 하려고 했는데…”라며 말문을 열었고, 짧은 답변 후 “여기까지만 말씀드리겠다”고 마무리지었다.
 

 
과연 '국○○'을 처벌할 수 있을까
 
박병호 악플러가 여전히 꾸준하게 박병호의 플레이를 비하하는 댓글을 다는 걸 보면, 문득 궁금해진다. 박병호가 악플러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하면 처벌시킬 수 있을까.
 
일반 야구팬들은 ‘그렇다’고 생각하겠지만, 현직 변호사의 의견은 좀 달랐다. 법무법인 ‘도담’의 김남주 변호사는 “내가 야구팬이 아니라서 ‘국○○’이 정확히 어떤 댓글을 달았는지 모두 읽어보진 못했다”고 전제한 후 “하지만 댓글에 ‘목동구장이 작아서 홈런왕이 됐다’, ‘삼진왕이다’, ‘태국 투수한테도 삼진 먹는 선수다’라고 쓰는 건 명예훼손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답했다.
 
김 변호사의 설명에 따르면, 법률상 ‘사실에 기반한 자신의 주관적인 평가’를 쓰는 건 명예훼손이 아니다. 같은 맥락에서 ‘대통령이 일을 못한다고 생각한다’는 댓글은 대통령에 대한 명예훼손이 아니다. 명예훼손이 성립되는 경우는 허위사실이 들어갔을 때다. 내가 때린 적이 없는데, 누군가 나에게 맞았다고 주장하는 경우가 그 예다.
 
김 변호사는 “목동구장이 작은 건 사실이고, 박병호가 작은 데서 쳤으니 실력이 없다고 생각한다는 악플러의 평가는 명예훼손으로 증명하기 쉽지 않은 경우다. 욕설이나 인신공격, 사실에 기반했다고 하더라도 ‘너 사생아지’ 같은 식으로 인신공격성일 때는 명예훼손이 된다”고 설명했다.

과거 프로게이머 임요환의 아내이자 연기자인 김가연이 악플러들을 고소했다가 처벌까지 받아낸 경우가 있는데, 이 경우는 악플러들이 김가연의 나이, 외모 등을 거론하며 인신공격성 발언을 했다. 당시 악플러들은 50만~500만원의 벌금형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명예훼손에 대한 처벌 수위도 높은 편은 아니다. 김 변호사는 “명예훼손에 대한 처벌은 벌금형이 대부분이다. 약한 건 100만 원 정도, 높아도 500만원 수준이다. 1000만원을 넘어가는 경우는 흔치 않다. 다만 처벌받은 사람에게 전과 기록은 남는다”고 설명했다.
 
변수는 있다. 넥센 구단 측은 “박병호 악플러의 악플을 캡처해 놓았다”고 밝혔다. 만일 넥센이 수집한 증거 중 인신공격성 내용이나 욕설이 있다면 소송을 거쳐 ‘국○○’을 처벌할 수 있는 가능성이 커진다. 그러나 넥센 구단 측은 이런 내용을 캡처한 증거를 확보했는지를 묻는 질문에 대해 “박병호 악플러 관련 이야기가 더 이상 기사화되는 걸 원치 않는다”며 답변하지 않았다.
 
김 변호사는 “만일 넥센 구단이 악플러에 대한 증거를 수집했다면, 위법한 방법으로 수집한 게 아니기 때문에 증거 능력이 있다. 박병호의 명예훼손에 대해 제3자인 넥센 구단이 수집한 자료를 소송 중에 사용하는 것은 가능하다”고 했다.
 
 
왜 현행법은 악플러에게 유리한가
 
법률적으로 ‘국○○’이 유리한 이유는, 현행법이 인터넷상의 명예훼손 보다 표현의 자유 쪽에 더 무게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명예훼손 관련 규정이 지나치게 강화될 경우 정치적인 의견을 댓글로 개진하는 것이 제한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지난달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정보통신에 관한 심의 규정’ 개정안을 의결했다. 이에 따라 현재는 인터넷에 게시된 명예훼손성 글에 대해 피해당사자가 아닌 제3자가 심의를 신청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넥센 구단이 제3자인 박병호에 대한 명예훼손 심의를 신청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넥센은 “도의적으로 박병호가 허락을 해야만 고소를 진행할 수 있다”고 했고, 박병호는 이에 대해 공식적인 입장 표명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상식’ 선에서, 박병호의 모든 기사마다 재빠르게 가장 먼저 악플을 다는 ‘국○○’에 대해 대부분의 야구팬과 관계자들이 불쾌함을 느끼고 있다.
법적인 테두리가 인터넷상 ‘표현의 자유’를 우선시한다고 해서, 그것이 이토록 오랜 기간 특정인을 집요하게 저평가하는 것까지 허용한다는 뜻일까.
 
kyong@xportsnews.com /사진=엑스포츠뉴스
 

이은경 기자 kyong@xport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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