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김유진 기자] 배우 성유빈이 영화 '대호'(감독 박훈정)를 통해 관객들에게 눈도장을 찍는 데 성공했다. 천연덕스럽다가도 이내 진지하게 자신의 생각을 또박또박 전하는 모습은 극중 석이와도 묘하게 닮아있다.
성유빈은 지난 달 16일 개봉한 '대호'에서 조선 최고의 명포수 천만덕(최민식 분)이 애지중지하는 늦둥이 아들 석으로 등장했다.
'대호'는 일제강점기, 천만덕과 마지막 호랑이 대호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 139분의 러닝타임동안 이어지는 묵직함 속에서 성유빈은 특유의 청정한 매력으로 극에 활력을 더한다.
2011년 영화 '블라인드'로 스크린에 데뷔한 성유빈은 그간 '완득이'(2011)를 비롯해 '파파로티'(2012), '은밀하게 위대하게'(2013), '역린'(2014), 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 등으로 꾸준히 연기 활동을 펼쳐왔다. 조인성, 유아인, 신하균 등 선배 배우들의 어린 시절 역할을 주로 연기했던 성유빈은 '대호'를 통해 처음으로 누군가의 아역이 아닌, 온전한 성유빈 자신의 모습으로 대중을 마주했다.
'대호' 개봉 후 성유빈을 만났다. 테이블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마주앉은 성유빈은 진지함과 순수함을 넘나드는, 고등학교 입학을 앞둔 중학교 3학년 또래의 모습 그대로였다.
성유빈은 "가족들과 친구들도' 대호'를 봤어요. 제 모습이 스크린에 나오는 게 처음에는 실감도 잘 안 나고 별 느낌이 없었는데, 아무래도 좀 더 관심이 생기고 영화 전체 내용을 더 많이 보게 되더라고요"라고 개봉을 맞은 소감을 전했다.
'대호'는 2014년 11월부터 지난 해 5월까지 6개월의 시간 동안 촬영된 작품이다. 성유빈은 "중간 중간에 감독님도 조금씩 뵀었기 때문에 오래된 일 같지 않아요"라며 미소 지었다. 성유빈은 100대 1의 치열했던 오디션을 뚫고 '대호'에 합류한 인물이다.
극 중 화장실을 놔두고 바깥에 나와 숲을 향해 소변을 보다 만덕에게 핀잔을 들으면서도 "지가 제법 실해유"라고 능청스럽게 말하는가 하면, 정혼자인 선이(현승민)와의 결혼이 어려워질 것 같은 상황에 "내가 어떻게 하면 되겠냐", "확실히 혀. 나한테 시집 올 맘이 있는겨, 없는겨?" 라고 되물으며 안절부절 못하는 모습은 그의 존재감을 십분 살려준 유쾌한 명장면으로 회자되고 있다.
"오디션도 편하게 봤어요"라며 특유의 천진한 말투로 말을 꺼낸 성유빈은 자신이 해석한 석이라는 인물에 대해 "어머니의 과거를 알면서도 모르는 척 하고, 어떻게 보면 천진난만하긴 한데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또 생각이 많은, 속이 깊은 그런 아이가 아닐까 생각했어요. 중반부에 아버지한테 갑자기 '다다다다' 막힘없이 말하면서 화를 내잖아요. 그런 것을 보면 지금까지 자기 나름대로 생각을 많이 해왔다는 거죠"라고 설명했다.
현장에서 박훈정 감독을 비롯해 최민식 등 선배 배우들은 성유빈이 좀 더 편하게 연기를 펼칠 수 있도록 격려와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극 중 대호를 잡는 이야기를 꺼냈다가 만덕에게 크게 한 소리를 들은 뒤, 방으로 들어가는 자신을 끝까지 노려보는 아버지를 향해 "무섭잖아유, 뭘 그렇게 계속 쳐다봐유"라고 받아치는 장면은 성유빈의 아이디어에서 나온 애드리브였다.
영화 속에서 능숙하게 쓰던 사투리도 특별히 더 배운 것이 아닌, 평소의 자연스러움을 그대로 녹이려고 했다. 촬영장에서의 느릿느릿한 말투, 행동으로 최민식이 '어르신'이라고 부를 정도였다는 그의 여유로움이 엿보이는 부분이기도 하다.
최민식에게 뺨을 얻어맞는 장면이 아프지는 않았냐는 물음에도 "기술이 좋으세요"라고 말해 웃음을 안긴 성유빈은 "실제로 안 맞으면 느낌이 살지 않을테니 '때리는 게 낫겠지'라고 물어보셔서 괜찮다고 했는데, 안 아프게 때리셔서 정말 괜찮았어요"라고 설명했다.
가장 많이 회자되는 숲 속에서의 선이와 대화 장면도 "날씨도 따뜻하고 시원해서 공기가 좋더라고요. 거기에 상대 배우도 있고, 뭔가 신났어요"라며 해맑게 말을 잇고, 몇 개월 간 이어지는 지방 촬영이 힘들 법도 했지만 "원래 어디서든 잘 자서, 현장에서도 힘들지 않고 편안했어요"라고 자연스럽게 답하는 모습에서는 어른스러운 면모가 내보인다.
이렇게 마냥 천진난만할 것만 같은 열일곱 어린 배우에게도 '대호'는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 작품이었다. "최민식 선생님 말씀처럼, 제게는 절대 잊지 못할 작품이죠"라고 말한 성유빈은 스크린으로 본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며 "생각했던 것보다 덜 표현된 것 같더라고요. 호평은 많이 해주시는데, 마음에 안 들었어요"라고 고개를 내젓는다.
그러면서 촬영 현장에서 혼란스러웠던 경험을 함께 기억해냈다. 성유빈은 "현장에서도 감독님이 주신대로 하고 싶은데, 그게잘 안되는 거예요. 그럼 최민식 선생님도 옆에서 도움 주시려고 이런저런 얘길 해주시는데, 그것도 잘 안 될 때가 있더라고요"라며 혼란스러움 속에서도 끝까지 자신 앞에 놓인 숙제를 해결하고 싶었던 마음을 털어놓았다.
그만큼 좀 더 잘 하고 싶은 마음에 아쉬움이 더 큰, 연기에 대한 반성과 고민은 어느 배우 못지않은 그다.
성유빈의 마지막 촬영날, 스태프들은 수고했다는 의미로 성유빈에게 박스 하나를 선물했다. 박스 안에 들어있던 것은 '수학의 정석'과 '성문영어'. 올해 고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는 , 열일곱 영락없는 학생의 신분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성유빈은 "스태프 분들이 '석이 끝났습니다' 하면서 촬영을 마치고 박스를 하나 주시는데, '수학의 정석'이랑 '성문영어'가 들어있는 거예요. 감사하다고 했죠. 고등학교에 가면 이제 내신관리도 잘 해야 할텐데, 조만간 펼칠 때가 된 것 같아요"라며 웃었다.
2월 중학교 졸업을 앞둔 일상 속의 '학생' 성유빈은 게임을 좋아하는 여느 또래와 다르지 않다. 손재주가 남달라 컴퓨터를 만지거나 만들기와 조립, 퍼즐 맞추는 것도 좋아하고 친구들과의 여행 사진을 멋지게 편집하는 것도 그의 몫이다. 스스로도 "꼼꼼하게 하려고는 해요"라며 쑥스럽게 웃는다.
학생인 그에게 '대호'는 살아있는 현장학습 체험장과도 같았다. '대호'가 일제강점기 시대를 다루고 있는 만큼, 성유빈도 이번 촬영을 통해 몸소 역사 공부를 하는 계기가 됐다고 했다.
"저희 역사 선생님이 정말 잘 가르쳐주시거든요. 선생님들이 정말 좋으세요"라고 말문을 연 성유빈은 이어 고마운 사람들을 한 명씩 천천히 언급하며 "아, 담임선생님도 감사해요. 수업에 빠질 때 죄송했는데 이해해주셔서요. 친구들도 단체관람까지 해줘서 정말 고맙죠. 저희 중산중 3학년 3반 친구들 고맙고, 7반에 있는 천유진이라는 친구와 제일 친하거든요. 그 친구에게도 고마워요"라고 못다 전한 마음을 털어놓는다.
성유빈은 '앞으로도 연기를 계속 하고 싶냐'는 물음에 "하면 할수록 더 깊게 보게 되는 것 같다"는 대답을 내놓았다. "영화를 볼 때도 더 관련지어서 생각해보게 되는 것 같아요"라는 그의 대답에서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무르익어 갈 단단한 싹이 엿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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